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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그들은) 손에 한 가지 물건을 휴대하고 있었다. 길이는 두세 척(尺), 길쭉하고 속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밑동은 밀폐되었고 옆쪽에 불이 통하는 구멍이 있었다. 사용할 때에는 묘약(妙藥)을 넣고 조그맣고 둥근 납덩이를 채운다. 구멍에다 불을 붙여서 쏘면 벼락 치는 소리가 나서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으나 조그만 표적조차 영락없이 맞힌다. (중략). 도키타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여 만금(萬金)을 주고 두 자루를 샀다. 그는 화약 제조법을 가신(家臣)에게 배우도록 한 뒤 스스로 사격술을 익혀 백발백중의 기량에 도달했다. (중략). |
포르투갈 상인이 전해 준 화승총....
이 총으로 일본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통일의 기초를 마련했고,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이 총으로 우리나라를 침략,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본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당시 조선 최고의 무장武將인 신립 장군을 보냈고, 신립은 충주의 탄금대에 진을 쳤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뎃뽀(鐵炮:화승총)로 무장했고, 조선군은 무뎃뽀(無鐵炮)로 덤볐습니다. 물론,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어쨓든 이것이 포르투갈인이 전해준 화승총을 통한 포르투갈과 우리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 후 1593.12.27. 천주교도였던 왜장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요청으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우리 땅을 밟았고,
이것이 한국과 천주교와의 첫 접촉이기도 했습니다. (세스페데스: 스페인의 마드리아에서 태어난 포르투갈 국적의 신부)
또한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를 우리나라에 전래한 것도 임진왜란 때의 포르투갈인들이었습니다.
그 전의 우리 김치는 백김치나 동치미 등 절임 김치 수준이었다가
고추가루로 인하여 우리 김치가 더욱 풍성한 맛을 자랑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같습니다.
6.
1543년 최초 조우가 한참 지난 뒤, 포르투갈의 선박들이 일본에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일본 물건을 사서 유럽에 팔고, 유럽 물건을 사서 일본에 팔았으나 이익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일본에 팔만한 물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의 제조업은 전반적으로 아시아에 비해 기술 수준이 낮았고, 노동력도 풍부하지 않아 가격경쟁력조차 없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식민지에서 가져온 은銀으로 결제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이 은銀의 생산국이자 수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은銀을? <- 우리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은銀 제련술은 세계적이었습니다.
16세기 중엽 일본은 우리에게서 은銀 제련술을 배워갔는데, 지금 다시 봐도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실래요? ^^)
은銀광석을 캐면 온갖 불순물이 다 묻어 있습니다. 흙, 돌, 철. 등등등....
그 원석을 부숴서 납을 섞어 함께 태우면 납과 은銀이 함께 녹아 나옵니다. 일단 그걸 식혀서 굳히고....
이렇게 은과 납이 섞인 것을 재가 담긴 냄비에 담고 탄(炭)을 가득 채우고 풍구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납은 녹아 재에 스며들고 은만 재 위에 뜹니다.
간단하죠? 우리 조선의 선진기술.... 심심하면 한 번 해 보세요. ^^
당시 세계의 화폐였던 일본에 은銀이 오히려 풍부하니 포르투갈 상인들이 환장하겠죠?
영악한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으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 왜구들이 중국 해안을 하도 괴롭혀서 그 벌罰로 중국 황실은 아예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해버렸거든요.
위기는 기회!!! 바야흐로 당시 일본은 중국 물건이라면 뭐든지 사족을 못 쓰던 때였으니....
중국의 무역 파트너가 된 포르투갈 상인은 일본상인과 중국상인을 대신하여 거래를 시작하고
중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삼각 중계무역을 하게 된 겁니다. 장사꾼들.... 진짜 영리하죠?
이렇게 해서 포르투갈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상권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겁니다.
당시 막대한 이익을 올린 포르투갈 배의 선장들은 파이프를 물고 흑인 노예를 데리고 다니면서 거들먹거렸고
헤프기로 유명한 일본 하류 논다니들의 몸값까지 올려 놓았으니.... ^^;;
7.
포르투갈은 해양 강국이었습니다.
한 때 전 세계 바다를 헤집고 다녔고 세계 최대의 영토를 보유했습니다.
그런 나라의 포르투갈 해군이 운영하는 해양 박물관에는 우리의 거북선도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1592년 세계 최고의 전투함이며,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무찌른 배'라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해양 강국 대한민국....
우리도 과감하게 바다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포르투갈은 2면이 바다지만, 우리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이니까요.
8.
해양강국. 광할한 식민지에서 약탈한 엄청난 금은보화를 포르투갈로 실어 날랐는데, 왜 포르투갈이 가난해졌을까요?
금金이 곧 화폐였던 시절, 금이 넘쳐나다 보니 오히려 쏟아져 들어오는 금 때문에 나라가 몰락한 겁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 낸 것과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결과야 뻔하죠. 돈 가치가 떨어지거나, 물가가 치솟거나.... ^^ (결국 같은 말이지만....)
또 금이 넘쳐나다보니 왕실과 귀족은 흥청망청.... 필요한 물건은 모조리 외국에서 수입하게 되니, 국내 산업이 다 죽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많던 금은보화조차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고 남는 것은 개털....
이런 현상을 보고 아담 스미스는 '지나친 중상주의 정책은 오히려 해롭다.'면서
'국가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노동생산성이고 개인의 건전한 이익추구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 때, 포르투갈이 그 많은 금은보화를 국내산업 부흥을 위해서 썼더라면....
지금의 포르투갈은 완전히 달려져 있을 겁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물건을 내다 판 대신에, 포르투갈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금은보화를 모조리 내다 판 셈입니다.
제조업이 강한 영국이야 제조업이 살아있는 한 얼마든지 내다 팔 물건이 있었지만, 약탈해 온 금은보화는 금새 동이 나버리고 결국 포르투갈은 몰락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이 몰락한 또 다른 원인을 보면, 공산주의자가 그렇게 혐오하는 부르주아의 실종에 있습니다.
유럽 각국이 부르주아의 발흥으로 시민계급(중산층)이 성장했던데 비해,
포르투갈은 왕족, 귀족을 제외하면 모조리 평민.... 사회의 0.1%가 국가의 부를 대부분 차지해 버린겁니다.
지금 포르투갈의 경제 수준은 유럽에서는 최하위입니다.
게다가 포르투갈발發 재정위기는 유럽을 경제위기로 몰아 넣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웃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 전염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9.
옛날 일은 옛날 일이라 치고, 지금의 포르투갈 경제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갑작스럽게 재정위기의 ‘폭탄’을 맞은 그리스와 아일랜드와 달리 포르투갈의 위기는 서서히, 그리고 오랫동안 심화되어 온 것입니다.
과거 포르투갈의 주력산업이었던 섬유공업은 이미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갔고, 코르크 수확 같은 전통적 산업으로는 국가경제를 부양할 수 없습니다.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포르투갈 위기의 가장 큰 이유는 낙후된 교육 시스템과 낮은 교육 수준 때문입니다.
가장 열심히 일할 나이인 25~64세 인구 중 28%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 비율은 독일 85%, 체코 91%, 미국 8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입니다.
우리나라와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아일랜드 역시 한 세대 전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교육분야에 집중 투자했고 짧은 시간 내에 유럽에서 가장 숙련된 기술인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볼 때, 그런 아일랜드가 경제기적을 이룬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금융권 부실화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유럽의 부국 중 하나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아시나요?
그 자신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자 출신이지만....
대통령이 된 그는 나라 안밖으로 비난을 받으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계층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합니다.
그 결과 극빈층이 줄어들고 중산층이 늘어납니다.
무려 1260만명에게 지급한 생활보조금이 소비시장에 유입되면서 오히려 생산을 자극합니다.
그는 그의 임기 8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던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룰라 대통령의 저소득층 생계지원 프로그램에는 딱 한 가지 엄격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한 푼도 주지 않겠다."
물론 포르투갈에 초등학교도 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정신만큼은 포르투갈이 옛날 자신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시급히 배워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을 너무 우습게 보지는 마십시오. 유럽의 최하위일 뿐, 1인당 GDP는 우리와 비슷하니까요.)
10.
포르투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죠? 축구!
포르투갈 축구의 '전설'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의 축구영웅 에우제비우, 대표팀의 호나우두....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유럽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막강한 전력을 자랑합니다.
포르투갈 축구는 유럽의 브라질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고, '슈페르리가'라는 리그가 있습니다.
여기에 정병민, 정민호, 김동현 등의 한국 선수가 뛰었거나 뛰고 있다고 합니다.
더 있을 것 같은데...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이 찾아보세요. ^^
11.
포르투갈은 남북한 동시 수교국입니다.
아래는 네이버에서 찾은 자료입니다. 참고하십시오.
한국과는 1961년 4월 국교를 맺어 1973년 6월 포르투갈 한국대사관이 개설되고 1988년 8월 주한 포르투갈대사관을 개설하였다. 북한과는 1975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1978년 6월 포르투갈 북한대사관을 개설하였다가 1995년 3월 폐쇄하고 1999년 현재 스웨덴 북한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삼성전자(주), 삼성전기(주), 한라공조(주) 등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자동차, 전자·전기 제품 등의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8년 현재 대한수입 2억 9250만 달러, 대한수출 1200만 달러로서 주요 수출품은 코르크, 자동차 부품, 대리석, 수입품은 승용차, 디지털식 집적회로, PCB, 상용차 등이다. |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서 포르투갈을 방문한 인사는 1987년 노신영 총리, 1989년 김재순 국회의장, 1999년 김종필 총리, 2002년 전윤철 부총리, 2006년 한명숙 총리 등이며, 이번에 박근혜 대표님이 대통령의 특사로 포르투갈을 방문, 아니발 카바코 실바 포르투갈 대통령을 만나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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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제안] 박근혜의 꿈 - <특사 순방국>.... 시리즈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11.04.21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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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광용 회장님의 특강 내용이 넘 훌륭하여 울님들 박사모 서산지회 회원님 모두 숙독하시라구 내내 푸르른 5월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5월의 첫날을 기하여 강의 내용을 올립니다.
사랑하는 회원님 모두 5월 한
서산지회장
넵! 감사합니다 충성!
전차병882기님 감사합니다. .
벌써 공부하시는중이구만유
서산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