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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6일(주)
* 시작 기도
(삼상 7:5-6)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주님...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그들이 거기서 종일 금식하였습니다.
이는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 외에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금식은 자기들의 영적 양식인 이방 신 섬기는 것을 끊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3절).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숱하게 금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시위(示威)요 협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금식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려했던 것이지요.
금식은 하나님을 협박하여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금식임을 믿습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증거하는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에 박히게 하시고 예배하는 곳마다 성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에 연합하여 사귐이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40:17-49
제목 : 측량하니...
17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서른이며
18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너비가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19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측량하니 그 너비가 100척이며 동쪽과 북쪽이 같더라.
20 그가 바깥뜰 북쪽을 향한 문간의 길이와 너비를 측량하니
21 길이는 쉰 척이요 너비는 스물다섯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쪽에도 셋이요 저쪽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측량한 문간과 같으며
22 그 창과 현관의 길이와 너비와 종려나무가 다 동쪽을 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23 안뜰에도 북쪽 문간과 동쪽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쪽 문간까지 측량하니 100척이더라.
24 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즉 남쪽을 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측량하니 먼저 측량한 것과 같고
25 그 문간과 현관 자우에 있는 장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길이는 쉰 척이요 너비는 스물다섯 척이며
26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쪽저쪽 문 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27 안뜰에도 남쪽을 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쪽을 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쪽 문간까지 측량하니 100척이더라.
28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을 통하여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문의 너비를 측량하니 크기는
29 길이가 쉰 척이요 너비가 스물다섯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측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자우에도 창이 있으며
30 그 사방 현관의 길이는 스물다섯 척이요 너비는 다섯 척이며
31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2 그가 나를 데리고 안뜰 동쪽으로 가서 그 문간을 측량하니 크기는
33 길이가 쉰 척이요 너비가 스물다섯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측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4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쪽, 저쪽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5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측량하니 크기는
36 길이가 쉰 척이요 너비가 스물다섯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7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쪽, 저쪽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8 그 문 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39 그 문의 현관 이쪽에 상 둘이 있고 저쪽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제물을 잡게 한 것이며
40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쪽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쪽에 상 둘이 있으니
41 문 곁 이쪽에 상이 넷이 있고 저쪽에 상이 넷이 있어 상이 모두 여덟 개라. 그 위에서 희생제물을 잡았더라.
42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그 길이는 한 척 반이요 너비는 한 척 반이요 높이는 한 척이라. 번제의 희생제물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43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방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제물의 고기가 있더라.
44 안문 밖에 있는 안뜰에는 노래하는 자의 방들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쪽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쪽으로 향하였더라.
45 그가 내게 이르되 남쪽을 향한 이 방은 성전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쓸 것이요
46 북쪽을 향한 방은 제단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47 그가 또 그 뜰을 측량하니 길이는 100척이요 너비는 100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성전 앞에 있더라.
48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측량하니 너비는 이쪽도 다섯 척이요 저쪽도 다섯 척이며 두께는 문 이쪽도 세 척이요 문 저쪽도 세 척이며
49 그 현관의 너비는 스무 척이요 길이는 열한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 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저쪽에 있더라.
* 나의 묵상
현관 문 맞은편에는 안뜰로 들어가는 동문이 5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므로 뜰로 들어가는 바깥문을 감안하면 바깥뜰의 길이는 75m로 볼 수 있다.
이 넓은 뜰의 가장자리에는 30개의 행랑이 있고 넓은 돌이 깔려 있는 길이 빙 둘러 있었다.
이 방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때뿐만 아니라 소규모 집단들이 회의를 할 때에도 이용되었다.
동쪽 안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고, 천사는 북쪽의 바깥문으로 건너가서 그것을 살펴본 다음 남문으로 간다.
여기서 동쪽의 바깥문과 똑같은 치수가 짤막하게 다시 언급된다(20-29절).
바로 그 남쪽 바깥문에서 길은 남쪽의 안문을 걸어서 지나가게 되어 있다.
이 문은 안뜰 끄트머리에서 시작되고 안뜰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28절).
여덟 계단을 올라가면서 바깥뜰로 향한 안뜰의 현관에 이른다.
따라서 안뜰은 바깥뜰보다 2.5m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문의 크기는 바깥문의 크기와 꼭 같다.
에스겔은 천사와 함께 그 문을 지나 안뜰에 이르고 동문으로 먼저 간 다음 북문으로 간다.
이 문들의 시설은 꼭 같음이 확인되었다(32-37절).
38-43절은 제물을 준비하는 방이 나오고 44-47절은 제사장들의 방이 나온다.
북쪽 문 곁에 있는 방은 번제물을 씻는 방으로써 현관과 붙어 있거나 현관 안에 있다.
거기에 제물을 조리하는데 쓰이는 현관 안팎의 도살용 상 여덟 개와 그 때 입었던 옷을 벗어두는 선반이 있다.
태워서 드리는 번제물을 바칠 때 쓰는 돌을 깎아 만든 상이 4개 있다.
그 위에는 제사장들이 드리는 번제물과 그 밖의 제물을 잡을 때 쓰는 도구들이 놓여 있다.
방 안 네 벽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걸려 있었으며, 상 위에는 제물로 쓸 고기들이 놓여 있다.
안뜰에는 제사장들이 거하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는 북문 옆에 있고, 다른 하나는 남문 옆에 있다.
남문 옆에 있는 방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방이고, 북문 옆에 있는 방은 제단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방이다.
그들은 사독의 자손들로서 레위 후손들 가운데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천사가 성전 뜰을 재니 길이가 50m요, 넓이도 50m인 정사각형이었다.
그리고 제단은 성전 앞쪽에 있었다.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현관으로 들어가서 현관의 각 벽을 재었더니, 두께가 2.5m였다.
문의 넓이는 7m였고, 문의 양 옆에 있는 벽은 두께가 150cm였다.
현관의 길이는 10m이고 넓이는 6m였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계단이 10개가 있었다.
그리고 벽 곁에는 입구 양쪽으로 기둥이 하나씩 있었다.
하늘의 전령이 성전을 측량하듯, 성령께서는 성전된 우리를 감찰하신다.
신약시대 성전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더불어 누리는 영생의 사귐에 있다.
영생의 사귐은 완전한 성전인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는 모든 시대 성전된 성도와 그들이 모인 공동체의 실체이다.
성도 및 공동체가 날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갖는 사귐의 실제가 없다면, 그것은 이름뿐인 성전이며 감찰하시고 측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오늘날 교회는 성전의 본질이 희미해지고 있다.
곧 성도 각 사람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나아가 서로 사귐을 갖는 성전의 본질이 희귀하다.
게다가 피상적이고 외형적인 구약적인 성전을 그 본질로 오해하고 있다.
이에 성전의 본질을 알고 영생의 사귐을 하는 이들이 도리어 배척당하는 현실이다.
교리나 신조에 동의하고, 제의적 요구에 따르는 것을 신앙의 전부로 알고 있다.
시대적 교회 현실 앞에서 주의 측량에 합당한 성전이 얼마나 될까?
하여 반시대성의 교회로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서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결코 빼앗기지 않으신다.
성전의 본질이 퇴색될 때마다 성전의 본질을 회복시키시는 열심으로 일해 오셨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생의 공동체가 위기를 당할 때마다 개입하시고 공동체를 새로 회복하셨다.
참된 성전의 회복은 성전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
성령께서 측량하시는 성전,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는 성전의 개념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자였다.
보이는 외형 교회를 성전으로 알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데에 전력을 다할 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영생의 사귐으로 인도해야 하는데,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 소경이었다.
목사요 선교사라 하는 내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한 것이다.
이런 내가 어찌 목사요 선교사라 칭함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나에게 심판이 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거짓이었으리라!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진리대로 심판하셨다.
눈에 보이는 성전, 내가 오해하던 성전이 무너지고 광야로 쫓겨난 자 되었다.
심판의 말씀은 내가 짓고자 했던 성전의 측량줄이 되었고, 나는 무지와 맹신을 자백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인 그 자리에 참된 성전이 지어졌다.
그리스도의 무덤은 성전을 짓는 표적이며(요 2:19), 날마다 영생의 사귐을 갖게 되었다(요일 1:3).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더불어 갖는 사귐을 통해 하늘에 있는 성전에 참여하는 자 되었다.
나는 공로가 없으나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본다.
나의 생명은 아들과 함께 아버지 안에 감추어지고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영광만 나타난다.
부끄럽기 한량없고 또한 죄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이것이 나의 실상이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면목없음으로 설 뿐이다.
그 안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흐른다.
나는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저는 성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성전의 본질은 영생을 얻은 자가 가지는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러나 저는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건물과 사람을 성전으로 알았을 뿐입니다.
무지와 맹신 가운데 열심을 내던 자, 주께서 공의로 심판하셨나이다.
주님, 성령께서 측량하시는 성전 앞에서 참으로 심판받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한없는 자비와 긍휼로 인해 다시 살리셨습니다.
아들의 무덤에 연합되게 하시고 참된 성전을 지어주셨나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을 실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하늘 성전으로 인도하시나이다.
주님의 뜻을 알아 날마다 그 성전된 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온전히 설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