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물질 [2]
나는 엄마가 첫 항암치료를 받음 날 오후에 유진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 탈 때 미리 여자 화장실에 들러 최대한 단정하고 깔끔하게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거칠거칠한 종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런 뒤에 머리를 빗고 다시 화장을 했다. 아이라이너는 조심조심 최대한 가늘게 눈꼬리를 살짝 빼서 그렸다.
이어서 기내용 가방에서 롤 크리너를 꺼내 청바지에 대고 문지른 다음, 스웨터에 생긴 보풀을 일일이 손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주름을 마구 문질렀다 데이트하거나 구직면접을 보러 갈 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썼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여름방학이나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갈 때면 늘 그랬다. 1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가기 전에는 엄마가 보내준 카우보이 부츠를 꼼꼼하게 신경써서 닦았다.
같이 딸려 보내준 구두 왁스를 부드러운 천에 살짝 묻혀서 그걸로 구두 가죽을 살살 문질렀다. 그리고 나무 손잡이가 달린 솔로 빙글빙글 원을 그리듯 표면을 스치면서 광을 냈다. 비록 우리가 좋게 헤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 도 한 달에 한 번씩 큰 상자가 내게 날아와,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절대 멀리 떠나 있지 않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상자에는 달달한 쌀 강정이며 스물네 팩으로 낱개 포장된 김과 즉석밥, 새우깡과 빼빼로, 지긋지긋한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 몇 주는 버틸 수 있게 해줄 실라면컵이 넉넉이 들어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엄마는 의류 스팀기며 보풀 제거 롤, 비비 크림, 양말 세트까지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건 좋은 브랜들야"라는 설명을 굳이 덧붙여 보낸, 티제이맥스에서 세일할 때 구입한 치마도,카우보이 부츠는 부모님이 맥시코로 휴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와 음식과 함께 내게 부쳐준 것이었다.
그걸 신어보는데 웬일인지 가죽이 이미 부드럽게 길들어져 있었다. 알고보니 엄마가 그걸 일주일 동안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는 거다. 엄마는 양말을 두 겹 신은 발로 그걸 신고 매일 한 시간씩 걸어다니면서 뻣뻣한 신발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놓고, 자기 발바닥으로 평평한 밑창까지 모양을 잡아놓았다. 행여 내가 처음 그걸 신을 때 불편할까봐 말이다.
나는 기숙사방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혹시 뭐라고 잘못된 게 있는지 죽 훝어보았다. 적절한 복장인지, 실밥이 나와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점검하면서 엄마의 노련한 시선으로 나를 보려 애썼다. 특히 엄마가 잔소리하던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엄마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컷는지, 엄마 없이도 내가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 상봉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갈비를 재워놓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냉장고를 채우고,내가 제일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몇 주 전에 사놓고서 하루전에 꺼내놓았다. 좀더 익혀서 내가 도착해서 먹을 때 적당히 알싸한 맛이 나도록,
참기름, 물엿, 탄산소다에 재운 부드러운 갈비가 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내뿜는 달큼한 냄새가 부엌에 가들했다. 엄마는 신선한 상추를 깨끗히 씻어 내가 앉아 있는 거실 유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연이어 다른 반찬들도 가져다 놓았다. 먹기좋게 반으로 자른 계란장조림, 파와 참기름으로 무친 아삭한 콩나물, 국물이 넉넉한 된장찌개, 딱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