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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선 이후,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와 진보의 가치
2014. 7. 30
1.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진보의 존재
필자가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진보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필자에게 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진보는 분명히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달라야만 대결점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보수는 현실에 안주하기를 바라는 반면, 진보는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이런 진보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바로 진보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일 것입니다. 즉, 진보는 보수라는 세력이 존재할 때 보수를 극복하기 위한 이념 혹은 진보로서의 가치를 제공하여야만 존재할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말해서, 자유민주주의나 공산주의는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이며, 과거 보수여당 독재세력대 민주세력의 대결, 이런 민주세력라는 것이 여당과 대비되는 진보로서의 가치입니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전, 진보는 보수와 차별화되는 '가치', 즉 '민주세력'이라는 절대선의 명분으로 존재할 수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진보가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진보가 보수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가치, 즉 '민주'라는 화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에 있어 이념적인 차이에 따른 보수와 진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적인 이념마저 북한추종세력으로 매도되었으며, 진보라고 불리는 야권은 사실 보수와 동일한 우파적 이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오로지 반독재라는 명분으로 보수 여당과 차별화되었을 뿐, 실제로 진보적인 정당은 대한민국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구상에서 진보적 이념으로 인정되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몰락을 하였습니다.
식자층에서도 이미 인정하고 있다시피 대한민국에 진보라는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보수여당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만, 야당이 진보라고 불리고 있을 뿐입니다.
2.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진보가 실패한 이유
2007년 대선 패배 이전, 아니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전, 이념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면에서 여야의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민주당은 보수여당 한나라당과 차별할 수 있는 정치노선 혹은 가치가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과 더불어, 민정계 중심의 이회창 한나라당의 수구화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임기말, 2006년 북한은 핵개발을 하였고 국민들은 급격히 보수화되어 버렸습니다. 더불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어떠한 이유로도 국민이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인적쇄신을 통하여 노회하고 수구적 이미지의 민정계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진보의 가치를 이어나간다는 열린우리당은 한마디로 제대로된 정당이 아닌 내부 싸움질로 얼룩지 최악의 여당이지 정당이었으며, 보수와 대비되는 진보의 가치와 존재이유를 생산해내지 못했습니다.
2007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민주당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집권세력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에만 기대어 선거를 치루었지, 야당이 여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존재이유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여당과 차별화를 위하여 등장한 것이 새누리당을 친일독재세력인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것인데, 이런 규정은 박근혜대통령의 등장 이후 본격화 되었습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전력과 군사쿠데타에 이은 장기집권과 독재를 겨냥하여, 여당을 친일독재세력 절대악이라는 규정입니다.
문제는 이런 새누리당을 향한 친일독재세력의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개념이 이른바 진보진영 사이트내에서만 그 효용성을 나타낼 뿐,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며, 그 결과가 바로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입니다.
더욱이 새누리당을 향한 이런 친일독재세력 절대악이라는 규정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은 미래를 보고 치러지는 투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 이후, 야당이 이런 친일독재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선거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 효력을 상실한 측면도 있지만, 야당내에서도 친일파 후손 국회의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분입니다.
다시말하지만, 보수 여당과 가치의 차이, 즉 '민주세력'이라는 정통성에 의하여 존재할 수 있었던 진보의 가치, 야당 민주당의 존재 가치는 민주화 이후 보수여당과의 차별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이에 대안으로 만들어낸 진보의 가치, 즉 친일독재세력 절대악 새누리당과의 차별성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더 이상 그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야당이 진보로서 국민에게 어필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새로운 존재가치를 생산해야만 합니다. 그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야당으로서만, 야당의 존재가치를 말한다면 정권교체를 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새정치민주연합의 진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치로서의 대안
필자는 이전 두 편의 글,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는 선명하다.!!!' (http://cafe.daum.net/ahnforum/PcnG/8512 와http://cafe.daum.net/ahnforum/PcnG/8559) 에서 안철수의 중도 실용주의의 선명성에 대하여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를 지지하는 유권자 층은, 안철수가 스스로 말한 바 있는 있는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입니다. 필자는 이들이 바로 '중도'라는 계층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음은 필자의 이전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Quote
중도(中道 ), 국어사전에서 이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길'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중도란 바로 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이 중도라는 것이 진보와 보수 모두에서 짝퉁 혹은 서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중도'라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닌 흑과 백의 가운데인 회색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회색이라는 것이 잘못 해석되어 절대 선과 절대 악을 두리뭉실 섞어 놓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적당한 타협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버리는, 절대적인 오류를 낳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를 논하기 이전에 안철수를 정치권에 불러들인 이른바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 그리고 중도라는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먼저 고민해 보아야합니다. 우선 그들이 바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한민국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3.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실체를 인정하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위하여
노력하여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여 통일의 기초를 닦는 것입니다.
4. 법과 원칙이 사회계층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5. 소위 가진자들의 끼리끼리 봐주기 문화가 청산되는 것입니다.
6. 사회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며 중산층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7.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통하여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보다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8. 교육의 기회가 균등히 보장되며 아이들이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는 것입니다.
9. 복지가 확대되어 소외계층을 돌보는 것입니다.
10.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는 것입니다.
11. 부패가 사라져 깨끗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12. 위의 이런 것들을 실현하는 주체인 정치권이 개혁되는 것입니다.
안철수가 말하는 합리적 보수, 중도, 그리고 성찰적 진보의 공통점들을 위해서 정리해 보니까, 바로 안철수가 추구하는 인간중심의 중도-실용주의가 추구하는 목표가 바로 위의 내용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가 실행되기 위하여 필요한 전제조건은 바로 보수와 진보를 서로 인정하고 대화하며 합리적 해결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의 선명성을 강조합니다.
1. 극우 또는 극좌를 철저히 배격하며 그들의 용어를 일반화하여 사용하는 것은 구태입니다.
2. 보수와 진보를 향한 원색적 비난은 구태입니다.
3. 정치인들의 불법을 진영논리에 따라 평가하는 것은 구태입니다.
4. 세월호 국정조사와 같은 부분에서 진영논리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구태입니다.
5. 검증안된 음모론 따위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은 구태입니다.
6. 통합정신을 배반하고 계파논리에 따라 안철수를 흔드는 것은 구태입니다.
7.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무공천을 철회시키고, 국회의원겸직 금지를 제한하지 않는 것은
구태입니다.
8. 안철수의 정치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구태입니다.
9. 진영논리에 집착하는 것은 구태입니다.
안철수의 인간 중심의 중도-실용주의는 선명한 노선을 지향합니다. 그것은 이념이나 계파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구태정치로 규정합니다.
중도의 정치는 선명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기존 타락하고 부패하며 진영논리를 우선시 하는 기성 정치권을 개혁하는 국민을 위한 바로 '바른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안철수의 새정치입니다.
실용주의는 이 선명한 중도의 정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일체의 진영논리와 집단사고를 배제하고, 국민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마련하는 정치 노선입니다.
필자는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안철수의 인간중심의 중도-실용주의란, 국민을 위한 바른 길을 지향하는 국민을 위한 가장 선명한 정치노선입니다
Unquote
필자는 안철수가 말하는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라는 계층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사안에 따라 여야 교차투표하는 유권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안에 따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는 구속감 없이 교차투표할 수 있는 투표층입니다. 서울시장선거에서 박원순이 56%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광역비례에서는 여야 동률입니다. 강원과 충청권에서 야당 광역단체장이 당선되었지만, 기초단체장과 광역비례에서 여당을 득표율은 야당의 거의 두배입니다.
이렇게 여야 교차투표를 할 수 있는 유권자층이 바로 중도라는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라는 계층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계층은 늘어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보수여당 보다 야당에 훨씬 불리합니다. 그 이유는 확고한 고정지지층이 야당에 비하여 여당이 훨씬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4. 중도-실용주의를 지지하는 중도라는 계층의 세력화와 함께하는 위험성
사안에 따라 여야 교차투표를 할 수 있는 투표층은 분명히 투표무관심층이 아닙니다. 이런 중도-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중도라는 계층을 공고히 세력화 하려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정치개혁이라는 당위성이며, 이것은 그들이 야당을 지지할 수 있는 명분입니다.
만약, 중도라는 계층이 원하는 정치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이들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저조한 투표율이 보여주 듯, 언제든 투표기권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 중도라는 계층은 여당과 야당의 이념 차이가 없는 현실에서, 만약 여당이 정치개혁에 나설 경우 여당 지지층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5. 마치면서. (중도-실용주의, 새정치민주연합 진보로써의 가치)
야당의 지지층은 여당 지지층보다 세력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 공고함도 여당에 비하여 열세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야당이 승리하려면 이 중도라는 정치세력을 우군화하여 지지층으로 만들고 공고히 하여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야당은 중도-실용주의를 진보로써의 가치로 인정을 하고 추구하여야만 여당과 차별화 하면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생각입니다.
이번 재보선에서 야당의 거물후보가 여당의 정치신인에게 고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정당 지지율에서 야당이 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이 중도-실용주의를 구체화하면서 정치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야당은 여당과 차별화할 수 없으며, 그것은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 40%는 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안철수의 중도-실용주의, 그것이 바로 진보가 추구하여야 할 가치입니다.
약수
(필자는 다음카페 안철수와 함께하는 변화외 희망에 글을 올립니다. http://cafe.daum.net/ahn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