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七長寺)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七賢山)에 위치한 칠장사는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
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
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
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
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
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전란과 화재로 중건과 중수를 이어오다가 현재의 건물은 1703년 숙종 29년에
탄명스님이 중건하였다 한다.
대웅전 앞 마당의 석불입상(보물 제983호)은 고려시대 초기의 우수한 불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왼쪽 비탈길을 조금올라가면 나한전 앞 보물 제488호 혜소국
사비가있고, 나한전 뒤에 수령 600년 된다는 나옹송(나옹선사가 심음?)이 있다.
아랫쪽에 맑은 샘물이 있다.
1560년 경(명종)생불로 추앙받았던 병해대사는 칠장사에 주석했는데, 임꺽정의
스승이기도하다. 명부전 벽에는 일곱도적과 임꺽정. 궁예의 벽화가 그려저있다.
칠장사는 나한전이 유명한데 이에대한 설화가있다.
보물로 지정된 3층 석탑
대웅전 부처님
원통전 관음보살
620년으로 추정되는 나옹송
칠장사의 유명한 나한전 규모가 아주 작다.
혜소국사(慧炤國師) 유적비
헤소국사와칠곱도적(명부전 벽화)
관리인 말에 궁에가 어린시절 칠장사에서 10년을 기거하며, 유모앞에서
활쏘기를 하는 벽화믿기지 않는 설화의 벽화들은 너무 조잡스럽게 보였다.
산사의 추운 계곡에는 얼음과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금쪽박이 나타났다는 샘물 맛이 좋다.
일곱 사내의 회개
삼복더위에 산길을 오르던 사내는 목이말라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아니 왠 빛이..."
사내의 눈에 한줄기 빛이 땅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들어 왔는데, 그 곳으로
달려가니 옹당샘애 금쪽박이있었다. 바가지모양의 금쪽박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금 바가지를 허리춤에 찬 보따리에 집어 넣고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사내는 차령산맥을 근거지로 봇짐 장수와 나그네를 노리는 도적질에 이골이 난
늙수르레한 사내들. 그 무리는 모두 일곱이었고 아미산 너머에 산채랄 수도 없
고 농가랄 수도 없는 집들을 짓고 식솔을 거느리고 있었다.
남들이 얼핏 보기에는 의좋게 모여사는 화전민 쯤으로 위장 했지만 그들의 본
업은 농사보다는 도적질에 치우쳐 있었다.
그날 일곱의 무리는 한탕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은 참으로 이상한 날이어
서 한 사람씩 물을 찾아 길목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미리 금바가지를 얻은 사내
는 다른 사내에게 샘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 횡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간 순간 더이상 횡재가 아니었다.
분명히 야무지게 챙겨 넣었던 금바가지가 간곳이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가지고 왔는데. 그래서 허리춤이 제법 묵직 했는데 집에 오니 보이질
않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순간적 의구심은 어떤 두려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샘물을 발견한 사내. 그러니까 처음으로 금바가지를 챙겨 넣은
사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네들에게 가르쳐 준 그 우물에서 금바가지 하나를 주웠는데 내가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서 아무말 없이 주머니에 넣어 버렸지 뭔가. 그런데 그 금바가지가 말
이야. 집에 와서 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 내가 천벌을 맏을 모양이야."
"나도 그랬어. 그래서 죄 짓고 사는 놈이 기어이 천벌을 받는 것 같아."
일곱 사내가 다 같은 일을 겪었고 한결같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이제 천벌을
두려워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평지에서 살 수가 없을 거야. 저 아미산 깊은 곳으
로 들어가 두번 다시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거야."
"낮에 샘을 본 그 근처에 옛날부터 절이 있지 않은가. 그 절에 요새 한 스님이
오셨는데 그 어른의 도력이 그렇게 높으시다는구만."
"우리가 나그네들 봇짐을 털려고 하니 아마 그 스님이 도술을 부려서 우리에게
이런 두려움을 주시는 것이 아닐까."
아미산의 절에 있다는 스님은 정현(鼎賢)이라는 노장으로 칠장사(漆長寺)에서
융철(融哲) 노장으로부터 유가학(瑜伽學)을 정통으로 배웠을뿐 아니라 미륵사
의 승과 오교대선에도 합격해 이름을 떨쳤다.
거기에 현종 덕종 문종으로 이어지는 왕가의 존경을 받아 지금의 문종대에는
왕사를 거쳐 국사를 지내다가 나이들어 이승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그가 유가를 공부한 칠장사로 돌아와 있는 참이었다.
정현은 이승 인연을 매듭 짓고 본래 온 바도 없이 왔던 그 자리. 말하자면 본
래의 자기 자리(本處)로 돌아가기 위해 젊은 시절 시퍼렇게 밤을 밝히며 마음
속의 어둠을 헤쳐냈던 정든 도량으로 돌아 와 있었던 것이다.
"스님. 스님 계십니까?"
일곱의 시커먼 사내들이 더위를 털어내며 조심스럽게 스님을 찾아 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긋한 눈길로 맞이하는 노스님 앞에 엎드린 일곱 사내는 한
입인 듯 어제의 기이한 사건을 털어 놓고 "그저 한 번만 자비를 베푸신다면 다
시는 못된 짓 아니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며 말꼬리를 낮췄다.
"그래. 자네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니 내 보건데 부처님의 자비가 이미 그대들
가슴을 넘치도록 충만해 있음 일세."
뜻 밖의 말을 들은 사내들이 동시에 노스님을 쳐다보는 순간 노스님은 벽력 같
이 소리쳤다.
"이 사람들아. 잘못된 과거를 다 내개 주고 나가거라. 어서 그 잘못된 과거를
꺼내 봐."
그 우렁찬 요구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그 쩡쩡한 목소리의 여운이 아미산
을 휘감는 듯한 침묵 속에서 사내들은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과거생의 깊은 불연(佛緣)이 한꺼번에 열렸던 것일까.
일곱 사내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노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나한의 경지에 들어
섰다. 일곱의 도둑이 과거생의 인연을 돌이켜 드디어 도를 이룬 일을 기려 사
람들은 아미산을 칠현산(七賢山)이라 불렀고 절 이름도 칠장사(七長寺)라 고쳐
썼다. 노스님은 입적 후 나라로부터 혜소국사(慧炤國師)란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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