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이기는 네 말씀 (민 23:18~26)
18 발람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내게 자세히 들으라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3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24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6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이 시간에는 “저주를 이기는 네 말씀”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영육 간에 복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드신 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우리가 저주받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 죄 세상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생각까지도 거기 가세해서 우리의 복을 막으려고 합니다. 또 없을까요? 우리 원수의 나라들입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나라가 멸망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간첩을 보내고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사회의 요소요소 심지어 교회까지도 침투하여 활동한다고 합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 복 받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모압왕 발락은 당대에 유명한 복술가인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합니다. 복 받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길은 그들을 저주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발람으로 하여금 세 번이나 축복하게 하십니다. 여기에 저주를 이기는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주를 이기는 네 가지의 말씀이 무엇일까요?
1. 복의 백성임을 믿는 것입니다. 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복 주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어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저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마24:35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히6:17-18에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했습니다. 갈3:13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태평양에 사는 물고기가 물이 없어서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것처럼 우리는 복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복 받고 요셉처럼 우리가 가는 곳마다 관여하는 곳마다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약속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부르신 복의 사람이다. 나는 예수 안에서 복 받은 자다. 나에게서 저주는 사라질지어다. 복이 다가올지어다”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믿음에 서서 추호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롬4:19-22). 따라서 합니다. “나는 복의 사람이다. 나는 복둥이다.” 예수님이 복이므로 우리가 복둥이가 된 것입니다. 복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음이 바로 우리가 복 받는 첫째 비밀입니다.
2. 용서의 복음에 서는 것입니다. 21절에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하였습니다. 저주하려면 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허물을 찾으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허물과 반역을 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죄와 허물이 많습니까? 큰 사랑과 권능으로 인도하여 낸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기사와 이적을 그토록 보고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우상을 섬기고 반역하는 그들의 행위로 본다면 백 번이고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허물과 반역을 보지 않으시니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죄와 허물이 많아도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대신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는 누구도 정죄할 수 없고 저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피가 저주를 몰아냅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르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요. 먼저 심령이 저주를 받아 죽고 또 죽고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8:33-34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했습니다.
진정 용서의 복음을 믿는다면 자신부터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양털같이 되리라” 사43:25에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기억지 않으신다는데 왜 나를 용서 못합니까? 회개하기 전에도 중에도 후에도 보혈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거나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있다면 다 허무시기를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악한 감정이 있습니까? 나쁜 관계가 있습니까? 믿음 없는 말과 행동을 합니까? 마음에 염려 근심 우울 불신 실망 낙심 등이 있습니까? 혹은 하나님께 인색하고 후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마음에 조그만 한 것이 남아 있어도 멈춰버립니다. 내가 남을 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에게 서운한 감정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죄나 하나님을 멀리한 것은 물론 어둔 마음조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섬기지 않았는지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59:2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보물입니다. 은혜를 사모해도 자기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것은 먼저 영혼의 거울인 성경을 보지 않기 때문에, 다음에는 예언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입니다. 한국교회에 예언이 변질되거나 사라져서 교인들이 변화를 모릅니다. 우리 믿음을 세워주는 예언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21절에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중에 있도다” 하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 예배하며 살았습니다. 200만 명이 나라마다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에가 뽕잎을 먹어도 수가 많으니까 비 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소리가 얼마나 장관일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날마다 예배하니 어떻게 저주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교회가, 우리 대한민국이 복을 받으려면 예배가 식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희망은 예배와 기도에 있습니다. 약4:7-8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 저주를 이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사는 것입니다. 22절에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했고, 24절에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들소의 힘이 얼마나 센지 300kg가 넘는 사자를 하늘로 날려버립니다. 이처럼 능력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자처럼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체구가 큰 호랑이가 유리하지만 담대한 마음은 사자를 못 따라간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덩치가 커도 사자가 곁에 있으면 불안해서 안절부절하지만 사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담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환경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물리치고 “복은 올지어다.”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난은 물러갈지어다.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어려운 일은 물러갈지어다. 저주는 물러가라.”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히10:35에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 큰 산이 앞을 막아도, 홍해가 앞을 막아도,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해 지팡이로 가리키고 다 건너기까지 섰던 것처럼, 요단강을 건널 때도 하나님의 법궤가 강 가운데 서서 다 건너기까지 선 것처럼 끝까지 담대해야 합니다. 기적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담대함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담대하셨는데 우리도 담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저주하려는 세력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한 우리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온전한 믿음에 서서 예수 안에서 주신 복과 용서의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 우리의 문제점을 진실로 회개하고, 날마다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사자와 같이 담대하여 저주를 물리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