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통 수좌
율원 지대방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선방에서 겨울 안거를 지내는 스님이 들려 주었 는데
지대방에 모인 대중 모두가 차 마시는 것도 잊고 이야기에 빨려 들었다.
지대방에 둘러앉아 가끔 듣는 수행담은 속인들의 군대시절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있다.
이야기 하나를 만드는라고 군데군데 생각을 끼워 넣었다
다들 그를 절구통 수좌라고 부르는 것은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서이다.
스님이 선방에서 목숨을 내놓고 한참 정진할 때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번 가부좌를 한 채 입선에 들면
방선 죽비가 울릴 때까지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이름이 붙을 만도 했다.
태산처럼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 초참 스님네가 절로 힘을 얻을 만큼 정진력이 대단했다.
그러던 절구통 수좌에게 조그만 토굴이 하나 생겼다.
신도라고는 몇 되지 않는 암자의 주인이 된 셈이었다.
가끔 기도하러 오는 보살들이 있어도 스님은 몇 마디 하지 않았다.
''잘 오셨습니다."
''공양 드시고 가시지요."
건네는 말이래야 기껏 이쯤이었다.
친절하고 자상한 모습보다는 묵직한 수행자의 모습이다
절구통 수좌가 다음날 있을 법회에 쓸 찬거리를 사서 암자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동네 어귀에서 조그만 사건이 벌어졌다
오토바이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어서 스님이 탄 차가 지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옆 솔밭에서 오토바이 주인인 듯한 청년 셋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치워 달라는 스님의 말에 그들은 기분 나쁜 웃음을 보였다.
''어디 중놈 신통력으로 치워 보시지."
정구통 수주는 부아가 치밀었다. 과연 신통력을 보여 줄 참이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보란 듯이 오토바이를 끌어다가 논바닥에 처박았다
그것도 두 대를 한꺼번에 그 뒤의 일은 뻔한 일.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는 절구통 수좌였다.
청년 셋을 몇 대 쥐어박고는 토굴로 돌아왔다
사흘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장작을 패고 있는데
스님의 토굴에 때아닌 오토바이 굉음이 들려 왔다. 바로 며칠 전에 때려 준 청년들이었다.
덩지가 좋은 친구들도 함께 데리고 온 것으로 보아서 그냥 갈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의 입에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이 마구 튀어나왔다.
일촉 즉발의 순간. 항우 장사라도 완력으로는 도저히 당해 내기 힘든 상황에서 절구통 수좌는 오히려 침착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방으로 들어간 스님은 먼저 좌구를 바르게 하고 장삼 위에 가사를 둘렀다.
마치 속탈한 노승처럼 지긋이 눈을 감고 앉았다.
밖에서는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참다 못해 그들이 방에까지 들어 왔을 때. 절구통 수좌는 담담하게 그러나 힘있게 말했다
"나를 치시오. 며칠 전의 내 잘못은 인정하오."
청년들은 그 순감 멈칫했다.
당당하게 앉아 있는 절구통 수좌의 흔들림 없는 모습은
그들의 기를 꺾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를 빨리 죽이시오''
머뭇 거리는 그들을 또 재촉 했다
조금뒤에 방안의 싸늘한 침묵을 깬 것은 바로 그 청년들의 목소리였다.
" 스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했 습니다."
그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 먼저 무릎을 꿇었다
결국 그들은 몽둥이를 들지 못하고 산을 내려갔다.
그런 인연으로 오히려 절구통 수좌와 친하게 된 그들은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하였다.
"저는 그 때 조용히 앉아 계시는 스님의 모습에서 어떤 말할 수 없는 힘을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가 본 뒷절의 부처님 생각이 불현듯 나더군요. 도저히 스님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절구통 수좌가 평소에 다져 온 수행력이 그들을 감화시킨 것이다
과연 그 때 무슨 말이 통할 수 있었 을까?
살아 있는 법문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수행자의 당당한 호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저절로 몸에 밴 힘에서 나오는 게다.
물리적인 힘은 법력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힘은 깊은 이론 공부나 지식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본분에 철저할 때 나타나는 자기의 울림인 게다
''옛 스님들의 행장에서 가끔 보곤 했는데 수행을 쌓으면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하군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비굴해졌을 는지도 모른다
절구통 수좌의 이야기를 끝낸 선방 스님은 이런 말을 하며 마지막 찻잔을 비웠다.
"수행자의 진정한 모습을 그 스님에게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그 스님이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 었어요.
우리가 말하는 '중물'이 물씬 풍길 때 비로소 수행자는 제 값을 한다는 사실을.
무던하게 앉아 있던 그 스님에게서 확연히 깨달았지요''
-현진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