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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겨울이 찾아왔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려고 하는 순간 손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승주가 올랐다. 7층 버튼을 누르며 승주가 윤진을 흘기듯 바라보았다.
“내가 오는 거 봤지? 그런 사람이 닫힘 버튼을 눌러? 나이 든 사람 뛰게 하니까 좋아?”
윤진이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살짝 물었다.
“방학식 기념으로 와인 한 잔 하자. 초밥은 네가 사는 걸로.”
그녀는 등 뒤에 숨겨둔 쇼핑백을 앞으로 가져왔다.
“내가 닫힘 버튼 누른 건 어떻게 봤어요? 눈 진짜 좋아..”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입 꼬리가 올라갔었거든.”
그녀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뛰었더니 덥다..”
그가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 하나를 열었다. 그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의 허전한 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기 걸려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그가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를 안자 그녀가 조금 놀라며 그를 밀어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뭘 뭐래. 원래 연애하면 겨울엔 붙어 다니는 거야.”
“됐어요. 사양할게요.”
그가 제자리로 돌아가며 혀로 입안을 쓸었다.
“쩝..”
고개를 숙인 그녀의 입 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4층 문이 열리자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리기만 해.”
“어떻게 할 건데요?”
“뭘 어떻게 하겠어. 따라 들어가겠지.”
윤진의 입가가 부드러워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지만 그는 잡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손도 차갑고.. 정말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해요?”
“병원에 입원하면 옆에 있을 거지?”
“아뇨? 제가 거기에 왜 있어요. 뭐.. 문병은 가겠지만.”
“그럼 아파도 여기에서 아파야겠다.”
7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승주는 그녀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받아들고 그녀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녀가 사 온 초밥 2인분을 먹고도 그는 배가 고프다며 라면을 끓였다. 그녀도 한 접시 덜어서 먹었다.
“아르바이트?”
“네.”
“바쁘겠다. 힘들겠고. 그래도 힘 내. 가끔 데리러 가고 싶은데.”
“가끔이라면.. 괜찮아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레스토랑 근처는 말고요.”
“안 돼. 너에겐 나처럼 괜찮은 남자가 이미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불안해서 원..”
“뭐가 불안해요? 내가 다른 남자한테 갈까봐서요?”
“응.”
그녀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은 성격에, 안정적인 직업에 나처럼 널 아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인데.. 집안도 평범한 놈이면..”
그녀의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요?”
그가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지, 내가.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
“언제 들어도 좋잖아요.”
“언제 들어도 좋을 말을 나는 언제 쯤 들을 수 있는 건가?”
윤진이 내리며 라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리자 승주가 피식 웃었다.
“뭐.. 난 지금도 좋으니까.”
그도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 후룩후룩 먹었다.
****
그의 욕실에 있는 그녀의 칫솔로 양치질을 하고 거실에서 와인을 마셨다.
“방학이라고해도 선생님들은 바쁘시네요?”
“그렇지. 학교 일도 있고, 연말, 연초에는 회사에 행사가 많기도 하고, 처리할 일도 많아서 부모님도 도와드려야 하니까 아마도 정신이 없겠지.”
그녀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 데리러 오지 말아요.”
그가 와인을 조금 마시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쁜 사람.. 언제 올지 기다리는 거 별로예요. 아예 안 온다고 생각하고 지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나는 늘 너와 함께 이렇게 저녁도 먹고, 와인도 마시며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만 잊지 마.”
그녀가 고개를 조금 숙이자 그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잠깐.”
그가 가방을 갖고 그녀에게 돌아왔다.
“선물은 싫어요.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이 정도는 하게 해 줘. 크리스마스 겸 새해 선물이야. 썩 좋은 것도 아니고.”
그가 돌돌 말린 천을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건네자 그녀는 별로 마음에 안드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그렇게 싫다면.”
그가 다시 가방에 넣자 그녀가 일어나자 그가 조금 당황하며 일어났다.
“가려고?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밀어내며 구두를 신고 그의 집을 나왔다.
“아니.. 뭐 대단한 선물도 아닌데..”
그가 답답한 표정으로 그녀가 나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거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뭘 잘못했어. 이건 재벌이랑 상관없잖아.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선물하고 싶은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내일부터 바빠져서 얼굴도 못 보는데 이렇게 헤어지면 내가 마음이 안 편한데.. 그렇다고 내가 가
면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에잇..”
그가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고마담. 스승님이시다.”
<어쩐 일이십니까?>
“늦은 시간이 미안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씀해 보시옵소서~.>
민영의 말에 승주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며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가 조금 전의 상황을 이야기 하자 민영이 대답했다.
<어떻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으십니까?>
“누구.. 내가 좋은 거? 그야 물론 제대로 매듭을 짓고 웃으며 일하러 가고 싶지.”
<그럼.. 가소서~.>
“뭐?”
<가시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말씀하신 그대로 언니한테 말씀하세요. 이 정도는 재벌이 아니라도 한다. 난 잘못한
게 없지만 이렇게 헤어지면 일이 손에 안 잡힐 것 같다. 사실대로 말씀하시면 될 것 같네요. 전화 끊고 어서 속히
가시옵소서.>
“고맙다.”
전화를 끊은 승주가 문을 열자 막 현관벨을 누르려고 손을 뻗은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윤진이 보였다.
“어.. 어디 가세요?”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당겨 품에 안았다.
“어?”
새된 비명을 작게 지르며 윤진이 그의 품에 안겼다.
“승주씨..”
“나이가 많으면 뭐하냐.. 연애 기본도 모르는데. 솔직히 서운했어. 네 마음 상하지 않으면서 한 편으로는 기뻐할
선물이 뭔가 고민하고, 저 선물을 포장하면서 내가 마음을 얼마나 졸이고 힘들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이런 상태
로 헤어지는 건 더 싫다.”
그가 포옹을 풀고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마? 그게 좋아?”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포장된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먼저 주고 싶었단 말이에요. 벌써 준비했는데. 내일부터 바쁠 줄 몰랐죠.”
멍한 표정의 승주를 바라보던 윤진이 말했다.
“미안해요. 투덜거리기 싫어서.. 하지만 다시 온다고 말하고 갔어야 했는데.. 화 났어요?”
그가 오른 손을 들어 가슴 위에 올리고 거친 심호흡을 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보다 심장 안 좋아.”
윤진이 피식 웃었다.
“아까 뛰는 거 보니까 폐나 심장이나 아주 건강해 보이던데요?”
“마녀.”
“아닌데. 그럼 투정부리고 그래요?”
“응. 그랬으면 좋겠어. 꾸며지지도, 걸러지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 태어난 그대로의 네 모습을 나는 다 보고 싶다고.”
“음.. 그럼 더 헤어나오지 못할 텐데?”
“맞아. 너를 향한 내 마음은 평생 줄어들지 않을 거야.”
“감정은 확신하는 게 아니에요.”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몰라. 하지만 오늘은.. 지금 이 순간은 나는 너의 것이야.”
그녀가 미소를 짓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
발렌타인데이에 두 사람은 근사한 호텔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안 줄 거야?”
커피를 마시던 그녀가 눈썹을 조금 들었다.
“무엇을요?”
“초콜릿.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받았는데 넌 안 주는 거냐고.”
“내가 선물이잖아요. 초콜릿을 꼭 받고 싶으세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가 시선을 돌리며 커피잔을 들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다 마신 것 같으니까 그만 가죠.”
“벌써?”
그녀가 일어나자 그도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얼굴 보는 거라 오래 같이 있고 싶었는데..”
계산을 마치고 그들이 커피숍을 나왔다. 그녀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서운한 표정의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떨리는 숨을 천천히 내 쉬었다.
“이런 행동을 하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엄청 고민했지만.. 사실은 내가 같이 있고 싶어서요..”
그녀가 코트 주머니에서 호텔방 열쇠를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열쇠를 바라보았다.
“역시.. 싫어요?”
그가 고개를 들어 진해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래, 싫다고. 엄청 좋아하고 있는 중이지만 나이가 있으니까 참는 거야.”
그의 입가가 미소로 씰룩이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가 그녀의 입술에 진한 입맞춤을 해 주었다.
“자.. 잠깐만요..”
“왜~.”
“오늘은 가만히 있으라고요. 내가 선물이니까.”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그녀의 심박동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볼과 귀와 목까지 붉게 변했다. 수
줍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를 이끌고 있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를 침대에 앉히고 그녀가 코트를 벗었
다. 그리고 원피스의 허리띠를 풀자 섹시한 스타일의 슬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숨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을 좀.. 하지..”
그녀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조금 돌리자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다리 사이에 서게 했다.
“말이 뭐가 필요해..”
그가 눈을 감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그녀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원피스를 벗기고 슬립 위로 그녀의 몸을 쓸어내렸다. 그가 고개를 들자 그녀가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해 주었다.
*****
그녀의 란제리와 속옷들, 그의 옷가지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녀가 그의 품을 파고들자 그가 그녀를 꼭 안았다. 그녀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랑해요.”
그녀의 말에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처음으로 그녀 스스로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 의미가 그에겐 너무 크게 다가왔다.
“사랑한다니까 왜 울어요..”
“좋아서.. 너무 좋아서.. 내가 더 사랑해.”
그녀가 피식 웃자 그가 그녀를 꼭 안았다. 그의 품에 안긴 지금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승주가 그녀의 집 현관 벨을 울렸다.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연 윤진은 승주의 심각한 표정에 미소를 지웠다.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에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등 뒤로 잡았다.
“무슨 일 있어요?”
“나 말고.”
그녀가 떨리는 숨을 내쉬자 그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뭘 걱정하는 거야. 아무 걱정 하지 말라니까. 내가 아니고 민영이. 어머님 모시고 빨리 집으로 가 보는 게 좋겠
어. 재현이를 사립고로 전학을 시키셨어. 그 녀석 맞았는지 상처가 많았는데 민영이도 별로 안 좋더라고. 친구들
한테 물어보니까 재현이가 도망가자고 했는데 민영이가 거절했다는데.. 민영이가 많이 힘들어 해. 당분간 집에서
다니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창백한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날 때까지 그의 깊은 입맞춤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 후에 고개를 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생기있어 보이네. 아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민영이만 생각해. 가끔.. 내 생각도 하고.”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그의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윤진과 엄마는 방에서 민영의 울음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갔다. 베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민영을 두 사람이 조용히 안아주었다.
“엄마..”
“그래.”
“언니..”
“응. 잘 했어..”
“응..”
두 사람의 품에 안겨 민영은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 후에 훌쩍이다가 나온 민영을 보았다. 윤진이 바라보았다.
“와서 밥 먹어.”
식탁에 밥상을 차린 엄마가 민영을 바라보았다.
“별로 안 먹고 싶은데..”
“이렇게 끝낼 사랑이었어? 생각보다 가볍네?”
엄마의 말씀에 민영이 발끈했다.
“아니거든?”
“그럼 먹어. 갈 길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멀 뿐이야. 장기전을 생각하면 든든히 먹어야지.”
민영이 눈물을 툭 떨어뜨리고는 식사를 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윤진의 말에 민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응. 쌤이 말했어?”
“응.”
“치..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시더니.. 고맙게..”
“아무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너와 다시 만나고 싶다면 그 아이도 너와 다시 이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응.”
윤진이 손을 들어 그녀의 볼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는 걱정스런 얼굴로 민영을 바라보았다.
*****
엄마는 다시 일을 나가셨고, 민영과 재현,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윤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 미남인데?”
민영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카메라로 찍은 그의 사진을 보고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너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참.. 좋다. 기운 내. 하루하루.. 지금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밝은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다시 만났을 때 당당하게 그의 앞에 설 수 있게. 필요하면 언니가 뭐든 도와줄 테니까.”
윤진의 어깨에 기대며 민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훌쩍였다.
*****
민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도 대학을 졸업했다. 승주의 부모님이 그녀를 집으로 초대를 하셨다.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승주가 화를 내며 전화를 받자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가긴 가는데 만약 윤진씨 불편하게 하면 바로 나올 겁니다. 네.”
승주가 전화를 끊자 윤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에게 왜 그렇게 말해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자꾸 오라고 하시잖아.”
“조용히 사귀고 있으니까 그렇죠. 인사드릴 때라고 생각해요.”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싸듯 쥐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면 내 손을 잡아. 그럼 그대로 나올 테니까.”
그녀가 피식 웃었다.
“만약 그러신다고 해도 어르신들 앞에서 버릇없이 일어나지 않아요. 나 그렇게 안 배웠어요.”
“알아. 하지만 참지 말라고.”
“내가 또.. 참는 성격은 아니죠.”
그가 쿡쿡 웃고 있는 윤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좀 준비했어.”
엄마가 윤진에게 꽃이 예쁘게 꽃꽂이 되어 있는 바구니를 내미셨다.
“아닙니다. 이러지 마세요.”
“어른들을 빈손으로 찾아뵐 순 없잖아요. 선물이라고 해 봐야 꽃밖에 못 드리니까 오히려 죄송하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잘 다녀와.”
“네. 다녀올게요.”
두 사람이 나가자 엄마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
“어서 와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저희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셨어요.”
소담하면서도 풍성한 꽃바구니를 받으며 승주엄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감사히 잘 받았다고 전해 줘요. 솜씨가 참 좋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앉아요.”
“네.”
승주가 어머니를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승주엄마가 그를 흘기듯 바라보고 윤진을 안으로 안내했다. 승주 아버지가 윤진을 바라보았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고윤진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승주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승주가 뒤에 서서 그녀의 손을 잡자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과를 들었다.
“어머님이 힘드셨겠어요.”
“네.”
윤진이 시선을 조금 내렸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우린 사람이 재산인 그룹을 경영하면서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사람 속을 좀 볼 줄 안다고 생각을 하는데. 윤
진양은 참 좋은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여성인 것 같아요.”
“아버지. 면접이 아니잖아요.”
“넌 조용히 있어~.”
엄마가 그에게 조그맣게 말하자 승주가 턱에 힘을 주었다.
“조만간 어머님을 뵙고 싶어요. 어머님 편하신 시간을 두 사람이 정해 봐요.”
윤진이 놀란 표정으로 두 분을 바라보았다.
“왜요. 헤어지라고 할 줄 알았어요?”
떨리는 그녀의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승주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시죠? 말씀 바꾸시기 없습니다.”
“그래.”
승주가 미소를 지으며 윤진을 바라보자 윤진도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
윤진과 승주가 돌아가고 두 사람이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승주엄마는 꽃바구니의 꽃잎을 손끝으로 만지고 있었다.
“향기도 은은하고 좋네요.”
“잘 어울려. 편안한 분위기로 승주를 잘 내조할 것 같아.”
“민준이가 펄쩍 뛰겠네요.”
“그 녀석은..”
승주 아버지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젓자 엄마가 피식 웃었다.
*****
꽃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가 그들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셨다.
“엄마~~.”
울먹이며 들어오는 윤진을 바라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의 품에 안겨 훌쩍이는 그녀를 토닥이며 엄마가 조금 떨어져 있는 승주를 바라보았다.
“왜. 반대하셔? 헤어지라셔?”
“아니.. 엄마랑 만나고 싶으시다고.”
엄마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듯 한 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잖아~. 좋은 말씀 들어놓고 왜 울어.”
“그냥. 엄마.. 나 낳아서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승주씨랑 함께 할 수 있게 된 건 다.. 엄마 덕분이야.”
윤진이 눈물을 흘리자 엄마도 눈가가 붉어지셨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세상 모든 엄마는 다 사정이 있겠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아.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고생만 시켰는데 뭐가 엄마 덕이야.”
“엄마..”
윤진이 엄마 품에 안겨 훌쩍이자 엄마가 시선을 들어 승주를 바라보았다. 승주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조용히 나왔다.
“난 괜찮으니까 두 분 편하신 시간으로 잡아.”
“상의해서 정해요. 그래도 돼.”
“그 사람에 대해서는.. 말 못했지?”
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 사람은 어차피 너랑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응.”
엄마가 손을 들어 미소를 지으며 윤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는 기분이 좋아 자꾸만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윤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만 해요~~.”
“좋아서. 너무 좋아서. 진작 갈걸. 그럼 지금쯤은 부부로 지낼 텐데.”
“곧 그렇게 될 거잖아요. 난 그 전에 연애하고 싶은데요? 혹시 알아요? 결혼해서 마음이 식어버릴지.”
“그럴 일 없어.”
“본인 입으로 장담은 하는 게 아니라고 해 놓고.”
그가 대답대신 그녀의 입술에 진한 뽀뽀를 했다.
“나만 좋은 거 아니지?”
“네. 단지 승주씨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가 사랑스럽다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은 뜨겁게. 응?”
“아니요.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집에 가려고요.”
그녀가 그를 밀어내고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하자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듯 안았다.
“벌써 가려고?”
“조금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참을 수 있어.”
“음.. 가능해 보이지 않네요.”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에 닿은 그의 신체의 일부를 느끼고 말하자 그가 엉덩이를 뒤로 조금 뺐다. 그녀가 쿡쿡 웃으며 그의 손을 토닥이며 떼어냈다.
“잘 자요?”
그녀가 그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하고 집을 나가자 그가 따라 나왔다.
“왜 나와요?”
“집에 데려다 주려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4층 그녀의 집 현관문을 열고 몸을 돌려 그와 잡은 손을 놓으려고 했다.
“조심해서 올라가요.”
“응.”
그녀가 손을 놓으려고 하자 그가 힘을 주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놓아야 들어가죠~.”
그는 대답대신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뽀뽀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이에요.”
“응.”
그녀가 뒤꿈치를 들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가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으며 키스로 바
꾸자 그녀가 그를 밀어내려고 꿈틀거렸다. 그가 키스를 하며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
다. 이어서 그의 어깨에 올라가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
양가 상견례 자리가 마련이 되었다.
“엄마 너무 예쁜데?”
민영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너도 원피스 잘 어울려. 머리가 길어서 그런지 여성스럽고.”
윤진은 예뻐진 민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돌린 민영은 윤진을 바라보며 사랑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바
라보고 있는 승주를 보고 피식 웃었다.
“쌤 눈에는 언니밖에 없나보다. 아주 하트가 발사 되겠어.”
윤진이 시선을 돌려 정장을 입고 있는 승주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셨어요, 어머님.”
“기다리세요?”
“아닙니다. 아직 약속시간이 조금 남았어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엄마가 안으로 들어가자 승주는 손을 들어 윤진의 볼을 쓰다듬었다.
“너무 아름다우신 거 아닙니까?”
“너무 멋지신 거 아닌가요?”
“두 분이 너무 닭살스러우신 건 모르시나 봐요?”
승주와 윤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오그리고 있는 민영을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어른들 기다리시는데 들어가자.”
“네.”
그들은 직원이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승주의 부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어른들의 인사를 마치고 승주가 민영을 소개했다.
“제 제자입니다. 성격이 활발하고 많은 친구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친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민영입니다.”
“반가워요.”
식사가 시작되자 민영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오늘 너무 아름다웠고, 언니와 선생님은 너무 잘 어울렸다. 선생님의 부모님들도 좋은 분들 같아 보였다. 그 나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행복해져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자 다들 시선을 문 쪽으로 옮겼다. 고급정장을 입고 있는 중
년의 남자의 모습이 보이자 엄마와 윤진이 포크와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민영은 두 사람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
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초대받지 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민영의 숨이 멈추고 눈이 커졌다. 그녀가 고
개를 돌려 윤진을 바라보았다.
‘언니 생부..’
윤진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민영의 마음이 아파왔다. 승주가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뭐하시는 짓입니까?”
“내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윤진이 아버지인데.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룹 사장 채민욱입니다. 윤진이
가 회장님 댁과 혼인을 한다는 소식에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윤진의 엄마가 일어나 승주 부모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엄마의 눈짓에 윤진과 민영도 일어나 승주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따라 나와요.”
채민욱은 승주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너희들은 차에 가 있어.”
“엄마..”
“얼른!”
“네..”
민영이 윤진의 손을 잡고 차로 걸음을 옮겼다.
“손이 너무 차다, 언니야..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하지만 대답대신 윤진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와?”
민욱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예쁘구나?”
“죽고 싶구나? 감히 내 딸 앞을 가로막아?”
“내 딸이기도 해.”
윤진의 엄마 정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윤진이가 왜 당신 딸이야? 없애라고 돈 줬잖아. 잊었어?”
“계속 만나려고 했는데 방해한 건 당신이야. 난 언제나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하려고 했다고.”
“웃기지 마. 당신이 의무, 책임. 이런 말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사람인 줄 알아? 무슨 생각인지 뻔히 아는데. 윤진이 앞길 막고, 자꾸 나타나면 나 가만히 안 있어.”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아빠가 없는 것 보다 낫잖아?”
“없는 편이 훨씬 좋아. 경고했어.”
그녀가 몸을 돌려 차로 향하며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턱에 힘을 주었다.
승주가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막으셨다.
“가지 않는 편이 좋다. 지금 그 모습을 보여주기 가장 싫은 사람이 바로 너야.”
“아버지.. 어머니..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생각보다 금방 알았어.”
“그럼에도 윤진이와의 결혼을 허락하신 거예요?”
“채민욱 사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어. 오히려 그 쪽을 안 닮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승주가 두 분을 바라보자 엄마가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너 감동받은 거야? 언제는 엄마가 창피하다며?”
“어머니..”
“됐고.. 윤진양과 상의를 해. 진지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해. 아마.. 윤진양 어머님이 감당하기 힘들 거야.”
“감사합니다.”
“그럼 우리도 일어납시다.”
“네.”
“넌 집으로 가서 기다려. 윤진양이 너에게 말을 할 때까지.”
부모님이 나가시자 승주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든 승주가 한 숨을 내쉬었다.
*****
“엄마.. 나 결혼..”
“해. 네가 뭐가 무서워서 결혼을 포기해?”
“무서운 게 아니라 창피해서..”
윤진이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엄마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날 너무 창피하게 만들어..”
“엄마 잘못이야. 사람을.. 잘 못 봤어.”
“엄마를 속이고 나쁜 짓을 한 건 그 사람인데 왜 엄마나 언니가 이렇게 힘들어야 해? 난 모르겠어. 뭐가 창피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뭐가 창피하냐고. 뭐가 엄마 잘못이야? 엄만 엄마의 결정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100%.. 아
니 200% 다하려고 노력했잖아. 엄마 잘못도 아니고, 언니가 창피해할 이유도 없어. 단지 미리 쌤 부모님께 말씀
을 안 드린 것만 사과하고 이해받으면 되는 거야. 이제야 겨우 행복해지려는데.. 아무것도 아닌 인간 때문에 포기
하려고 하지 마..”
민영이 눈가를 붉히며 다가가 언니를 안았다.
“나쁜 생각하기만 해. 진짜.. 혼내줄 거야.”
“너나 잘 해..”
두 사람은 웃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
“미안해요. 오늘은 여기에서 자려고요.”
<응. 알았어. 괜찮으셔?>
“응. 부모님께는 죄송하다고..”
<걱정하지 마. 벌써 알고 계셨더라고.>
“.....”
<그 사람이 입이 좀 가벼운가 봐. 알고 계셨지만 그래도 윤진이를 보고 결혼 허락 하신 거야.>
윤진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없는데 울지 말지.. 안아줄 수 없잖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무 생각하지 마. 결혼 날짜 잡아서 결혼식 올릴 거야. 응?>
“네.”
<네 얼굴 보고 싶다. 지금 어떤 얼굴일지.. 내 품에 안고 바라봤으면 좋겠어.>
윤진이 눈물을 삼켰다.
“잘 자요..”
<너도 잘 자. 어머님께도 걱정하지마시라고 전해 드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네.”
<윤진아.. 사랑한다.>
윤진이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나도.. 사랑해요..”
전화를 끊은 그녀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
“너 집으로 안 가? 김 군 기다리잖아.”
“가요. 오늘 가려고.”
“그래. 걱정하지 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응?”
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나 출근한다. 혼자 있지 말고 쌤이랑 같이 있어. 응?”
“그럴게.”
두 사람을 배웅하고 윤진은 집을 둘러보았다. 집을 청소하고 집을 나왔다. 승주는 학교로 출근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실러 왔다.
“일주일 보관해 주시고요. 여기로 보내주시면 돼요.”
윤진이 엄마 집주소가 적힌 메모와 계산을 마쳤다. 작은 캐리어 하나만 들고 그녀가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할머니 한 분이 그녀를 바라보셨다.
“이사가요?”
“네, 할머니.”
“7층 총각 선생님이랑 결혼한다고?”
“아니요.”
“아니야?”
“네. 유학.. 가요.”
“잘 안 됐어? 둘이 잘 어울리던데~.”
“잘 됐어요. 제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다녀와서 결혼하려고요.”
“좋네~.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와요. 결혼하면 못해.”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탄 택시가 출발했다.
*****
민영의 집으로 달려온 승주가 놀란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없어. 여기도 없어?”
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같이.. 숨기로 결정했나봐요.”
승주가 털썩 주저앉으며 한 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알아서 하신다고하고, 분명 쌤도 쌤이 알아서 하실 거라고 하셨을 테고.. 언니 성격에 엄마나 쌤한테 피해를 주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결정한 것 같아요.”
“어디로 갔을 것 같아?”
“글쎄요..”
“어떻게 찾지..?”
“돈 뒀다 뭐해요? 일단 공항부터 연락해서 알아보세요. 여권도 없으니까. 아프리카 쪽으로 알아 보세요. 자세히는 모르는데 언니 선배가 아프리카에 있다고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가 벌떡 일어났다.
“고맙다.”
그가 달리기 시작하자 민영이 한 숨을 내쉬었다.
“날 만나러 오긴 할 건가? 쌤처럼.. 날 찾아오긴 할 거냐고, 오빠야..”
*****
선배를 만났다. 상처를 입은 야생동물을 살피고 있던 선배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진아~~. 어쩐 일이야~. 이 먼 곳까지.”
“그냥요. 선배가 머리 복잡하면 와서 봉사하라고 했잖아요. 지금 딱 시간이 나서요.”
“잘 왔어.”
두 사람은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선배를 도와 일을 했다. 간단한 치료나 상처를 회복하기 전까지 동물들
이 있을 곳을 청소하고 새 건초를 깔아주는 일을 하고나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가버렸다. 늦은 저녁 커피를 그
녀 앞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선배의 물음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냥요.”
“에이~. 그냥이 아닌데?”
“일은 힘든데 오히려 다른 생각이 안 들어서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계속 하라고 하면 못하지 싶어요. 선배가 대단해 보여요.”
“말 돌리기는. 여하튼 생각 정리하기엔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지. 무슨 일이든 답을 얻길 바래.”
“네.”
윤진이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승주의 부모님의 비서가 신문 기사를 보여드렸다. 채민욱 사장이 자신의 숨겨진 딸과 승주의 결혼을 보도할 예정인 듯 했다.
“기사 못 내게 해요.”
“네.”
“그리고.. 만나자고 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승주 부모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승주 엄마가 윤진엄마의 꽃집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승주 엄마의 방문에 윤진엄마가 일어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바쁘신데 짧게 말씀드릴게요. 지금 채민욱 사장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윤진엄마가 창백해졌다.
“제가 그 사람을 만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그 분을 알거든요. 사부인이 감당하실 수 없으실 겁니
다. 도리어 상처를 입으실까 염려가 돼요. 내일 내려고 했던 기사는 막았습니다만 다른 건 만나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쪽 전문가를 알고 있으니 이 일은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는 게 어떠세요?”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윤진양과 혼인을 결정한 순간부터 사부인도 두 따님도 저희의 가족이 되신 겁니다.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을 가만히 볼 수 없잖아요. 사부인은 크게 염려하지 마시고 계세요.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윤진양에게 연락은 왔나요?”
“아직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윤진양 마음이 이해가 되요. 하지만 승주보다 사부인과 동생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전화라도 주
면 좋을 텐데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혜로운 아이로 잘 키우셨으니까 알아서 잘 결론을 내리라 생각
하고 있어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살펴 가세요.”
승주엄마가 가고 윤진엄마가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숨을 내쉬며 내려놓았다.
****
승주는 부모님이 채민욱 사장을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디 있습니까?”
“벌써 끝났어. 어떻게 알고 오는 거야?”
“어떻게 됐습니까?”
“넌 우리가 우습니? 잘 해결됐어. 어른들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넌 얼른 윤진양한테 안 가고 뭐해?”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요.”
엄마가 입을 벌렸다.
“사부인 얼굴 못 봤니?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데리고 와. 무슨 생각할 시간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얼른 안 가?”
승주가 미소를 지었다.
“네.”
“혼자 들어오면 맞을 줄 알아.”
승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공항으로 출발했다. 승주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채민욱 사장이 괜찮을까요?”
“윤진이에 대한 말을 하면 바로 투자금 회수한다는 것에 사인을 했으니 괜찮겠지. 평생 입 벙긋 못하도록 여러 조항을 넣은 계약서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 웃겨. 지우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자기 딸이래. 자격도 없으면서.”
“당신은 윤진양이 승주를 따라 올 거라고 생각해?”
“그럼요. 두고 보세요.”
승주 엄마가 미소를 지었다.
******
더러워진 보호소를 치우고 있는데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며 마스크를 벗었다. 승주가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승주씨..”
“생각했어? 결론은? 나랑 헤어질 거야?”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없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바보야? 어머님 기절하시기 직전이고, 민영이도 마찬가지야. 지금 넌 네 생각만 하고 있는 거라고.”
윤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창피해서 그래요. 그런 사람이 내 아빠라서. 그런 사람의 딸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요.”
“당신이 왜 그 사람 딸이야? 당신은 고정혜 여사님 딸이야. 유전자를 주었다고 다 아버지인가? 낳았다고 어머니
인가?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제대로 키우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부모야. 어머님은 제대로 부모님 역할을
하셨다고. 엄마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그런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네가 좋은 딸이 아닌거지.”
윤진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은 왜 안 해? 오는 내내 이젠 내가 싫어졌다고 말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며 당신 앞에 서 있는 나는 왜 생각 안 하는 건데?”
“승주씨..”
“아, 시끄럽고. 이리 와.”
그가 팔을 벌렸다.
“빨리 안 와?”
윤진이 그를 바라보다 걸음을 옮겨 그의 품에 달려들 듯 안겼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냄새 끝내준다..”
그녀가 피식 웃더니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전에 그들은 호텔에 머물렀다. 샤워를 마친 그녀가 나오자 먼저 샤워를 한 그가 킁킁 거리며 그녀를 품에 안고 냄새를 맡았다.
“아직도 나요?”
“나는것 같아.”
“진짜요?”
“나의 뇌에 강력하게 저장이 되어서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 해요..”
“다른 향기를 많이 맡으면 점점 괜찮아지겠지.”
“예를 들면요?”
“예를 들면.. 이런 거?”
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를 안고 침대로 향하자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많이.. 걱정했어요?”
“걱정하기도 하고, 마음 졸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에 있다는 건 금방 알았어. 당신 선배랑 가끔 연락을 주고받기도 해서 건강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그건 걱정하지 않았지만.. 보고 싶었어. 어머님이랑 통화 했어?”
그녀가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셔?”
“욕만 한참 들었죠.”
“그래도 돼. 마음을 얼마나 졸이셨겠어. 앞으로 우리가 잘 하자.”
“나도.. 잘 할게요.”
“여러 면에서?”
“여러 면에서요.”
“두고 보겠어..”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해 주었다.
************
시간이 흘러 승주와 윤진은 아이들을 시부모님께 잠시 맡기고 민영과 재현의 결혼식을 찾아갔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민영을 바라보며 윤진이 미소를 지었다.
“예쁘다.”
“음~. 거짓말은. 하나도 안 예쁘고만. 나는 신부화장하면 확 바뀌는 줄 알았지. 이게 뭐야..”
윤진이 미소를 지었다.
“예뻐. 차 군이 예쁘다고 안 해?”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코를 슬쩍 찡그렸다.
“하지.”
윤진이 눈가를 붉히며 미소를 짓자 민영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너무 좋아. 너도, 엄마도.. 모두 행복해졌으니까.”
“응.”
“앞으로도 행복해지자.”
“응.”
“아.. 잠깐만..”
윤진이 눈물을 닦으며 나가자 민영이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키려고 애썼다. 친구들이 들어왔다.
“고마담~~. 축하해~.”
“고맙다.”
친구들와 왁자지껄하게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누자 눈물이 들어갔다. 하지만 곧 엄마가 들어오시자 그녀가 입술을 살짝 물었다.
“예쁘네, 우리 딸.”
“우리 엄마.. 외롭지 않겠어? 같이 살자니까.”
“엄마도 홀가분하게 살 거야.”
“응. 엄마..”
“응?”
“그 분이랑.. 만나는 거 반대 안 해. 그러니까.. 나 신경 쓰지 마요.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는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잘 해.”
“응. 엄마.. 고맙습니다.”
결국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엄마도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가 복이 많다. 착하고 예쁜 딸들 만나서.. 행복해야 해.”
“응.”
엄마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나가자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제은과 준성, 세나, 호영이 들어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직원이 그녀의 얼룩진 화장을 고쳐주었다.
“좋은 날 왜 우냐?”
“그러게.”
“고마담. 행복해라.”
“고맙습니다.”
세나와 제은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다시 세 사람이 훌쩍이자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 울고 사진 찍자.”
“응.”
“네..”
화장을 다시 손을 본 민영의 뒤에 네 사람이 섰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승주가 들어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디 행복하거라.”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문이 열리고 재현이 들어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코가 너무 빨간데..”
“그래? 어떻게 하지?”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코끝에 입맞춤을 했다.
“오빠~.”
“아껴줄게.”
“나도..”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름다운 나의 신부님.. 가실까요?”
“응.”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내가 김무열보다 멋지지.”
“아니라니까 그러네~. 우리 김배우님은 잔근육 장난 아니야~.”
“하. 어이없네. 오늘 밤에 봐봐. 나도 장난 아니야~.”
“그만 해. 창피해지려고 그래.”
“어허~. 오늘 밤에 보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는 게 아니라고..”
“어허~.”
문이 열리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정원에 모인 사람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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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준범입니다. 저는 한 12편이면 될 줄 알았는데 어찌하다보니 번외를 4편이나.. ㅎㅎ
그래도 다행히 크리스마스 전에 완결까지 올려서 좋네요.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한도전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는데..
" 2016년 병신년은 나의 해~~" 라고 정중하씨가 그러시잖아요.
2016년에는 올 해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시고, 조금 더 건강해지시고, 조금 더 주변 사람들과 사랑하시고, 사랑받는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저의 소설을 애껴주시는 모든 분들~.
제가 진심으로.. 진심으로 애정합니다~. ^O^
첫댓글 너무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감사해요...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구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4 10:58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재미있글 선물이라 생각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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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네요!!! 넘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들이 었어요!!!
역쉬~~~ 사랑은 해피하게 끝나는게 좋아요!!!
좋은 아이들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Merry Christmas~~~!!!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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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4 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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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는내내 화가나다가 웃기기도하고ㅎㅎ 정말 재밋게 잘봣어요 ㅎ작가님ㅎ메리크리스마스에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4 22:56
분량도 분량인 만큼 잘쓰셨어요! 다음화 기대됩니다 ㅎㅎ 시간 되신다면 제 소설도 보러와주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27 21:00
가입하고 첨으로 본 글이네요.
멋진 선택!
즐독하고 갑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10 06:40
감사, 새 그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
감사해요. 오늘 엄청 덥네요. 글을 몇개 시작은 했는데 마무리가. . ^^;; 저도 빨리 찾아뵙고 싶네요. ^^ 더위조심, 냉방병 조심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
너무~잘봤어요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네요^^
블링블링21 님. 반갑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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