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천년미소^^
입학시기가 된 여덟 살 초입 무렵
큰 언니가 이름자 하나라도 쓸 줄 알고
학교에 가야하지 않겠냐며
기역 니은을 가르치고 있을 때,
아랫마을 숙모님께서 어머니를 찾아 오셨다
숙모님 댁에는 나 보다 한 살 어린 아들이 있는데
내가 학교에 간다니까
내년에 혼자 가기보다는 아무래도 같이 보내면
서로 의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엄마에게 의논 하러 오셨다
숙모님은 누구보다도 자식에겐 애정이 깊으시고
더군다나 귀한 장남인데 얼마나 고심을 하셨을까
엄마와 숙모님의 의기가 투합하고
밝은 마음이 되신 숙모님께서는
그래도 불안 하셔서
돌아가는 길에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민아 학교 오갈 때는 항상 둘이 손잡고 다녀야 한데이
그리고 너는 누나가 되니까 완이를 잘 보살펴야 한데이' 라고 하셨다
입학하는 날 가슴에 손수건을 매달고
며칠은 아버지 손을 잡고 다녔고
그 후로는 아버지께서도 바쁘셔서
나는 숙모님과 완이하고 같이 학교엘 갔다
그리고 또 며칠 후 혼자서 학교에 가는 날이 오자
숙모님께서는 엄마보다도 더 완곡한 당부를 하셨다
콧물이 나오면 소매 끝에 닦지 말고
꼭 손수건으로 닦고
완이하고는 절대로 떨어져 있지 말고 같이 다니라고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덕분인지
둘이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이좋은 오누이가 되어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심술궂은 또래들이 장난이나 싸움을 걸어 올 때면
하나같이 똘똘 뭉쳤다
아카시아 꽃이 개울둑을 따라 하얗게 벙그고
벌들이 잉잉거리며 꽃물 따기 바빠
이 꽃 저 꽃 옮겨 다닐 때
처음으로 받아쓰기 시험을 봤던가
향기가 하얗게 스며드는 개울 둑 그늘에서
50점과 30점의 받아쓰기 시험지를 펴 놓고
빨간 색연필로 그어진 사선을 보고
둘이는 이렇게 썼잖아 저렇게 썼잖아라며 마주보고 깔깔거렸다
받아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지는 그 둑 근처에만 오면 가방 속에서 꺼내져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를,
여름이면 하늘빛 물맛을,
가을이면 울음 우는 소달구지 소리를 맛보며
머리를 맞댄 수를 따라 시험지도 장수를 더해 갔다
2학년이 되었어도 변함 없었다
비록 같은 반은 되지 못했지만
학교를 파하면 운동장 놀이터를 벗 삼아 기다리고,
교실 앞에서도 기다리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칭찬과 숙모님의 대견해 하심과 안심하심으로
우리들은 더욱 꽁꽁 묶였다
3학년,
흐르는 세월 따라 키와 몸은 커 졌지만
그리고 숙모님의 관심도 점점 멀어졌지만
둘은 여전히 잡은 손 놓지 않았다
나뭇잎들이 목마름을 이기지 못해
상기된 채 나뒹굴 때쯤
계절을 편승해 완이도 가끔 기침을 했다
두꺼운 잠바 탓인지 완이는 자꾸만
어깨에 맨 가방을 추켜올리느라 걸음을 멈추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완이의 가방을 둘러맸지만
나 또한 내 가방과 겹쳐서 걷기가 영 불편했다
그래도 잡은 손은 놓지 않고 여느 때처럼 동요를 부르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야 쟤들 좀 봐 킥킥” “둘이 손을 꼭 잡고 가네 킥킥”
돌아보니 교복을 입은 언니들이
우리 둘을 가리키면서 낯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칭찬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웬지 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부끄러움 같은 것이 스치면서
손을 잡고 있으면 언니들이 오랫동안 바라보며
웃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잡은 완이 손을 뿌리치고 막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완이가 따라오면 더 빨리 뛰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낯선 사람이 없는,
즉 완이가 우리 집에 올 때나 내가 완이의 집에 갈 때 외에는
함께 있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다
물론 학교에 갈 때도 사람들이 조금만 쳐다본다 싶으면
슬쩍 손을 놓아버리곤 했다
나의 변화에 완이는 때를 쓰며 울기도 하고
숙모님께서도 나를 달래 보기도 하시고 노하기도 하셨지만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같이 가자고 울면서 따라오던 완
짜증내며 매정스럽게 너 혼자 가라고 했던 나
그때 그 일, 왜 그랬는지 완이는 지금쯤은 알까?
어른이 되어서 가끔씩 만나지는 날이 오면
마지막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 완이에게 영 미안해지고
숙모님께서 잘 보살펴야 한다는 그 말씀이 세뇌가 되었는지
동창회가면 혼자된 완이가 안쓰러워 나는 남의 둥지에 알을 까고
멀리서 노심초사 지켜보는 뻐꾸기가 된다
첫댓글 미소언니 어릴때 모습이 상상이 가네요..
휴일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ㅎㅎ
화창한 날씨가 어딘가 나들이 다녀오면 좋겟다는
생각도 들고 미소언니처럼 초딩 봄날 추억도
살짝 꺼내보고 갑니당.
행복한 휴일 되셔요.ㅎ
유니코님 방가방가요*^&^*
아우님 주말 잘 보내신거죠?
언냐도 식목의 계절이라
어제는 마당에 묘목 좀 갖다 심었어요
그새 잡풀도 어찌나 많이 났던지
풀뽑을 때는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손목 주위가 다 욱씬~~~우 욱~~씬 하네요 ㅎ
초등시절은 어려우면 언제나 기댈수 있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아직까지도 고향만 생각하면
안정된 마음이 되나 봅니다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언냐의 마음속엔
아카시아 흐드러진 그 모습
야산에서 뛰놀던 천진난만한 그 모습만 잠겨 있어요
3월의 마지막 한주 활기차게 시작해요 코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