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 노천명(盧天命)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기린 >
<기린>
- 정온
모가지가 길어서 온갖 꼴 다보는 짐승이여
평생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구나.
고혈압에 시달리는
지상최고 침묵의 신이여!
물을 마시기 위해
다리 찢기를 해야만 하는 너는
먼 과거 속 슬픈 신화를 만들어낸
애달픈 발레리나의 족속이었다 보다.
단 한 번 가까이서 보고 영원히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 속눈썹이 빗자루의 살처럼 길고 촘촘하고 쌍꺼풀이 짙은 눈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살짝 졸리는 듯한 눈이 쎅쉬하게 보였다.
기린이 사바나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동물의 왕 사자가 새끼기린에게 다가오자 어미가 흔한 돌멩이 차듯 니킥 하는 모습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바로 기린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과 공룡 아르젠티노 사우루스를 반반 섞은 모습이다. 상상조차 어려운 백악기 시대 인간이 없는 지상에서 군림하고 다녔을 것을 상상해 본다. 걸음걸음마다 자잘한 모래알들이 뒹굴고 나뭇잎들은 파르르 떨었을 것이다. 공룡의 멸종은 어쩌면 인간의 출현을 위해 준비된 행사였을지도 모른다. 한 종의 몰락이 다른 종의 길을 열어 주었다.
사자가 동물의 왕이라면 기린은 황제였다. 다른 작은 초식동물들이 기린옆에 장난감처럼 붙어서 살아가는 것은 자연계에서 신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처럼 치밀하고 계산적인 것이었다. 키가 크고 시력이 좋아 포식자를 빨리 발견한다. 기하학적인 무늬의 아름다운 담황색모피를 입고 공평하게 암수 모두 뿔이 있다. 뒷목엔 아름다운 갈기가 있다.
기린은 특이하게 동성애자들이 많다. 짝짓기 계절이 오면 수컷기린은 암컷기린의 소변을 맛봐 여성호르몬을 감지한다. 수컷들이 넥킹이라는 목을 부딪치는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암컷을 차지한다. 기린은 가장 조용한 동물이며 구애의 기침소리를 내거나 초저주파로 의사소통한다.
기린의 긴 목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다윈의 자연선택설 같은 진화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새로운 학설이 나왔다. '성선택'론이다. 암컷기린을 차지하기 위해 목싸움을 하다 길어졌다는 가설이다. 암컷기린은 그럼 왜 목이 긴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물 마시기 위해 길어졌다는 가설도 있다. 기린의 언어를 통역하는 AI가 나온다면 제일 먼저 물어봐야겠다.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인들도 기린처럼 목이 길어서 더 슬프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첫댓글 온이 글은 읽을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와.
남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엿보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