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에 취해서 성모님을 잊을까 두려웠습니다
봄에 피는 꽃은 나름 순서가 있지요.
제일 처음은 아무래도 얼음을 뚫고 올라오는 복수초꽃이겠고요. 그 다음은 앙증맞은 손을 흔들며 와그르르 환성을 올리는 노오란 개나리 순서가 아닐까요?
그 순서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지요. 꽃들이 나비와 벌을 불러 모으려고 순서대로 꽃을 피운 다네요. 생각해보세요. 봄꽃이 한꺼번에 꽃을 피운다면 나비를 이끄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어느 꽃이 독차지해서 제 씨앗을, 널리 퍼뜨릴 테지요. 그럼 나머지 꽃들은 자기들 씨를 퍼뜨려 줄 나비하고 벌을 꼬이지 못한 탓으로 자기 새끼들 대가 끊어져 버릴 테니까.
저들끼리 의논을 한 끝에 차례대로 꽃을 피우기로 했답니다. 그래야 어느 꽃 하나라도 나비를 놓치지 않고 자기 종족을 번식 시킬 수 있잖겠습니까? 꽃들의 슬기가 놀랍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어떠합니까? 잘난 놈들만 다 차지하는 세상,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불러 마땅하지요.
아참 목련은 어떻고요?
우리 어매는 목련을 일러 새댁꽃이라했어요.
이파리 하나도 달리지 않은 빈 가지에다가 불쑥 한 웅큼 하얀 꽃잎을 내미는 꽃을 새댁꽃이라니요? 어머니 말씀이 이랬어요. 부억 설거지를 끝낸 새댁이 젖은 손을 행주에 닦으며 정지 문을 열고서 멀리 친정 쪽을 향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하더이다. 상상이 되시나요? 상상이 된다고요? 에그머니나~ 무슨 시집살이 그리 설움 받았다고 상상이 된답니까? 바람이 살랑 거리기만 해도 한웅큼 그렁그렁 달고 있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목련의 우아한 슬픈 눈빛을 볼 때마다 오랜 병고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어매가 생각나는 걸요.
언젠가 남태령 고개, 선바위역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었지요.
멀리 한가로운 마을이 눈에 잡힐 듯 보이는 가 했는데 와~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집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나뭇가지마다 하얀 학이 내려앉은 게 아니겠어요. 그랬어요, 천 마리 학들이 내려앉은 모습이 신선들이 사시는 마을인가 했지요. 드디어 제가 선계(仙界)에 들어온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고 봐도 그건 분명 학이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보니 그건 학이 아니라 목련이더이다. 그렇듯 하얀 목련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신선들이 사시는 마을에 어울리는 꽃이 아닐까요?
고고한 흰 목련이 질 때면 자색의 자목련이 꿈틀하고 북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임금님한테 인사하겠지요.
왜냐고요?
목련을 일러 상사화(想思花)라 합니다. 목련은 그렇대요. 꽃을 피어도 꼭 북향을 한다고. 옛날 선비들은 목련을 임금님한테 충성을 바치는 충절을 상징하는 꽃이라 귀하게 여겼답니다. 옛날에는 임금님이 계신 곳은 늘 북향이었답니다. 이모가 시집 가 때 보니 북향재배를 하더라고요. 옛날 혼인은 사모관대를 받쳐 입은 신랑이 조랑말을 타고 신부댁 마을에 들어서면 시작하지요. 신부가 입는 전통 혼례복 이름을 모르겠네요. 쪽두리에 연지곤지를 바른 신부하고 신랑이 마주 보며 결혼식이 진행 되는데 어느 순서인지 북향재배를 하더라고요. 혼인식에도 임금님께 절을 하는 걸 보면 임금님의 위세가 여간 등등한 게 아니었답니다. 그럼 진관외동에서 혼인을 할 때는 남향 재배를 했는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북향재배를 했을 걸요. 언제나 북쪽은 임금님이 계신 곳이라 여겼던 게 아닐까요.
흰 목련이 지고나면 자목련이 불콰해진 모습으로 고개를 내미는데
올해는 앞서거니, 뒷 서거니 차례도 없이 마구잡이로 얼굴을 내밀더이다. 신문에서는 자연계의 규율이 깨진 탓이라고 하더군요. 이것도 인간이 자연을 훼손한 죄 탓이라고 여기더군요.
목련이 뚝뚝 져버리는 이맘 때는
보는 거 보다 향기로 다가오는 라일락 차례가 아닐가요?
향기가 장난이 아닌게 바로 라일락입니다. 제가 즐겨 찾는 시크릿 가든에는 지금 철쭉, 산철쭉, 영산홍, 자산홍 같은 진달래과 꽃들이 한창입니다. 색깔도 여간 곱지 않아요. 같은 붉은 색깔인데도 다홍색, 선홍색에다가 피가 뚝뚝 흐를 것만 같은 진홍색이 빠질 수 있나요? 그 아름다운 꽃들이 하얀 산철쭉과 어울려 피는 모습이야말로 시크릿 가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뭐라해도 제겐 가장 예쁜 자태를 뽐내는 꽃은 살구하고 복사꽃이 군계일학이더군요.
그래요, 뭐니뭐니해도 향기로 다가오는 라일락을 빼고는 봄을 이야기할 순 없겠지요.
고수부지 테니스장 바로 담장 아래 한 무더기 군락을 이룬 연분홍 꽃이 뭔가해서 보았더니, 수수꽃다리라고 쓰여 있네요. '수수꽃이 달린 나무'라고 자꾸만 부르다가 보니 '수수꽃다리'로 이름이 정해졌다고 하네요. 물푸래과 꽃인 수수꽃다리가 바로 라일락의 한국 버전입니다.
오늘은 라일락 이야기를 할까 봐요.
라일락 꽃은 잎이 하트 모양입니다. 꽃은 보통 끝이 4개로 갈라져 있지만, 5개로 갈라져 있는 꽃도 있습니다.
운 좋게 5개로 갈라져 있는 꽃을 발견하게 된다면, 아무도 몰래 조용히 따서 삼켜버리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보라 빛 라일락의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 '첫사랑의 감동',
흰색은 '아름다운 맹세'랍니다.
넘 멋진 꽃말이 아닌가요?
제게는 세례 받던 날, 사무치는 마음으로 드린 아름다운 맹세가 되겠군요.
그대에게 라일락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