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이란 영화를 보고 한동안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 요즘들어 생각이 난다. 강재와 파이란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들의 행적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던 그 시간들... 참으로 생소했지만, 소중했던 그 감정들을 얼마전 MBC 수목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요즘 나는 네 멋대로 해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파이란을 본 후처럼 복수씨와 경이씨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복수씨와 경이씨의 말투가 나에게서 배어나고 있다. 이렇게 늦은 새벽에도 잠 못 이루고 또 다시 네 멋대로 해라를 보다가 결국은 이런 글까지 쓰고 있으니, 알만 하지 않은가? 이정도면 내 머릿속에 어느 정도로 헤집어져 있는 지 말이다.
네 멋대로 해라를 보는 동안 나는 자꾸 파이란이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희안하게도 두 작품은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많은 공통점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물들부터 하나하나가 참으로 많이 닮아있었다. 어쩌면, 나는 파이란과 네 멋대로 해라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공통점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 누가 봐도 삼류 인생
강재와 복수는 참으로 삼류 인생을 살았다. 그 인생은 결코 미화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심하게 과장되지도 않았다. 그 둘은 닮지는 않았지만, 그 인생은 분명 어딘가에서부터 하나로 이어져있는 듯 했다. 포르노를 팔다가 구류에 들어간 강재와 소매치기로 전과를 가진 복수... 두 작품 속에서 이 두 주인공은 결코 미워할 수는 없는, 하지만 분명 뭐라고 변명할 여지 없는 삼류 인생을 살아간다. 그저 그렇게 살아왔기에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는, 어찌보면 참으로 생각 없지만 어찌보면 한없이 불쌍한 인물들... 배 한척 사서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 꿈인 강재와 고생만 하다 자신의 곁을 떠난 어머니 고생 덜어주는 것이 소원인 복수... 그 둘은 분명 아름답지는 않은 삼류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추악하지는 않은 불쌍한 인생을 사는 인물들이었다. 어찌보면 요즘들어 조금은 남발하고 있는 코드를 가진 인물들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다.
2. 여주인공은 청순가련형? 하지만 힘은 있다.
파이란과 전경... 둘을 보고 공통점을 찾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모 여 평론가에게 남성들이 말하는 이상형을 찍어낸 것이라는 혹평을 들은 파이란과 보이쉬한 매력을 지닌 전경에게서 차이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무리인것일까? 하지만, 나는 두 작품을 보다보면서 파이란과 전경에게서 많은 공통점을 찾아 느낄 수 있었다. 파이란과 전경은 청순가련과 힘을 지닌 이중성을 띈 인물이었다. 뭐, 어느 여자라 한가지 면만을 가졌으랴 싶지만, 지금껏 많은 드라마에서는 위 둘이 참으로 어색하게 부합되었거나, 작가에게 필요한 만큼만 들어나 있는 경우가 참 많았다. 내용이 필요로 할때는 너무도 바보 같은 청순가련형이었다가, 내용이 필요할때는 악바리로 변하는 모습이 여자주인공들에게 일관되게 나타난 것이 사실이었다. 그에 비해서 파이란과 전경에게서는 극중 인물로서의 성격보다는, 인생을 사는 그 자체로의 성격이 많이 부각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어찌하여 전경이 청순가련형이었으며, 어찌하여 파이란이 힘을 가진 여인이었느냐? 만약 이런 생각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드라마에서의 캐릭터성에서 조금만 물러서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위 두 주인공은 단순히 들어나는 연약함을 지니지 않았고, 그렇다고 단순히 들어나는 힘을 지니지도 않았다. 그저 인생을 살다보면 보여지는 연약함을 들어내어 청순가련함을 보였고, 인생에서 필요한 힘을 들어내어 힘을 보여주었다. 파이란의 주인공 파이란은 상당한 비련의 인물이었다. 친척을 찾아 먼 한국땅을 찾지만 이미 친척은 없고, 위장결혼을 통해 머물 수 있었던 곳은 녹물 흘러나오는 시골의 세탁소... 하지만 파이란의 매력은 바로 그 비련의 인물에서 깨져 나옴에서 들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 보려는 그런 모습이 매력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조용히 기다리기 보다는 소장을 찾아가 부탁을 해보기도 하고, 술집에 팔릴 위기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겨내었다. 그에 비해 전경은 참으로 속편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부잣집 딸,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하지만 그런 전경 역시 연약함을 지니고 있는 여성이었으며, 그 연약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성이었다. 사실 전경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맹한 보이쉬함에 있을 것이다. 고복수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충실하고, 감정에 충실한 전경. 파이란에 비해서 들어나는 힘든 역경과 고난은 없었지만, 참으로 평범한 고난 속에서 전경은 여성으로서의(여성폄하 발언은 아니다.) 청순가련함과 힘을 보였다고 생각을 한다. 불치병인 고복수와의 하룻밤을 생각하고, 어쩌면 사랑의 생명을 단축시킬지도 모르는 수술을 결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와 사랑을 돌본다. 어찌보면 파이란에 비해서 뻔한, 그리 힘들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그 모습이 전경을 더 여자답고, 강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3. 대본의 승리? 감칠나는 대사
위 두 작품은 참으로 유행어가 많았다. 특히나 파이란이 나왔을 당시 (나름대로 ) 유행했던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전경이 외치던 사랑해도 되나요? 는 나로 하여금 두 작품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두 작품에서의 대사들은 단순히 지나가는 대사가 아니오, 그렇다고 유행만을 집착한 대사가 아닌... 너무나 자연스럽고, 인생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인생을 찾을 수 있는 명언이었다. 특히나 캐릭터성을 잘 살린 대사들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 미래라는 인물을 돋보이게 만들었고, 파이란에서는 강재와 경수라는 인물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어찌보면 참으로 더러운 대사이지만, 나름대로 듣기에 편한 대사라는 모순을 일으키는 대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극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그리고 나름대로의 절제를 통한 극전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두 작품은 대본을 통해 판타지와 현실의 모호함을 끌어내 보였다. 어찌보면 참으로 현실적이지만, 어찌보면 인물들의 판타지가 부각되는 작품... 현실적인 캐릭터들과 전개, 하지만 그 속에서는 어느새 그들만의 판타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본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4. 특이한 감독, 어찌보면 흥행에 악영향...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독님과 파이란의 감독님은 두 분다 특이하시다. 물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특이하신 분들이지만 흥행에는 어찌보면 조금의 악영향을 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박성수감독님의 경우 방영중인 방송사인 MBC의 섹션을 싫어하셔서 방송 중에 한회를 제외하고는 단한번도 섹션 홍보를 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방영중일때에도 별다른 홍보 없이 진행하셨기에 흥행에는 그야말로 악영향 그 자체였다. 그에 비해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님의 경우 전작의 흥행 참패가 주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 카라를 통해서 흥행면에서 참패를 당하신 송해성 감독님, 사실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해도, 많은 사람이 초반 극장에 찾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작에서의 실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감독님, 좋은 작품으로 흥행면에서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신 거... 두분은 어떠 실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안도하며 기뻐도 해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흥행의 딜레마 속에서 망가져가는 작품들을 보아오다보니, 오히려 흥행하지 못한 것이 고마울 때도 있는 것이다.
5. 출연진의 빈약? 인기와 연기는 반비례?
파이란과 네 멋대로 해라의 가장 큰 도박은 출연진에 있었다. 그리 지명도 높지 않은 배역들을 대거 기용하여서 일명 빠순(돌)이들로부터 외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최민식씨와 장백지씨, 연기에는 통달했다는 최민식씨는 그 전까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로서 알려져 있었지, 흥행배우로서로는 그리 점수를 따지 못했었다. 장백지씨의 경우 해외파 배우로 팬들을 보유하고는 있었지만, 실력이 의심되는 연기수준과 역시나 국내의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의 지명도에 비해서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양동근씨와 이나영씨 그리고 공효진 이동건씨... 양동근씨, 그는 아역배우때의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소문과 함께, 구리구리라는 모습으로 그저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 시트콤을 통해 (사람들이 보기에 ) 자신을 철저히 망가뜨렸다. 솔직히 그리 잘생기지 않은 외모로(물론 요즘보면 원빈보다 양동근씨가 더 매력있어 보인다.) 주인공을 맡았던 것이 이슈였다면 이유였고, 양동근의 외모가 드라마의 시청률에 영향을 주었다는 신문기사조차도 웃으며 넘기지 못하였다. 이나영씨도 마찬가지, CF를 통해 주가를 많이 올렸지만, 드라마에서는 흥행참패만을 기록해 왔었다. 영화 역시 참패를 기록하다가 그나마 작품이다 싶은 후아유는 월드컵 특수에 밀려서 중간정도의 성적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공효진씨는 나름대로 연기파로 알려져있었으나, 그것도 조금 그리 많은 지명도를 얻지는 못하였고 이동건씨도 가수와 연기를 겸업하면서 양쪽 다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위와 같은 이유로 두 드라마의 흥행면에서의 성적은 대충 정해졌다 싶었다. 그 후에 우리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배역진들의 연기였다. 말 안해도 알겠지, 그들의 연기에 대해 일침을 놓을 자 누가 있는가... 아, 여자들은 용감했다. 모 여자 평론가는 파이란을 남성들의 이상형으로 만들고, 모 여기자는 네 멋대로 해라를 시트콤 수준의 연기집합체로 말하였었지... 속 터지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6. 매니아층의 생성, 그리고 긴 여운...
파이란은 파사모라는 집단을 만들어 내었고, 네 멋대로 해라는 네멋 폐인이라는 고유 명칭으로 매니아 집단을 이루었다. 그들은 단순히 드라마를 떠나 회원들 서로간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으며, 삶에서 작품을 찾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듯 하다. 파사모의 경우 한때 매스컴을 통해 자주 알려진 파이란을 사랑하는 모임의 약자이고, 네 멋대로 해라의 대표적인 커뮤니티로는 네멋30을 들수 있을 것 같다. 두 작품 다 작품이 끝난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통해서 알려져 있으며, 작품 자체만의 탐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 회원들간의 끈끈한 정으로 뭉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듯 하다. 거기다가 두 커뮤니티 회원 다 촬영지 방문을 밥먹듯이 하고 있으니, 이야 말로 그들의 진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거기다가 파이란은 자체적인 힘으로 재상영회를 몇회씩이나 이끌어 내었고, 네멋 팬들의 경우 흥행 드라마들도 나오기 힘든 DVD 발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야말로 매니아들의 세상이 아닐까 싶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매니아들의 독단적인 모습들이 가끔 보인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일 것이다. 특히나 네멋 팬들에게서 약간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어찌보면 장점이지만 그 경향은 후에 드라마에 대한 감정을 반감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네멋이 아닌 나의 네멋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며, 단순히 세상에서 오직 네멋이 아닌 세상의 네멋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7. 끝 난후 더욱 더 인기, 배역들은 주가 상승
두 작품 다 작품이 종영된 후에 본격적으로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고, 사람들이 찾았다.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그리 두각을 보이지 않던 작품들은 작품성을 통해서 오히려 개봉과 방영이 끝난 후 사람들에게서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출연진들 역시 종영후 주가상승과 함께,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특히나 남자 주인공들은 연기를 통해 인기를 잡았고, 여자 주인공들은 매력에 비해 빈약했던 연기력에 대한 검증을 받는 단계를 거친 듯 보인다. 그 외의 조연들 역시 이 작품을 통해서 한 단계 발돋움을 했음을 느낀다.
8. 우리는 우정으로! 주인공 뒤에는 항상 후배인 내가!!
파이란의 경수, 네 멋대로 해라의 꼬붕이... 둘 다 주인공의 후배로 등장하여, 넘치는 의리와 가끔가다 튀는 실수를 통해 극의 재미와 상황을 이끌어 갔다. 특히나 멋진 조연이 아닌 인간미 넘치는 조연으로서의 맛을 더했음이 큰 장점일 것이다.
9. 희망을 말하는 이야기...
두 작품의 마지막 공통점...사실 더 쓰고 싶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두 작품은 모두 희망을 잊지 않고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 하여 주었다. 희망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참 많은 것을 얻도록 해준다. 인생의 활력이 되어주고,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을 통해서 희망을 찾고 마지막을 준비한다. 희망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렇기에 두 작품은...참으로 아름다운 것 같다.
이 야심한 새벽에...내가 혼란스러운 머리로 오랫간만에 글을 끄적여 보는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글을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생각을 따르도록 해라라는 의도로 비칠까봐 노파심에 말해본다. 위의 글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며 느낀 점일 뿐이다. 결코 동감할 필요가 없고, 버릴때는 버려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사실 많은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있다. 드라마던 영화던, 그 자체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물론 그 속에 담겨진 무엇인가를 찾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그 것이 작품 자체보다 중요해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으로 억지스러운 말인 것 같다. 작품을 작품으로 본 후에, 그것에 대해 찾는 것도 그리 늦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강박관념에만 쌓인다면, 그것은 결코 작품을 보는 올바른 방법은 아닐것이다.
길고 억척스러운 글 보시느라 힘드셨을 여러분들께 심심찮은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언제나 두 작품이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9.11 테러의 날입니다. 작년 이 날, 많은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 속에서 했던 다짐들...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