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지금부터 쓰는 글은 전에 제가 쓴 글
[개인적인 생각]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이유
4번 북아프리카전선에 대한 내용
그 지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로서
북아프리카군단의 전쟁사를 연도별로 나누어서 기술하고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롬멜의 패전원인과 개인적인 평가도 조심스레 다룰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츄어이기때문에 본문에 당연시 실수로 인한 오류가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자료 참고:
1.ebs다큐 2차세계대전사 11편 에르빈 롬멜, 30편 북아프리카군단과 사막의 여우, 전쟁과 군자금 편 등이며,
2. 블로그 참고는 august님의 "신화 뒤집어 생각하기", 그 외 blog.naver.com/cgm4620574, tmdghks2104, nardly님의 블로그를 가장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참조는 하였으나, 글을 쓸 때 밑의 글들은 ctrl v 신공이 절대 아니며 부득이 다른 분들의 내용이 원문과 겹칠 때에는 출처를 밝힐 것을 약속합니다.
3. 위키백과사전 '에르빈 롬멜'편이 연대사의 많은 참고 자료가 되었고, 거기 나온 사진 몇 개는 인용하였습니다.
4. 개인적으로 롬멜에 관한 저서를 읽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럼 먼저 북아프리카의 배경과 당시 상황, 주요 요충지 등을 먼저 기술해서 (안 그러고 세세한 부분부터 들어가면 잘 이해가 안 가더군요. 제가 처음에 그리했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께 아프리카전선의 상황과 거국적인 전쟁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전작업을 해두려 합니다.
*전쟁배경*
리비아: 이탈리아령
이집트: 영국의 직간접 영향력 아래 있었음. 이집트에 영국군 3만명 주둔.
그래서 이탈리아는 이집트에 25만의 원정군을 보내어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군대가 이집트 주둔 영국군에게 대패하면서...........=> 이탈리아는 쪽수만 믿고 장비는 형편없었습니다.(august님 글)
이탈리아군은 경이적인 패배를 기록하면서 트리폴리까지 도주합니다..
이에 히틀러는 롬멜에게 "트리폴리에서 이탈리아군을 도와 방어하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 작전명 "해바라기 작전"
*북아프리카군단의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시작*
최초 롬멜에게 편성된 부대:
제 5경보병사단 등이며 총 2개사단 규모(소수의 슈투카 폭격기, 메샤슈세츠 전투기 지원)
p.s) 그 중 1개사단은 1941.5월 도착 그리고 전차부대는 제 5기갑연대,제15기갑사단이며
제5경보병사단(정찰용 탱크=> 1호, 2호 경전차)
그리고 90경보병사단은 급조 편성된 부대이며 중포지원등이 편제 안 된 부대 (출처: ebs북아프리카군단과 사막의 여우편)
=> 의미: 그냥 동맹군 구원하는 구색맞추기의 편성.
1941년 초 전체 전선 상황: 영국은 이태리군대를 완파하고 아프리카병력을 당시 독일의 위협을 받던 그리스로 계속 이동시킵니다.
독일이 이용할 수 있던 보급항: 트리폴리
영국측 보급항: 항구도시며 요새도시 토브룩(몰타섬에서 지속적인 영국군의 보급을 받습니다.)
참고: 토브룩과 몰타섬은 후에 두고두고 롬멜을 괴롭힙니다.
**북아프리카전선 주요 요충지**
1.트리폴리:독일군 보급항이자 보급기지
2.토브룩: 영국군 항구이자 요새도시
3.엘 알라메인: 알렉산드리아 옆이며 수에즈 운하의 마지막 방어기지가 됨
4.몰타섬: 지중해의 한복판 위치해 있으며 독일-이탈리아군의 보급선이 지나야 하는 통로에 위치에 있고 영국군의 중간보급기지 역할도 겸하는 요충지입니다.
위 4 곳은 전선의 급소들이었습니다. => 본문 읽으시기 전에 꼭 기억해두셨으면 합니다.
그 외 사실 몇 가지
1.북아프리카 전선은 해안을 따라 전쟁한 선의 전쟁이었습니다.(august님 글)
=> 이유: 북아프리카 사막의 열악한 기후조건으로 인해서 연안 내의 50마일정도 외 지역은 전쟁을 벌일 여건이 전혀 아니었습니다.(ebs다큐) 그 안으로 들어가봤자 의미도 없고요.(사하라 사막)
2. 롬멜은 원칙적으로 이탈리아 사령부의 지시를 받고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기묘한 입장이었습니다.(히틀러가 그렇게 지시하죠.)
=> 히틀러가 왜 그리하였냐하면 애초 롬멜은 독일군사령부와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왜냐면 롬멜은 상관의 명령을 자기독단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이 골칫덩어리 군인(개인적으로 히틀러는 좋아한 모양입니다.)과 사령부와의 불화를 해결할 목적으로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3.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북아프리카군단은 영국군과 토브룩의 영연방연합군에 비해 불리하였습니다.
=> 지중해의 제해권은 영국이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이탈리아보급선은 트리폴리항까지 가야했는데, 항상 피해를 입고 가야했습니다.
4. 북아프리카전선은 시작할 때부터 중요한 전선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 그 시기 독일은 온 관심이 러시아였습니다. 그리고 august님 블로그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무슨 중요한 자원이 나올 건덕지도 없는 곳이 북아프리카였습니다. (리비아의 석유 개발: 1959년)
간단히말해 독일의 안중에도 없던 전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초반 파견군대도 아주 조촐합니다. ^^;;;;
그리고 아무래도 지역명칭등이 생소하니까 이해를 돕기위해 좋은 지도를 올리고 싶었는데,
제가 찾은 것 중 이 지도가 제일 나았습니다. (ㅠ.ㅠ);; (쩝 이래서 롬멜 연구서적 같은 게 필요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토브룩과 엘 알라메인이 표기된 지도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점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후 다음편에서도 사용할 지도는 이 지도에서 제가 간략히 편집한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22C4114B58DBC139)
다음편부터 전쟁 연대사 식으로 서술해나가겠습니다.
첫댓글 보급문제에 첨언. 아무리 영국해군이 바다를 지배하고, 아무리 영국이 토브룩과 알렉산드리아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어도 영국 역시 보급문제로 상당히 시달립니다. 공군과 U보트덕에 바다를 지배한다 해도 보급하기 버겁고(영국의 기본 보급선은? 희망봉을 돌아서 보급(...) 지중해를 통과하다가 독일 공군이라도 만난다거나 U보트에 딱걸리면 피보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트리폴리에서 이집트까지 들어가는 보급선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트리폴리까지 가는 보급선이나 똑같으니 말이죠.
실제로 독일군이 트리폴리 근방에 있을 경우 영국군이 그 사막을 통과해 보급하느라 전력이 유지하기도 급급해합니다.
근데 이거, 롬멜도 알고 있었다는
롬멜은 음. 그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맹장형의 인물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실제 전장에서 그의 전술적판단은 칭찬할 수 밖에 없어서요.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롬멜은 방어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사실. 롬멜이 요즘에 까이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 사막을 보급하는 거 어려운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리해서 밀고 나가다가 매번 전력을 날려먹는다고.
그리고 수송선 손실 외에도 트리폴리 자체의 하역 가능 톤수도 생각해야 하고. 매번 롬멜은 '보급 안좋은 건 알지만 그건 님들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님? 난 이집트 ㄱㄱ' 해댔지만 보급을 생각하면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죠.
뭐, 독일군이 보급분야는 잘 못한다는 말이 많긴 합니다. 그 쉽게 이긴 폴란드 전역도 보급은 붕괴 직전이였다던가...
북마크님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요 보급 문제와 다른 문제때문에 제가 롬멜 장군을 만슈타인장군보다 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2차세계대전의 독일군은 보급이란 측면에서는 확실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독소전도 아시다시피 보급분야는 말에 의존하지를 않나.(러시아 철도가 선로규격이 안 맞는 생각외의 문제점이 발생하긴 하였어도.) 바바롯사작전 시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낸다는 생각으로 월동장비는 아예 갖추지도 않고 시작한 점. 등등.
독일의 보급문제는 차량을 비롯한 공업이 대량 생산라인이 아니라서 그렇다던데 맞나요? 미국에서는 민간인이 수십만대의 차를 가지고 있었지만(포드생산방식결과) 독일은 수천대에 불과해 이미 볼장 봤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그것도 있지만 19세기 이후 독일이 보급을 제대로 한 경력이 빈약하다는 말도 들립니다.(...) 독일군 자체가 전략적 열세를 작전술적으로 뒤집기에는 도가 텄지만 보급은 역사적으로 잘 못한다고 하네요.
우와~ 기대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많은 배려를 하셨네요.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우리 육군의 전술훈련과제 첫 페이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병사들을 위한 최선의 복지는 철저한 교육훈련이다. 이것이야말로 전선에서 불필요한 손실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 롬멜"
그런데 솔직히 다음글들은 연대기식으로 적었는데 과연 제대로 쉽게 적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짧게 쓰려고 했는데 조사하다보니 너무 자료가 많아져서요.
너무 세세하고 지루하게 기록한 건지도 모르겠고요.
제5사단은 "경사단" 입니다. 보병사단은 아니고 여기저기서 기계화/비기계화 엘레멘트를 긁어모아 편성한 사단이죠. 딱히 기계화도 아니고 보병도 아니고 전차도 아니고 해서 어중간히 붙은 이름이 "경" 사단입니다 (;;;)
예, 저도 그 점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ebs다큐에서 계속 그 이름을 자꾸 '경보병사단'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것을 따랐습니다.
뎃글 감사합니다.
또한 그 부대에는 정찰용 전차( 이 말은 1호,2호전차란 말인데)가 50여대였나? 그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아무튼 님말씀대로 '어중간한' 부대였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정식명칭이 경사단입니다;; "Leichte Division" 이지 "Leichte Infanterie Division" 이 아닙니다; 뭐 그리 중요하진 않은 시시콜콜한 태클이네요;;;
애초부터 북아프리카 전투는 롬멜이 이미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전쟁이라 독일의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이길 수 없는 전투가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결국 롬멜은 불가능에 도전한것 같네요..
사실. 처음에 롬멜이 도착하자마자 전쟁을 치를 때는 아주 불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영국군은 아프리카병력을 영국으로 이동시키고 있어서 '리비아'에 주둔해 있던 영국군은 약한 상태였거든요.
그렇지만 그리스가 독일에 항복한 이후의 전쟁 조건들은 대개 롬멜이 병력상 열세였습니다. 장비같은 경우는 전차vs전차로 단순비교하면 영국제가 좋았고요. 보급문제 역시 롬멜이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 좋았다고 평가합니다.(주관적)
그래도 1941년도쯤에는 웬만해서 거의 이기죠. 1941년도말에 영국 제 8군의 공세에 전략적으로 후퇴하기 전에는요. (본문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때 영국군은 쪽수가 2배 정도)
그런데 별 피해없이 '트리폴리'근처 '엘 아게일라'까지 무사히 철수합니다.
=> 영국사가들도 굉장히 칭송하는 부분입니다.
1942년 여름 토브룩먹은 것까지가 북아프리카군단 피크였습니다.
그 후에 1942년 6월 22일?(그 날로 기억하는데.)에 바바롯사작전이 실행되면서
상대적으로 제2의 전장인 북아프리카에 지원이 많이 떨어젔다고 저는 자료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 정도면 독소전 중후반의 다른 독일장성(만슈타인, 모델 예외)에 비하면 굉장히 큰 전과를 올린 겁니다.
자세한 설명 잘 보고 갑니다..![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수고하셨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그라치아니가 못했던 일을한 롬멜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