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은 달리기다
디모데후서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찬송가 360장(행군 나팔 소리에)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자기의 신앙과 사명 완수의 삶을 달리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 지역 선교를 다니면서 헬라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고대 올림픽 경기장에도 자주 가보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가 이차 전도 여행 때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고린도 시에서는 이스미언 경기라는 고대 올림픽 제전이 이년마다 열렸습니다. 그 때마다 온 고린도 시 전체가 들썩거리곤 했습니다. 고린도 시보다 남쪽에 있는 펠로폰네시아 반도의 올림푸스 시에서는 헬라인들이 사 년마다 그 경기장에 모여 각종 경기에서 자웅을 겨루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가는 곳마다 그러한 경기들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올림픽 종목으로는 투포환, 창던지기, 권투, 전차 경주, 멀리 뛰기, 마라톤 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서신서에는 신앙 생활과 사명을 수행하는 것을 올림픽 경주 중 하나인 달리기로 표현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의 달리기 운동의 특성을 통하여 우리 신앙의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곤 합니다.
첫째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부르심의 상을 주시는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2 이하에 이르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빌립보서 3:12~14)
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음질한다고 말합니다. 과거의 실패에 너무 집착하여 낙망하고 좌절하여 그 침체 속에 힘을 잃지 말고, 또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자만하고 너무 안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도 성동에도 너무 잡히지 말고 아직도 가야 할 달려갈 사명의 길을 달음질하기 위하여 앞만 보고 계속 달려가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둘째로, 달리기에 방해 되는 것들을 내려놓고 달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2 말씀에 이르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그의 영향을 받은 속사도라고 보는 설도 있으나 그는 여기서 신앙을 달리기로 비유하곤 하는 바울의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달리기 선수가 잘 달리기 위하여 그가 입은 옷을 가볍게 하고 달음질을 방해하는 걸리적거리는 장신구들을 벗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역시 신앙 생활과 사명 성취를 위한 사역에서 방해하는 사소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욕심, 헛된 세상의 야망, 육신적인 정욕 등을 끊어버리고 벗어버려야 우리의 신앙의 달음질이 속도가 날 수 있고 가다가 넘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에 장애가 되는 것들, 사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잘라버리는 결단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과감히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후반절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라고 한 말씀대로 신앙의 경주에서 중요한 덕목이 인내입니다. 달리기에는 단거리 경주가 있고 장거리 경주가 있고 오래 달리는 마라톤 경기도 있습니다. 장거리 경주를 할 때에는 온 몸이 지쳐서 죽을 것 같은 순간이 한번씩 온다고 합니다. 마라톤 경주자들에게 경기 도중에 찾아오는 이 순간을 ‘사점’이라고 말합니다. 42.195 킬로미터니까 백 리를 계속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마라톤인데 몇 번의 사점이 경주자에게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사점을 이겨내도록 훈련하지 않으면 마라톤 완주는 실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인내해야 합니다. 너무 과욕을 내서도 안되고 잘 참고 견디면서 자기를 잘 다스리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달리기 코스처럼 우리 신앙에도 가파른 고비가 있고 내리막이 있습니다. 바람이 맞바람이 칠 때도 있고 뒤에서 불어줄 때도 있고, 뜨거운 습도가 가득할 때도 있고 비바람이 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도 이 모든 시련들을 잘 견뎌내면서 끝까지 달음질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넷째로, 자기를 치는 자기 절제가 꼭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9:24~27 말씀에 이르기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부름받은 사명인 복음전도자로서 사역을 감당할 때에 최선을 다하여 장차 주님 앞에서 일등 상을 받으려고 한다면서, 그러기 위하여 운동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여 우상자가 되기 위하여 행하는 덕목인 절제를 힘쓴다고 말합니다. 달음질 선수가 하루를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면서 몸에 군살을 빼기 위하여 먹는 것 조심하는 것처럼, 허투루 시간 보내지 않고 잠 제대로 자기 위하여 자기를 절제하듯이, 또 권투선수가 상대방과 잘 싸우기 위하여 정확히 펀치를 상대방의 급소에 치듯이, 자기는 자기 자신의 몸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려고 힘을 쓴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함은 신앙 생활과 복음 전도자의 경주에서 일등 상을 하고 또 혹시라도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여 실격패를 하여 상을 잃어버릴까봐 염려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잘 신앙 생활하다가도 도중에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고 쓰러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자기를 잘 다스려서 승리하고 또 얻은 상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꾸준히 자기를 점검하고 자기 자신을 치는 절제와 자기 부인의 씨름을 늘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았듯이, 사도 바울은 마침내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기대를 가지고 그의 마지막 편지를 승리와 평안 중에 후계자 디모데에게 써 보냈습니다. 우리도 사도의 이 복된 본을 이어받아서 앞만 보고 달리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경주하며, 자기를 늘 쳐서 복종함으로써 신앙의 달음질을 끝까지 잘 달립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과 사명의 경주장을 끝까지 완주하여 시상대에서 우리 주님으로부터 복된 면류관을 다 받기를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 받들어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