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NGO신문 제1회 신춘문예 당선시 -김나비
오목한 기억 / 김나비(김희숙)
나는 걸어다니는 화석이지
아득한 어제의 내일에서 말랑말랑하게 오늘을 사는
지금 난 미래의 어느 지층에서 숨을 쉬고 있는 걸까
오지 않는 시간 속, 닿을 수 없는 먼 그곳엔
오늘이 단단하게 몸을 굽고 있겠지
거실에 흐르는 쇼팽의 녹턴도 조각조각 굳어 가겠지
밤마다 창 밖에 걸었던 내 눈길도
오지 마을 흙벽에 걸린 마른 옥수수처럼 하얗게 굳어 있을거야
이번 생은 사람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살지만
삐걱이는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지하 1층쯤 지층에는
내가 벗어버린 다른 포장지가 파지처럼 구겨져 있겠지
기억이 모두 허물어진 나는 나를 몰라도 어둠은 알겠지
내 귓바퀴를 맴돌며
내가 벗은 문양을 알려주려 속살거릴거야
49억 년 전부터 지구를 핥던 어둠은
소리 없는 소리로 구르며 둥글게 사연을 뭉치고 있겠지
눈사람처럼 뭉쳐진 이야기를 은근하게 나르겠지
내가 갈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부는 바람의 몸통
그곳에서 난
검은 항아리 위에 새겨진 기러기처럼
소리를 지운 채 지친 날개를 누이겠지
돌과 돌을 들어내면
오목 새김 된 내 무늬가 부스스 홰를 칠거야
[출처] 한국NGO신문 신춘문예 당선작(2017년-2024년)|작성자 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