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제석과 모든 천인에게 법을 설한 야간
1 부처님은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법문을 듣는 공덕은, 비록 현신에서 도를 얻지 못하고 오도에서 몸을 받더라도 그 이익되는 것은 많다. 내가 전날에 반야 지혜를 이름하여 감로라고도 하고, 좋은 약 ㆍ다리ㆍ큰 배라고도 한다고 설한 것을 듣지 못했느냐?“
그때 바사닉 왕은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반야 지혜에 네 가지 이름이 있다면, 원컨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 뜻을 해설해 주소서.“
부처님은 바사닉왕에게 대답하셨다.
”자세히 들으시오. 먼 과거 무수급에 비마국 도타 산 중에 한 야간이 있었는데, 사자가 잡아 먹으려고 쫓아오므로 야간은 겁이 나서 달아나다가 마른 깊은 우물에 빠졌소. 나오지 못하고 사흘을 생각하니, 꼭 죽게 되었소. 그래서 게송을 지어서 부르게 되었소.
슬프다 오늘날에 무슨 재화로 기어이 우물에 빠져서 죽게 되는가.
모두가 무상한 줄 이제 알았다. 차라리 사자에게 밥이 될 것을.
애꿎은 몸둥이를 어찌 할거나 아끼다 속절없이 예서 죽누나.
공 없이 죽는 것도 한이 많은데 물조차 더럽히니 죄가 아닌가?
불타에 귀의하고 참회하오니 내 마음 깨끗하기 그지없어라.
전세에 삼업으로 지은 죄업을 원컨대 이 몸으로 갚아지이다.
죄 없는 신ㆍ어ㆍ의업 청정하고 마음이 움쩍 않아 진실합니다.
이다음 세세생생 스승 만나서 법다이 수행하여 성불하리라.
2. 이때에 제석천왕이 부처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오욕에만 빠져 있어서 은애를 벗어날 줄 몰랐더니, 오늘 부처님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리므로 예전 부처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엄숙하여진다. 어떤 선지식이 있는 모양이니 내려가서 친견하리라’ 하고, 곧 팔만 대중을 거느리고 우물가로 내려와서 보니, 야간 한 마리가 두 손으로 흙을 후비며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석은 다시 생각했다. ‘성인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몸을 변화하는 데는 일정한 방술이 없는 법이다. 내 눈에는 비록 야간으로 보이지마는 반드시 어떤 보살의 화현이요 범상한 야간이 아닐 것이다’ 하고 제석은 이렇게 청했다.
”성인의 말씀을 들은 지 오랩니다. 지금까지 나는 스승이 없었는데, 아까 인자께서 하시던 말씀은 범상한 말씀이 아니오니, 원컨대 이 모든 하늘을 위하여 법을 설해 주소서.“
야간은 쳐다보며
”너는 제석이 되었으나 교훈을 받지 못하여서 아무것도 모르고, 거만과 우치만 있구나. 법사는 밑에 있고 저는 위에 있어서 아무 공경하는 예절도 없이 법을 청한단 말이냐? 법수는 청정하여 능히 사람을 건지는 법인데, 어째서 교만을 품은 채 법을 들으려 하는가?“
제석, ”잘못되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하고 곧 천의를 드리우니 야간은 천의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우물 밖으로 올려 모시고 천공까지 베풀어 먹였다.
제석, ”저희들은 인자의 말씀과 같이, 인도하는 스승이 없고 오욕에만 얽히어 미혹하기 그지없사오니, 원켄대 고와 락과 상과 무상을 말씀하여 주소서.“
야간, ”나는 그 전에 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법을 들으려면 반드시 먼저 청정 장엄한 높은 자리를 차린 뒤에 법사를 청허여 법을 설하였다. 어째서냐 하면, 법은 극히 귀중하므로, 공경하면 복을 받고 경멸하면 복을 잃는 까닭이다.“
제석은 ‘그렇습니다.‘ 하고, 곧 여러 하늘의 천의를 벗어 한데 쌓으니 잠깐 사이에 청정하기 제일인 높은 자리가 되었다.
3 야간, “나는 그 자리에 올라가서 말하겠다. 내가 지금 법을 설하는 것은 두 가지 큰 인연이 있다. 첫째는 천인을 깨우쳐 교화하게 되니 복이 무량하고, 둘째는 입은 은혜를 갚게 되니 어찌 법을 설하지 않을 수 있느냐?”
제석, “우물에 빠졌던 액난을 면하여 목숨을 온전하게 하였으니, 그 공덕이 더욱 클 터인데, 존자는 어째서 설법.보은만 말씀하고 그것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천하에 있는 온갖 것이 모두 살기를 즐기고 편하기를 구하며, 죽고자 하는 이는 없으니, 그것을 보더라도 목숨을 온전하게 한 공덕이 더 크지 않습니까?”
야간, “죽고 사는 것은 각각 사람을 따라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살기를 탐하고 어떤 사람은 죽기를 즐긴다. 어떤 사람이 살기를 탐하느냐 하면, 그 사람은 세상에 나서 우치하고 어두워서 죽은 후에 다시 후생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므로, 부처님을 어기고 법을 멀리하며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여 살생ㆍ 도둑질ㆍ 사음ㆍ 속이는 등, 악한 짓만 한다. 이런 사람은 살기만 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또 어떤 사람이 죽기를 즐기는가 하면, 그 사람은 밝은 스승을 만나서 삼보를 받들어 섬기고 부모께 효도하며, 스승을 공경하며, 처자에 화순하고 남에게 겸손하다. 이런 사람들은 살기를 싫어하고 죽기를 즐긴다. 어째서냐 하면, 착한 사람은 죽으면 복이 천상에 나서 오욕락을 받게 되고, 악한 사람은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서 무량한 고를 받게 된다. 착한 사람이 죽기를 즐기는 것은 마치 죄수가 옥에서 나가는 것 같고, 악한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마치 죄수가 옥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것이다.”
4 제석, “존자의 말씀과 같다면 목숨을 보존한 것은 아무 공덕이 없지마는, 그 나머지 설법과 공양, 이 두 가지에는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야간,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요, 보배를 보시하는 것은 평생의 복을 돕는 것이라. 생사만 보태주고 인연만 맺어주는 것이지마는, 법을 설하여 보시하는 것은 이름이 법보시라,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도를 나가게 한다. 세간도를 나가는 것은 세 가지가 있으니 아라한ㆍ벽지불ㆍ불도인데, 이 삼승 사람은 모두 법을 듣고 말씀대로 수행하며, 또 모든 중생들이 삼악도를 면하고 인천의 복락을 받는 것도 모두 법을 듣는 덕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설하시되 ’ 법보시 공덕이 제일 한량없다‘고 하신 것이다.”
5 제석, “존자의 지금 이 몸은 업보신 입니까, 응화신 입니까?”
야간, “죄로 받은 업보신이요, 응화신은 아니다.”
제석, “우리 생각에 보살.성인은 응화신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말씀이 업보신이라 하시니 무슨 연고입니까? 알 수 없사오니 그 인연을 설해 주소서.”
야간, “옛날 바라나파두마 성의 어떤 가난한 이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아일다요 종족은 양반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다. 나이 십이 세에 밝은 스승을 따라 깊은 산중으로 가서 부지런히 배워 오십 년 동안에 구십육 종의 모든 경서를 통달하여 소문이 사방에 떨쳤다. 그때 아일다는 스승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팔려고 생각하고 스승에게 말했더니, 스승은 ‘너는 지금 지혜.변재를 성취했으니 천하 인민을 교화하면 그 공덕이 넉넉히 나의 은혜를 갚지 않겠느냐.’ 하므로, 아일다는 그대로 걸식 생활을 계속하였다. 마침 그 나라의 왕이 죽었으므로 군신들이 회의하고 국내에 있는 학자들을 모아서 변론회를 열고, 가장 뛰어난 이를 왕으로 받들자 하여, 아일다도 그 모임에 참예하였다. 오백여 명 학자가 칠일 동 안 토론하는데, 아일다를 이기는 이가 없으므로 왕이 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일다는 생각했다. ‘ 만일 왕이 되었다가 잘못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서 무량한 고를 받을 것이요, 그렇다고 왕이 되지 않는다면 스승의 은혜를 갚을 도리가 없다.’ 하여 왕의 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 신하를 보내어 스승을 맞아다가 궁을 따로 짓고 받들며, 날마다 국민.신하.부인과 더불어 십선법을 받으며 백 년을 지냈다.
6. 그때, 두 작은 나라가 있어서 항상 서로 싸웠다. 하나는 이름이 안타라 국이요, 다른 하나는 이름이 마라바야 국인데, 안타라 왕이 군신에게 묻기를 ‘어찌하면 저 나라를 이길까?’ 군신들은 아뢰기를 ’ 아일다 왕은 본래 가난한 사람으로 왕이 되었으므로 아직 가난한 습기가 있으니, 재물과 미인을 보내어, 만일 그것을 받거든 백만 군사를 청병하고 우리 군사 백만과 합력하면 저 나라를 이기리다.‘ 하므로, 그 계교를 썼더니, 아일다 왕은 과연 응하여 백일 이내에 그 나라를 멸하였다. 아일다 왕은 안타라 왕이 보내온 미인 백 명에게 미혹하여 본뜻을 잊고 국정을 다스리지 않다가, 드디어 패망하고,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서 고초를 받았다. 그러나 본래 배운 학문과 지혜의 힘으로 자기의 숙명을 알고 스스로 후회하여 악을 고치고 선을 닦았으므로 이내 지옥을 면하고 아귀에 갔다. 거기서 또 십선을 닦아 아귀보를 벗고 축생 세계에 와서 야간의 몸을 받았으나, 또한 지혜의 힘으로 숙명을 알아서, 지나간 일을 뉘우치고 오는 일을 닦아서 십선도를 행하며, 다시 다른 중생들을 교화하여 십선업을 닦게 하였더니, 근일에 사자를 만나서 겁을 먹고 달아나다가 우물에 빠졌다. 그래서 생각에 꼭 죽는 줄 알고, 인제는 천상에 가서 고를 여의고 낙을 받기를 바랐다. 그런데 너희들이 나를 구제하므로 본원력을 어기고 다시 고생하게 되었으니, 언제나 다시 면할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이 나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은 아무 공덕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