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총목차 중용장구(中庸章句)-중은 치우치지 않음이고, 용은 평상이다.
中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이요 庸은 平常也라
중(中)은 편벽 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과(過)와 불급(不及)이 없는 것의 이름이요, 용(庸)은 평상(平常)함이다.
子程子曰 不偏之謂中이요 不易之謂庸이니 中者는 天下之正道요 庸者는 天下之定理라
此篇은 乃孔門傳授心法이니 子思恐其久而差也라 故로 筆之於書하여 以授孟子하시니
其書始言一理하고 中散爲萬事하고 末復合爲一理하여 放之則彌六合하고
卷之則退藏於密 하여 其味無窮하니 皆實學也라
善讀者玩索而有得焉이면 則終身用之라도 有不能盡者矣리라
자정자(子程子)가 말씀하였다. “편벽되지 않음을 중(中)이라 이르고, 변치 않음을 용(庸)이라 이르니, 중(中)은 천하의 정도(正道)요, 용(庸)은 천하의 정리(定理)이다.
이 책은 바로 공문(孔門)에서 전수(傳授)해 온 심법(心法)이니, 자사(子思)께서 오래됨에 차이가 있을까 두려워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맹자(孟子)에게 주신 것이다.
이 책이 처음에는 한 이치를 말하였고, 가운데에는 흩어져 만사(萬事)가 되었고, 끝에는 다시 합하여 한 이치가 되었으니, 이것을 풀어놓으면 육합(六合)[우주(宇宙)]에 가득하고,
거두어들이면 물러가 은밀한 데 감추어져서 그 맛이 무궁하니, 모두 진실한 학문(學問)이다.
잘 읽는 자가 완색(玩索)하여 얻음이 있으면 종신(終身)토록 쓰더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중용은 본래 예기의 한 챕터에 불과했다. 실제로 예기 원본을 보면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중용 전편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예기 전체 49편 중 제31편이 바로 중용이다. 예기의 한편에 불과했던 중용이 유학의 핵심 과목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주자의 덕이다. 송나라 주자가 예기에서 중용을 꺼내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사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로서 중용은 사서삼경의 한 책이 된 것이다. 대학 역시 예기 제43편의 편명이다. 예기에서 사서의 절반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논어나 맹자와 비교할 때 매우 양이 적다. 중용 원문은 폰트10으로 인쇄해보면 A4용지 2장 반 안에 다 들어온다. 대학은 한 장 반이다. A4 4장 분량만 읽으면 사서의 절반을 공부하는 셈이다.(이 블로그 좌측 메뉴 중에 예기를 실제로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중용의 저자는 공자 손자 자사(子思)이다. 아버지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던 공자 아들 공리(孔鯉, 즉 공잉어)의 외아들로 이름은 급(伋)이다. 공자보다 먼저 공리가 죽었는데 그때 자사는 세 살이었다. 어머니를 공자가 개가시켰기 때문에 자사는 할아버지 공자 아래서 자랐다.
<중용의 저자 공자 손자 자사>
그는 공자사후 공자제자 증자에게서 배웠다. 아버지 공리가 별 학문적 성과 없이 죽었지만 자사는 학문적으로 대성해 할아버지의 학맥을 그대로 잇게 된다. 맹자가 자사의 제자였으니 공자의 정통 학통은 자사가 없었더라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사는 유교의 4대 성인의 한사람으로 맹자와 동급으로 문묘에 배향되어 있다.
중용은 자유분방했던 공선생님의 언행록인 논어에 비하면 약간 딱딱하다. 철학적이다. 그러나 양이 논어의 4분의 1에 불과하니 참고 읽다보면 금방 끝을 볼 것이다. 중용(中庸)의 용(庸)은 ‘쓸 용’이다. 설문해자에서는 庸用也(庸은 ‘사용한다’ 이다)라고 되어 있다. 庸은 更(庚)과 用의 합자이다. 정밀한 뜻은 ‘다시 사용하다’이다. 중(中)은 가운데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center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뜻이 번지는데 between, medium의 뜻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right, heart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중용의 중(中)은 medium의 뜻이기 보다는 적중하다고 할때의 중(中)인 right의 뜻이 포함된 center를 말한다. 그러므로 중용은 ‘중간을 사용함’이 아니라 ‘올바른 중앙을 사용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용 첫구절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