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벗을 날
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2년 전 초, 코로나19가 막 기승을 부리려 할 때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우스갯소리지만 6.25 전쟁은 전쟁이 아니었다. 2,300원 하던 마스크 값이 폭등했다. 상술이 탁월한 업자들은 폭리와 사재기를 했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약국과 우체국에서 KF 94 규격 마스크 2장에 3,000원씩 팔았다. 마스크를 구하려 출생연도 끝자리 요일에 동네 약국들의 가장 짧은 줄을 찾아 신분증을 들고서 한참을 기다렸다. 마스크를 받고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마스크를 쓴지 거의 한 해 동안은 답답해서 코를 절반쯤 내놓고 쓰곤 했다. 노인복지관에서 탁구 할 때면 직원한테 마스크를 코까지 덮으라고 경고를 받기가 일쑤였다. 지금은 마스크가 복면覆面을 벗어나 얼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도 며칠 전 행사장에서 여자 지인이 날 보더니 코 위의 마스크를 두 손가락으로 꼭 잡고 지그시 눌러주었다. 마스크는 코가 중요하다면서 ….
마스크를 처음에는 벌금 10만원이 무서워 착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2년 넘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온 국민이 방역수칙으로 습관이 돼 마스크를 안 쓰면 잠시라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각 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 비해 월등히 낮은 건 마스크가 3차가 넘는 백신주사보다 큰 역할을 말없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긴장의 끈을 늦출 때는 아닐 성싶다.
마스크와 안경은 악연인 것 같다. 안경은 어서 마스크를 벗을 날을 학수고대할 것이다. 내가 외출하면 혼자 집에서 놀아야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마스크와 길들여지라고 참았으나 코와 입으로 나온 온기로 안경 렌즈는 뿌옇게 돼 시야가 흐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어쩌다 안경과 동행하면 마스크 등살에 못 견뎌 어서 벗어달라고 하소연 했다.
그렇지만 마스크를 쓴 재미도 톡톡하다. 여자들이 화장을 안 하거나 얼굴 보이는 부분만 화장을 하니까 시간과 노력도 덜 든다는 게다. 화장품 가게는 울상이지만 가계비도 줄일 수 있다며 더 좋아한다. 마스크는 내가 게으름을 피우다 세수를 하루쯤 안 해도, 수염을 사나흘 안 깎아도 마스크는 눈치껏 내 체면을 살려 주기도 해 호감을 받을 때도 있다.
마스크에 얽힌 희비극도 벌어졌다. 지난달 어느 문학단체 시상식장에서 여자 분에게 이금꽃 문우님 이시지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아니라며 이 정이라고 한 게 아닌가? 내가 착각을 한 게다. 바로 그 분이 날 안다며 화끈거리는 내 얼굴을 식혀주긴 했지만 미안했다. 상대방의 눈과 이마와 머리만 보고 아는 체를 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한 게 어디 이뿐이랴. 그래서 가까운 지인인데도 실수할까 싶어 인사를 못해 오해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마스크로 상대방이 날 몰라 봐 줄 때 오해를 하곤 했다. 요즈음 소개팅법칙은 약속장소에 나가 마스크를 내리고 상호 얼굴을 확인한 후 진행한다는데 잘된 듯싶다.
올해 우리 교회는 새 담임목사님을 청빙했다. 먼저 얼굴을 사진으로 익히고 사모님이랑 마스크를 벗은 채 첫인사를 받았지만 민얼굴은 직접 만나질 못했다. 석 달이 되어도 목사님 얼굴이 내 머리에 입력이 되질 않아 안타까웠다. 겨우 점심식사를 두 번 같이 하고서야 고개를 끄떡였다. 아내가 목사님이 마스크를 벗으니까 더 미남이시라고 칭찬을 해 웃는 모습까지 알게 됐다.
일본에서 ‘마기꾼’ 사연이 벌어지기도 했다.총각의사를 소개받은 아가씨는 그의 진실한 눈빛에 끌려 연애 2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데이트를 한 탓에 총각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신부는 동거를 시작하면서 신랑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난 후 충격에 빠졌다. 밝고 잘생긴 눈과 달리 치열이 심하게 불규칙하고 입술도 두꺼운 모습에 실망한 것이다. 신부는 아침 키스를 하려는 신랑의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밀어냈을 뿐만 아니라 잠자리를 할 때는 부끄럽다는 핑계를 대고 무조건 불을 끄게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정부가 2주간 코로나19의 새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했다. 음식점 영업시간을 밤 12시로, 모임 인원수를 10명으로 늘렸다. 게다가 조심스런 희소식을 덧붙인게 아닌가? 새 조정안이 끝나고 18일부터는 모든 거리두기를 해제하고 마스크도 실내에서만 쓰도록 한다니 대 찬성이다. 국민은 의심반기대반이겠지만 2주 동안 확진자, 위중증 환자, 사망자 수의 그래프 막대 길이가 짧아지고 꺾은선이 급속히 내려가길 바랄 것이다.
아직 엔데믹 선언은 할 수 없지만 모든 거리두기 해제를 고려하고 있다는 TV 방송 자막을 볼 때마다 온 국민이 실외에서 만이라도 마스크를 벗을 날 빨리 와서 일상이 회복되길 기도해야겠다
(2022. 4. 8.)
* 마기꾼: ‘마스크를 쓴 사기꾼’이란 신조어로 마스크를 쓰면 미남·미녀가 되었는데 벗으면 원래대로 된다는 뜻이다.
* 엔데믹endemic: 어떤 지역에서 종식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생하거나 풍토병風土病으로 고착화 된 감염병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