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딜러 대기실 (Edison, New jersey)
사라진 백수 정신
주행거리 5,000마일(8,000km) 단위로 자동차 정기 점검받으러 딜러를 방문한다. 한 번 방문하면 엔진 오일 교체는 기본이고 정기적으로 손볼 것은 손 보고 특별히 기술자가 권하는 대로 이것저것 수리하면 보통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더 걸리면 무료로 대체 차량을 빌려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거기서 기다리는 편이다.
몸을 푹 감싸주는 가죽 소파와 여러 개의 테이블이 준비된 대기실은 분위기도 쾌적하지만, 대형 텔레비전도 있고 무선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다. 컵케이크와 샌드위치 그리고 물, 커피 그리고 각종 탄산음료가 준비되어 있어서 요기도 할 수 있는데, 몇 가지 종류의 커피는 스타벅스 커피 못지 않게 맛있다. 기다리는 동안에 가져간 한국 신문이나 책도 보고 태블릿으로 시간을 보내면 자동차 점검이라는 별로 재미없는 볼일도 그리 지루한 줄 모르고 처리하게 된다.
교체할 때가 되지 않은 부품을 미리 손보기도 하겠지만,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은 주행 중에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면 그런 낭패가 없으니까 예방 차원에서 자동차에 보약 먹이는 셈 치고 딜러가 권하는 대로 따른다. 그러다 보니 방문할 때마다 적지 않은 돈을 쓰게 된다.
석 달쯤 전에 인터넷으로 정기 점검을 위한 방문 예약을 하러 딜러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우연히 타이어 세 짝을 교체하면 한 짝을 $1에 교체해 주겠다는 쿠폰이 눈에 띄었다. 미슐랭 타이어 한 짝이 $300이니 네 짝이면 $1,200인데 $901에 해 준다니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니 이런저런 쿠폰 여러 가지가 보였다. 보이는 대로 프린트해서 일차 견적이 나왔을 때 담당자에게 제시했더니 $600 가까이 할인이 된다고 했다.
그런 경험을 했기에 이번에는 딜러를 방문하기 전에 아예 눈에 불을 켜고 쿠폰부터 찾아서 프린트했다. 얼마 절약했느냐고? $600 정도 되는 수리비 중에서 $280을 절약했다. 게다가 점심도 공짜로 때웠겠다. 커피와 음료수도 공짜로 마셨으니 $300 정도 아낀 셈 치자. 참, 담당자가 눈을 찡긋하며 공짜로 갈아 준 자동차 키 배터리값 $5도 더해야지.
나는 평소에 신문에 나는 세일이나 판매업자가 가끔 보내주는 할인 쿠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쿠폰을 챙기는 아내에게 “그까짓 거 몇 푼이나 아낀다고. 장사하는 사람도 먹고살아야지 뭐 그리 야박하게 사느냐.”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나 같은 백수는 하찮은 물건을 몇 푼 싸게 사려고 잔머리를 굴리느니 아예 돈을 쓰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백수 정신’을 아내에게 강요하던 터였다.
그런데 두어 차례 쿠폰으로 자동차 수리비를 대폭 절약하고 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딜러가 달라는 대로 꼬박꼬박 바친 돈이 얼마나 될까? 쿠폰을 열심히 챙겼더라면 제법 많은 돈을 절약했을 텐데. 집으로 돌아오며 이번에 절약한 금액을 생각하니 적지 않은 수리비를 지출하고도 돈을 번 듯한 착각에 빠져서 흐뭇해하고 있는데 운전하던 아내가 부스럭거리더니 베이글을 꺼내서 먹으라며 내민다. 가방에 물도 있고, 콜라와 스프라이트도 있으니 골라서 마시라는 말을 덧붙이며.
평소에 먹고 마시던 것이 아니라서 어디서 난 물건인지 의아해하는데 아내가 자동차 딜러에서 집어 온 것이란다. 훔쳐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찜찜해서 한마디 했다. “이거 원, 다 털어 온 거 아니야?”
나는 쿠폰에 눈이 뒤집히고 아내는 몇 푼 안 되는 물건을 탐냈으니 빛나는 ‘백수 정신’은 어디로 간 거야? ‘선비 정신’에 버금간다고 자부하던 그 정신 말이다.
(2014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