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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둔사 방하교에 깃들여진 늦가을
▲ 금둔사의 오랜 보물들 (3층석탑과 석불비상)
가을이 한참 절정을 누리던 11월의 첫 주말에 전남 순천을 찾았다. 순천(順天)은 거의 4년 만에 발걸음을 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찾지 못한 아쉬움을 제대로 풀고자 부산의 선배 일행 과 그곳에 서린 오랜 절집을 한곳도 아닌 무려 3곳을 돌았다. 가장 먼저 개운산(開雲山)에 안긴 동화사(桐華寺, 나중에 소개할 예정)를 둘러보고 그 다음에 금둔사로 발길을 옮겼다.
동화사에서 금둔사로 가려면 무조건 낙안(樂安)을 거쳐야 되는데, 대룡리 고갯길은 그곳으 로 바로 통하는 지름길이다. 수레의 왕래가 뜸해 한적한 그 고갯길을 넘으면 낙안민속마을 을 품은 낙안벌이 눈 앞에 펼쳐진다.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낙안읍성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선암사로 가는 고갯길을 오르니 그 중턱에 금둔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손짓한다. 그의 지시 로 좌측으로 꺾어 100m정도 한 굽이 고갯길을 오르니 아름다움에 눈을 시리게 하는 조그만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숲길이라고 해봐야 고작 10m거리에 길 좌우로 늘어선 늘씬한 전나 무 10여 그루가 전부지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자연미 넘치는 전나무와 울긋불긋 타오른 늦가을 단풍이 한데 어우러진 그 길은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그 숲길을 지나서면 수레의 쉼터인 주차장이 나온다.
절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결코 예사롭지 않은 금둔사는 절이 아닌 동화 속의 펼쳐진 신선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선계(仙界)의 하루는 속세의 몇백 년과 비슷하다고 하던데,괜 히 들어갔다가 세월만 빛의 속도로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쓸데없는 염려를 품으며 주차 장에 수레를 세운다. 그럼 여기서 잠시 금둔사의 내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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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매화(紅梅花)와 차의 향기로 그윽한 산사, 신선의 선계(仙界)처럼 아름다운 조경으로 속인들의 눈과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는 금전산 금둔사(金錢山 金芚寺)
▲ 금둔사 선원(禪院, 태고선원) |
금전산(679m) 서쪽 자락에 아늑히 안긴 금둔사는 하나의 절이라기도 보다는 동화 속 별천지 같 은 곳이다. 자연에 크게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조화된 금둔사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신 선이나 선녀의 세계,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요정(nymph)의 세계 같은 곳이다. 지금까지 180곳이 넘는 고찰(古刹)에 발도장을 찍었지만 금둔사만큼 눈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조경에서 본다면 금둔사는 천하 제일의 절이 분명하다. 1984년 절을 중건한 지허화상(指 墟和尙)과 조경(造景)을 기획한 이들에게 그야말로 감탄이 쏟아진다.
신선만이 넘나드는 비밀의 정원 같은 금둔사는 583년<백제 위덕왕 29년(威德王, 554~598)>에 담 혜화상(曇惠和尙)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백제 승려인 담혜화상은 554년 왕의 명으로 8명의 승려 와 함께 백제의 속방(屬邦)인 왜국(倭國)에 파견되어 불교를 전하고, 왜인(倭人) 승려 10여 명 을 양성했으며, 나중에 귀국하여 금둔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7세기 후반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 )가 절을 중창하고 부근에 금강암(金剛庵)을 지어 머물렀다고 하며, 9세기 초반에는 철감국사( 澈鑒國師)와 그의 제자인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절을 중창하고 동림선원(桐林禪院)을 세워 육조 의 선풍을 널리 알렸다고 한다. 허나 백제 위덕왕 시절의 창건설과 의상대사의 중창건은 어디까 지나 설화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며, 경내 뒤쪽에 자리한 3층석탑과 석불비상을 토대로 막연히 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금둔사 일대 지층(120~150cm)을 발굴조사하면서 창건 당시의 건물터 지층이 발견되었고, 총 4동 의 건물터와 주춧돌, 연꽃무늬 수막새, 주름무늬병 등이 발굴되어 9세기 경에 창건된 절로 드러 났다.
고려시대로 들어서 1385년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절을 중창하고 부근에 수정암(水晶庵)을 지어 머물렀다고 한다. 허나 이후로 이렇다 할 내력도 남기지 못한 채, 땅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다 만 조선 초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금전산과 절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조선 중기까지 법등을 유지하다가 정유재란이나 불의의 화재, 자연재해 등으로 망한 것 으로 보인다. 그후로 오랫동안 3층석탑과 석불비상을 안테나처럼 외부로 드러낸 채, 땅 속에 묻 혀갔으며, 절터에는 상송리 사람들이 일군 경작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다가 1979년 도굴 되어 파괴된 3층석탑과 석불비상을 복원하고, 1983년 선암사 칠전선원에 있던 지허화상이 복원 불사를 벌여 1984년 대웅전과 선원, 약사전, 산신각, 요사 등 10여 동을 지어 지금에 이른다.
지허화상은 복원불사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나라 전통차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경내에 2천여 평 의 차밭을 일구었으며, 일주문에서 선암사 방면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선암사와 용연사, 금둔사 의 차씨를 심어 조성한 9천여 평의 지현다원이 있다. 이들 차밭에서는 일체의 비료나 거름을 사 용하지 않고, 봄과 가을 2차례에 차나무 부근에 자라난 잡초를 손질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곳에서 자란 차는 '지허스님의 차','아무도 말하지 않는 한국자생차 이야기'의 저자인 지허화 상이 50년 동안 공들여 일군 결과이며,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보급하는 정도였으나 1979년부터는 '가마금잎차', '금화산잎차', '천강월잎차'란 상품으로 전화나 우편주문으로 판매하고 있다. 금 둔사 차(茶)는 신라 후기에 철감국사와 징효대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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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에 잠긴 차나무밭, 그 사이로 잠시 앉아갈 수 있는 돌의자가 고인돌처럼 놓여 있 다. |
금둔사는 차와 더불어 홍매화와 납월매가 유명하다. 홍매화는 말그대로 붉은 매화이며, 납월매 (納月梅)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로 음력 12월에 피어난다고 한다. 우리나 라의 토종 매화로 매우 희귀한 품종인데, 오로지 금둔사에 뿌리를 내린 6그루가 전부이다. 이 납월매는 원래 낙안마을의 어느 민가에서 자라던 것이라 하며, 집 주인이 죽자 시들어 죽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지허화상이 그 씨앗을 수습하여 심은 것이다. 이곳 홍매화는 보통 3월 중~하순에 피어나 붉은 색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겨울의 제국으로 황량 하던 산야에 봄빛을 비춘다. 금둔사에 가려면 매화가 방긋하는 3월에 가야 그 진수를 누릴 수 있으나, 우리는 늦가을에 와서 홍매화는 커녕 몸을 움츠리며 봄을 기다리는 매화나무 가지만이 우리를 반길 따름이다.
금둔사는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자리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신선이 머물며 바둑을 두는 전설 속의 오랜 별장 같은 곳으로 속세의 온갖 짐을 내던지고 홍매화와 차의 향기, 금전사의 그윽한 풍경에 감동하여 한없이 묻혀 머물고 싶은 그런 절집이다. 자연에 어울리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편안한 것인지 를 이곳은 잘 말해준다.
절은 조촐하지만 볼거리가 풍성하며, 특히 경내에 펼쳐진 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소장문화유 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3층석탑과 석불비상이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중생을 기다린다.
※ 금둔사 찾아가기 (2009년 11월 기준) ① 순천을 거쳐 가는 경우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순천행 고속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동서울터미널에 서 순천,여수행 직행버스가 1일 6회 떠난다. * 서울(용산역), 수원역, 서대전역, 익산역에서 순천행 열차가 1일 13~14회 있으며, 부산(부전) 과 마산, 광주(서광주, 효천)에서 순천행 열차가 드문드문 다닌다. * 인천, 부산(노포동, 사상), 광주, 대구(서부), 수원, 진주에서 순천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 순천에서 금둔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다. 순천역이나 순천터미널에서 61, 63, 68번 시내 버스(3노선 합쳐서 1일 20회 정도 운행)를 타고 낙안에서 금산으로 들어가는 군내버스(1일 7 회)로 환승하여 금둔사에서 내린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택시로 가거나 2km 도보 ② 벌교를 거쳐 가는 경우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벌교행 고속버스가 1일 1회<15시 10분, 휴일에는 1회 증회(8시 10분)> 떠난다. * 용산역에서 서광주 경유 벌교로 가는 열차가 9시 45분에 떠난다. (6시간 소요) * 부산(사상)에서 벌교행 직행버스가 1일 20여 회, 광주에서는 1일 40여 회 다닌다. * 벌교터미널에서 낙안 경유 금산 방면 군내버스(1일 7회) 이용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주차장 있음) ① 남해고속도로 → 승주나들목 → 낙안 방면 857번 지방도 → 금산 → 금둔사 ② 남해고속도로 → 송광사나들목 → 벌교 방면 18번 국도 → 송광사입구 → 이읍 → 낙안 → 선암사 방면 857번 지방도 → 금둔사
★ 금둔사 관람정보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금둔사 홍매화는 보통 3월 하순에 피어난다. * 금둔사에서 재배하는 전통차는 금둔사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산2-1 (☎ 061-755-3809) * 금둔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 선암사 승선교(昇仙橋)를 닮은 금둔사 방하교 |
♠ 금둔사 일주문(一柱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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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뒤로하고 절로 향하면 바로 절의 정문인 일주문(一柱門)이 중생을 맞는다. 문이라고는 하지만 열고 닫는 문짝은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반가이 맞이하는 일주문의 포용력은 중생을 걱정하는 부처의 마음이다. 반흘림체로 '金錢山 金芚寺'라 쓰인 현판은 서예가로 명성이 높던 소암 현중화(素庵 玄中和, 1907~1997) 선생의 글씨이며, 문 양쪽으로 짧은 담장을 둘러 부 처의 세계와 속세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일주문 주변은 자연과 가을이 앞다투어 깃들인 탓인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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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엔들 잊으리요~ 금둔사 전나무 숲길 가을이 이쁘게 채색을 들인 아름다운 전나무 숲 길, 늘씬한 자태로 쭉쭉 솟아나 하늘을 가린 숲 길은 이곳을 찾은 나그네를 동화 속 세계로 인 도한다. 전나무가 불어준 산내음에 속세의 번뇌 를 저만치 날려 보내며 일주문을 들어선다. |
▲ 가을의 호젓함이 깃들여진 금둔사 가는 길 금둔사의 풍경에 늦가을도 크게 반했는지, 이곳에 머물며 곳곳에 고운 작품을 빚었다. 끝없이 펼쳐진 저 길을 계속 걸으면 정말 신선이나 선녀를 만나는 것은 아닐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한 발자국씩 길을 내딛는다. |
▲ 차곡차곡 쌓여진 정겨운 돌담장, 그 담장 위로 기와들이 붉은 단풍잎을 이불로 걸치며 늦가을의 단잠을 즐긴다. |
♠ 계곡 위에 무지개처럼 걸린 돌다리 ~ 방하교(放下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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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면 길은 2갈래로 갈린다. 정면으로는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지며 금둔사의 오랜 보 물인 3층석탑과 석불비상이 나온다. 왼쪽은 대웅전과 선방, 요사로 넘어가는 낙엽이 살짝 내려 앉은 돌다리가 있는데, 바로 방하교이다. 방하(放下)는 속세의 번뇌와 고통을 내려놓으란 뜻으 로 다리를 건너면서 아직까지 남겨진 번뇌를 다리 아래 계곡에 떠내려 보낸다. 허나 가을 가뭄 으로 계곡에 물이 별로 없고, 번뇌란 놈이 워낙에 무거우니 제대로 떠내려가긴 할련지 모르겠다.
계곡 위에 무지개처럼 걸쳐진 방하교는 금둔사를 다시 지으면서 만든 아치형 돌다리로 높이가 10m에 이른다. 근래에 만든 다리지만 몇백 년 묵은 다리처럼 고색이 짙어보여 중후함을 선사하 며, 다리 양쪽 모서리에 두툼하게 난간을 만들어 나그네의 안전을 배려하였다. |
▲ 낙엽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방하교 노란색과 푸른 옷을 걸친 나무 사이로 대웅전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 방하교 입구에 둥지를 튼 산신(山神) 가족 방하교 입구 한쪽에 돌로 조촐하게 단(壇)을 쌓고 산신상을 모셨다. 산신은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오른손으로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는데, 호랑이의 표정이 그야말로 귀여운 고양이 같다. |
♠ 금둔사 대웅전(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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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교를 건너면 바로 금둔사의 법당인 대웅전이다. 1984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 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절의 중심 건물답게 장엄한 모습으로 중생을 맞으며, 바깥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는 우현 송영방 화백이, 본존불(本尊佛) 뒤에 자리한 후불탱화는 동국대 손연칠 교수가 그린 것이다. 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전으로 앞뜰에는 대웅전과 나이가 비슷한 8각형 을 띈 7층석탑이 늘씬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다. 가람배치는 1금당 1탑 형식이며, 건물 우측 에는 중생 구제를 염원하는 부처의 은은한 메세지가 담긴 범종의 거처인 범종각(梵鍾閣)과 조그 만 네모난 연못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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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각형 모양의 금둔사 범종각 |
▲ 대웅전 앞뜰을 수식하는 8각7층석탑 |
▲ 대웅전 우측 모퉁이에 마련된 네모난 연못 돌로 연못 주위를 두르고, 그 위에 기와를 얹어 조그만 담장처럼 꾸몄다. |
▲ 선방 가는 길목에 자리한 석불과 석조(石槽) |
돌로 석불을 안치할 장소를 만들고 그 밑에 대나무통을 길게 설치하여 금전산의 옥계수가 마음 놓고 석조로 흐르게끔 하였다. 금전산이란 이름은 부처의 5백 제자 중 하나인 금전비구(金錢比 丘)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그는 산에서 약초를 캐서 그것을 팔아 먹고 살았는데, 부 처가 온다는 말에 약포를 판돈으로 꽃을 사서 부처에게 공양을 올린 인연으로 5백 제자 중 가장 휼륭한 제자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
♠ 금둔사 선방(禪房)과 불조전 주변
▲ 선방(禪房) 가는 길 ~ 가을과 함께 길을 거니는 것 같다. |
대웅전보다 한 수 높은 곳에 자리한 선방은 승려들의 참선 공강으로 태고선원이라 불린다. 1985 년에 지어진 것으로 방 중앙에는 아미타3존불과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앞뜰에는 낙엽이 잔 잔히 덮여있다. |
▲ 불조마애여래좌상<佛祖磨崖如來坐像 = 불조전(佛祖殿)> |
선방을 지나면 3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 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 끝으머리에 바위를 가 득 메운 조그만 불상들의 보금자리가 나온다. 바로 불조마애여래좌상이다.
이 마애불은 불조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렇다고 건물은 아니다. 이곳은 과거의 칠불( 七佛)과 미래의 부처인 53불을 포함 60불의 불상을 모셨다. 바위의 남쪽면을 깎고 다듬어 서 새긴 마애불로 불상의 모습이 작고 고졸한 것이 귀엽다. 참고로 과거7불은 우주가 탄생 하여 없어질 때까지 부처가 하나씩 나타난다 고 하는데, 석가여래는 그 7불의 마지막이라 한다. 또한 미래에는 미륵불(彌勒佛)을 비롯 한 53분의 부처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의 마애불은 그들 부처를 모두 표현한 것 이다. |
▲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은 석조마애비로사나불(石造磨崖毘盧舍那佛)
▲ 오순도순 자리한 석조마애비로사나불과 산신각(山神閣) |
불조전을 둘러보고 다시 나와서 요사로 올라가면 조그만 차밭 너머로 바위에 새겨진 또다른 마 애불이 나온다. 바로 석조마애비로사나불이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생의 마음을 두근거리 게 하는 그는 바위의 남쪽 면을 깎고 다듬어서 돋음새김으로 새겨졌다. 머리 뒤로 3중으로 처리 된 동그란 두광(頭光)이, 몸 뒤로 신광(身光) 등 광배(光背)를 달아 부처의 광영을 나타낸다. 1983년 지허화상이 절을 짓기 위해 경작지가 되버린 이곳을 답사했는데, 금둔사의 옛 역사를 말 해주듯, 묵묵히 서 있는 이 바위에 끌려 절을 중창하면서 마애불을 새겼다고 한다. 마애불 옆으 로 산신(山神)을 모신 정면 1칸, 측면 1칸의 조촐한 산신각이 자리해 있다. |
♠ 금둔사 요사(寮舍)와 약사전(藥師殿)
▲ 금둔사 승려의 생활공간인 요사 |
산신각을 지나면 높다란 곳에서 경내를 굽어보는 요사가 나온다. 금둔사 승려의 생활공간으로 앞뜰에는 담장과 옛 흔적으로 보이는 돌기둥이 놓여 있다. |
▲ 요사 앞뜰에 멀뚱히 서 있는 돌기둥 옛 금둔사의 주춧돌을 모아서 쌓은 돌기둥 같다. 그 뒤로 보이는 담장, 금둔사의 담장은 한결같이 돌담 위에 기와를 쌓아서 얹힌 푸근한 모습이다. |
▲ 돌담 위에 얹혀진 다기(茶器)는 이곳이 다향(茶香)의 절임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인다. |
▲ 요사 담장 아래쪽 길 요사채를 받치는 성곽처럼 쌓여진 돌담의 아래길로 대나무의 잎사귀 소리가 지나는 이의 귀를 간지럽힌다.
▲ 약사전 요사에서 좌측(3층석탑, 석불비상 방면)으로 가면 조그만 당집 같은 약사전이 나온다. 이곳은 동방정토(東方淨土)의 주인인 약사여래의 거처로 약사여래불 대신 그가 그려진 그림이 자리를 지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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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둔사의 오랜 보물을 만나러 약사전을 지나 다시금 계곡을 건너면 금둔 사의 오랜 보물로 인도하는 돌계단이 나온 다. 계단 양쪽으로 기와를 머리에 얹힌 돌 담이 길게 이어져 있으며, 계단을 조심스 레 오르면 그 끝에 빛바랜 절의 보물이 그 대들을 반길 것이다. |
♠ 금둔사의 오랜 내력을 가늠케 해주는 오랜 보물들 금둔사지 3층석탑 (보물 945호) 금둔사지 석불비상 (보물 9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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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면 그 끝에 평탄한 곳이 나온다. 이곳은 금둔사에서 가장 뒤쪽이자 가장 높다란 곳 으로 금둔사의 오랜 보물 2점이 깃들여져 있으니 바로 3층석탑과 석불비상이다. 이들은 옛 금둔 사의 흔적으로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명칭은 각각 금둔사지 3층석탑과 금둔사지 석불비상이다. 벼랑 쪽에는 비석 모양의 돌덩어리에 새겨진 석불이 자리해 있고, 그 앞에는 미려(美麗)한 맵시 의 3층석탑이 서 있다. |
▲ 천년의 세월에도 정정함을 잃지 않은 금둔사 3층석탑 - 보물 945호 |
3층석탑은 9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2단의 기 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 인 신라 후기 탑이다. 위층 기단에는 8부중상( 八部衆像)이 새겨져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자물 쇠가 달린 문짝과 불상을 향해 다과를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 새져겨 있는데, 공양상은 매 우 특이한 예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 씩이고, 처마는 평평하며, 낙수면은 완만하게 경사를 지다가 양 모서리에서 살짝 치켜져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상륜부(相輪部)의 구성요소인 노반(露盤)과 찰주가 남아있다.
탑의 비례와 맵시는 아주 좋으며, 작품성이 뛰 어난 탑으로 도굴로 쓰러진 것을 1979년 복원하 여 지금에 이른다. 단짝인 석불비상과 더불어 옛 금둔사를 가늠케 해주는 소중한 보물이다.
오랜 세월에도 세월의 무정한 때가 거의 끼어있 지 않으며, 하얀 맵시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인 신라 탑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준 탑으로 신 라탑의 백미(白眉)인 불국사(佛國寺) 석가탑이 부럽지 않다. |
▲ 3층석탑의 기단부와 1층 탑신 기단부에는 8부중상이 돋음으로 새겨져 탑을 지키며, 1층 탑신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 의미가 궁금하다. 탑 안에 들어있는 사리함을 상징하는 것일까? 1층 탑신의 북쪽과 남쪽 면에는 공양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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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하게 비석 모양의 석물에 둥지를 금둔사 석불비상(石佛碑像) - 보물 946호 |
3층석탑을 바라보는 석불비상은 우리나라에서 그 예가 없는 비석(碑石) 모양의 석물에 등을 기 댄 불상으로 그 형태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석불 위쪽에는 머리에 쓰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커다란 보개(寶蓋)가 씌워져 있는데, 비석의 지붕돌처럼 생겼다. 보개가 워낙 큰 탓에 비와 눈으로부터 석불을 제대로 지켜주면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비석의 비신(碑身)처럼 생긴 길다란 네모난 돌에 석불입상이 자리해 있는데, 머리는 민머리로 보이며, 머리 꼭대기에 육계(무견정상)가 솟아있다. 얼굴은 볼이 좀 있고, 표정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의 몸은 단아해 보이며, 옷주름이 세심히 묘사되어 있다. 왼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자세히는 모르나 약사불(藥師佛)의 약합(藥盒)처럼 보여 혹 약사여래불인지도 모르겠다. 오른손 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제스처를 취했다. 석불의 뒷면에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훼손이 심해 서 해독은 어려운 상태이며, 뒷면의 위쪽에는 보살상을 아래쪽에는 부처의 법을 상징하는 코끼 리상이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불상 발 아래 자리한 대좌(臺座)에는 하늘을 향해 잎을 벌인 앙 련(仰蓮)이 아래쪽 대좌에는 아래로 향한 복련(伏蓮)이 생생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주변 꽃과 나 무들의 시샘을 받는다. 석불 앞에는 석불에게 공양을 올리는 네모난 배례석이 세월의 때를 가득 안은 채 놓여져 있으며, 그 위로 용도가 아리송한 팔각형 석재가 올려져 있다. 또한 그 우측에 는 용도가 아리송한 동물 모양의 초석이 자리한다.
이 불상은 석탑처럼 석불의 본체와 보개, 대좌가 따로 흩어져 있던 것을 1979년 복원했다. 3층 석탑과 더불어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옛 금둔사의 영화로움을 가늠케 해주는 소중한 보물이다. 비록 한때는 석불이 분리되어 흩어져 있긴 했으나, 1,200년의 무수한 나이가 쌓였음에도 3층석 탑처럼 건강상태가 양호하여 다행이다. 특히 그들을 관리하던 금둔사가 조선 중기 이후 없어지 면서, 신변에 많은 위협이 따랐음에도 온전한 모습을 잃지 않고 나에게 보여주는 것에 심히 고 마울 따름이다. |
▲ 신라 장인의 섬세한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석불비상 |
3층석탑과 석불비상을 둘러보고 그냥 내려가기가 몹내 아쉬워 다시 경내를 기웃거리며 금둔사의 아름다움을 정신없이 사진에 담았다. 비록 때를 맞추지 못해 홍매화와 납월매의 처절한 아름다 움과 차의 그윽한 향기와 맛은 온몸에 담진 못했지만, 이번만이 기회는 아니다. 내가 속세에서 숨을 쉬는 동안은 언제든 문을 두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오면 정말 나가기 싫을 정도 로 시리게 아름다운 금둔사 늦가을 답사는 다음을 애타게 기약하며 이렇게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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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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