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커피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중국에 커피가 전래된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프랑스의 카토릭 선교사가 보이차(푸얼)로 유명한 윈난성 따리(대리)지역에 보급하면서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되었고 미얀마와 접경지역인 바오산과 푸얼지역에도 대규모 커피재배지가 형성돼 있다.
커피에 문외한 이었던 내가 커피에 본격적인 입문을 하게된 동기는 바로 윈난 바오산지역에서 칭다오의 찬양사역자 양성소에서 공부하던 학생이 자신의 고향에서 수확한 커피 생두판매를 부탁받으면서 였다. 본래 보이차를 재배하였지만 계속되는 가뭄으로 보이차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커피나무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익이 문제였다. 산지를 돌며 커피를 수집하는 상인들에게 넘기는 가격은 킬로당 1천원 미만이었는데, 이 가격으로는 인건비도 안나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교회와 연결해 커피를 직거래 하기를 원했다. 만일 한국과 직거래가 된다면 최하 8천원 이상은 받을 수 있으니 재배농가로서는 만족할만한 가격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커피는 달달한 믹스커피이다. 베트남에서 재배된 로브스타라는 다수확 저가 커피의 상당수가 한국으로 수출돼 믹스커피로 가공되고 있다. 중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분들의 가장 애로사항은 품질유지라고 한다. 샘플은 분명히 만족할만한 상품이었는데, 막상 한국에 도착한 상품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하였다. 일부 선교사들은 현지에 상주하며 커피재배 신자들을 위해 커피재배에 대한 교육과 수확한 커피의 품질관리를 위해 애쓰는 분들도 있다. 선교사들이 보급한 커피이다보니 자연히 재배농가의 대다수는 크리스챤들이다.
믹스커피는 단맛에 음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애호가들은 믹스커피를 즐기지 않는다. 고도로 훈련된 바리스타들이 고급원료를 이용해 추출한 커피를 음용한다. 커피라는게 쓴맛인데 고급커피라고 별거겠냐고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확한 커피의 건조방식과 선별을 거쳐 엄선한 원료는 가격도 비싸지만 맛 또한 탁월하다. 이렇게 선별된 생두를 어떻게 볶음(로스팅)과정을 거치느냐도 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다보니 커피를 볶아주는 기구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쓸만한 가정용도 수백만원을 홋가한다. 여기에 더해 로스팅된 원두를 어떻게 가루로 분쇄하느냐는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분은 가정용 믹서기에 드르륵 갈아버린다. 하지만 믹서기는 입자의 크기가 고르지 못하다. 어떤 것은 가루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어떤 것은 쌀알만 하다. 당연히 추출된 커피의 맛은 균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백만원싹 하는 분쇄기를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단계를 못하는 분들은 1~2만원 하는 핸드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다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원액을 추출하느냐의 과정이 남아있다. 일찍이 커피문화가 발달한 이탈리아는 커피머신이 가장 발달돼 있다. 유명한 커피추출기는 대다수가 이탈리아 제품이다. 하지만 커피의 종주국인 에티오피아 현지인들은 후라이팬이나 냄비에 새까맣게 태운 커피를 절구에 찧어 천에 담아 우려낸다. 경쟁력있는 커피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생활이 궁핍한 그들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힌 고집장이들이 있다. 이따금 커피에 대한 다큐를 보노라면 사찰의 승려들이 커피를 애용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며 놀라게 된다. 카페인의 도움으로 졸음을 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가마솥에 로스팅한 커피원두를 맷돌로 분쇄를 한다. 전통적인 방식이니 매우 낭만적이다. 하지만 믹서기에 분쇄한 원두처럼 균일한 상태를 만들지 못한다. 분쇄된 원두가 가루로 만들어지면 커피의 쓴맛이 강해지고 커피 본연의 맛을 구현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에 자부심을 갖는다.
만일 설교자가 성경본문을 읽고 국어선생이 교과서 뚯풀이 하듯이 설교를 한다면 교회는 굳이 전임 사역자를 둘 필요가 없다. 적어도 고등학교 과정만 이수해도 국어문장 이해는 충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교육을 받고 전임사역을 하는 설교자가 설교의 본래 목적을 깨닫지 못한다면 마치 사찰의 승려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라면 적어도 다른 카페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신만의 커피를 추출할 때 경쟁력이 만들어 진다.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는 묵상을 통해 자신만의 통찰력을 터득해야 한다. 신학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전혀 본래의 의미와 다른 엉뚱한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예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주일이다. 설교자는 목회경력과 상관없이 설교에 긴장을 하게 된다. 요즘 종편에서 유행하는 트롯 경연처럼!. 물론 설교를 잘하는 목사라야지만 교회가 부흥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설교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듯이 진리의 외침에는 군중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