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5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우리나라 광복 8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끔찍한 고난을 겪은 우리 조상들이 이런 광복의 기쁨을 맞은 날입니다.
이는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인하여 해방을 맞은 것과 같습니다.
오늘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었고 구원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심령이 참 평강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이어나가게 하옵소서.
저는 오늘 제 사역지인 베트남으로 갑니다.
어디에 있든지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시고 늘 주의 너른 품에 거하게 하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하루도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내가 살 곳은 십자가이오니 그곳이 나의 거처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휘황함이나 번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마음을 열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40:1-16
제목 :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더라. 그 높이가 여섯 척이라.
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5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길이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너비가 더한 자로 여섯 척이라. 그 담을 측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높이도 한 장대며
6 그가 동쪽을 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의 통로를 측량하니 길이가 한 장대요 그 문 안쪽 통로의 길이도 한 장대며
7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길이가 한 장대요 너비가 한 장대요 각방 사이 벽이 다섯 척이며 안쪽 문 통로의 길이가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 문이 있으며
8 그가 또 안 문의 현관을 측량하니 한 장대며
9 안 문의 현관을 또 측량하니 여덟 척이요 그 문 벽은 두 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
10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왼쪽에 셋이 있고 오른쪽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같은 크기요 그 좌우편 벽도 다 같은 크기며
11 또 그 문 통로를 측량하니 너비가 열 척이요 길이가 열세 척이며
12 방 앞에 간막이 벽이 있는데 이쪽 간막이 벽도 한 척이요 저쪽 간막이 벽도 한 척이며 그 방은 이쪽도 여섯 척이요 저쪽도 여섯 척이며
13 그가 그 문간을 측량하니 이 방 지붕 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너비가 스물다섯 척인데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14 그가 또 현관을 측량하니 너비가 스무 척이요 현관 사방에 뜰이 있으며
15 바깥 문 통로에서부터 안 문 현관 앞까지 쉰 척이며
16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
* 나의 묵상
에스겔 40장 이하에서 마지막 48장까지는 새 성전, 새 제사, 새 땅에 대한 종말론적 환상이 묘사되고 있다.
물론 이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회복의 차원을 뛰어 넘어 종말론적 완전한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에 세워질 새 성전과 새 제사 그리고 새 땅에 대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다.
과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성전, 자신들이 드리는 제사, 자신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성전은 온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곳이었고 그들의 제사는 바로 그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지극히 거룩한 예식이었으며 그들이 거하는 땅은 하나님이 특별히 구별하여 자신들에게 주신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그들의 제사를 폐하셨으며 그들의 땅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시고 황무한 땅으로 만들어 버리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성전과 제사, 그리고 그들의 땅을 거룩하다고 맹신하면서 자신들은 그와 전혀 상관없이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성전을 떠나셨고, 그들의 예배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셨으며, 그들의 땅을 저주하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신성시하고 거룩한 것으로 믿는다고 해도, 그곳에서 악을 자행한다면, 그리고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결코 거룩과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당한 이러한 비극의 역사는, 거룩이란 눈에 보이는 특정한 장소나 의식, 공간 등과 밀착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하나님이 머물기를 기뻐하시는 곳임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이렇게 부르셨다.
(출 3:4-5)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당시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보이신 이적, 즉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으나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접근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룩한 땅이라 말씀하신 그곳은 실상 아무 것도 없는 척박한 광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거룩한 땅이라 하셨다.
그것은 바로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셨기 때문이며 또한 그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 당신의 거룩한 뜻을 나타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역사를 보면 나름대로 거룩한 곳이 수도 없이 많다.
각 종교들의 성지도 있을 것이고 각 나라가 자랑하는 성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역사상 가장 거룩한 장소요 가장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장소는 어디인가?
그곳은 에덴동산 아니고 솔로몬의 성전이나 궁전도 아니다.
그곳은 바로 해골이란 뜻을 가진 골고다 언덕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본체이신 거룩한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다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곳이요 세상을 온전히 거룩하게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것을 기념하여 예루살렘에 세워진 무덤교회 즉 성묘교회가 거룩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3m나 되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새 성전이 다름 아닌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세워질 것이며, 그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전이시다.
(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또한 그 성전은 예루살렘도 아니고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도 아닌 내가 바로 성전이다.
내 안에 세워진 성전이야말로 완전한 성전이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또한 우리 공동체가 성전이다.
(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본문에서 천사가 측량 장대로 측량하여 보여주시는 새 성전에서 사방에 담이 둘려 있는데 그 담장의 높이가 무려 6척, 즉 3m에 이른다.
당시 담장의 높이로는 어머어마한 높이다.
왜 이렇게 새 성전의 담장을 높게 하였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외부로부터 성전을 부정하게 하고 더럽히는 그 어떤 것도 차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 성전된 내 몸과 나의 심령에 이러한 높은 담장을 쌓아서 그 어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요소들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죄요, 귀로 듣는 것이 죄 짓는 것이며, 손으로 만지는 것들이 죄악된 행위들이기에 오늘 이 시대는 죄악에 완전히 노출된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된 내 자신을 주의 성령의 담으로 두르지 않으면 나는 언제 변질되고 더럽혀져서 넘어질지 모른다.
나는 예전에는 예루살렘 골고다에 세워져 있는, 일명 성지라고 불리는 그런 곳에 세워져 있는 기념 교회들이 거룩한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미신적인 신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예배당을 성전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거룩하게 여기기도 했었다.
특히 말씀이 선포되는 강대상이 있는 강단은 마치 지성소와 같은 곳으로 여겨서 어렸을 때는 감히 올라가지도 못하였다.
그곳에 올라가면 교회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에게 따끔하게 혼이 나기도 하였다.
강단은 목사님과 기도하는 장로님 외에는 올라갈 수 없는 거룩한 성지였던 것이다.
그 개념을 깨뜨리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왜냐하면 나가는 교회마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성전은 완전한 성전인 하나님 나라의 성전이다.
그리고 그 성전은 종말론적으로 우리에게 주실 성전이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내 몸과 우리 공동체가 성전이다.
그래서 이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성전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성전은 성전으로서의 향기가 풍겨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성전이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주의 영, 성령으로 나를 두르고 외부의 죄악 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악한 생각과 행동들이 성전 된 몸과 심령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주의 보혈로 덮고 항상 정결하게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성전 된 이 몸으로 주님께 한 걸음씩 나가는 귀한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요 성전입니다.
주의 영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기에 더럽힐 수 없나이다.
그동안 아무렇게나 내던졌던 이 몸을 다시 한 번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기를 원하오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내 죄를 사하소서.
그리하여 그 어떤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시고 오직 주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주님, 나는 솟구치는 정욕과 음란으로 주의 성령의 전을 더럽혔던 자입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하오나 주의 심판으로 이 몸을 새롭게 하는 성전으로 세우셨사오니 이제 주의 은혜가 넘치는 성전 되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이 성전의 주인 되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