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10월 3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한국바둑의 세계화를 위한 프로기사의 행정적 지원 논의’란 주제로 바둑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주도한 세미나는 프로기사의 병역혜택 문제와 현 한국바둑계가 당착한 시급한 사안들에 대해 제고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신병식 SBS 부국장의 사회로 시작된 세미나는 이미경 의원의 개최사와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의 인사말, 이종구 의원이 축사를 전하면서 운을 뗐다. 이미경 의원은 2005년 민병두 전의원이 개최한 바둑정책 토론회에서 한국바둑계를 위한 수많은 조언들이 쏟아졌던 것을 거론하며 그 이후 별다른 토론회가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다시 한 번 마련된 이번 토론회가 한국바둑계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장이 되길 바라고 국회에서 바둑발전을 위한 법률개정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개최사를 전했다.
40여명의 방청객과 10명의 패널들이 참석한 세미나는 김용섭 전북대 법대교수가 발제문을 띄웠고 조훈현 9단, 박정상 9단,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김현석 변호사의 발표가 차례대로 이어졌다. 엄민용 바둑기자단 간사, 김성룡 9단, 백대현 6단, 김효정 2단은 토론자로 참석해 발표자의 의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했다. 3시간여에 걸친 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본다.
김용섭 전북대 법대교수 바둑문화의 진흥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과 입법방향
그동안 한국바둑은 정부의 이렇다할 지원 없이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를 중심으로 세계제패의 위업을 얻어냈다. 그러나 바둑의 세계가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더 이상 바둑을 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자율영역인 한국기원에만 맡길 수 없는 단계에 왔다고 할 것이다. 이제는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바둑문화의 진흥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바둑문화를 키워 나가고 한국바둑의 문화적 가치를 발전시켜 세계속의 바둑강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현실화시켜야겠다.
정부는 또한 바둑을 한가한 생활문화 내지 오락정도로 바라보는 방관자적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바둑 강국의 위치를 견고히 하기 위하여 프로기사에 대한 병역혜택을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상품인 태권도가 해외에 전파된 것처럼 적극적으로 프로기사들의 해외진출도 장려해야 한다. 우리 한국바둑이 태권도에 비견되는 기예와 스포츠성을 겸비한 훌륭한 문화상품이 되기 위해선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 아래 민간의 자율적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의 모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조훈현 9단 프로기사 병역문제 개선의 필요성
나는 10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기원 5단 때인 1972년에 병역 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당시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조치훈 9단은 명인타이틀을 획득하면서 병역혜택을 받았고 그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조치훈 9단 외에 국내에서 프로기사의 병역혜택이 처음으로 수여된 기사는 이창호 9단이다. 다행스럽게 1994년 병역혜택법이 개정되어 응씨배와 후지쯔배, 동양증권배까지 3개 기전 결승에 진출하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정작 병역혜택을 본 기사는 5명밖에 되지 않는다. 동양증권배는 2000년 이전에 사라져버렸는데 아직까지 다른 대회로 대처되지 않는 현실은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전문기사의 특성상 한창 성적을 내고 바둑에 매진해야 될 시기에 2년 동안의 공백기간을 가지는 건 치명적인 사실이다. 윤성현, 이성재, 안영길, 김만수 등등, 수많은 기사들이 군복무의 공백기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상권에서 멀어져 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경험도 그러하지만 전문기사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병역문제의 효율적인 처리방안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박정상 9단 프로기사에 대한 병역제도 분석 및 제안
2006년 후지쯔배를 우승하면서 병역대체복무 대상이 됐다. 바둑두는 프로기사로선 행운아라 생각한다. 앞에서도 거론한 것처럼 프로기사들에게 병역혜택의 수혜는 참 요원한 일이다. 1999년에 중단된 동양증권배를 대체할 대회로 LG배와 삼성화재배를 포함시켜달라 병무청에 여러 번 요청했으나 병무청은 번번이 거절해왔다.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는 병역혜택의 수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고 그나마 후지쯔배가 유일한 수단이라 볼 수 있겠는데 그동안 한국바둑이 대중문화에 이바지한 공로와 국위선양의 몫을 바라본다면 병역혜택의 수혜는 심하게 제약된 결과다.
최근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은 국군체육부대에 바둑 종목을 편입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병무청은 이러한 요청 역시 불가방침을 통보했다. 아직 대한체육회 인정단체로 승인 받지 못한 스타크래프트도 공군 e스포츠병이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바둑은 어찌된 일인지 제도적으로 인색하기만 하다.
바둑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재능 있는 젊은 기사들에게 조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우리 한국바둑은 세계정상을 계속 지켜나가고 국민들의 사기진작은 물론 건전한 생활문화 창달에도 큰 공로를 할 것이다.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한국 바둑 세계화의 선결과제
바둑의 세계화는 전세계 바둑인들의 공통된 분모다. 일본과 중국은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우리도 한국바둑의 위상이 날로 커져가면서 세계화에 눈을 뜨게 됐다. 세계바둑계에서 한국바둑이 주도권을 쥐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겠다. 허나 그 이전에 우리는 세계바둑계의 실정을 명확히 알아야 하겠고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겠다.
30여 년 전 일본기원이 주도적인 입장으로 설립한 IGF가 최근 들어 세계마인드스포츠와 같은 거대 행사를 등에 업고 상당한 입지를 쌓고 있다. IGF는 머지않아 국제바둑을 통괄할 수 있는 큰 단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런 IGF가 한국을 대표하는 바둑단체기관으로 한국기원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를 들춰본다면 반대양상이다. 우리 정부는 바둑에 대한 지원적 혜택을 주는 단체로 대한체육회 준가맹으로 승인된 대한바둑협회만을 인정한다.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것들이 나중엔 큰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바둑을 발전시키고 세계화를 앞당기겠다는 요지에 바둑을 스포츠로 규정지어 여러 단체로 분산시킨 행동들은 어찌 보면 되레 세계화의 측면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부의 지원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지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구실과 제도적 법률적 장치의 마련, 나아가 한 방향으로 옳게 설정할 수 있는 바탕이 세계화를 부르짖기에 앞서 선결해야 할 과제겠다.
김현석 변호사 한국기원의 나아갈 방향 - 기보 저작권 문제
기보는 1인의 창작이 아니라 2인 또는 2인 이상의 공동저작물이다. 한국기원은 기보에 대한 저작권을 90년대 이전부터 단독적으로 행사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인터넷이란 새로운 환경이 필요불가분의 관계가 되면서 기보의 저작권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2000년 한국기원은 인터넷 사업을 위해 세계사이버기원을 설립하고 한국기원의 모든 인터넷사업을 대행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인터넷바둑 사이트의 우열이 드러나면서 일부 업체가 기보 저작권을 부인하며 사건이 발발한다. CJ인터넷이 가장 먼저 기보저작권을 부인하자 NHN, 동양온라인 역시 기보저작권을 무시하며 현재까지 무단으로 기보를 게재하고 있다.
한국기원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저작권 문제를 법률적으로 제고해보고 여러 상황을 간구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를 계속 방치할 경우엔 한국기원이 관장할 사업 영역이 심히 축소되는 결과를 빚게 되고 더 나아가 한국기원의 방향성마저도 모호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기보에 대한 저작권법상의 보호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해야 하겠고 17대 국회에서 제안됐던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근거로 저작권법의 명백한 실효성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