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계곡 탐방
간밤 숙소는 전기 판넬 열선이 지나는 곳은 등이 뜨거울 정도였다. 나는 잠들기 전 새벽 산행을 떠날 테니 나를 찾지 마십사고 미리 일러두었다. 아직 여명이 밝아오지 않은 새벽 다섯 시가 조금 지날 무렵 배낭에 챙겨 길을 떠났다. 비상식량으로 진주 여동생이 만들어 온 쑥덕을 몇 점 넣었다. 숙소에서 임도를 찾아 걸었다. 동짓달 열이레 달이 서녘 하늘에서 고맙게 길을 밝혀주었다.
생태수목원 방문자 센터까지는 어제 오후 산책로와 겹쳐 어둠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걸었다. 고산 산악지대엔 멧돼지 개체 수가 적은 편이라 걱정되지 않았다. 동절기엔 멧돼지들이 먹잇감이 많은 민가 근처로 내려오기 때문에 간간이 도심까지 멧돼지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산짐승보다 오히려 포수가 더 신경 쓰였다. 거창 일대는 올 겨울 수렵허가 구역이라 사냥꾼이 있다고 했다.
금원산은 네 갈레 등산 코스가 있는데 나는 3 코스를 택해 올랐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어둠이 조금씩 걷혀갔다. 길바닥엔 오래전 내린 눈이 덜 녹아 그대로 쌓여 있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낙엽활엽수림이 우거진 비탈을 오르자 잔설은 더 많았다. 산등선에 있는 정자에 이르렀을 때 동녘에선 노을이 붉어지더니만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일출 모습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정자에서 금원산 정상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장갑을 끼긴 해도 손이 시려올 정도로 기온이 차가웠다. 정상에 서니 사방 탁 트인 시야가 장관이었다. 저 멀리 천 개 봉우리의 왕인 지리산 천왕봉이 아스라이 노고단으로 길게 이어졌다. 뭉실뭉실 아침 운무가 동영상으로 피어올랐다. 지리산과 그 주변을 에워싼 여러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남덕유산과 북덕유산 향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동북으로는 가야산과 황매산이 드러났다. 정상 바위틈에서 배낭에 넣어온 쑥떡으로 요기를 했다. 새벽 산행을 떠났던지라 산에서는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왔던 길을 정자까지 되돌아와 기백산 방향 산등선을 탔다. 얼마간 가니 산등선에는 정자가 또 나왔다. 그곳에서부터 수망령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십 리가 넘는 길고 긴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함양 안의 용추계곡 꼭뒤였다. 거창 북상 내계로 넘는 고개가 수망령이었다. 나는 용추계곡으로 빠졌다. 좌우 울창한 숲에는 산양산 작목반에서 삼을 키웠다. 골짜기를 빠져나가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사평마을을 지날 때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분교 터가 나왔다. 그곳에 이르자 휴일을 맞아 산행을 나선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구름다리로 용추사로 건너갔다. 절간은 인적이 드물어 고즈넉했다. 절을 내려서니 웅장한 용추폭포가 실체를 드러냈다. 가을부터 비가 자주 내려 여름 못지않은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졌다. 폭포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물웅덩이였다. 폭포를 빠져나가니 폐사지 일주문이었다. 신라 적 창건된 장수사는 화재로 두 차례 소실 후 복원되었으나 근대에 아주 사라졌다.
한국전쟁으로 완전 불타고 일주문만 덩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너른 주차장엔 산악회원이 타고 온 관광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주차장에는 펜션과 가게가 있었다. 주인은 삭은 나무를 잘라 장작을 팼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안의로 다니는 마을버스 시각을 물었더니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닌다고 했다. 주차장이 종점으로 나를 태워갈 버스가 오기까지 곡차를 한 병 시켜 깍두기로 목을 축였다.
안의로 나가니 조카로부터 연락이 왔다. 간밤 숙소 일행들은 가조에서 온천욕을 끝내고 안의에서 점심을 들려고 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고 했다. 나는 그새 광풍루애 올라 산과 들을 바라보고 국가지정 문화재인 허삼둘 가옥을 둘러보았다. 안의는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이 현감을 지냈던 고을이기도 했다. 조카는 2박 3일 일정 마지막 대미를 안의에서 알려진 맛난 갈비찜으로 장식했다.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