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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그들과 함께 조용히 입국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몰려든 기자들로 인해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면 엄청난
시력손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도 그들은 답변을 주지 않았다. 윤한규와 윤진후
가 민영의 손을 잡고 있는 윤지영을 밖에서 보호하듯 양 옆에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며 수많은 추
측성 기사들을 만들어 냈다. 차에 오른 민영이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진후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명인과 같이 다니는 게 힘들죠? 곧 적응 될 거예요.”
민영이 그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차가 미끄러지듯 기자들을 피해 공항을 빠져나왔다.
*****
민영은 윤 여사의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고 싶겠지만 집엔 벌써 기자들이랑 방송국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을 거야. 정혜도 윤진 양과 함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지내요.”
“감사합니다.”
“손님방으로 안내해 주세요.”
“네, 사모님. 이쪽으로 오세요.”
“네.”
민영이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손님 방에 들어갔다. 넓은 방을 바라보며 그녀는 눈가를 붉혔다. 엄마와 언니, 그
녀 세 식구가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침대 앞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은 그녀가 무릎을 들어 끌어안고 턱을 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신데렐라가 따로 없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윤한규 사장의 숨겨둔 딸이라는 것은 재현의 부모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갈 것이다. 사실을 알고 나면 180도로 변해서 그녀와 재현의 혼인을 서두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게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손가락을 들어 반지를 바라보았다.
“보고 싶다..”
고개를 숙인 그녀가 조용히 훌쩍였다.
*****
그녀의 예상대로 상류사회가 들썩였다. 자신들이 고실장에게 잘못한 것은 없는지 고민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그래도 우린 괜찮아요. 조 여사가 제일 문제죠. 옛날 일로 얼마나 싫어했어요?”
“싫어하기만 했으면 다행이에요? 우리들을 모아놓고 고실장을 불러서 창피를 주려고 했잖아요.”
“그래도 아직 차 재현 사장과 고실장이 사랑한다면 결국 조 여사 좋은 일 아니겠어요?”
“그러게요. 잘난척하는 모습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고민이네요.”
*****
재현의 사무실에 조예령이 들어왔다.
“바쁩니다.”
“넌 알고 있었어?”
소파에 앉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른 척 하기는.. 못 들었어? 고 실장이 윤 사장님의 숨겨둔 딸이라는 거. 전 처와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으니 모든 재산은 고실장이 유산으로 받게 될 거야.”
“그래서요?”
재현이 싸늘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결혼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왜요. 저를 떠나서 기뻐했는데 재벌이 되어 돌아오니 꼭 잡고 싶어지셨어요? 어머니께서 탐을 내신다고 결혼이 쉽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왜?”
“저와 결혼하고 싶다면 벌써 연락이 왔겠죠. 이제 그 쪽에는 선택지가 많아졌습니다.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가 있는 집에 며느리로 들어오고 싶겠습니까?”
“널 사랑하잖아.”
“이곳이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는 곳이었나요?”
“네가 가서 잡아.”
“싫습니다. 오늘은 충분히 대화를 한 것 같으니까 이만 끝내죠. 멀리 못 나갑니다.”
“재현아. 윤 사장님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고, 윤지영 이사장의 유일한 조카야. 거기에 요즘 미술업계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J. Hoo라는 사람이 윤지영 이사장의 아들이란 말이야. 그 아이를 노리는 집안이 얼마나 많은 지 알
아? 오히려 지금이 너에겐 기회라고~.”
“그만 하세요!”
그가 책상을 두 손으로 치며 일어나 호통을 쳤다.
“제가 싫습니다. 창피해서 싫어요.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시하다가 재벌 집안인 것이 확인 되니까 욕심을
드러내는 사람이 내 어머니라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이런 집안에 들이기 싫어요. 민영이는 저보다 더 좋은
집안사람이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세요.”
“재현아.”
그가 버튼을 눌렀다.
“어머님 나가십니다.”
그가 고개를 들고 냉정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행여나 민영이를 찾아가실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부탁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우리 집안은 애정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이상 어머니 때문에 부끄럽게 살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만약 제 경고를 무시하신다
면 노년을 덜 부유하게 사시게 될 겁니다. 할머님이 돌아가신 병원보다는 조금 더 좋은 시설로 알아보고 있는 중
입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병원으로 모실 생각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아니면 그렇게 애지중지 하셨던
재성이 형과 함께 사시던지요. 그렇게 살기 싫으시다면 조용히 집 안에서 화초 키우며 사세요. 재성이 형이 재혼
을 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우리 대에서 저희 집안은 끝날 겁니다.”
어머니의 눈이 흔들렸다. 재현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어머니가 그를 지나쳐 사무실을 나가자 재현이 문을 닫았다.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며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가 뒤로 머리를 기대었다.
*****
민영이에게 세나한테 전화가 왔다.
“응, 세나야.”
<나 진짜 깜짝 놀란 거 알아? 커피 뿜었다니까?>
“그랬어?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야~. 그런 걸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어떻게 말하냐? 잘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사실은.. 힘들게 살았잖아.>
“고맙다. 나 때문에 힘들지 않아?”
<말도 마. 요즘 진짜 세상 무섭더라. 어떻게 너랑 친했던 걸 알았는지 전화가 하도 와서 번호 바꾸고 조금 뜸해졌어. 그래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미안해..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만나자.”
<네가 쏘는 거다?>
민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전화를 끊자 조금 후에는 제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은아..”
<네 얼굴 보고 싶은데 기자들이 우리 집 앞에도 있어서.>
“미안해..”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난 기뻤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서.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아서. 너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서 나는 좋았어.>
민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빠랑 재현선배가 신문사나 방송국에 전화를 넣은 것 같아. 점점 너에 대한 기사들을 내리고 있거든. 물론 오빠나 재현선배보다는 더 파워가 있는 분들도 같이 움직이신 거겠지만.>
“고맙다고 전해 줘.”
<힘 내라고 조금 있다가 내가 동영상 보내줄게. 널 모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신데렐라가 됐다면서 시기어린 말들을 생각 없이 하지만 널 아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말하더라.>
“댓글보기 무서워서 인터넷도 안 해.”
<그래,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이제 재현선배랑 결혼할 수 있는 거야?>
“글쎄.. 재현오빠 부모님들은 결혼했음 하시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결혼하기가.. 기분이 썩 좋진 않아.”
<다른 건 생각하지 마. 재현선배와 너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응. 고맙다. 좀 잔잔해 지면 얼굴보고 이야기 하자. 세나가 한 턱 쏘래서 그러려고.”
<좋지~. 그럼.. 힘 내.>
“응.”
전화를 끊고 제은이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그녀에 대해 인터뷰를 한 것을 모은 거라고 했다.
“고민영 양을 언제 만나셨나요?”
“민영이랑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2학년 때인가.. 같은 반이었어요.”
“고민영 양은 어떤 분이었나요?”
“반에서 활기가 넘치게 만드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 친구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선배랑 사귀었었거든요. 고등학교 시절이 재미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친구죠.”
“**그룹 윤한규 사장님의 숨겨둔 딸이라는 건 알고 계셨나요?”
“아니요.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것만 알았어요. 처음엔 시골에서 왔다, 아버지가 없다는 걸로 놀림도 받곤 했는데 워낙 친구들한테 잘 하니까 나중에 다들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럼 현대판 신데렐라다.. 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뭐.. 재벌 집 딸이 된다고 해도 고마담은 크게 변할 것 같진 않아요.”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동영상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 번은 나쁜 남자한테 속아서 사귈 뻔 했는데 민영이가 말려줬어요. 그 후로는 사람을 볼 때 조금 더 천천히 진지하게 보게 된 것 같아요.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는데 위험에서 구해준 좋은 친구입니다.”
“남자관계요? 고마담처럼 깨끗한 아이가 없을 걸요? 고백하는 남학생들이 제법 있었는데 다 거절했어요. 오히려
그 남학생들에게 어울릴 만한 여학생들을 소개주기도 했어요. 남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하기 보다는 뭐랄까..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본인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어요.”
“아니.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라고 해요~. 왜요. 착한 사람은 복 받으면 안돼요? 고마담은 복 받을 만 했다고 생각
해요. 고마담~. 다른 사람들 말 신경쓰지 마. 난 네가 잘 되어서 진짜 좋다? 그러니까 행복하게 살아. 네 덕분에
우리들은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니까. 알았지?”
그 후로도 그녀와 함께 고등학교를 보낸 친구들, 선배들과 후배들, 선생님들, 요양병원 분들의 동영상이 이어졌
다. 민영이 손을 들어 입을 막고 울음을 터트렸다. 마지막으로 재현의 동영상이 보였다. 본인이 직접 찍어서 제은
이에게 보낸 것 같았다.
“일단..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모르겠다. 공항에서 널 보낼 때보다 지금이 조금 더 힘든 것 같아. 머리도
복잡하고. 혹시 우리 부모님이 널 찾아간다면 만나지 마. 그럴 필요 없어. 네가 윤 사장님의 딸이어서 결혼시키고
싶으신 것 뿐이니까. 이런 집에 너 들어오라고 안 해. 네가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조금은 너와 어머님 인생을 즐겨
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다가 좋은 남자 만나면.. 나보다 좋은 집안으로 시집간다면 좋을 것 같아. 언론에서 떠드는
말은 신경쓰지 말고, 밥 거르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동영상을 멈추자 그녀가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도 좋다는 소리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
준성, 호영과 함께 재현이 술을 마셨다.
“뭐가 문제야? 이젠 부모님들도 다 허락하시는데.”
준성이 호영의 말에 대답했다.
“민영이가 좋아서 허락하시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너희들은 결혼해서 둘이 알아서 살면 되잖아. 부모님 신경 쓸 필요 있어?”
재현은 조용히 술을 마셨다.
“고마담한테 대쉬하는 좋은 집안 남자들이 줄을 섰을 텐데?”
“그래도 고마담은 재현이를 사랑하잖아. 나는 네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고마담이 이 녀석한테 와야지~. 그런데 연락도 없잖아.”
“뭐야. 고마담이 변한 거라는 거야?”
“거 참 엄청 시끄럽네. 둘이 이야기 해. 나 들어갈 테니까.”
재현이 일어나자 두 사람이 양 쪽에서 그의 팔을 잡아 다시 앉혔다.
“미안.”
“다른 놈이 채가기 전에 잡아라.”
“모르겠어.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까 잘 됐다. 그 정도?”
두 사람이 한 숨을 내쉬었다.
“네가 찾아 가야 한다니까?”
“아니지~. 고마담이 와야지~. 고마담이 여행 갔다가 아직 이 녀석한테 안 온 거잖아.”
“그래도 남자가 찾아가서 제대로 프로포즈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아니라니까 그러네.”
재현이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난다. 더 이야기 하고 들어가라. 결혼하더니 집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싫으냐?”
“그런 게 아닌데?”
“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재현이 몸을 돌려 나가자 두 사람이 안쓰러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
*****
엘리베이터에 올라 8층을 누른 그가 벽에 몸을 기대고 한 숨을 내쉬었다. 8층에 도착하자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
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넥타이를 풀어 손에 둘둘 말았다. 민영이 사다 놓은 슬
리퍼를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불이 환하게 켜 있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돌리자 소파에
민영이 앉아 있었다.
“여긴 왜 왔어? 기자들이 숨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주방에 들어가 물을 꺼내 마셨다. 소파에서 일어난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가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가서 동영상을 멈추었다.
“머리 좋아서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지.”
민영이 입을 벌렸다.
“진짜야? 진짜 나 다른 남자랑 결혼해?”
“좋은 남자면.”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가를 붉혔다.
“날 그런 여자로 봤어? 그래?”
“아니. 그러길 바랬어. 내내 힘들었잖아. 더 이상 힘들지 않았으면 싶어서. 네가 힘들었을 때야 내가 뭔가 해 줄
수 있지만 지금은 나랑 결혼하면 힘든 우리 가족 생각하느라 또 네가 힘들어질게 뻔하거든. 넌 다른 사람들을 무
시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 게 어딨어? 우리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그 분에게 전화를 했을지 생각해 봤어?
내가 어떤 생각으로 그 분과 함께 입국했는지 생각해 봤냐고. 오직 하나야. 오빠 옆에 있는 거. 하지만 너무 속물
이잖아. 오빠랑 결혼하려고 날 버린 아버지.. 다시 받아들인 거니까. 내 욕심 때문에 우리 엄마 아프게 했고. 이제
재벌 집 딸이 되었으니 결혼 허락해 주세요.. 그건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오지 못한 거지,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해서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뭐라고? 더 좋은 남자면 결혼해도 돼? 그럼 왜 그랬어? 공항에서 왜 그랬어? 나 영
국 남자들 좋아하거든? 그런데 눈길 한 번 안 줬어. 말을 걸어도 대꾸도 안 했다고. 7시 전에 들어와서 호텔 룸에
서 식사했어.”
“그건.. 잘 했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연애하자, 차재현.”
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랑 연애하자고~. 집에서 말고 밖에서 만나. 영화도 보고, 호텔 스카이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자. 조명이 예쁜
자리엔 내가 앉을 거야. 그리고.. 또 뭐가 하고 싶었지? 아. 길에서 손 잡고 다니자. 남들이 눈꼴시다고 할 정도로
꼭 붙어 다닐 거야.”
재현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그가 고개를 옆으로 조금 돌렸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가 그를 강아지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볼을 감싸듯 쥐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고, 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 뿐이야. 네가 없는 동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있어야지.”
“나도.. 숨 막혀서 못 살겠더라. 차라리 예전이 편했어.”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 연애하자. 이 세상 여자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내가 잘 할게.”
“다른 남자한테 보내기만 해. 내가 다른 남자랑 키스하는 거 생각해 보고 말한 거 아니지? 난 생각만 해도 속이 이상하단 말이야. 오빠 말고 다른 남자랑 키스하는 날 상상하기 싫어.”
“하지 마. 너.. 다른 놈한테 안 줘.”
“진짜지?”
“그래.”
“말 바꾸기만 해.”
그가 피식 웃었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
“오빠면 돼. 다른 남자 필요 없어.”
“고마워.”
그가 그녀의 입술 위에 입맞춤을 하자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의 손이 내려와 그녀의 등을 안고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
그의 침대에 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내가 짝사랑하던 오빠가 있었어.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같은 동네에 살았거든. 그런데
알고보니 언니를 좋아하고 있었더라고. 사춘기가 시작되려고 했었나.. 언니가 미운거야. 나랑 다르게 예쁘고, 그
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 하고.. 뭐든 다 잘하고 예쁜 언니가 막 질투가 나고 그랬었어. 그런데 언니가 그 오빠의
고백을 받고 거절한 거야. 오빠가 상처받은 얼굴로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화를 냈어. 그렇게 잘났냐고.. 사람 마음
을 그렇게 아프게 해도 되는 거냐고.. 그랬더니 언니도 화를 내더라? 네가 뭘 아냐면서. 그런 놈을 왜 좋아하냐고.
그러다 서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오고가다가.. 둘 다 화가 나서 며칠 동안 말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
그러다가 집 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언니 팔을 잡아당기고 있는 거야. 내가 놀라 달려가 그 아저씨 팔을 물었어. 알
고 봤더니.. 언니.. 아빠라는 남자더라고. 아빠가 다르다는 걸 그 때 알았어. 나는 그 일로 충격을 받고 꽤 많이 아
팠던 것 같아. 언니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언니한테 했던 말들이 다시 나의 가슴에 와서 박히는데.. 아프더
라고. 내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으니까 언니가 와서 울었어. 나도 울고.. 사과했어. 미안하다고.. 그 후론 언니한
테 질투 안했던 것 같아. 그냥.. 좋았어. 언니가 내 언니라는 게.”
“응. 좋은 분인 것 같더라.”
“미인이지?”
“응.”
민영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예쁘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게.. 난 그렇게 좋더라고. 우리 엄마랑 언니가 예쁘다는 게.”
그가 피식 웃었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가 뭔가 떠오른 듯 그녀에게 말했다.
“참.. 이제 시계 줘.”
“뭐야. 나 준 거 아니었어?”
“아니지. 호루라기랑 반지만 준 거야. 시계는 내 꺼지. 돌아왔으니까 나한테 돌려 줘. 자.”
그가 왼 팔을 내밀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잠깐 기다려.”
그녀가 시트 한 장을 들어 몸에 둘둘 말아 고정시키고 방을 나갔다. 한 참 후에 그녀가 등 뒤로 손을 숨기고 들어왔다.
“눈 감아.”
“그냥 줘~.”
“눈 감으라니까?”
그가 웃으며 눈을 감았다.
“꼭 감아. 눈 뜨기 없어.”
“알았어.”
그녀가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손목에 종이로 접은 시계를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종이접기로 만든 거야?”
“응. 나름 금색 종이를 선택했지. 마음에 들어?”
“설마.. 잃어버렸어? 아니면 팔았어?”
“여기 있거든요?”
그녀가 팔을 들어 보여주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시계가 좀 커야지. 비싼 시계 잃어버릴까봐 하고 다니지도 못했어. 2만 원 짜리 전자시계 차고 다녔어. 그런데 시계가 조금 오래되어 보이던데 물려받은 거야?”
“응. 할머니한테서 받은 유품. 고장이 나서 수리 맡겼다가 찾아서 너 채워 준 거야.”
“할머니 유품을 나한테 주면 어떻게 하냐? 진짜 잃어버리면 어쩔 뻔 했어~.”
그녀가 시계를 풀어 그의 손목에서 종이시계를 떼어내고 그의 시계를 채워주었다. 그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와 커플인 듯 여성스러운 시계를 꺼내 그녀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이건 할아버지가 쓰시던 시계, 그리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이 할머니가 쓰시던 시계. 돌아가신 분 거라서 좀 그럴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안 써도 돼.”
“싫은 게 아니라 잃어버릴까봐 못 하겠어. 소중한 물건이잖아.”
“시계는 안 차고 그냥 두면 금방 망가지더라. 망가진 시계보다 너와 내가 같은 시간을 바라보는 게 좋아. 잃어버리면 뭐.. 속상하겠지만.”
“아, 부담스러워~.”
그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유산을 받는 다면 일부는 사회에 환원할까.. 생각했는데 재단을 만들까 해.”
“재단?”
“응. 생각해 보니까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야? 독도 지키는 데에도 돈이 필요할 테고,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아이
들 도움도 주어야 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시는 할머님들이나 할아버지, 아니면 한 부모 자녀들에게도 도움이 필
요하고, 몸이 불편 하신 분들도.. 또 젊은이들한테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면 회사도 차려야할 것 같고.. 아, 소방관
아저씨들이 안전하게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장비 구입하시라고 지원도 해드리고 싶고.. 뭐 그 외에도 너무 많더라
고.”
“너를 위해서는 안 쓰고?”
“조금만. 그건 오빠랑 상의를 해야 하지만. 나중에 우리가 결혼을 하면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건 어때? 거기 초등
학교랑 중학교 있잖아. 후원자가 없어서 학생 수도 줄고, 교육의 혜택도 많이 못 받는데 학교를 질적으로 향상 시
키면 어떨까 싶어. 오빠랑은 별장에 살아도 좋고. 아니면 그 곳에 정말 좋은 병원을 지어도 좋고.. 그렇게 살면..
어때요?”
“너랑 결혼하면 조금 쉬려고 했는데 더 바빠질 것 같아.”
그녀가 미소를 짓자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자. 그 전에 연애부터 하고.”
그가 그녀의 볼을 감싸 쥐고 천천히 자신에게로 당기자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찬성합니다.”
******
두 사람이 예전에 시크릿 파티에서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재현은 미소를 지었고, 민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안 나와서 좀 이상하기도 하고..”
“괜찮은데 뭘. 우리 마담 고는 좀 가려야 예쁘구나?”
민영이 볼에 바람을 넣고 그를 흘기듯 바라보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묘하고 조금.. 멋진 것 같아. 어딘지 영국 귀족들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같기도 하고. 아마 재민이가 봤다면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어.”
그가 그녀를 등 뒤에서 안으며 그녀의 관자놀이 부근에 입맞춤을 했다.
“재민오빠한테 혼나지 않을까? 다른 사람 좋아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쌍둥이 동생이랑 이렇게 되어 버려서.”
“널 행복하게 해 준다고 약속했는데 너는 내가 아니면 행복하지 않다고 하니까.. 약속은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괜찮은데? 여전히 걸려?”
“조금. 어쩌면 아쉬움 같은 걸지도 몰라. 재민오빠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더 많으니까. 짧은 만남이었는데 재
민오빠가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거든. 아빠도 없고, 오빠도 없는데 만약 오빠가 있다면 이랬으면 좋겠다..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럼 곤란하겠지. 재민오빠랑 첫 키스 했는데.”
“흠.. 질투가 좀 나긴 하는데.. 괜찮아. 내가 더 잘하니까.”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고 조그맣게 한 숨을 내쉬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더 잘하잖아.”
“뭐..”
그녀가 입술을 살짝 안으로 넣어 이로 물고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 녀석은 그런 방면으로 경험이 없어요. 네가 첫키스인데 처음 하면서 잘 할 수가 없거든~.”
그녀가 그를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몇 명이랑 사귀었어? 아니.. 몇 명이랑 키스했어? 내가 다 처음이 아니지?”
“그게 다 너를 위한..”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콩 때렸다.
“웃기시네. 그럼 나도 오빠를 위해 연습을 좀 하고 와야겠네.”
“그건 아니지~. 내가 잘 아니까 내가 널 잘 이끌어 주면 되는 거야. 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퍽이나 위안이 됩니다.”
그가 퉁퉁 거리는 그녀의 볼을 살짝 누르자 그녀의 입술이 참새처럼 모아졌다. 그녀가 흘기듯 바라보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귀여워. 질투하는 것도 엄청 귀엽네.”
“맞을래? 은근 슬쩍 넘어가려고 하지 마. 유학했을 때도 여자 있었지? 누구? 금발이었나?”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공부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는데.”
“안됐네. 외국 사람들은 스킬이 좀.. 다르던데.”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톡톡 치고는 그에게서 벗어나 소파로 향했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영국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런데 숨긴 거야?”
“그럼 뭐.. 저녁 7시까지만 만나라며. 키스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줄 몰랐지만 7시 전엔 헤어졌으니까.”
“음~. 거짓말 하는 거지? 내가 너를 만나기 전에 여자들을 만났다고 나보고 질투하라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거지?”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아니 확실히 거짓말인데~.”
그녀가 그를 소파에 앉히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가 피식 웃었다.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살짝 지으며 손을 들어 그의 가슴 위에 올리고 천천히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뭐하는 거야~.”
고개를 숙인 그녀가 그의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아랫입술 위에만 촉촉한 입맞춤을 했다. 그녀의 부드러
운 움직임에 그가 눈을 스르륵 감았다. 스킨십을 그녀가 주도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대담하면서도 짜릿
한 감각에 그가 눈을 번쩍 뜨고 그녀의 어깨를 잡아 밀었다.
“누구야? 어떤 놈이 이랬어?”
“말 안 해 주지~.”
“뭐?”
그가 인상을 찡그리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진한 입맞춤을 해 주었다.
*****
그녀의 결혼식에 민영과 재현이 주례사 앞에 서 있었다. 순서에 없던 변호사가 등장했다.
“누구야?”
“아.. 우리 집안과 일하시는 변호사님.”
“왜 오셨는데?”
“나도 모르지.”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 뭔가를 연결하고 그들과 모인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김현성 변호사입니다. 이 날은 위해 보관하던 것이 있어서 신랑, 신부님과 하객 여러 분들 앞에서 공개를 하려고 합니다. 영상을 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영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가 뭔가를 누르자 영상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차재민입니다.”
재민의 얼굴과 목소리가 나오자 민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병원에서 찍은 것으로 보였고, 그는 창백하고 야위어
있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굳어버린 건 민영 만이 아니었다. 마주잡은 두 사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현의 턱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 영상이 공개되어 보고 계시다면 그건 분명 제 동생 재현과.. 민영이의 결혼식일 겁니다. 혹시 두 사람의 결혼
을 축복해주지 않으실 분들은 조용히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픈 저를
대신해서 제 몫까지 열심히 노력했던 재현과 민영이의 결혼을 반대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죽는 건 오로
지 저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민영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이 밝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아이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돈이 없어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아이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심장이 뛰
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아이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더 살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한 아이입니다. 태어나 처
음으로.. 먼저 가는 것이 미안하게 만든 아이입니다. 혼자 남을 재현이에게도 분명히 저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할
아이입니다. 재현이를 위해서 민영이와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민영아. 고마워. 너를 만나서 난 행복해.
너를 만나서 그림 그리는 일이 고통을 잊게 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기쁨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 나
를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재현이를 나처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재현아.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너라면
민영이를 아껴주고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너와 나는 하나였으니까. 두 사람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결혼식인데 우울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선물 하나 남
기고 마치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상은 멈추었다. 눈물을 흘리는 민영을 재현이 품에 안았다.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변호사가 하얀 천에 씌워진 것을 가지고 와서 앞에 섰다.
“이것은 고인이 되신 차재민 님께서 두 분에게 남기신 선물입니다.”
변호사가 천을 벗기자 하얀 캔버스 위에 초록 잔디밭 위에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두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14살의 민영과 15살의 재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본 민영과 재현은 서로를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
그들은 마치 연예인들의 결혼처럼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그들의 행보가 인터넷기사로 자주 등장했
다. 재현이 살던 곳에서 신혼을 시작한 두 사람은 데이트 장소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쪽에서는 재
벌이 일반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잠깐 저러는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은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소소하게 생활하는 척 사진을 찍어 기자들에게 유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재
현의 외모에 민영같은 여자가 일단 안 어울린다며 두 사람은 재벌들끼리 경제 합병을 위해 결혼한 거라는 말에는
민영이 발끈했다.
“웃겨~. 무슨 사랑 없이 결혼했다는 거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들의 결혼이 순수해 보이지 않을 수 있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지 남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에 신경을 쓰고 그러냐?”
“아니~. 오빠가 아깝다고 하잖아~.”
“아~. 화가 난 포인트가 거기야? 뭐..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좀 잘생겨 보이나?”
“그럼. 난 호박이라는 거야? 내가 신데렐라가 되지 않았다면 오빠같은 왕자님과는 결혼을 꿈 꿀 수도 없는 여자냐고~. 진짜 웃겨.”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다가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품에 안았다.
“누구야? 아이디 다 적어 놔. 내가 다 법적 소송 할 테니까. 눈들이 다 이상한 거 아니야? 우리 민영이가 어때서. 귀엽고, 사랑스럽고.. 좀 작고 지나치게 아담한 몸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내가 만족하고 산다는데.”
그녀가 칭찬인 듯 디스인 듯한 말을 하자 민영이 그를 흘기듯 바라보자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뾰로통한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귀여워..”
“치.. 하아..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들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을까?”
“그냥 둬. 다른 사건이 생기면 우리들은 잊혀 질 테니까.”
“떡볶이 먹는데 찍혔을 줄은 몰랐어. 하필 입가에 묻은 거 오빠가 닦아주는 장면을 찍을 게 뭐야? 자꾸 그런 사진
이 공개가 되니까 오빠가 엄청 다정하고, 멋진 사람인 줄 알잖아. 난 이런 것도 깔끔하게 먹지 못하는 칠칠맞은 여
자가 되었고. 심지어 댓글엔 일부러 흘린 거 아니냐고 하더라니까?”
그가 쿡쿡 웃었다.
“다른 여자들이 나 좋아하는 게 싫어? 그만큼 멋진 남자가 오직 너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즐겼으면 좋겠는데.”
“혹시 알아? 어느 날 갑자기 오빠가 나한테 미안한데..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어.. 라고 말할지.”
“네가 나 좋다고 쫓아다닌 것도 아니고 내가 좋다고 매달린 거잖아. 네가 없으면 곤란한 사람은 나라고. 너나 다른 남자 좋아졌다고 말하기만 해. 아주 혼~ 내 줄 테니까.”
그녀가 피식 웃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기댔다.
“참.. 나 내일은 진후씨 작업실로 가기로 했어.”
“왜?”
“아.. 모델이 되어 달라고 해서.”
“무슨 모델? 거절을 했어야지~.”
그녀가 그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왜 거절을 해? 나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주겠다는데.”
“무슨 그림인지 물어봤어? 노출 없는 그림이래?”
“몰라. 의상은 내일 오면 보여준대.”
“나랑 같이 가.”
“오빠는 내일 신입사원 면접하는 데 들려야 한다면서. 오빠가 아주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빠지면 안 되지~.”
“하아.. 내가 있어야 하는데..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
“그렇게 해요.”
민영이 불안해하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
진후의 작업실에 들어간 그녀는 그가 준비해 놓은 옷을 바라보았다.
“진짜 재미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나한테 왜 한복을 입히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진후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입에는 막대사탕을 물고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녀를 보고 활짝 웃었다.
“마음에 안 들어? 누나를 위해서 특별히 주문한 옷인데. 촬영 끝나면 선물로 주려고. 매형 옷은.. 없지만.”
“정말요? 꽤 비싸보이는데.”
“아하.. 거 참 말 놓으라니까.”
“천천히 할게요.”
“뭐.. 그게 누나 매력이니까. 수진씨가 옷 입는 거랑 헤어를 도와줄 거야. 준비하고 와. 이래봬도 엄청 기대하고 있으니까.”
“알았어요.”
그녀가 조용히 한 숨을 내쉬자 수진이 조용히 피식 웃으며 그녀를 탈의실로 안내했다.
******
재현은 빨리 일을 마치고 진후의 작업실로 갈 생각으로 오늘 면접을 진행할 면접관들을 면접실로 불렀다. 면접관들이 앉는 자리에 재현이 앉아 자신의 앞에 놓인 파일을 덮어놓았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비서가 나가서 면접관들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자 문이 열리고 면접관들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세요.”
“네.”
그들은 조금 어리둥절해 하며 면접을 보러 올 사람들이 앉을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제야 파일을 열어본다는 듯한 얼굴로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 재현이 냉정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첫 번째 자리에 앉은 김조윤 과장을 바라보았
다.
“인사부에서 부장으로 계시네요.”
“네.”
“그 동안 어떤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선출하셨나요?”
김 조윤이 조금 길게 설명하려고 하자 재현은 조금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김 과장을 바라보았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하실 수 없으십니까?”
김 과장인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죄송합니다.”
“됐습니다. 다음은..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인사부 팀장 최정희입니다.”
“결혼은 아직 안 하셨네요?”
“네.”
“애인은 있어요? 결혼하면 여긴 그만 둘 생각입니까?”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도 늦은 건 아닌가?”
최정희 팀장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재현은 최 팀장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요즘 외모도 경쟁력이라는데 좀 신경 좀 쓰시죠. 요즘 가발도 좋은 거 많이 나왔다고 하던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은 여자 직원을 바라보았다.
“삼촌이 우리 회사 임직원이시라고요. 낙하산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 직원을 바라보았다.
“취미가 뭐죠?”
“사교댄스..입니다.”
“참 여유가 있어 보이시네요. 그 시간에 다른 스펙을 쌓아 볼 생각은 안 해 봤습니까? 토익 점수가 그다지 높지 않던데..”
“학원을 알아보겠습니다.”
재현이 입을 다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불쾌한 감정을 숨기느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제가 지금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이 시선을 들어 재현을 바라보았다. 등받이에 기대어 거만하게 앉아있던 재현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지금 이 회사 사장으로서 여러분들에게 ‘갑질’을 했습니다. 미리 검토하지도 않고 겨우 20분 정도 되는 시간동안 5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속까지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김조윤 과장님.”
“네.”
“새로운 직원을 뽑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늘 면접 보는 사원들을 미리 검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잘 하셨습니다.”
김조윤 과장이 재현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최정희 팀장님.”
“네.”
“결혼하셔도 우리 회사에는 보육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갖고 최선을 다해 일 해 주십시오.”
최정희의 눈가가 붉어졌다.
“네, 사장님.”
“강만식 과장님. 지난 분기 과장님 팀의 실적이 가장 좋으셨습니다. 외모가 중요합니까? 정소연 팀장님. 낙하산이
라는 이유로 힘들게 적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번 제출하신 디자인으로 좋은 제품을 만
들 수 있었습니다. 박윤식 팀장님. 팀장님 일에는 영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대회에서 상도 타
셨다고 들었습니다..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해소하고 계신 것 같아서 좋습니다. 덕분에 더 좋은 업무결과를 기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고개를 조금 숙였다.
“오늘은 우리 회사에 새로운 인재를 선발하는 자리입니다. 외모가 출중하다고 일 더 잘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의 힘을 어깨에 얹고 와서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은 떨어뜨려도 좋습니다. 조용히 그들의 뒤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
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십시오. 뒷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일은 들어와서 배우는 겁니다. 얼마나 성실
하게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를 보십시오. 우리 기술을 다른 회사에 팔지 않을 사람을 뽑으십시
오. 많은 분들이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오늘 수고해 주십시오. 끝나고 회식비는 제가 내도록 하겠
습니다. 좋은 신입사원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가 일어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현이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그들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재현이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김과장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차분히 면접 준비합시다.”
“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차에 오른 재현이 운전사에게 말했다.
“장실장님, 빨리 가 주세요.”
“네.”
재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
가볍게 화장을 받고 머리는 풍성한 웨이브를 만들어 느슨하게 아래로 길게 땋아 내렸다. 중간중간 나비같은 장신
구들을 꽂아주셨다. 타오를 것 같은 붉은 치마는 층층이 풍성했다. 가장 치마의 가장 바깥쪽으로 나오는 천에는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속이 비치는 연한 녹두빛 당의를 입었다.
“버선 신어요?”
수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안 신으세요. 맨발로 촬영하실 것 같아요. 하지만 촬영 전까지는 저희가 준비해 놓은 꽃신을 신으시면 됩니다.”
“도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저러는지..”
그녀가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자 수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우세요.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좀.. 났었는데. 직접 뵈니까 참.. 착하신 것 같아요.”
“에이구..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수진씨가 착하신 것 같은데요? 진후씨가 부른다고 오셔서 고생스럽게 절 도와주셔서 예쁘게 꾸며주셨잖아요.”
“그게 부탁을 해서..”
수진이 수줍게 미소를 짓자 민영이 입술을 살짝 물었다.
“예술가는 피곤할 수 있어요. 바람둥이 같거든요.”
그녀가 조그맣게 덧붙여 말하자 수진이 쿡쿡 웃었다.
“그래도 좋다면 제가 언제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해 볼게요. 그래도 돼요?”
“정말요? 고맙습니다.”
“제가 고맙죠. 수진씨 덕분에 안정된 생활을 하면 고모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수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밖으로 안내했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던 진후가 고개를 들어 치마를 들고 걸어 나오는 민영을 바라보았다. 그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야~. 거짓말 쪼금 보태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네.”
“무슨 그림을 그리려고 버선도 신지 말래요?”
“마당으로 나가죠.”
밖으로 나가자 초록색 잔디밭 위에 옛날식 나무 그네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물을 담은 수영장 풀이 놓여 있었다.
“설마.. 그네 타라고요?”
“응.”
민영은 맨발로 작은 수영장 풀에 들어갔다. 무릎정도까지 채운 물속을 걸어 그네에 앉으려니 치맛단이 조금 젖었다. 화들짝 놀라며 치맛단을 들어 품에 끌어안았다.
“괜찮아. 어차피 누난 정숙한 공주님 컨셉은 아니니까. 앉는 것 좀 도와줘.”
“응.”
수진은 민영이 그네에 앉을 수 있게 도와주고 치맛단을 풍성하게 정리해 주었다.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네. 고마워요.”
민영은 진후를 바라보았다. 실험적으로 몇 컷을 찍고 확인하며 조율을 하고 있었다.
“어쩌라고? 그냥 이렇게 있음 되는 건가?”
“일단은. 조금 이따가는 그네 좀 타자.”
“벌걸 다 시켜..”
그녀가 조그맣게 투덜거리자 수진은 입술을 살짝 물며 웃음을 참았다.
*****
진후는 그녀의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민영은 햇살에 뜨거워 머리가아파오기 시작했다.
“하나도 즐겁지가 않잖아.”
그녀가 진후를 흘기듯 바라보다가 수진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다시 생각해 봐요. 영.. 못 쓰겠어요.”
수진이 쿡쿡 웃자 진후가 인상을 찡그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재현이 보이자 민영이 활짝 웃으며 오른 손을 들어 흔들었다. 진후가 놀란 표정으로 민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드시고 하시죠.”
그가 사온 빙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죠.”
수진과 진후가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재현이 걸음을 옮겨 그네에 앉아 있는 민영을 바라보았다.
“예쁘다. 그런데 힘들어 보여.”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좀 먹고 해.”
그녀는 흐뭇해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노출이 없어서 마음에 드십니까?”
“꽤 마음에 듭니다.”
민영이 쿡쿡 웃었다.
“먹는 건 나중에..”
“그럼 시원하게 그네 밀어줄까?”
“옷 버릴텐데?”
그가 구두와 양말을 벗고 첨벙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민영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뒤로 가서 그녀의 그
네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에 그녀는 눈을 감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진후가 카메라를 들고 일어나자
수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민영이 웃으며 그네를 타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가 내려와 종아리
가 드러났다. 발끝으로 물을 스치듯 지나갔다. 재현이 조금 높게 밀어주자 민영이 웃음과 함께 비명을 지르기 시
작했다.
“오빠~! 너무 높잖아~.”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은 진후는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려 자신과 수진의 빙수를 들었다.
“들어가자.”
“사진은 다 찍었어?”
“응.”
“그럼 말씀드려야 하지 않아?”
“우리가 없어진 줄도 모를거야.”
진후가 걸음을 옮기자 수진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진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재현은 그네를 멈추고 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랑스럽다.”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짓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슬쩍 밀었다.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
재현이 시선을 들어 그들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들어갔어.”
“진짜?”
민영도 고개를 들어 아무도 없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소파에 그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조금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시회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날짜가 잡힌 모양이야. 네 말대로 전시는 하되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했어. 관람도 무료로 진행이 될 거고.”
“응. 수고했네, 우리 신랑.”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내가 고맙지.”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
얼마 후에 장소를 빌려 미술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J. Hoo로 활동하는 진후의 따뜻한 감성의 그림들과 윤진의 동
양화 그림들, 그리고 재민의 그림들이 전시가 되었다. 진후와 윤진의 그림은 구입이 가능하지만 재민의 그림은 판
매하지 않기로 했다. 입구엔 진후가 민영과 재현이 가면을 쓰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파티에 참석했을 때
찍은 사진 중에 두 손을 잡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놓여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그림을 관람하셨다. 재민의 그림을 구매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처음 기획대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진후와 윤진의 그림은 거의 다 판매가 되었다. 판매가 된 금액은 어려운 가정환경의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를 돕는 병원에 후원금으로 보내기로 했다. 재현과 민영도 전시회를 찾았다.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참
이 지나서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윤진의 그림을 바라보며 민영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멋지다.”
“응.”
두 사람은 진후의 전시관으로 갔다. 그네에 앉아 있는 공주는 평범한 조신한 공주가 아니었다. 밖이 궁금한 호기
심 많은 표정을 가진 공주였다. 물 위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드디어 만난 자유에 행복함이 드러나
있었다.
“역시 모델이 예쁘니까.. 잘 표현했네.”
“창피하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재민의 전시실에서는 두 사람은 조금 울컥했다. 다른 곳보다 많은 사
람들이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뭔가 뭉클해졌다. <한복입은 오필리아> 라는 그림 앞에서 두 사람이
멈추었다.
“재민이가 이 그림을 그리는 걸 봤어. 그림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너를 처음 만났지. 너의 그림을 그리면서 행
복한 표정을 짓는 재민을 보며 처음엔 신기했고, 그 다음엔.. 그림 속 여자가 궁금했어. 그리고 너를 만났을 땐..
그 녀석이 부러웠지.”
그녀가 고개를 기울여 그의 팔에 기대었다.
“재민 오빠 다음에 사랑한 사람이 오빠라서.. 좋아.”
그가 피식 웃었다.
*****
여름휴가로 시골에 내려왔다. 민영과 재현은 외할머니 댁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천천히 들어요. 반찬이 별로 없어서..”
하지만 워낙 손이 크신 할머니는 여러 가지 반찬으로 상을 가득 채우셨다.
“맛있습니다.”
그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었다. 두 분에게 인사를 하고 그의 별장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 태성을 만났다.
“행복해?”
“응.”
“나도 곧 결혼한다.”
“축하해. 넌 정말 좋은 남편이 될 거야.”
“알아.”
두 사람이 쿡쿡 웃었다. 집에 들어오자 재현이 퉁퉁 거렸다.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삐졌어? 태성이랑 5분도 얘기 안 했고만.”
“그 녀석이 뭐래?”
“결혼한대.”
“그래?”
“응. 참 좋은 친구였어. 내가 여기에서 학교 다닐 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줬거든. 덕분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었어.”
“그래도 남자랑 오래 이야기 하지 마.”
“알았어요~.”
그녀가 그의 품을 파고들자 그가 한 숨을 내쉬었다.
“화가 이렇게 빨리 풀리면 안 되는데.. 너한텐 왜 금방 풀리는 지 모르겠어.”
“음.. 내가 귀여워서 그런가?”
“그럴지도 몰라. 네가 웃으면 다 괜찮은 것 같거든.”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오빠랑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다.”
“나도.”
*****
시간이 흘러 다시 시골로 내려왔을 땐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 민영은 딸과 아들을 낳았다. 재현은 그 곳
의 학교에 후원을 해서 더 좋은 학교로 만들었다. 근처 산도 구입했다.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고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산의 푸르름과 그 자연 속에서 사는 많은 생물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근처의 도시에서 그 학교
로 전학을 오기 시작하면서 학교는 다시 활기를 띄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재우고 옥상에 누워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준성오빠랑 승주 쌤도 시찰 나온대. 자신들이 투자한 돈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 본다고. 감시할 줄 알았으면 투자하라고 하지 말라고 할 걸 그랬어."
"놀러 오고 싶다는 뜻이겠지."
민영이 쿡쿡 웃었다.
"응. 그런것 같아. 하아..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건강하게 오래 살자.”
“응.”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행복해.”
“매일 그런 행복을 느끼게 해 줄게.”
그녀가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차재현씨..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내가 오빠도 행복하게 해 줄게요.”
그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두 사람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입맞춤을 했다.
첫댓글 빠른 글 감사 ^^
행복한 미소가득한글들도 감사^^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3 17:15
완결 축하드려요~ 고생하셨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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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12 19:04
즐독하고 갑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10 06:38
직장에서 눈팅하며 보고 있는데 민영이 결혼식 장면에서 코가 빨개질정도로 울어버렸네요...
그래도 보는 내내 행복했어요^^*
ㅎㅎ 같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요 열사병 냉방병 조심하시고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