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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헌에서 마음을 고요히 다잡는다.
할아버지가 거쳐하는 사랑채 문 위에 <深根枝茂(심근지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뿌리를 알고, 孝로써 仁과 義의 근본인 마음인과 심성인으로
仁義禮智信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존재로
禮義廉恥를 지키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라
우리집 대대로 내려 오는 가르침의 글
時行時止(시행시지) 先宜謹(선의근) 愼其獨
惑達惑窮(혹달혹근) 莫背思(막배사) 思無邪
榮枯盛衰(영고성쇠) 無定路(무정로) 毋自欺 言忠信, 行篤敬, 篤行之
盡隨順緣(진수순연) 復根源(복근원) 愼其獨 止於至善
(先宜謹 신중하고 사려 깊게 행하라.
지극함에 이르기 위해 三思一言, 三思一行 신중하라
늘 신중하며 진실하고, 정성을 다하며 겸손하라
先宜謹(선의근) 늘 신중하며 진실하고, 정성을 다하며 겸손하라
莫背思(막배사) 사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無定路(무정로) 삶에 혼을 담아 열과 성으로 최선을 다하라
復根源(복근원) 평생 선하고 인자하게 살며 독실하게 행하라
할아버지의 사랑은 가르침의 도원이었다
23대 수열공은 동지중추부사로부터 이어온 학문의 도원이다
27대 태상공(조부)는 천자문을 가르쳐주고
28대 인영공(해출 백부)은 일제 강점기 나고야에 가서 광산 서기로
신학문을 받다 드려 동생 김태운 목사를 기르고, 신농사법을 가르치고,
주민을 개몽하며 동장을 15년간 지내면서 수박농사, 사과 농사를 가르쳐
부촌으로 거듭나는 마을을 만드셨다
29대 정원(종형)은 나고야에서 2학년을 마치고 귀국하여
경북대학 사대 수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당시 경북여고에 발령
총각으로 근무 할 수 없었으나 근무하게 되었다
사랑에서 어릴 때 종형 정원과 함께 천자문을 익히며 사람 도리를 배웠다
10대(19대 원호 할배~29대 정원) 종손 正遠형은 장학관, 교장으로 교직 39년 봉직 홍조근정훈장
형수 정정희 교감은 교직 39년 봉직 홍조근정훈장
遠弼은 장학사, 교장으로 41.3년 봉직 황조근정훈장
대대로 내려오던 집을 2020 고쳐 짓고
가문이 자랑하는 학문숭상과 충과 효를 이어받으며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을 배우던 초가집 마루 서재
선비정신에 대해 공부를 하며 나의, 깨달음의 서재였다.
공부하던 사랑채 深根枝茂(심근지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형과 의논하여 釋庵軒(釋(깨달을 석)庵(초가집 암)軒(마루헌)
형님의 호를 따서 錦泉軒으로 정하여 문패를 달았다
아! 아! 錦泉軒
자부심과 긍지를 키운다.
천년의 이야기를 빼곡히 숨 쉬고 있다
배움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다
삶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가 빙그레 웃고 있다
어둠을 밝혀 아름다움을 만든다
추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錦泉軒은 깨달음의 도원요
배움의 도원이다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
할배는 정진하고 정진하여
자신을 빛내고, 가문을 빛내고, 나라를 빛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퇴계 선생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거경(居敬) 궁리(窮理)이며,
퇴계가문의 가훈인
毋不敬(모든 것을 공경하라.)
愼其獨(홀로 있어도 늘 조심하라.)
毋自欺(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思無邪(간사한 생각을 품지 말라)를 생활 실천 윤리로
공경스런 마음가짐과 단정하고 의젓한 얼굴빛과 고요하고 침착하고
성실한 언사(言辭)로 마음을 다잡고,
다산 선생의 四宜齋인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하자'는 생각과
윤동주 선생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시어처럼 살고자
錦泉軒에서 5천권의 책과 놀며 지혜의 도원이 되는 서재 이름을 錦泉軒이라 하였다.
450여년 전 학문의 전당 陶山書堂 玩樂齊에서 몸을 쉬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巖栖軒에서 책을 읽으니 기쁘고 즐겁다.
그래서 공자는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늘 노래하는 삶을 살았다.
도산서당 학동들의 거처인 隴雲精舍는 용의 꿈으로 희망과 꿈이 머무르는 집,
학동들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工자 모양의 집에 동쪽마루는 時習齊로 시시 때때로 익히고,
서쪽마루는 觀爛軒 세상을 바로보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책을 읽어 라고 가르친다.
학동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던 마루를 巖栖軒, 觀爛軒, 亦樂書齋(亦樂軒), 마음을 지켜라.
네 마음에서 생명의 샘이 되는 서재의 이름으로 錦泉軒이다.
도산서원의 巖栖軒, 觀爛軒, 亦樂書齋(亦樂軒),
다산 선생의 사의재(四宜齋)와 통한다.
250년전 조선의 대학자요. 선비인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 간 땅끝 마을 다산 초당이 있는 곳,
배 고달픈 귀양살이 주막의 초가 단칸방에 세상을 원망하며 시름하고 허송 세월을 보낼 때
늙은 주모가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그 베풂이 지극히 미미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흙의 자양분으로 길러내는 땅의 은공은 대단히 큽니다."
흠칫 놀란 다산은 흑산도에 귀양 가 있던 형 정약전에게 편지를 보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가
밥 파는 노파에게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늙은 주모의 말도 존중한 선비였다.
그는 주막집 단칸방을'사의재(四宜齋)'라 이름 짓고 네 가지 원칙을 정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하자'는 다짐이었다.
귀양살이에서 책상다리로 18년을 앉아 책을 읽고 쓰다가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뚫렸다는 '과골삼천'(踝骨三穿)은 선비가 할 일 이다.
선비로서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로 232권의 경집(經集)과 260여 권의
500여권의 문집을 들고 왔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제자 황상에게 勉學文으로 공부하는 방법은
秉心確(마음을 확고히 다잡는 것이다)이고,
공부는 三勤戒를(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주었다
황상은 勉學文을 받고
‘내게는 세가지 병통이 있다.
첫째는 너무 둔한[鈍] 것이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힌[滯체] 것이며,
셋째는 미욱하여 답답한[戛알] 것입니다.'
공부하는 방법은 秉心確으로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결점이다.
한 번 보기만 해도 척척 외우지만 깊은 뜻을 음미할 줄 모르는 것이요.
둘째는 글쓰는 재주가 좋은 결점이다.
어떤 주제건 빠른 시간 내에 작문하지만 부지불식간 경박해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결점이다. 한 마디만 들어도 금세 귀를 알아 듣지 만
여러 번 새기지 않으므로 깊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三勤戒로
파고 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근면은 마음가짐을 확고히 다잡는데 있다. 공부는 秉心確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三勤戒를(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지켜라.
다산 정약용의 강진 최초 유배지에서 낙망하고 있을 때,
술집 여주인이 다산의 인물이 범상하지 않음을 알고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기르셔야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술집의 방 한 칸을 내주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四宜齋를 만들었다.
四宜齋는
"생각은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하다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용모는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하다면 곧바로 엄숙함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하니 말이 많다면 그치도록 해야 한다.
행동(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하니 그렇지 못하면 곧바로 더디게 해야 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의롭게 생활하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산 선생의 결의와 간절함이 잘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문견지행(聞見知行)은 견문을 넓혀 아는 것을 말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자기 몫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남들이 다 행복해 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삶을 살고 싶어
'尊聞行知'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고 소통하며 실천하는 고매한 인격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학문의 길인 孤立無援, (학문의 길은 성실과 정진이다.)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정진하고 정진하며,
정성스럽고 참되게 사는 정직과 성실로 학문을 이루고자 한다.
지도자는 적어도 마음가짐이
‘受受而不濫, 出出而不空’, ‘大喝一聲, 更無別疑, 莫錯去, 莫錯去’(법장 스님의 열반송)처럼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도록 사랑의 샘물이 되고,
향기가 되어 생명의 빛을 비추며, 그르쳐 가지 않고, 그르쳐 가지 않아서
일평생 웃음 웃는 참되고 진실한 정직한 길을 가야한다.
삶은 교육이고 교육은 동정하고(恕), 품고(容), 베풀고(施), 기르고(育), 가르치고(敎),
기다리(待)는 올곧고, 바르게 사는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배우지 않으면 파생되는 폐단 6가지에 대해 말했다.
“인(仁)을 좋아하면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면 어리석어지고,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면 허황되며,
신의를 좋아하면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면 의로움을 해치고,
정직(正直)을 좋아하면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면 각박(刻薄)해지며,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면 난폭하고,
굳셈을 좋아하면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면 광적(狂的)이 되는 폐단이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함창 김문의 후예로 마음가짐을 바로하여 참된 삶을 살고자
배움에 최선을 다하는 후예가 되기를 바란다.
퇴계선생의 거경궁리정신으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毋不敬, 愼其獨, 毋自欺, 思無邪,
다산 선생의 四宜齋인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하자'는
삶의 자세를 생활 실천 윤리로 공경스런 마음가짐과 단정하고 의젓한 얼굴빛과
고요하고 침착하고 성실한 언사(言辭)로 마음을 다잡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삶을 사는 함창김문의 후예가 되기를 바란다.
배움과 충과 효를 숭상하는 선비정신, 호국정신, 개척정신, 창조정신,
새마을 정신의 DNA를 가진 함창 김문의 후예들 모두는 성실과 정진으로
聞見知行으로 尊聞行知의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인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위대한 아름다운 삶이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 함창 김문은 고려조를 이끌어 온 학문을 숭상하여,
충과 효를 다한 지조와 절개의 DNA를 가진 가문이다.
조선조에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낙향하여
선비정신, 호국정신을 이어온 가문이며,
한국의 현대화에 앞장선 새마을정신, 개척정신을 가진 가문이다.
고려말, 조선초에 조선 학문의 맥을 이은 목은 이색의 외가집안으로
학문을 전수한 학문 숭상의 가문이다.
목은 이색에게 학문을 전수한 金澤은 함창 9세로 고려 충선왕때 함창에서 대 문장가이고
重大匡 都僉議贊成事 (이색의 외조부) 重大匡贊成事 咸寧君 金饒(함창 10 이색의 외삼촌)으로
조선 학맥의 맥이 되었다. (宜山君 세순....상주를 중심으로)
영주 신천 榮州派 郞將公(重瑞)의 아들 김이음(金爾音 함창 10세)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으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삼로공 김이음(金爾音 ?∼1409(태종 9))을 모시는 사당 삼봉서원이다.
두릉서당은 물암 김륭(金隆1549∼1594 함창 16세)할배가 향토 인재를 기르는 서당이다.
조선 학문의 핵인 퇴계 이황의 사랑을 받은 물암 김륭(함창 16세)은
두릉서당을 세워 선비의 삶을 가르쳐 학문을 이어 왔기에 임란 때 의병 활동,
조선말의 의병 활동에 앞장 선 가문이다.
나는 함창 김가로
<함창김가 가 훈>(김 융 (金 隆) 1549년(명종4년)~1594년(선조27년)자는 도성(道盛).
호는 물암(勿巖).[16세손]
父兮天生,母也地育(부혜천,모야지육),孝順祗承,欲報罔極(효순지승,욕보망극),
分形連氣,兄及弟矣(분형연기,형급제의), 親如手足,親愛而已(친여수족,친애이이),
하늘인 아버지는 태어나게 하셨고, 대지인 어머니는 길러 주셨다.
효도하고 순종하며 공경하고 받들어서 은혜를 갚으려 해도 끝이 없다.
형체를 나누고 기운을 연이어 형과 아우가 되었다.
보기를 자기의 손과 발과 같이 하여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영주 소수서원에 유적이 남아 있음)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기르시니 애달프고 애달프다
우리 부모님 낳고 기르시 애달프고 슬프도다 어버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시고 수고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할진대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도다.
父兮生我, 母兮鞠我, 哀哀父母, 生我劬勞. 欲報深恩, 昊天罔極. 명심보감
내 몸을 낳아 숭고한 사랑과 노고로 온 힘을 다해 길러 주시며
사람됨을 가르쳐주신 부모님의 깊으신 은혜, 저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어 보답할 길이 없도다.
물암 김륭의 증손인 김시빈(金始鑌)은 숙종 때 문과에 급제, 경차관·어사·호조정랑·필선·
장령 등을 지내고,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이 영남지방으로 확대되자
채성윤(蔡成胤)의 천거로 영남의 요충을 방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뽑혀
울산부사로 봉직하다가 순직하였다.
영주독립사에 一岡 泰斗(함창 29세), 春岡 泰夏(함창 29세) 霞汀 正夏(함창 30세)
청사에 길이 빛날 독립 운동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어사공파 榮州派 郞將公(重瑞)
단산면 파회(波回, 바우) 9대 順興派 錄事公 김중보(金重寶)공의 현손 장사랑(將仕朗) 김사종(金嗣宗)의
아들 희준(希俊)은 선원전참봉(璿源殿參奉) 희준의 아들 서현(西峴) 김구정(金九鼎)은
선조 6년(1573) 생원시에 합격 선조 15년(1582) 문과에 급제, 경주, 청주 훈도(訓導)를 거쳐
1586년 제독교수(提督敎授) 원주훈도, 성균학유(成均學諭), 성균학정(學正), 성균박사(博士)를 지냈다.
1590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형조좌랑, 호조정랑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하였으며 영해부사 진휼어사(賑恤御史)의
장계로 편의종사(便宜從事)에 임명되고 1594년 군자감정(軍資監正)이 되어 명나라 원군(援軍)의
유격접반관(遊擊接伴官)이 되었다.
1604년 호성원종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1606년 청도군수, 1608년 의성현감, 1610년 정선군수, 1612년 대구부사를 지내다가 1613년 대북파의
농간으로 인목대비가 폐비되자 벼슬을 던지고 물러났다.
1625년(인조 8)가선대부(嘉善大夫) 요양위 부호군이 되었다.
파회마을은 임천(林泉)에 정자를 세워 반학당(伴鶴堂)에 지내며
소수서원장으로 추대되어 오래 재임하면서 실천의 선비를 양성함에 심력을 바쳤으며
서현공의 아들 동고(東皐) 김경원(金慶遠)은 생원시와 문과에 등과 성균전적,
성환도찰방 을 지내다 (順興派 錄事公 김중보(金重寶) 소수서원 기록)
청산에 빛낸 독립운동가 龍岡 金海根(장수파 30세 1860.7.1.~1946.2.16)님은
전라남도 남원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의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3권 541-542면.
儉閒齊 金舜九(함창 김씨)님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 받았다.
1919년 옥천을 비롯해 회인, 문의, 괴산, 청주 등 충청도 일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진두지휘했던
김순구님은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불굴의 독립정신으로 감옥에서 순국한
충북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출신 김순구 독립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 충민사이다.(옥천)
義城 옳고, 바르며 의로운 선비의 고장 春山 의 꽃이 피어 봄 동산 춘산 산골에
錦泉은 비단 같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맑고 아름다운 곳,
산새, 들짐승, 사람이 어울러 더불어 사는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에 태어나
평생을 책과 어울 봄처럼 환희의 미소로 산다.
민들레 홀씨처럼 끈기와 은근으로 살아가는 사랑의 봄 동산이다.
하늘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가슴과 가슴을 잇는 사랑으로 살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정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으로 살고,
자라서는 아내의 사랑과 정으로 인생의 꽃을 피우고,
노후에는 자녀의 봉양으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삶이 인생이다.
둘이 손잡고 기쁘고 즐겁게 살며 따뜻한 밥을 나누며
사랑으로 살며 아름다운 웃음을 웃으며 감사하며 삽시다
우리 집은
德原君덕원군(文貞公문정공. 諱휘-宗悌종제), 德陽君덕양군(忠敬公충경공.諱휘-宗繼계 경기도 연찬)
<1세> 德原君 宗悌종제 - 賜諡사시[문정공] 고려명종 정사공신으로 封君봉군 - [덕원군]
2세 宜山君 세순....상주를 중심으로
2세監察御使 균(우리할아버지)-3세 祿文-4세 仁-5세 鏡高-6세 鏋-7세 中正-8세 龜
9세 榮州派 郞將公(重瑞)
順興派 錄事公(重寶)
比安派 評理公 重器
比安派 評理公 重器(우리 할아버지 비안파 평리공, 중기)
9評理公 重器-10세 天降-11세 歸齊公 觚-12세 世老-13 守智-14세 世潘- 15세 德隣-비안종손
15 以廉(이염)-16세 俊昌(習讀 通訓大夫)-17세 燦碩-18세 周興-19有湖公(大里宗中)
比安派 評理公 금천종중 19세 遠湖원호
錦泉宗中(300년 이어온 역사 1680년 경 약 320년)
19 遠湖 20 時重 21致寬 22孝哲 23守烈 嘉善大夫 24基能
25錦泉入鄕祖)鎭吉 26汝道 27 泰相 28 寅榮 29 正遠(校長,獎學官) 30錫炫석현 31炫洙현수
가훈으로 義在正我(의재정아)로 가르쳤다
<深根枝茂(심근지무)>
뿌리를 알고, 孝로써 仁과 義의 근본인 마음인과 심성인으로
仁義禮智信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존재로
禮義廉恥를 지키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라
<學文積德(학문적덕)>
날마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알라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덕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德不孤, 必有鄰. 논어(論語)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주역(周易)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며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近者悅遠者來
퇴계선생의 (思無邪) 사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
思無邪 無不敬 毋自欺 愼其獨
선생의 사의(四宜)로 진심을 다해 정성을 다하라
생각, 용모, 말(언어), 행동을 새롭게 신중하게 하라
생각을 아끼고, 마음을 아끼고, 말을 아끼고, 행동을 아껴라
<義在正我(의재정아)>
<深根枝茂(심근지무)>-<學文積德(학문적덕)>-<義在正我(의재정아)>
학문은 올바른 것을 늘 생각하고(學問之道無他)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을 찾는 것이다(求其放心而已矣)
잃어버린 어진 마음인 인(仁)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짊이 사람의 마음이고(仁人心也)
올바름이 사람의 길이다(義人路也) 義在正我
바른(옳은)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 (義在正我)
너 자신을 알아라
단디 살아라(Do the right)
똑 바로 살아라(Do the right)
옳은 일을 하여라(義在正我)
착하게 살아라.(止於至善)
매사 진실 하라(立處皆眞)
모든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라(卽事而誠)
모든 순간 겸손하게 살아라(卽事而謙)
상을 많이 받아 자신을 빛내고, 가문을 빛내고. 나라를 빛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 9대 評理公 重器 (비안 후천, 안계 석정)
11대 고성현감 귀제공 고
12대 부사정 백은공 세노
14대 장사랑 참봉 세반
15대 사재 검정 덕린(비안 종손)
15대 주부 이염(대리, 금천) 대리로 이주
대리종중(15대 이염할배~19대유호 할배)
16세 俊昌(習讀 通訓大夫 향교교수) 대리에 비석 묘지(대리종손 관리)
20대 훈 증 군자정
21대 세관 증 공조참의
22대 효운 증 한성부이
23대 용국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과거합격 할아버지 3분이 증 벼슬 교지))
금천종중 (19대 원호 할배~ 29대 정원)
23대 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守烈(○烈) 비안화신 비석 묘지 (금천종중)
23대 通政大夫 亨㤠 춘산 빙계 묘지
23대 通政大夫 白㤠 춘산 대사 묘지
28대 목사 김태운 (기능)
28대 경찰 김호영 (기식)
29대 종손 장학관, 교장 김정원 형수 정정희 교감 (기능)
29대 교장 김원필 (기능)
29대 경찰 김진원 (기벽)
29대 교장 김준원 (기식)
29대 정원 교장, 원필 교장, 김진원 총경, 박순자 교장, 김진희 어나운서
30대 김석민교사, 김아름 공무원, 김석희 인천항공, (석진/정영미 교사, 김민규 스튜디어스
김슬기 수자원공사, 김석주(재미 육군 소령) 김석은(재미 약학박사)
* 의흥 지호
23세 형열 통훈대부, 백열 통훈대부
28세 호영 경사
29세 김태준 교장, 박선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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