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금성』 3호, 1924. 5)
[작품해설]
이 시는 우리나라 근대시사에서 가장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 또는 1920년대 모더니스트로 불리는 이장희의 대표작으로 1920년대 초 한국 감각시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주관의 범람과 감상의 과잉으로 비판받는 『백조』 동인들과는 달리 자연발생적 감정을 억제하고, 주지적 성향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제시하여 당시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시는 시인의 그러한 성향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으로, 시인 자신의 순수 지각(純粹知覺)에 의한 봄의 심상을 서구적 시어인 고양이와 결합시켜 관능적 표현을 이루고 있다. 이 시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을 따라 객관적 대상(고양이의 털→눈→입술→수염)과 주관적 정서(봄의 향기→불길→봄→졸음→생기)가 상호 작용하면서 통합되는 탁월한 연상 작용에 의해 전개된다. 1,2연과 3,4연은 문장 구조뿐 아니라 율격 구조까지도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1연에서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이라는 촉각적 이미지를 ‘고운 봄의 향기’라는 후각적 이미지와 결합시켜 고양이의 털에서 봄기운을 느끼도록 표현한다. 2연에서는 고양이의 눈과 봄의 햇살을 시각적 이미지로 제시하여 ‘고양이의 눈은 호동그란 금방울 같고’, 다시 그것은 ‘미친 봄의 불길’로 전이(轉移)된다. 3연에서는 봄날 양지쪽에 엎드려 졸고 있는 고양이의 입술 위에서 발견한 봄의 평화로운 정경을 ‘떠도는 봄 졸음’이라는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4연에서는 고양이의 수염에 어린아이의 재롱처럼 ‘뛰노는 봄의 생기’를 묘사함으로써 3연의 ‘봄 졸음’과는 대조적으로 일종의 생동감이 느껴지게 한다.
또한 1, 3연은 ‘꽃가루’ · ‘부드러운’ · ‘고운’ · ‘향기’ · ‘고요히’ · ‘포근한’ · ‘봄 졸음’ 등의 정태적(靜態的) 시어로 곱고 부드러운 여성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편, 2,4연은 ‘호동그란’ · ‘미친’ · ‘불길’ · ‘날카롭게’ · ‘쭉 뻗은’ · ‘수염’ · ‘푸른’ · ‘생기’ 등의 동태적(動態的) 시어를 사용하여 남성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튼튼한 구조없이 고양이에게서 느껴지는 봄의 서정만을 마구 나열해 놓은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견고한 구조 위에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당시시단의 경향과 비교해 볼 때, 고양이를 통해 봄을 드러내는 뛰어난 연상 능력과 완벽한 구조적 통일성은 인정되지만, 독자의 내면을 울리는 감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본질적 한계를 드러낸다.
[작가소개]
이장희(李章熙)
본명 : 이장희(李樟熙)
별칭 : 고월(古月)
1900년 대구 출생
1917년 일본 교토중학 졸업
1924년 시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실바람 지나간 뒤」를 『금성』 3호에 발표하며 등단
1929년 음독 자살
시집 : 『상화와 고월』(1951)
첫댓글 봄과 고양이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고 찬바람 맞으며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