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은 공동체의 신앙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들은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의 공동체성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 2독서 복음 말씀들 모두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와 연대성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문자
적으로 이해하면 자칫 공동체 안에서 잘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적과 충고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만, 오늘 성경 말씀의 밑바닥 근본을 이루는 가르침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연대입니다. 공동체의 하느님, 그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가 혼자가 아닌 더불어 함께 당신께로 오기를 원하십니다.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남과 더불어 함께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을 망각한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성경 말씀은 거
듭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웃의 잘못
에 대한 지적과 충고가 아니라 이웃엥 대한 따뜻한 관심입니다. 남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마음을 지닌 신앙인은 남의 잘
못을 소리 내어 말하지도 않을 것이며, 남보다 자신이 더 옳다고 우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오 바오로는 이것을 참 아름답고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13,10)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당신이 늘 함께하시겠다."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 사람이 흐르는 자리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사랑이시고, 예수
께서는 그 사랑을 세상 안에서 사람들에게 드러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참 신앙인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말씀 KEYWORD
타이르다 / 엘렝코(?)
'타이르다'로 번역된 이 말은 원래 "부끄럽게 하다. 논박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상대의 논박이나 문답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자각하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이 동사가 지닌 의미입니다. 타이르는 일이 꾸짖는 일이 되면, 상
대가 인정하지 않아도 그 일은 이루어진 것이 됩니다. 그러나 '엘렝코'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자기 잘못을 제대로
볼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동사는 형제를 향한 배려와 관심의 또 다른 말마디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타이르는 일은 판결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눈을 열어주러 가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오늘 복음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떠나는 이야기 바로 다음에 놓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야기의 목적은 제거나 대립이 아니라 되찾음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건네는 말이 무엇을 위한 말인지, 오늘 복음은
묻습니다. 이기기 위한 말인지, 얻기 위한 말인지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평리성당 주임 / 박광훈 안드레아 신부
2026년 9월 6일(주일) 본당 주보에서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