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바에 대패한 서울 ⓒ 연합뉴스 |
"애들을 데리고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거요(You’ll never win anything with kids)"
잉글랜드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다. 화자(話者)는 과거 리버풀 전성시대의 주역이자 현 BBC의 축구 해설자인 앨런 핸슨이다. 핸슨은 1995/1996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애스턴 빌라에게 1-3으로 패한 맨유의 퍼거슨 감독을 향해 이렇게 내뱉었다. 당시 맨유는 마크 휴즈, 폴 인스, 안드리 칸첼스키스 같은 베테랑 스타 선수들을 모두 이적시킨 뒤 갓 스물 안팎의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려 개막전을 치른 터였다. 맨유는 이 날 경기 내내 ‘질질’ 끌려다니다 막판에 터진 데이비드 베컴의 골 덕분에 간신히 영패를 모면했다.
핸슨이 겨냥한 맨유의 어린 선수들은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니키 버트, 폴 스콜스, 라이언 극스 등 당시 18~22살 정도 연령대로 경험이 일천한 상태였다. 하지만, 핸슨 입장에서는 야속하게도 맨유는 이후 아스널 원정에서 0-1로 패배할 때까지 무려 10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고, 당시 ‘무명씨’였던 맨유의 어린이들(kids)은 맨유에 수 없이 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긴 것은 물론 지구 반대편의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도 남는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1995년의 맨유 vs 2009년의 FC서울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브라이언 롭슨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당시 맨유의 급격한 ‘회춘’이 핸슨의 말을 빌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반면, 2009년 FC서울이 결행한 과감한 세대교체는 찬사와 호평 속에 시즌 개막을 맞았다. K-리그 개막전 광양 원정에서 무려 6-1의 대승을 거둔 ‘젊은’ FC서울은 AFC챔피언스리그 개막전 인도네시아 원정에서도 스리위자야를 4-2로 격파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FC서울의 진군은 여기서 멈칫했다. 강원FC를 홈으로 불러들인 K-리그 2라운드와 ‘아시아 챔프’ 감바 오사카와의 AFC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 모두 패배하고 만 것이다. 도합 7골을 실점한 이 2연패는 FC서울의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무대였다. FC서울은 경기력 자체에 큰 결함이 없는 상황에서 경기 중 발생한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채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라운드 위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 줄 베테랑 선수의 부재가 극적으로 반영된 사례로 귀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10여년 전의 맨유와 현재의 FC서울이 가진 결정적인 차이점이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당시 맨유에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팀의 주요 포지션을 차지하고 후배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슈마이셀 골키퍼(31세)를 비롯해 폴 파커(31세), 데니스 어윈(30세), 게리 팔리스터(31세), 브라이언 맥클레어(32세) 등이 수비와 미드필더에서 팀을 이끌었고 중원에서는 25세의 로이 킨이 동생들에게 기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현재의 FC서울은 선발 국내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20대 초반에 불과한 젊은 팀이다. 이을용(강원FC), 이민성(은퇴), 김병지(경남FC) 등 노장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난 공백이 김한윤의 결장과 겹치자 ‘강하지만 여린’ 팀의 면모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의 리더십이 실종된, 이른바 ‘무중력 리더십’의 상태가 이어지면서 연패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 2연승과 2연패
연패한 두 경기에서 FC서울의 초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경기 중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리며 도합 7골을 내주며 자멸했다. 강원FC와의 경기에서는 케빈의 퇴장 이후 상대의 역습에 어려움을 겪었고 감바 오사카 전에서는 작은 실수가 이어지며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 FC서울의 문제는 노련미 부족의 형태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시작은 스리위자야 원정이다. 당시 막강한 공격력을 앞세워 3-0으로 앞서나가던 FC서울은 순식간에 2골을 내주며 3-2로 쫓기는 위기에 몰렸다. 김승용의 프리킥에 힘입어 4-2로 경기를 매듭지었지만 불과 4분만에 두 골을 내준 것은 좋지 않은 장면이었다.
강원FC전 패배에서는 케빈의 퇴장 이후 숫적인 열세와 경기 운영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서 석패했는데 선배들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한 역습을 감행하며 승리를 건져 올린 강원FC의 선전은 FC서울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감바 오사카 전. FC서울은 몸놀림이 좋은 주전 선수들이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초반 기선을 제압했지만 집중력 부재에서 비롯된 잔실수와 경기 운영 능력의 부재가 겹치며 완패하고 말았다. 한태유의 백패스 미스가 실점으로 이어진 감바의 첫번째 골, 김치곤의 걷어내기 실수에서 비롯된 코너킥 상황에서 나온 세 번째 실점은 이러한 문제가 극대화된 장면이다. 큰 경기, 강팀과의 경기일수록 집중력이 필요했지만 문전에서의 마무리 패스, 자기 진영에서의 볼처리 상황에서 서울은 깔끔한 처리를 하지 못한 채 번번이 실점을 내주고 말았다.
두 번째 골을 내준 뒤로는 이전까지 팽팽하게 이어지던 긴장감도 잃어버렸다. 골을 넣고 따라잡아야 한다는 부담에 상대의 심리전에 대한 짜증이 겹쳐 정상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특히, 기성용은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할 부담의 무게가 컸던 탓인지 평정심을 잃는 장면을 종종 노출했다. 패스와 태클, 공중볼과 세트피스에 이르는 전방위적 임무에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한 기성용은 점수 차가 벌어지자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으며 경기에 매진했다. 하지만 레드 카드가 우려될 정도의 거친 태클을 시도하는 등 팀 분위기를 다잡는 데에는 오히려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무중력 리더십'의 FC서울, '제2의 맨유'가 될 것인가
거듭 지적하는 FC서울의 문제는 중량감을 가진 베테랑 선수의 부재다. 이 날 FC서울 선발 멤버 가운데 최고참은 지난해 군복무를 마치고 올 시즌부터 본격 합류한 한태유(28세)다. 나이와 위치적으로 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한태유는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뒤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했고 이후 서울은 상대 페이스에 휘말리고 말았다. 노장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난 FC서울이 ‘관록 부족’의 약점을 드러내며 경기 중 리더십이 실종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만 것이다.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들은 경기가 잘 풀릴 때에는 신나게 골을 넣지만 활로가 차단되면 원하는 방향으로 경기를 풀지 못하는 약점을 드러낸다. FC서울이 강원FC-감바오사카 2연전에서 도합 7골을 내주며 패배한 것은 전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경기 막판, 골키퍼 김호준이 페널티 박스를 벗어날 때까지 손에서 볼을 놓지 않았다가 프리킥을 내줘 추가 실점 위기에 놓였던 순간은 FC서울의 ‘무중력 리더십’이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애들을 데리고는 우승하기 쉽지 않을 것"
14년 전, 앨런 핸슨이 영국에서 했던 이 말은 오히려 현재의 FC서울에 더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그리고, 이것은 FC서울이 2009 시즌을 장악하기 위해 꼭 풀어야 할 과제다. FC서울이 보유한 어린 선수들의 재능은 대단하다. 역대 어떠한 팀들도 이런 수준의 재능을 한꺼번에 보유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귀네슈 감독의 역량 또한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 이들을 한데 묶어 파괴적인 공격력을 갖춘 팀으로 조합시킨 그의 능력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런 선수들을 데리고 수비 축구를 펼치면서 1-0으로 승점이나 챙기겠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멤버 아닌가.
하지만, FC서울이라면 여기에 만족할 리 없다. 이들이 그 기량을 한 데 모아 K-리그를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그 부족한 2%를 채워 넣어야 한다. 전술적으로 팀의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할 선수들의 연령대가 어리다면 리더십을 부여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그렇다면 부가적인 노력이 뒤따르거나 외부에서 답을 찾는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 김한윤의 복귀나 전술적 중심 선수에게 완장을 채우는 일, 혹은 새로운 선수의 영입 등을 대안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14년 전의 상황이 현재의 한국에서 뒤바뀐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핸슨의 ‘상식적 조언’이 결론적으로 ‘헛소리’가 된 것은 맨유와 퍼거슨 감독의 치밀한 전술과 시즌 운영의 힘이었다. FC서울 역시 그 뒤를 따르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겠나. 아직 시즌 초반이니 FC SEOUL KIDS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 안에서 해법을 찾는다면 더욱 더 멋진 결말이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2009 K-리그의 시계는 슬그머니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60&article_id=0000000125&date=20090317&page=1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좋은글이네요.. 앞으로 귀감독님이 어떻게 해결해나가실지... 지켜봐야겠네요
라이언 극스?? 긱스아닌가 ? ㅋㅋ
잘 읽었습니다.
서울의 잠재력은 진짜 무궁무진! 아직 경기 많이 남았음~ 귀네슈 감독님이라면 잘 하실거라 생각됨!ㅎ
우승 고고고
수비가 참 안습이었는데 베테랑 수비수좀 사오지 ㅡㅡ
수비..수비...베테랑 수비수만 있어더 이리 흔들리지는 않을텐데... 김진규 김치곤의 중앙수비는 정말 안습...ㅠㅠ
수비가 문제야................................
김한윤과 김상식 or 송정현이 있었다면 ....
자꾸 두경기 7실점이라고 하는데 강원에게 2골,. 감바에게 4골....6실점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