투망금린 ( 透網金鱗 )
/ 일붕 서경보 큰스님
그물을 뚫고 나온 금빛이 나는 고기를 물에 걸려 있다고 이르지 말라
하늘을 흔들고 땅을 탕진하고 갈기고 떨치고 꼬리를 흔든다
천척의 고래가 물을뿜어 큰 물결을 날리니
한 소리의 우뢰가 하늘을 떨친 맑은 바람이 일어나도다.
이것은 <벽암록> 제49책에 나오느 글귀이다.어느 날 삼성이란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아래와 같이 물었다 ,
" 그물을 뚫고 나온 금빛이 아는 고기는 무얼 먹고 삽니까?'
설봉이 답하기를
""네가 그물을 뚫고 나와야 너에게 말해 주겠노라"",
그런즉 삼성이 또 이르기를 , " 1천5백인의 제자들을 지도한다는 선지식이
화두 하나도 모르는 구려"
설봉이 다시 답하되, "" 노승이 주지일을 맡아 있노라고 답변하기 때문일쎄"""
삼성이라는 분은 혜연선사 라고 부르는 유명한 선사이다
그는 의현 스님의 법을 이은 대선지식이다 , 그 스님이 돌아가실때 삼성에게 물었다
"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의 정법안장을 끊어짐이 없게 하라"
한즉 삼성이 대중 가운데 나와서 말하기를 ,
"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스님의 정법안장이 끊어지게 할리가
있겠습니까?" 임제(의현)스님이 또 이르되.
" 그렇다면 내가 떠난 뒤에 어떤 사람이 와서 임제의 법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너는 무어라고 답하겠느냐?"
삼성은 이때 큰소리를 질러 '할' 을 했던 것이다.이 '할'이야말로
8천 대천세계가 일시에 폭발하는 것 같은 큰 '할' 이었다
임제가 이것을 보고 " 아까운 일이로다. 나의 정법안장이 눈먼 당나귀를
향하여 끊어져 멸하고 마는구나!" 했다 이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임제'의 법이 끊어지는 것을 탄식한 것 같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나의 법이
제대로 이어 가겠노라고 찬탄한 것이다,
여기에서 '임제'는 '삼성'을 인가하고돌아가셨다. 그러면 설봉은 어떤 분인가?
그의 이름은 의존으로서 유명한덕산스님의 제자였다.
설봉은 대인집화에 매우 엄격한 인물이나 그가
젊어서 수업을 할때는 부드러운 은덕을 많이 쌓은 분이다 .그리고 의지가
강하기로도 유명했다. 공부를 할때 3번이나 투자스님에게 찾아갔고
9번이나 동산스님을 참배했다고 이르는 끈질긴 납자였다 .
그는 동산스님 회상에서 2천명이 공양하는 공양주로 살았다.공양주라는 것은
밥을 짓는 소임이다 . 이때에 재미있는 문답이 있다. 설봉이 쌀을 씻어
돌을 골라낼 때 이를 본 동산스님이 설봉에게 묻기를 ,
" 너는 모래를 씻고 쌀을 씻어서 모래를 만드느냐?" 한즉 설봉이 답하여,
""모래와 쌀을 다 버리나이다"" 동산스님이 또 묻되,
' 그러면 대중은 무엇을 먹는단 말이냐?' 했다. 그때 설봉은 별안간 담았던
광주리를 뒤집어 엎어 버리고 말았다.이에 대해서는 선기의 비밀이니까
뭐라고 풀이할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나 설봉스님에게 그만한 기백이 있었다는 것만은
인정할수 있는 것이다.
하여간 1천명 이상의 중이 먹는밥을 지어 올린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도
누가 시킨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공양주로 살았다니 그의 원력이
지중한것을 찬탄할 따름이다 . 보통사람들은 납자가 좌선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공부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공부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49년을 설법하신 <팔만대장경>과 그밖에 정법안장의
마음도리를 크게 깨쳐 달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선종의 종지를
불심종佛心宗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바로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분골쇄신하는 정신으로써 공부해야 하는것이다.
선종에서의 공부는 마음으로만 내성 반조할 뿐만 아니라 도량 안에
종이 한 장과 나무 한 뿌리라도 보고 지나치지 않고 거두며
마당쓸기와 창닦기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주의하여 정결하게 한다.
한편 그러한 하역을 할지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변소 청소와
같은 일로 숨겨 하는 것이다.그런데 공부가 깊은 납자들은
그들의 문답이 초심자와 달라서 마치 용과 호랑이가 만나 싸우는 겻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변어는 불꽃을 튀기고 뇌성을 치고
번개가 번쩍 거리는것 과같다. 여기에서 삼성이 설봉에게,
"그물을 뚫고 나온 큰 고기는 무엇을 먹습니까?' 하고 물은 법구를
풀이해 보면 그물이란 것은 문자의 그물과 오도悟道의 그물과 교학의
그물과 기타 문학.철학.과학.정치학.윤리.도덕 하는 학문의 그물을 벗어젖히고
그 밖으로 자유롭게 뛰어나온다는 말이다.
고기가 그물안에 있을때는 해초나 잔잔한 고기들을 먹이로 삼지만 그물 속에서
뛰어나와 용이 된 다음에는 무엇으로 양식을 삼을 것이냐 하는 말이다.
삼성의 뜻으로는 자기가 투망금어 즉,그물을 뚫고 나온 금빛 나는 고기가
된 것처럼 설봉에게 육박하여 물은것이다 .그런데 설봉은 삼성에게 대하여
삼성이 아무리 투망금어로 자처 하지만 설봉이 보기에는 아직
그물을 뚫고 나온 것 같지 않으니까 설봉은 기운차게 답하여 말하기를,
" 네가 진정으로 그물을 뚫고 나올 때를 기다려서 너를 향하여
일러주겠노라", 고 한것이다 그러나 삼성도 그 말에 떨어지지를 않고
역습하기를, '1천5백인의 지도자인 선지식으로서 화두 하나도 대답할줄을
모르는 구려 !" 했다. 이때 섬성의 의기는 하늘을 찌를 만한 기백이었다.
그러나 설봉은 능소능대 ( 能小能大 ) 하고 종탈 (從奪)이 자재한
선지식 인지라 슬쩍 넘기면서 말하기를,
' 노승이 절을 맡아 가지고 주지 노릇 하느라고 다번해서
미처 살피지를 못하였노라 ", 한 것이다
이것은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이쪽은 오히려 유 로써 부드럽게 대하는
능란한 술법이다.
보통 사람으로 서는 엿 볼수 없는 장면이다.그리고 설봉은 그야말로
선도니 불도니 하여 알았다는 티가 조금도 없으며, 대적이라고 해서
두려워할 것도 없고,소적이라고 하여 업신여기지도 않고 유유자적 하여
낭패없이 상대하여 대답한 것이다. 그러므로 삼성은 1천 척이나 되는 고래가
물을 뿜어서 큰 물결을 날린 것이지만 설봉은 '노승이 주지 노릇을 하기
때문에 다번해서!' 하며 가볍게 받아들인 것이 마치 큰 소리의 우뢰가
뇌성을 치며 맑은 바람이 일어나고 맑은 바람 끝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소나기가 멎은 뒤에는 밝은 태양이 비추어져 천하가 명랑하고 태평양을 ]
잡아 희롱한 것이다 이것을 되풀이하여 말하면 삼성이 "투망금어는
므엇으로써 먹이를 삼느냐?' 고 물은것은 바람없는 해면에 물결을
일으킨것과 같고 설봉이 '네가 그물에 뛰어나옴을 기다려서
이르겠노라 한 것은 청천하늘에 우뢰를 치는 것 같고,
'노승이 주지로 있어서 다번하다'는 것은 맑은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것이니,
비가 멎은 끝에 맑은 바람이 불면 서늘한 기분이 되어 번뇌의 열기가
가시어졌다는 말인 것이다. 부처님도 이 맑은 바람 즉 청풍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6년동안 고행끝에 도를 깨달아 49년간을
설법하셨고,달마대사도 이 청풍을 깨닫기 위해 9년간의 면벽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하늘 아래 땅위에 이 청풍의 맛을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내가 일기로는 설두스님 외에는 이 소식을 아는 자가
없을 것같다. 짐짓 오늘의 대중은 이 소식을 알겠는가?
사람 사람의 다리 아래로 청풍이 떨치고
낱낱의 얼굴 앞에 명월이 밝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