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절에 1] 정병경.
ㅡ강릉으로ㅡ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올들어 세 번 째 단체 행사에 참가한다.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는 광주문화원 회원들과 문화 유적지 답사 기행으로 강릉 단오제 행사에 함께 나서니 감회롭다. 90여 명이 버스 세 대에 나누어 타고 나선다.
광주廣州와 강릉江陵은 허난설헌으로 인해 인연이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광주廣州 터미널 앞에서 08시에 출발했는데 출근 시간과 맞물려 반 시간 동안 시내를 벗어나지 못한다.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횡성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달린다. 산천은 온통 푸른색이어서 눈이 힐링한다. 공기가 상큼해 머리가 맑아진다.
신사임당의 체취가 서린 오죽헌烏竹軒에 도착하니 방문객들로 붐빈다. 600년 터줏대감인 배롱나무가 주인공의 삶을 이어가는 학자 나무다. 고고하다.
산수도와 초충도, 자리도를 떠올려본다. 자연과의 둘이 아님을 보여준다. 새삼 여류 예술가의 마음을 읽게 된다. 현재 유통되는 5만원 지폐의 초상에서도 단아함을 느낀다.
남편 이원수李元秀 사이에 출생한 율곡은 조선 중기의 뛰어난 학자다. 흑룡 태몽 꿈을 꾼 후 낳았다고 해서 두어칸 산실은 몽룡실이라 부른다. 모자母子가 태어난 오죽헌에서 새삼 아늑함과 정스러움을 느낀다. 용의 기상을 품은 학자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단오날 초당 두부 거리는 식객들로 붐빈다. 맛집 '맷돌 순두부집'에서 오찬이다. 일행과 정을 나누는 기회의 자리다. 초당은 허엽의 호이다. 강릉은 예부터 문화 예술을 승화한 도시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ㅡ허난설헌 생가ㅡ
조선의 여류 문장가인 허난설헌 생가로 향한다. 불운하게 살다 떠난 난설헌 가족 5문장가 시비가 고택 입구에 서있다(허엽,허성,허봉,허난설헌,허균).
난설헌蘭雪軒은 남편인 김성립과의 인연이 길지 못함에 아쉬운 마음이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다.' 담 너머에 쉬나무와 회화나무가 사랑의 열정이 이렇다는 걸 보여준다. 종류가 서로 다른 나무의 연리지는 담장 안으로 기울어 있다.
허초희許楚姬는 남들처럼 부부의 삶을 이어가지 못한채 27년만에 이승과 이별한다. 가족과 함께 광주廣州 지월리에 잠들어 있다.
그는 초희 외에도 경번景樊이라는 자字가 있다. 먼저 떠난 자신의 아들과 딸을 가슴에 묻고 간 여인이다. 슬픈 운명의 삶은 시로 남겨져 후대에 읽혀진다. 동생 허균이 누나의 시를 모아 엮어 문집은 더욱 빛난다.
서자 출신 이달李達로부터 시詩를 익힌 솜씨다.
문장에 뛰어난 오빠와 동생과 자신까지 불행한 삶의 끝을 맺는다. 시적 감성이 뛰어난 큰오빠 허성(이복)은 이조와 예조, 병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광주부에서 은거하다 병사한다.
동복인 오빠 허봉은 반역죄로 유배 후 술로 세월을 보내다 38세에 세상을 마감한다.
동생 허균은 당파싸움에 휘말려 능지처참된다. 허난설헌은 삼남 삼녀 중 셋째 딸이다. 아버지 허엽은 경주부윤을 지낸 식견이 뛰어난 인물이다. 팔자가 평범에도 못미치는 운명이다. 천강대임天降大任으로 생각한다. 생전의 이름보다 후대에 명성을 날리는 인물이다.
ㅡ단오제 행사장ㅡ
예부터 단오날은 행사가 다양하다. 농촌에서는 모내기 끝내고 잠시 한가한 시간에 이웃과 즐겁게 지내는 휴식 시간이다.
비단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으면 악귀가 물러간다고 한다. 이를 애호艾虎라고 한다.
부채는 합죽선을 비롯해 다양한 모양과 여러가지 색깔로 만든다. 창포菖蒲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품바타령이 남대천을 울린다. 장사씨름과 굿판이 벌어진다. 만물상과 먹거리 행사로 저자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다.
단오제는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강릉의 단오제 행사를 보기 위해 각처에서 모인다.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행사다. 그동안 코로나로 접힌 행사가 다시 열리니 찾는 이들은 흥이 솟는다. 모처럼 무형문화재들이 기량을 펼치는 행사여서 뜻깊다.
ㅡ문화ㅡ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 때 26세의 굴원(BC342~BC278)은 박학다식한 관료다. 부패한 귀족과 간신들로 인해 정국이 혼란에 빠진다. 굴원이 임금께 충언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유배시킨다.
초나라는 결국 진나라에 함락되고 회왕은 객사한다. 이를 알게 된 굴원은 혼탁한 세상과 타협을 거부한다. 한탄의 시 어부사漁父辭를 남기고 멱라강에 몸을 던진다.
"온 세상 혼탁하나
나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
이런 까닭에
내가 추방당했다."
이날이 음력 5월 5일이다. 충직하고 억울한 굴원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주는데, 이날이 단오절이다. 올해는 돼지날(丁亥日)이다.
남대천의 길게 이어진 행사장을 한바퀴 돌아본다. 생필품의 쓰임이 많고 다양함을 새삼 알게 된다. 인산인해 장터에서 무용지용의 가치를 다시 새겨본다. 선과 악, 약과 독은 동행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교훈으로 남는다.
강릉대에서 후학을 길러낸 정박사와 나는 남은 일정 관계로 1박 예정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노을진 길 따라 멀어져간다.
2022.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