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대원 게송염불
1. 지옥세계 아예없고 나무아미타불 - 무삼악취원(無三惡趣願) 2. 삼악도에 아니나며 나무아미타불 - 불갱악취원(不更惡趣願) 3. 사람마다 금빛광명 나무아미타불 - 실개금색원(悉皆金色願) 4. 모든이들 차별없고 나무아미타불 - 무유호추원(無有好醜願) 5. 숙명통이 이뤄지며 나무아미타불 - 숙명지통원(宿命智通願) 6. 천안통이 얻어지며 나무아미타불 - 천안지통원(天眼智通願) 7. 천이통이 이뤄지고 나무아미타불 - 천이지통원(天耳智通願) 8. 타심통이 얻어지면 나무아미타불 - 타심지통원(他心智通願) 9. 신족통이 이뤄지고 나무아미타불 - 신족지통원(神足智通願) 10. 누진통이 얻어지며 나무아미타불 - 득누진통원(得漏盡通願)
11. 정각세계 이뤄지고 나무아미타불 - 필지멸도원(必至滅度願) 12. 무량광명 얻어지며 나무아미타불 -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 13. 무량수명 이뤄지고 나무아미타불 - 수명무량원(壽命無量願) 14. 성문연각 끝이없네 나무아미타불 - 성문무수원(聲聞無數願) 15. 사람수명 자유자재 나무아미타불 - 권속장수원(眷屬長壽願) 16. 좋은사업 얻어지며 나무아미타불 - 무제불선원(無諸不善願) 17. 아미타불 모두찬탄 나무아미타불 - 제불칭양원(諸佛稱揚願) 18. 열번염불 극락왕생 나무아미타불 -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 19. 임종시엔 미타친견 나무아미타불 -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 20. 지심회향 극락왕생 나무아미타불 - 식제덕본원(植諸德本願)
21. 사람마다 삼십이상 나무아미타불 - 삼십이상원(三十二相願) 22. 타방보살 일생보처 나무아미타불 - 필지보처원(必至補處願) 23. 모든부처 공양하고 나무아미타불 - 공양제불원(供養諸佛願) 24. 모든공양 올리옵고 나무아미타불 - 공구여의원(供具如意願) 25. 일체지혜 연설하고 나무아미타불 - 설일체지원(說一切智願) 26. 금강처럼 굳센몸을 나무아미타불 - 나라연신원(那羅延身願) 27. 무량장엄 한량없고 나무아미타불 - 소수엄정원(所須嚴淨願) 28. 보리수를 알아보며 나무아미타불 - 견도량수원(見道場樹願) 29. 지혜변재 뛰어나서 나무아미타불 - 득변재지원(得弁才智願) 30. 지혜말씀 한량없네 나무아미타불 - 지변무궁원(智弁無窮願)
31. 국토장엄 깨끗하며 나무아미타불 - 국토청정원(國土淸淨願) 32. 국토장엄 선행하며 나무아미타불 - 보향합성원(寶香合成願) 33. 광명으로 중생구제 나무아미타불 - 촉광유연원(觸光柔軟願) 34. 이름듣고 모두얻네 나무아미타불 - 문명득인원(聞名得忍願) 35. 여인발심 극락왕생 나무아미타불 - 여인성불원(女人成佛願) 36. 이름듣고 성불하며 나무아미타불 - 상수범행원(常修梵行願) 37. 천인들이 공경하네 나무아미타불 - 인천치경원(人天致敬願) 38. 생각대로 옷입으며 나무아미타불 - 의복수념원(衣服隨念願) 39. 즐거움이 끝이없네 나무아미타불 - 수락무염원(受樂無染願) 40. 불국토를 쉽게보며 나무아미타불 - 견제불토원(見諸佛土願)
41. 육근모두 원만하고 나무아미타불 - 제근구족원(諸根具足願) 42. 해탈삼매 이뤄지며 나무아미타불 - 주정공불원(住定供佛願) 43. 좋은집에 태어나고 나무아미타불 - 생존귀가원(生尊貴家願) 44. 생명구족 가득하고 나무아미타불 - 구족덕본원(具足德本願) 45. 모든부처 친견하고 나무아미타불 - 주정견불원(住定見佛願) 46. 좋은법문 늘들으며 나무아미타불 - 수의문법원(隨意聞法願) 47. 보리자리 퇴보않고 나무아미타불 - 득불퇴전원(得不退轉願) 48. 현세에서 왕생하네 나무아미타불 - 득삼법인원(得三法忍願)
으음. 잘 지내셨습니까? 집안에 별일 없으시고?^^ 사람이 살아가야 된다는 어떤 덕목 안에는 기쁨이라는 게 있어요. 환희심도 거기 깃들어 있고, 사랑 심도 거기 깃들어있고, 자비심도 은혜로움도 많이 깃들어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은혜롭고 또 지혜롭고 또 풍요로운 것은 전부 망각하고 그렇죠. 그죠. 자기한테 부족하고 모자란 것만, 그러니까 자기한테 맞지 않는 것만을 자꾸 헤아리는데. 그러니까 자기 입장에서 맞지 않는 것만 다 틀렸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고거 문제만 조금만 교정을 자기 스스로만 조금만 하면은 더 풍요로운 세계와 접속이 잘 돼서 내가 먼저 풍요로워질 텐데. 요게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우리는 <불설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여섯 글자를 부르면 모든 장애에서 해탈하고 자유로워지고, 또 저 모든 어둠에서 벗어나서 광명세계로 나아간다. 이렇게 말씀드렸거든요. 경전 안에 자세히 설명돼 있고, 원효 성사께서는 원효 큰스님께서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저 무지몽매한 사람에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으로서 금생에서 해탈하여 왕생극락할 수가 있다. 살아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것뿐만 아니라 죽어서는 반드시 이고득락해서 아미타불 세계의 나라인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계시거든요. <불설아미타경>이 정하는 그 부처님께서 설해주시고 전해지고 말씀하신 원인은 뭔가?
다 일체중생이 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거죠. 저 아픔으로부터 해탈하는 거죠. 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일체중생이 일체 모든 생명체가 그렇게 행복해지지 아니하고, 풍요로워지지 아니하고, 사랑스러워지지 아니하면, 내가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발원한 것이 법장비구시고 이분이 이룬 세계가 저 아미타불의 세계거든요. 그중에 오늘 드디어 37번째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37번째 보면 사람과 人天인천이라고 그러거든요. 사람과 하늘의 이치는 뭐로 하는 것이라고요? 경배하는 것으로써. 그러니까 이 말은 다른 말로 얘기하면은 기도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본의를 삼는다. 이렇게 말해도 다르지 않고.
또 내가 예를 갖는다 하는 것에서도 출발이 되고요. 또 웃어른을 공경하고 자식을 아랫사람들을 보살펴주는 것도 요것이 하나의 경이거든요. 공경하다라고 할 때의 경입니다. 이렇게 원을 세우시면 반드시 이 사람한테는 무엇이 생기냐 그러면 성실함이 그대로 자기한테 금생에서 드러나서 불성세계에 이른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미타경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저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고 읽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왕생극락한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죽어서 태어나는 것도 왕생극락이지만 지금 현재, 오늘날 2012년에 이르러서 이 법당에서 설명되어지고 있는 <불설아미타경>은 지금 즉시라는 얘깁니다.
즉신성불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불설아미타경>의 설법이거든요. 지금부터 좋아지는 거에요. 지금부터 사랑하는 삶을 여는 겁니다. 너무 기가 막힌 것 중의 하나죠. 그렇게 하나둘씩 하나둘씩 공부해보는 과정을 겪습니다. 人사람이에요. 사람이란 누구에요. 그죠?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을 사람으로 말해요? 너는 사람이고 나는 그냥 중생이고? 그런 거 없어요. 나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나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본래 실존하지 않거든요. 나라고 하는 것은 본래 자기가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은 무자성이라고 그래요. 한문으로 無自性무자성 이렇게 표현해요. 그러니까 성품이 스스로가 있다고 자꾸 우기는데 그게 없다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자기 스스로 일으키는 성품이 고약한 놈도 있고 좋은 놈도 있으시잖아요. 놈은 빼고^^ 좋은 분도 있으시고 나쁜 분도 있으신데. 본래 저것도 이쪽도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요게 기가 막힌 거잖아. 이건 +도 아니고 -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색불이공 그러잖아요. 공불이색 그러잖아요. 그 얘기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 근간이 없는 거에요. 본질적으로. 그런데 우리가 지금 불설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싶은 것은 뭔 내용이라고요? 지금 내가 선을 짓는 거에요. 지금 착함을 내가 심는 거에요. 그리고 내가 즐거움을 지금 심는 거에요. 그리고 대긍정의 힘을 내가 지금 지어서 지금 실천하고 지금 그걸 누리가 지금 가져가는 거에요.
요렇게 옮겨가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사람한테야 말로 비로소 해탈이라는 것이 생기지. 똑같은 나라고 하는 존재성이 있잖아요. 이 존재성이 긍정의 무슨 불교에서는 긍정이 아니라 나타나는 긍정이 아니라 인정을 넘어서서 대긍정의 세계를 말하고 있거든요. 아주 큰 긍정세계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를 인정해야 돼. 뭐라고 인정해야 돼? 좋게 인정해야 돼. 나는 무슨 좋아지고 있는 나에요. 좋아지고 있는 나. 뭐라고요? 건강해지고 있는 건강해하는 이런 상태를, 건강해지고 있는 것을 긍정하는 거죠. 그것도 적게가 아니라 크게. 나는 뭐하는 사람이라고요? 번영하는 사람. 번영하고 있는.
이런 내용들은 뭐냐 하면 전부 다 현재 이게 진행형이에요. 현재 진행형이에요. 언제? 지금이에요. 오늘날 어제 가끔 여기 올라다니면서, 운전하면서 올라오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 아무래도 뉴스를 듣게 되잖아요.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세계 1위랍니다. 교통사고 1위죠. 그죠. 현재 아직. 아직까지 거기서 못 벗어났어요. 참 부끄러운 이야기 중의 하나거든요. 절대 자살을 해서는 안 돼요. 자살도 자기가 결정하는데, 보통사람들이 자기들이 자기를 자기를 잊어버릴 때 요게 문제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엄한 짓을 자꾸 하는 거에요. 자기가 자기 가치 있는 줄을 몰라서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그러면 자기가 보는 데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오늘 세 가지를 공부하시면서 오늘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시는 인연 따라서 외우셔야 돼. 뭐라고요? 번영하는 내가 있어요. 번영하는 사람이에요. 그 자성은 본래 자성은 없어요. 평생 먹이고 평생 재워도 죽어서 산에 묻어 놓으면 다 썩을 것이고, 태우면 다 없어질 것이고, 없는 거거든요. 성질을 아무리 부려도 없어요. 욕심을 아무리 내도 지가 없는 거에요. 뭣 때문에 재물 때문에 인과관계 때문에 서로서로 감정 때문에 싸우고 지낼 필요가 뭐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싸우고, 다투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사는 과정 안 에서는요, 거기에는 진리가 없으세요.
진리는 아주 단순하게요. 행복해하는데 거기 해탈이 생겨요. 즐거워하는데 거기 행복이 생기거든요. 거기 진리에 따라서 문이 열리고 해탈의 세계가 딱 열려오게 돼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다. 그래요. 제가 설명, 석가세존께서 다 알아서. 예. 그러니까 이걸 외우셔야 되요. 뭐라고 해야 돼요? 다른 것을 외우려고 하지 말아요. 아이고 나는 늙었어. 나는 늙었어. 이렇게 말하잖아요. 나는 병들었어. 나는 늙었어. 늙음이 있어. 나는 고통이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불러서 다음 생에 태어나는 왕생극락도 중요하지만 지금 극락세계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만 비로소 우리는 극락세계를 체험하고 사는 거에요.
기가 막히다. 불자님들께서 또는 모든 사람이 금생에 저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한번 읽은 것만으로도 큰 대복이 생겨요. 이 책 가져가셔서 한 번씩 읽으시면 너무 좋아요. 그 밑에 번역본도 있으시지? 그거 붙들고 읽으시면 돼요. 우리가 생각하기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기가 이게 무자성이 있기 때문에 귀한 거거든요. 정말로 귀한 존재에요. 정말로 존귀한 거에요. 왜 그러냐 하면 자성이 뿌리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귀한 거죠. 만일에 자성이 무엇으로 있다라고 말하고 규정하기 시작하잖아요. 나는 가난한 놈이다. 나는 노예다. 나는 병들은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규정하고 산다면 그것이 자기 스스로를 만든, 성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석가세존께서는 <불설아미타경>이나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에서 뭐냐 하면 무자성이다 말이에요. 無 없단 말이에요. 무안이비설신의. 그러잖아요. 눈귀코입몸뚱아리가 본래 없다라고 선언하신 것이 무자성의 세계를 고대로 설명하고 계신 거잖아요. 그러나 반대로 보기 시작하는 거에요. 인정하는 거에요. 이걸 뭐라고요? 인정하고 또 조화로워야 되요. 뭐든지 조화롭게 하셔야 되요. 그렇게 하려면 무엇으로부터 붙어 들이냐 하면 정말로 내가 번영하고, 정말로 좋아지고 있는 상태. 상태만 있을 뿐이지 결과는 들여다보지 마세요. 지금 내가 좋아지고 지금 예뻐지는 모습만 가지세요. 그러면 극락세계 가서 죽은 다음에, 평생 그런 거 헤아리지 마세요.
내가 오늘 감사할 줄 알고, 오늘 내가 번영할 수 있는 생명체라고 이렇게 느껴지고, 내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지고 있고, 건강하게 살아가서 호흡을 잘하고 밥 먹고 화장실 잘 갈 줄 알면은 이 모든 것을 뭐라고 생각해야 되요. 오직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시면 딱 좋습니다. 기가 막힌 것인 나타나요. 그러면 자기가 자고 난 다음이라도 좋아져 있는 꼴을 보는데 이놈의 이 자성이 본래 자성이 없는 건데 자꾸 집어넣어요. 걱정근심하고, 또 뭐가 안 될까? 노심초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거든요. 이게 없다는 거에요. 이게 다 망상이라는 거에요.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기셔야 돼.
딱 생각할 게 뭐냐 하면 현재 진행형이다라는 뜻입니다. 현재진행. 우리는 지금 살고 있잖아요. 앞날에 가서 살려고 애쓰지 말고 지나간 것 매달려서 집착하지 말고, 지금을 나는 번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행동으로 옮기는 거에요. 그러면 신구의 삼업은 스스로 정화가 되고, 업장이 아무리 두터워도 소멸이 되고 치유가 되요. 좋아져 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분명히 정돈해 놓으셔야 되요. 그래서 요 세 가지를 외웁니다. 외우면은 무슨 일이 나한테 생기냐 하면, 하늘과 같은 사람의 일이 天천이 생겨요. 하늘이 있으면 당연히 뭐가 생겨요? 地땅이 갖추어져요.
天이것은 지혜라고 말하고 地이것은 복덕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복덕이에요. 딱 관리가 요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저쪽 유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 뭐죠? 천지인. 이러죠. 그죠. 그래서 만일 사람이 여기 있거든요. 하늘과 땅 사이에 있죠. 이것을 움직이는 것을 옛날식으로 오해하지 마셔야 되요. 옛날식으로는 오행이다.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걸 보고 금목토화수.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이게 움직임이란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은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사람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거든요.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행복한 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손톱도 빠지고, 자라나고, 희어지고. 그러잖아요. 좋은 것만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좋은 몸으로 왔기 때문에 그 좋은 몸에 감사할 줄 알아야 건강이 유지되고 복이 유지되고 거기에 사랑스러움이 거기 같이 깃들어있는 육체에도 같이 깃들어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는 물리적인 무리가 좀 생겨요. 무너진 것만 보지 말고 지금 남아있는 것을 감사하세요. 아픈 것에 매달려 있지 말고 더 남아있는 건강함에 더 감사하고 행동으로 옮기셔야 돼. 오늘 불자님들 될 수 있으면 걸으세요. 될 수 있으면 걸으셔야 배에 유착이 안 생깁니다. 그래서 복력이 자기한테 생기려면은 현재 진행형인 내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해요? 지금 번영하고 지금 잘 되어 가고 있고. 꼭 물어요. 나는 지금 망하고 있는데요.
꼭 훌륭한 설법 잘하고 있는 동안 뒤에 앉아가지고 ‘내가 지금 죽어요.’ 이러면 힘들어. 못 벗어나요. 그 틀에서. 과감하게 놓으셔야 돼. 대신에 안 좋은 것을 놓은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좀 놓아요. 정말로 자기가 아끼는 것을 놓으실 줄 알아야 돼. 탐착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놓을 수 있을 필요가 있죠. 그죠? 그렇게 이루어지면은 하늘에서 그것이 감봉하게 돼요. 그것이 하늘에 있다라고 하는 말은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 지혜가 곧 하늘이거든요. 지심이 곧 하늘의 천심이라 그러거든요. 그게 극히 다시 돌아오면은 그거를 민심이라고 표현해요. 쉽게 표현하면. 그래서 그다음 나타난 것이 致치라고 말해요. 願원이에요. 이게 다스려진다는 거에요.
결국 적으로는 어디로부터? 자기의 생각. 가장 중요한 거 이게 뭐죠? 생각이죠. 요건 이치는 말한 것은 뭐라고 말했죠? 이건 언어죠. 요거는 우리가 말하는 그 유명한 몸짓이잖아요. 이렇게 정리가 돼요. 잘 보세요. 이것은 생각이 곧 자기의 지혜로움이라고 표현됐죠? 아니 하여튼 아니어도 그렇다 그러고. 이것은 올바로 그름을 설명하는 것이 致치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말로서 좋은 생각으로서 좋은 몸짓으로 나를 정리하고 순화시켜 가는 과정을 겪는 것을 기도수행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정성이 있어야 되요, 그다음에 정성과 성실이 반드시 따라다녀야 되요. 그러면 이 사람한테 뭐가 생기냐 하면 불성에 도달한다. 이렇게 말해요.
이 얘기는 뭐냐 하면 불성에게 도달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하늘에 닿는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말로는 다른 아주 통속적인 말로서 이것을 뭐라고 말한다? 진리라고 표현한다. 정말로 우리 삶 속에 깃드는 참된 이치를 진리라고 표현하신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죠. 그러니까 어려운 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쉬운 거에요. 그래서 이것은 반드시 따라다니면서 뭐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누구든지 願원이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원. 그럼 거꾸로 한번 보겠습니다. 같은 내용인데 같은 것을 거꾸로 한 번 봅니다. 원해야 돼요. 이건 뭐죠? 내가 지금 원하고 있어요. 뭘 원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죠. 원하는 것은 불자님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있어야 되죠. “나는 적당히 이렇게 살면 좋아.” 그게 원이에요. 그런데 그걸 구체적으로 자기화를 만들려면 조금의 뭐가 생겨요? 질서라는 걸 하셔야 된다.
이때 질서라는 하는 말은 뭐라고 표현 하냐 하면 이 질서는 우리가 말하는 공경이잖아요. 질서는 다른 말로 불교식으로 말하면 기도수행한다. 이렇게 말해요.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불러들이는 거에요. 불러들이면서 마음속 깊이 나는 번영할 수 있는 생명이라고 외치는 거에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좋아지고 있는 생명이라는 거에요. 나는 지금 뭐죠? 건강한 삶을 자기 할 일을 충분히 해가는 그런 존재라고 그런 생명이라고 외치는 거고, 생각하는 거고, 말하는 거고, 그 몸집을 채워가는 거죠. 이게 하나하나씩 채워가서 삶에 대한 전체를 만들어내거든요. 부정감은, 안 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내가 더럽다든가, 탁하다든가, 죄 들었다든가, 병들어서 암 들었다든가, 무슨 어디 불행이 깃들었다든가, 어둡다든가 이런 말짱한 이야기들은 전부 다 자기 안에 들어있는, 본래 자성이 없는데 자기 스스로 밖에 여기저기에서 얽혀가지고 스스로 들어있거든요. 그 세상에 그거보다 더 안타까운 게 뭔 줄 아세요? 딴 사람이 얘기해준 것 때문에 내가 화내는 사람 있어. 그러면 여기 좀 보십시다. 원이 딱 있으셔야 돼. 자기 원. ‘내년에 내가 어떤 어떤 구체적으로 좋은 일이 돼야 되겠다.’ 집을 판다거나 집을 산다든가 또는 자식이 잘돼야 되겠다든가, 뭐 이런 구체적인 현실에서 있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뭐에요? 다 부처가 돼가는 거에요.
요게 연결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은 이 원을 참으로 참으로 어려워져요. 그러고 언어가 할 수 있으면 뭐죠? 비난하는 말은 그치고, 욕설은 줄이고, 원망하는 생각은 버리고, 원망스러운 말은 그만 그치셔야 돼. 제발 잘 되고 싶으시면 원망한 생각을 그만 그쳐요. 절대 핑계 대는 말은 절대 없으셔야 돼. 하늘의 생각이 그 사람에게 미치어서 이 사람이 스스로에게 번영을 불러다 주고 스스로에게 좋아지는 꼴을 보여주고 있고, 스스로에게 건강한 삶을 일을 해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이상 더 좋은 발원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법장비구는 뭐라고 말했어요? 이 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발원하잖아요. 놀라운 거잖아요.
인간 세적인 것에 경전이 이런 경전이 두 번 다시 찾아보기 어렵죠. 오늘 이야기가 불성의 마음으로 돌아왔거든요. 이렇게 돌아 와 있어서 우리 자신이 깃들어있는 생명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한 번씩 점검을 자꾸 하셔야 돼. 그거 점검하기 위해서 하는 게 기도거든요. 나무아미타불 염불 기도하고, 지장보살 기도하고,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대상적 구함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그건 한계가 있거든요. 무량한, 무량한 공덕. 무량한 시간, 무량한 공덕 속에서 내가 그 공급을 받는다 라는 게 <불설아미타경>에 설법 중이고 그 내용을 여실하게 해 놓은 것이 오늘 설법이에요.
그를 일러서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人天至敬願인천치경원이다. 이렇게 설명 드렸죠? 그래서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과 아미타불을 듣고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경하면 환희심과 신심을 내어 그 보살행을 닦을 제, 모든 천신과 인간들이 그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번역 내용하곤 조금 상의하죠. 그죠. 그런데 자세히 자세히 설명 드리면 결국 저 하늘의 세계가 곧 인천이 곧 사람의 세계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그게 이루어져야 된다. 그런 표현이었죠. 그렇게 살펴보면은 아까 세 가지를 말씀을 드렸고, 지금 다시 세 가지를 다시 외우실 거에요.
외우실 내용에 보면은 우리 이제 요것을 이루어지게 하게 하시려면 저 좀 보세요. 얼굴 쭉 보시고 허리 펴시고 저 좀 봅니다. 이걸 뭐라고 표현했냐하면은 사람한테는 +에너지가 있고 -에너지가 있거든요. 사람이 움직이는 힘에는 머물러 있지는 않지만, 항상 존재해 있어요. 그래서 항상 들어오고 항상 나가죠. 그래서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우리 스스로의 결정이죠. 그런데 할 수만 있으면 +에너지를 내보내셔야 돼. +에너지를 방출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이 번영하게 돼요. 그러고 이 사람이 반드시 뭐죠? 좋은 일이 먼저 생겨요. 그러고 이 사람한테 건강한 일을 자기한테 주어져 줘요.
그걸 미묘하게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해서 그렇지 느끼지 못하고 감동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그게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좋은 것을 내보낼 수 있거나 좋은 것을 받아들이려면은 우리가 일진적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기도를 조금씩이라도 하시는 거에요. 하루에 5분 정도라도. 저 지장보살을 하루에 5분이라도 꼭 좀 사셔야 돼. 저 관세음보살이라도 꼭 마음으로 일러서 원동력을 가지고 하셔야 돼. 원을 가지셔야 돼. 그렇게 가지시면서 속으로 마음속으로 깊이 법문할 때마다 이거 외우거든요. 법문마다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래도 돌아서면 안 하시기 때문에 또 하는 거에요. 기가 막혀요.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속으로 뭐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이렇게 감사행을 같이 감사 명상을 같이 수행해 가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지극정성, 정성과 성실로 자기 스스로를 채워가는 한 5분이라도 채워가는 그만큼은 반드시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거해 줘요. 자기한테서. 사람한테 +에너지도 있고 -에너지도 있다고 그랬죠. 그런데 부정적 에너지를 -에너지라고 말하면 긍정적 에너지를 가질 필요가 있죠. 그런데 그것을 채워주는 + 충전을 해주는 것이 우리가 염불수행이라는 거에요. 그 염불수행이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 안에 밝은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째 나는 나 혼자 이렇게 악을 쓰는지 몰라.^^ 같이 악을 써야 되는데. 그렇죠. 그죠.
그러니까 잘 들여다보셔야 돼. 에너지가 나가거나 말거나 내비두고 자기한테 충분히 +에너지를 방출할 뿐만 아니라 자기한테 충전을 자꾸 시켜줘야 돼. 인생사. 반드시 충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충전하는 방법이 하나는 나무아미타불. 이건 불설아미타불을 지금 설명 드리니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건봉사가 나무아미타불 근본 도량이기 때문에 같이 일러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제가 같이 사니까. 그런데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염송을 하셔야 돼. 그다음에 명상을 하셔야 돼.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생각은 늘 감사해야 돼. 고마워해야 돼요. 그렇죠. 그죠. 그러고 내가 번영하고 있는 생명이라는 거에요. 내가 지금 좋아지고 있는 생명이라는 명상을 계속 반복적으로 해주셔야 돼. 요걸 잘 안 하시거든요.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라는 지금 현재를 자길 봐야 돼. 그럼 나는 병원에 누워있는데요, 아픈데요, 괴로운데요, 힘든데요. 힘든데요. 그건 전부 자기 생각이구요. 그렇게 말하는 그 자체에도 무자성이에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존재성이 없는 거에요. 그건 버리셔야 돼. 깨뜨려 버리셔야 돼. 그러고 나서 딱 돌아서서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좋은 기쁨과 좋은 즐거움과 좋은 행복감을 스스로 자꾸 불러들이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기뻐해야 되요. 감사할 줄 알아야 되고, 기뻐할 줄 알아야 되고, 또 뭐죠? 즐겁게 생각하셔야 돼. 이건 누누이 강조해도 다르지 않은 것 중의 하나거든요. 그러면 자기한테 아니다. 못한다. 싫다. 부족하다. 이게 저 뭐죠? 안 채워진다.
돈이 없다. 이런 말 자체가 집안에서 없어지기 시작해요. 어떻게라도 공급을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으시거든요. 그게 <불설아미타경>의 가르침의 내용이죠. 그죠. 그러면 봐요. 그죠. 언젠가 한 번씩 마음속에 이미지화를 좀 생각하셔야 돼요. 좋은 집에 살고 싶으면 좋은 집에. 내가 지금 양철집이라도 셋집이라도 좋은 집에서, 좋은 강아지 키우고, 아주 좋은 정원, 좋은 것을 늘 꿈을 꾸셔야 돼. 좋은 생각을 하셔야 돼.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해서 움직여서 꿈꾸는 생각만이라도 하셔야 돼.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두 가지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두셔야 돼요. 좋은 에너지를 방사하려면 무조건 감사해야 돼.
그리고 그 언어가 따뜻해야 되요. 그리고 그 행동이 조금은 친절해 져야 되요. 그런 모양새로 하나둘씩 하나둘씩 자기 삶에 대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채워 가면은 아까 말씀드렸죠. 천상세계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극락세계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극락세계에 이른 다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거꾸로 다시 말하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극락세계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요런 과정을 통해서 세 가지만은 꼭 좀 외워야 될 것이 있어요. 아까 먼저 외우신 세 가지하고 지금 좀 더 세 개만 더 외웁니다. 그죠. 여기 좀 보세요. 내가 지금 일하고 있고,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에는 모든 에너지가 필요하죠. 이것은 뭐죠? 양적 에너지라고 그러거든요.
양적 에너지는 내가 살아있는 필수적인 것을 양적 에너지라고 그러거든요. 곡식처럼 양적인 것이 에너지가 있어요. 그 에너지를 불교식 개념으로 이것을 옮기면 우리 모두가 다 뭐죠? 불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아니신 거 같은데도 우리의 오관의 모양의 다 불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셔야 됩니다. 불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그 얼굴의 표정은 행복하고 보람된 표정을 늘 유지하려고 노력을 해주셔야 돼. 그렇죠. 그죠. 그러니까 저처럼 이렇게 하셔야 돼^^ 눈은 싹 웃고, 입은 좀 벌리고. 싹 웃어야 돼. 그렇죠. 그죠. 이렇게 꾸준히 하나둘씩 하고 생활 속에서 절대적으로 실천해야 될게 뭐냐 하면 기도생활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번영하고 반드시 뭐죠? 좋아지게 하고, 반드시 건강하게 일을 해나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그런 생명체가 되려면 뭐라고 해야 되요? 중요하게 우리는 바꿔서 생각을 하셔야 돼. 그러면 자세히 좀 보십시다. 아까 말씀드린 무자성이에요. 우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실체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은 다만 내가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은 자꾸 가난한 의식을 계속 현실의식에 집어넣기 때문에 내가 가난한 삶을 사는 거거든요. 재물의 결핍, 사랑의 결핍, 인과관계의 행복감의 결핍. 이런 것들이 전부 자기 자신 안에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누구를 탓하거나 누구를 핑계 대거나 누구를 원망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에요.
이것을 우리는 먼저 돌이켜서 참회할 필요가 있죠. 그죠. 그런데 놀라운 것이 석가세존 부처님 가르침을 옮겨서 설명 드리면 우리 자신 안에 저 무자성이라고 하는 자성이 없는 근본, 나라고 하는 것이 본래 없거든요. 아상인상중생상이 본래 없는 거거든요. 없는데 그것이 끊어지고 나면은 그 안에 뭐죠? 불성이라고 하는 안의 힘은 불성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럼 지금부터 그 세 가지의 언어를 지금 외웁니다. 그렇죠? 외우는데 뭐라고 그러냐 하면 불성의 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거를 우리는 뭐라고 말해요? 아까 말씀드렸죠. 불성의 힘은 곳 내 안에 내재되 있고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것을 그걸 뭐죠? 선의지라고 표현한 것과 동시에 +에너지라고 표현한다. 그렇죠. 그죠.
좋은 에너지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불교식 개념으로 옮기면 불성의 에너지다. 이렇게 표현해도 전혀 다르지 않으시죠? 예. 그렇게 됐고. 그래서 이 불성의 힘은 언제든지 갖다 써도 줄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절대 줄지 않습니다. 먼저도 한번 말씀을 드렸어요. 절대 줄지 않습니다. 이거는 화엄경의 말씀으로 넘어가서, 먼저 믿는 마음, 신심을,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요것은 실천하시는 것이 먼저 필요해요. 절대 줄지 않습니다. 두 번째 더 이상 바닥이 없거나, 다 쓰고 나면 힘을 쓰고 나면 없다라고 하는 절대 줄어들지 않아요.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억해야 될 내용이 뭐냐 하면 이것은요, 쓰면 쓸수록 힘이 늘어난다는 거에요.
첫 번째 줄지 않는다. 두 번째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뭐냐 하면 이 힘은 어디에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다만 이 힘이 세 가지가 에너지가 세 가지로 정리가 된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여기 조금만 죄송합니다. 조금만 보겠습니다. 그 에너지라고 하는 것이 이거를 불교식으로 얘기하면은 불성의 힘이. 이게 어디에 있느냐 하면 아까 설명 드리는 나한테 있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내 안에 껍데기가 이게 뭐죠? 아상, 인상, 그다음에 수상, 이거는 <금강경>의 말씀이죠. 중생상, 이런 상이 전부 없어지고 난 다음에 이건 다 망상이거든요. 나라고 고집해봤자 저게 없어요. 평생 싸우고 다퉈도 남는 게 있어요? 없어요. 죽는 순간까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전에 더 비참해지고 더 괴로워지고 더 힘들어지고 더 악한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그 마음을 돌이켜야 되요. 그 의식을 돌이켜서 자기 안에 깃들어있는 불성의 힘을 믿으셔야 돼요. 그런데 이 불성은 뭐라고 한다고요? 줄지 않는다. 그렇죠. 그죠. 써도 써도 모자라지 않는다. 으음. 모자라지 않는다. 써도 써도 계속 늘어난다는 거에요. 늘어난다.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늘어난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것은 언제든지 현재라는 거에요. 언제든지 이 불성의 힘은 현재에 있다는 거에요. 요거 세 가지를 외우셔야 되요. 나가면 안 된다. 여기 좀 보세요. 불성의 힘이 여러분들 안에 깃들어 있어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어려서부터 스님이 됐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고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을 드리고, 이건 틀림없이 그냥 진리일 뿐이에요. 이것은 내가 무너져도 진리이고, 내가 살아도 진리이고, 죽어도 진리에요. 다만 그것을 엿보고 접견하는 거죠. 절대 육체가 늙고 병들고 죽고 난 다음에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불성이 깨우쳐지고 나에서 결부가 딱 인연되는 수간부터 그 힘은 절대적으로 줄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 힘을 쓰셔야 되요. 그다음에 모자라지 않는다는 거에요. 계속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는 거에요. 육체에너지는 좀 한계가 있잖아요. 그죠? 기계의 힘은 한계가 있죠. 이 힘은 절대적으로 천지 만물 우주의 한꺼번에 전부 움직여지는 공급에서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건 언제라고요? 현재, 누가 있을 때? 내가 있을 때. 내 의식이 있을 때 전부 작용하고 있는 거요. 이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는 이런 공급이 현재도 언제든지 어떻게 한다고요? 공급해주고 있다는 거에요. 무한공급이에요. 뭐라고 말한다고요? 이 공급이 한량이 없다는 거에요. 무한하다. 그래서 그것을 <불설아미타경>에서 아주 단적으로 설명해준 게 뭐죠? 무량수, 무량광이에요. 딱 답이 나온 거에요. 무량수 무량광이에요. 여러분들이 그냥 단순한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실로는 뭐라고요? 무량수에요. 한량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이 거기 있다는 거에요. 그죠.
빛 같은 존재로 무궁무진하게 영원불멸의 존재가 거기 깃들어 계시다는 뜻입니다. 일차적으로 그렇게 표현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그러시죠? 그죠? 이게 어려운 거 같은데도 절대적으로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저한테 도대체 뭔 얘긴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언젠가는 육체는 人命終時인명종시 하거든요. 그때 제 생각을 할 거에요. 그때 저 뚱땡이 스님이 뭔 얘기를 했는지 그때 외쳐도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스스로에게 감사를 불러들이세요. 지금 번영하고 있는 존재라고 믿으셔야 돼. 내가 지금 좋아져 가는 생명이지 퇴보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누구든지. 다만 어리석게도 그 벽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그 속에서 못 벗어나는 게 중생심이거든요.
자기 육체가 오래간다는 법 없습니다. 자기 내세워도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자비를 베푸세요. 인아를 베푸세요. 인자한 자기를 베푸세요. 사랑을 베푸세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저 불보살님의 가호지묘력이 항상 언제라고요? 현재에 있어요. 현재에. 요거 잊어버리지 마셔야 돼. 먼저 거 요거 세 개하고 반드시 지금 번영하고 있는 거에요. 좋아지고 있고. 건강한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어요. 뭐라고 불러야 되요. 절대 불성의 힘은 줄지 않아요. 모자라지 않아요. 늘어난단 말이에요. 늘상 드러난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 힘은 언제든지 현재성이라는 거에요. 지금 우리가 갖다 쓰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참여해주셔서 불자님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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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꽃香이 흘러가는 길목 원문보기 글쓴이: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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