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 서경희선배의 "비밀번호" 속 작품 "법정스님의 여인" 입니다.
법정스님의 여인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8시간 반을 날아 인도의 뉴델리공항에 닿았다. 약간 후텁지근함을 느끼며 입고 간 파카를 벗었다.
작고 거무스름한 인도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낯선 세계를 알리는데, 'Incredible India'라는 공항표어가 강하게 나의 첫눈을 자극한다. 맞아, 바로 저 'Incredible'의 끌림 때문에 우리는 일찍이 동방의 등불이었던 작은 나라 코리아에서 설렘을 안고 날아왔지.
손목시계의 바늘을 3시간 30분 되돌려 늦은 밤을 초저녁으로 즐기며, 드디어 인도의 땅에 편입된다. 나는 앞으로 이 3시간 30분을 밑천삼아 알 수 없는 나라, 저 신비로운 인도의 한모습을 겉핥기나마 음미하고 갈 것이다. 사실 외국여행에서의 이 시차라는 것에 나는 감미로움을 느낀다. 떠나온 내 자리를 감쪽같이 잊게 해주는 묘약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여행에서 그 나라에 대한 첫 느낌은 뭐니뭐니해도 기후와 사람이다. 맨 처음 피부에 와 닿고,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기후와 사람은 떼려야 뗄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운 나라 인도는 각 종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확하게 사람들의 피부가 검다. 그렇다고 완전히 검은 니그로도 아니고 살포시 가뭇한 피부가 야릇한 매력을 주며 'Incredible'을 느끼게 한다.
한 종족의 외양은 대체로 기후와 토양, 물 등의 천혜의 조건에 절대적 영향을 받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종족과의 교합이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고유의 모양이 형성될 것이다. 이런 상식을 바탕으로 인도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어디서 저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얼굴이 왔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어진다. 내가 문화인류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없음에 목마름을 느낀다. 서양사람들이 가지는 뚜렷한 윤곽에 동양적 아스라함이 멀리서 스며 나오는 절묘한 얼굴 분위기가 내겐 내내 'Incredible India'의 백미였다.
인도는 광활한 야만의 대지였다.
핵무기 등 첨단기술에 앞서가고 세계적인 부호가 많이 있다고는 하나, 절대빈곤층이 너무 두꺼워 기지개를 펴기에는 요원하고 둔중해 보였다. 우리의 50~60년대 가난을 못 벗어난 초라함과 지저분함이 어디를 가도 자욱한 먼지와 함께 대지를 떠돌고 있었다. 더구나 흔한 물마저 귀하여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개념조차 없는 일처럼 보였다. 더럽다는 생각은 우리의 치우친 생각일 뿐이다. 시골사람들은 움막 비슷한 곳에서 짐승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맨발로 살아가고 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불가촉천민들은 여행객들에게 "헬로 루피(1루피=30원)"를 외치며 목숨을 건 구걸을 한다. 그들의 구걸은 당당한 비즈니스로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적선의 기회를 제공한 대가를 바라는 태도이다. 그러나 검은 짐승무리처럼 줄지어 앉아 루피를 외치는 광경은 가여움이 아니라 섬뜩함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보았다.
저 야만의 모습 속에 감춰진 수려한 얼굴을, 특히 어린아이와 여성이 매혹적이다. 맨발의 야생마가 되어 나풀거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나는 여기가 에덴동산이 아닐까 잠시 착각을 하기도 했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을 찾아 국경을 넘어 네팔에 갔다. 국경이라야 도로에 표지판 하나로 구분하는 정도이지만 나는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정확하게 저쪽 도로에는 우리를 닮은 몽골리언 네팔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확실한 자연의 국경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친근하나 평범하고 밋밋하여 싱겁기까지 했다. 순간 보기 싫기도 했다.
사리(sari)를 나부끼며 맨발로 걸어가는 검은 인도여인은 초라하나 아름답다. 제대로 차려입은 도시의 여인은 한층 더 아름답다. 저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 어디서 온 것일까? 공항에서 말한 'Incredible'이 확실히 저것일까? 그 옛날 가야의 수로왕을 사로잡은 아유타 공주 허황옥에게도 'Incredible'이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의 보리수를 찾아갔을때, 나는 드디어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세계각국의 여행객이 참배하는 부산스러움 가운데, 가뭇하고 수려한 젊은 인도여인이 눈을 감고 명상삼매에 빠져 있었다. 적멸의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아! 바로 저 여인이 언젠가 법정스님이 인도여행을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에 잠시 신분을 잊고 돌아보았다는, 바로 그 여인인가? 나는 그 신비스러운 법정스님의 여인을 환상에 젖어 바라보고 있었다.
첫댓글 수필가 서경희동문의 수필집 두 권을 읽었습니다.
이 되었습니다.
올린 글도 물론 읽었죠.
야무진 인상처럼 글도 빈틈없이 꽉 짜여 읽는이의 공감과 감동을 쉽게 이끌어냅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수필강의를 듣고 있으니 나에겐 스승입니다.
글쓰기에 기본이 없어 배움의 갈증을 느끼던 차에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단어 하나 토씨에 이르기까지 문학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우기에는 너무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지 이제 두
큰 발전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배우는 재미에 빠져있습니다.
서경희 선배 수필집을 보다가 때에 맞는 작품이 있길래 올려봤어요.
김옥덕 선배님 !
수필강의를 들으며, 문학 공부에 빠져있는 모습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선배님 글 올라올 때 마다, 참 글 잘 쓰신다 생각 했는데, 또 여기에 배움으로 더해진다면...
더욱더 기대가 되고 기다려집니다.
많이많이 올려주셔서 경북여고 카페가 풍성하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