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인어아가씨에게 밀리다 / 이경옥
심상숙 추천
인어아가씨에게 밀리다
이경옥
새벽 2시 서천 앞바다에서
보내온 남편의 문자
공해상이라 한나절 연락 안 될 거요
뭍에 들어오면 연락하리다
주말 느지막이 일어난 딸이
아빠의 부재를 묻기에 핸드폰 화면 보여주었다
사랑과 전쟁에서 이런 문자, 바람 난 남자들 단골 멘트던데,
딸의 농담에
나 - 통통배 타고 망망대해에서?
딸 - 혹시 울 아빠가 인어 아가씨를․․․․․․
나 - 그래도 그렇지 아무렴 내가 바다 동물에게 밀릴까
딸 - 인어는 그래도 아가씨야
나를 아주 측은하게 바라보던 딸,
딸- 조만간 인어아가씨를 엄마라고 불러야 될지도 몰라
실없는 농담 뒤 은근슬쩍 신경이 쓰였다
그날 저녁,
팔뚝만 한 대구 여섯 마리를 들고 귀가한 남편
한 마리가 싱크대를 꽉 채우는
인어아가씨처럼 미끈한 대구 지느러미를 다듬으며
나는 저걸
맑은탕을 끓일까? 매운탕을 끓여 버릴까?
괜히 이를 앙다물었다
(이경옥 시집『혼자인데 왜, 가득하지』64쪽, 시와소금, 2021)
[작가소개]
이경옥, 강원평창출생, 2020《시와소금》신인상 등단
「시와 삶」 동인,「시와소금작가회」회원
[시향]
지난해 김포 문예대학에 나오던 이경옥 시인의 첫 시집을 뒤늦게 받게 된다. 서교동 주택가 옥상에서 길렀다는 빳빳하게 잘 마른 수세미 두 개를 꾸민 종이 바구니에 나란히 세워 담아 시집과 함께 동봉하여 소포로 보내왔다.
실하고 정갈하게 잘 마른 수세미 그 깔깔한 품새를 금방 물에 담그기 아까워 책상 위에 얹어둔다. 한동안 그 집 옥상에서 주렁거리던 푸른 그늘을 잠깐씩 만져 볼 것이다.
몇 날을 말리느라 들여다보았을 시인의 햇살 같던 눈길을 떠올리며 온기를 되새길 것이다.
곧 두 번째 시집을 펴낼 거라니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밤길 다녀가던 시인의 열정이 축지법까지 동원 시켰다는 걸 생각한다.
글: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