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발표논문>
대승불교에 있어 출생과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술 문상련(정각)․ 5
영문초록 26
성숙한 죽음문화의 모색 오진탁․29
― 소극적 안락사의 3가지 대안 ―
영문초록 53
생명조작에 대한 연기적 관점 우희종․55
영문초록 93
<투고논문>
근대 선학원 활동의 史的 意義 김경집․95
영문초록 118
무위사 극락보전 벽화의 원형과 변모 이경화․119
영문초록 151
중국불교 현세간주의 특색 이병욱․153
― 천태의 공․가․중의 관점을 중심으로 ―
영문초록 184
比丘尼 八敬法에 대한 고찰 이수창(마성)․187
영문초록 220
테라바다(Theravāda)의 붓다관 (1) 박청환(정덕)․223
― Pubbakammapiloti를 중심으로 ―
영문초록 246
와이쉐시카(Vaiśeṣika) 학파와의 논쟁을 통해 본 경량부 세친(Vasubandhu)의
정신(manas) 황순일․249
영문초록 269
解深密經의 보살사상 이봉순․271
영문초록 300
究竟次第의 中有成就에 나타난 밀교사의 단면 정성준․303
― 死者의 書와의 관련성의 중심으로 ―
영문초록 329
Postmodernity and the Buddhist Studies of Ecology Yoon, Young-Hae․331
― Joanna Macy’s Ecological Self and Buddhist Self-Denial ―
영문초록 362
한글초록 364
■불교학연구회 활동일지 367
■편집회의 일정 369
■불교학연구 논문 심사규정 및 게재원칙 370
■불교학연구회 운영진 376
■편집후기 378
■List of English Abstracts 380
대승불교에 있어 출생과 죽음의 과정에 대한 記述
문상련 (正覺,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I. 緖言
우리는 불교 사상을 一見하는 가운데 Ātman과 Saṁsāra, 그리고 Mokṣa라는 세 가지 특징적 용어와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아(Ātman)의 존재규명을 통해 업과 윤회(Saṁsāra)로부터 해탈(Mokṣa)을 촉구하는 전체 불교사상사의 주된 과제에 해당될 것으로, 또한 불교 실천도의 궁극적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위 내용은 ‘死生의 논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현 사바세계의 삶을 마감한 채 ‘윤회의 死門을 향할 것인가, 열반의 生門을 향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내적 규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본 논고를 통해 三界 四生의 流轉 가운데 나[我]란 존재가 어떻게 출생되며 어떤 과정의 삶을 살게 되는지, 또한 죽음의 과정과 죽음 이후의 전개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개관해 보고자 한다. 이에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현상적 전개와 함께, 윤회의 死門에서 열반의 生門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실천적 제시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유가사지론 및 몇몇 대승경론에 나타난 四有說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다음 내용을 기술코자 한다. 먼저 四有 가운데 中有의 求生과, 生緣으로 인해 탁태에 이르는 生有의 성립에 대한 논의를 행하고자 한다. 이어 本有의 胎內 성장과 단계적 삶에 대한 기술 및, 本有의 삶 가운데 윤회 또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원리에 대해 언급코자 한다. 또한 현상적 죽음으로서 死有 및 또다시 中有가 還滅의 세계에로 나아가게 되는 전체 과정을 기술코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삶의 현상에 대한 觀照心과 함께 불교적 생명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II. 輪廻轉生과 四有說
불교에서는 인간 輪廻轉生을 四有로 설명하고 있어,1) 生有와 本有⋅死有⋅中有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자신 業力 및 阿賴耶識이 母胎에 의탁해 태어나는 찰나를 生有라 하고, 그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相續 기간을 本有라 하며, 죽는 찰나를 死有,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상속 기간을 中有라 하고 있다.2)
이는 윤회전생을 십이연기로 설명했던 초기불교 생사관과 그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부파불교의 四有說로, 윤회전생 가운데 존재의 轉移를 효과적으로 설명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도 위 四有說을 다소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3)
1. 中有와 求生
위 四有 중 中有(中陰, 中蘊)란 ‘사람이 죽어 다시 생을 받을 때까지의 識身’을 뜻하고 있다.4) 이들 識身 즉 中有는 preta라 불리며 乾闥婆라 통칭되는 채, ‘逝者(先祖의 魂)’를 지칭하기도 한다.5) 한편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유를 意成⋅求生⋅食香⋅中有⋅起 등 다섯 이름으로 칭하는 바,6) 當生에 앞서 起한 존재로서 중유는 當生의 處를 구하는 求生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極善을 지은 자는 선업의 힘으로 중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무색계에 태어나며,’7) ‘極惡 등 업력이 치성한 경우는 즉시 무간지옥에 태어난다.8) 그러나 업력이 치성치 않은 색계와 욕계의 중유는 곧바로 當生을 얻지 못하며, 이 중 욕계의 중유는 食香(乾闥婆)의 존재로서 香을 섭취함으로서 그 생을 이어간다.9)
여기서 “중유란…二有(死有와 生有)의 중간 五蘊을 性으로 삼는 채 趣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10)를 말하는 바, 그럼에도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유의 다섯 명칭 중 起를 설명하는 가운데 “起는 출생할 곳을 향해 生起하며 중간에 괴멸이 있어도…補特伽羅가 斷滅 없이 生緣을 맺고 生起하는 것을 뜻한다”11)고 하여 非趣의 존재임에도 윤회의 주체가 됨을 말하고 있다.12)
중유는 天眼으로 자신 업력에 따른 生處를 발견한 채 태어남을 얻게 된다.13) 한편 중유는 수명에 한정이 있어 구사론에 의하면
世友尊者께서 말씀하시기를, ‘길어야 7일이며 生緣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수 차례 죽고 태어나는 바’ 다른 존자께서 이르기를 ‘길어야 7⋅7일이다…’14)
라 하고 있다. 한편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중유는 生緣을 얻지 못하면 7일이 다하도록 머물며, 生緣을 얻더라도 다음에 올 삶의 형태가 결정되지 않는다. 만약 7일이 다하도록 生緣을 얻지 못하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 7일이 다하도록 머문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生緣을 얻지 못하고 7⋅7일을 머뭄에 이르면 이로부터 이후로 결정코 生緣을 얻게 된다.15)
하여 매 7일을 기점으로 다음 삶의 형태가 결정되며, 7⋅7일에 이르러 결정코 生緣을 얻게 됨을 말하고 있다.
2. 生緣 및 託胎로 인한 生有
그럼에도 生緣을 얻는 데에는 조건이 수반된다. 증일아함경에 의하면 ‘識身이 와서 수태할 때, 부모가 한곳에 모였을 때 가능하고, 부모의 몸에 重患이 없어야 하는 등 세 인연이 있어야 수태가 가능하다’16)고 한다. 즉 ①부모의 결합과, ②부모 몸에 重患이 없어야 함, ③識身의 도래 등 세 인연이 生緣의 조건이 됨을 말하는 바, 대보적경 역시 ①부모의 染心과 要愛, ②母腹의 淨月期, ③中蘊의 현전과 모태 진입17) 등이 生緣의 조건이 됨을 전하고 있다.
한편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三事가 화합하면 健達縛가 모태에 득입할 수 있다. 부모의 染心이 함께 화합하고, 母身이 調適하고 병이 없으면, 이때 건달바가 바로 나타나 모친의 胎藏에 진입한다”18)고 한다.19) 이외에 또 다른 生緣의 조건으로서 대보적경에서는 ④부모와 중유의 존귀⋅비천의 차별에 있어 평등함과 ⑤부모와 자식 업력의 감응 등을 부가하고 있기도 하다.20)
유가사지론 역시 三事和合과 受胎에 대한 위와 유사한 언급을 하고 있다.
三處現前으로 말미암아 母胎에 들어갈 수 있다. 먼저 ①어머니가 (임신할 수 있는) 調適함을 지녀야 하고, ②부모가 화합하여 함께 愛染을 일으켜야 하며, ③健達縛가 정히 現前해 있어야 한다.21)
또한 3종 장애가 없어야 함을 말하여, ①産處에 심한 병[過患]이 없어야 하고 ②種子에 심한 병[過患]이 없어야 하며, ③宿業에 허물이 없어야 한다22) 하고 있다. 한편 유가사지론은 健達縛(중유)의 탁태 과정과 아뢰야식 화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때 부모는 貪愛가 극에 다르게 되고, 마지막에는 결정코 각기 한 방울의 濃厚한 精血을 出하게 되는 바, 그 두 방울은 마치 무르익은 우유가 응결될 때와 같이 화합해 모태에 머물러 一段을 이루게 된다. 바로 그 곳에 一切種子의 異熟(果報)이 所攝되며, 執受(六根)의 所依處가 되는 阿賴耶識이 화합해 依託하게 된다.23)
이는 탐애로 인한 두 방울 정혈이 합한 一段에, 根의 所依處인 아뢰야식이 결합해 생명체가 탄생됨을 의미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건달바(중유)는 소멸된 채 아뢰야식으로 전환되는 바, 건달바(中有)는 아뢰야식(生有)의 매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정혈이 합한 一段은 根에 해당할 것으로, 여기에 결합된 아뢰야식은 그 자체가 ‘根⋅識의 생명체’로서 生有에 해당하는 것임을 말할 수 있다. 이에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은 입태의 순간을 結生이라 표현하는 가운데 “그때 中有의 蘊은 소멸하고 生有의 蘊이 생기는 것을 結生하였다 한다”24)고 한다. 한편 “生有란 무엇인가? 답하기를, 生分의 諸蘊이다. 즉 結生時의 五蘊(욕⋅색계)과 四蘊(무색계)을 性으로 삼는다”25)고 하여 結生의 순간에 ‘蘊我’로서 生有가 성립됨을 말하고 있다.
3. 本有의 단계적 삶과 生死涅槃
이상 生緣의 三事和合과 아뢰야식의 탁태로 인한 生有의 찰나를 지나 本有의 삶이 시작된다. 여기서 ‘본유란 생유와 死有의 중간 有로서 五蘊 내지 四蘊을 性으로 삼으며, 전생 所造業으로 인해 生하는 까닭에 본유라 이름한다.’26)
1) 本有와 胎內 성장
유가사지론은 탁태의 찰나로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胎內八位說]로서 소개하는 바,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羯羅藍位 : 전생의 중유가 緣을 만나 탁태한 후 7일간의 존재로 凝滑, 즉 ‘응결된 골수’가 생겨난다. 부모의 정혈이 한 덩어리로 합해지면 전도된 인연 및 중유가 소멸되면서 一切種子識의 功能力에 의해 ‘(身根 및 身根의 所依處로부터) 意識(受⋅想⋅行⋅識)이 머물고, 엉키고, 생기고, 相續하는’ 단계이다. 色으로서 羯羅藍과 受想行識으로서 名이 합해 羯羅藍이라 통칭되며, 이때 정신은 阿賴耶識을 중심으로 前七識이 표면화되며, 육체는 지⋅수⋅화⋅풍의 四大가 점차 형성된다. 이때 中有는 소멸되고 本有의 五蘊이 형성되는 까닭에 이때를 生有라 부를 수 있다.27)
② 額部曇位 : 갈라남위에서 형성된, 四大로 인한 육체가 응고되어 ‘얇은 피부’가 생겨나는 단계로, 薄皮라 한다. 끓인 우유에 막이 생기는 것 같이 피부가 생겨나는 것으로, 이는 託生의 제2주에 해당한다.
③ 閉尸位 : 알부담위에서 형성된 ‘피부가 견고해지고 혈액이 생기는’ 기간으로, 閉尸는 血肉이라 번역된다. 제3주에 해당한다.
④ 健南位 : 폐시위에서 견고해진 피부가 ‘더욱 견고해져 육체가 형성되는 기간’으로 聖肉이라 번역한다. 거의 인간 모습이 갖춰진 상태로, 제4주에 해당한다.
⑤ 鉢羅賖佉位 : 四肢와 五臟, 六腑가 형성되는 시기로 支節이라 번역되며, 胎로부터 세상에 태어나기 직전까지를 포괄하는 단계이다.
⑥ 髮毛似位 : 제6주의 태아를 말하며, 모발과 손톱 등이 나타나므로 髮毛似位라 부른다.
⑦ 根位 : 제7주의 태아로 眼根과 耳根⋅鼻根⋅舌根⋅身根 등 五官이 형성되며, 段肉이라 한다.
⑧ 形位 : 제8주부터 이후 출산 때까지를 포괄한다. 이때 태아는 인간의 형태가 분명해진다.28)
한편 유가사지론 및 불설포태경은 위 내용을 포괄한 [胎內 38位說]을 제시하기도 하며,29) 이를 부가하면 다음과 같다.
⑨ 週: 업력으로 인해 五臟, 六腑 및 九孔 등 각 신체 부위가 완성되어간다.
⑩ 주: 堅鞭이란 業風에 의해 胎身에 맥이 생긴다.
⑪ 주: 踈通이란 업풍에 의해 태가 통철해지고 九孔이 나타나며 태 속이 정리되고 형체가 안정된다. 또한 柱轉이란 업풍에 의해 胎身에 氣가 통하며 穴孔이 점점 커져 입에서는 黑血과 코에서는 穢惡水가 나온다.
⑫ 주: 대장과 소장⋅위가 생기며, 穿髮이란 업풍에 의해 320支節과 101穴이 몸에 생기게 된다.30)
⑬ 주: 업풍으로 인해 태아는 飢渴을 느끼며, 母가 음식을 먹고 생긴 滋味가 태아의 穴에 들어가 長養케 한다.
⑭ 주: 線口란 업풍에 의해 몸 전후좌우에 1천 개 힘줄[筋]이 생기며, 근육이 생겨 단단한 신체가 형성된다.31)
⑮ 주: 蓮花란 업풍에 의해 신체 각 부분에 수많은 脈이 생기며, 모친이 먹은 음식의 자미는 몸에 유입되어 몸을 潤益케 한다.
(16) 주: 無量이란 업력에 의해 골절이 안치되고 九孔이 모두 개통된다. 定心이 두루하고 心根이 열리며 氣息의 출입이 원만해진다.
(17) 주: 孔이 정결해지며 氣息의 출입이 잘 통하게 된다.
(18) 주: 大堅强이란 업력에 의해 聽根이 완성되고 六根이 청정해진다.
(19) 주: 입태 후 구족된 身根⋅命根⋅意根 등 三根과 함께 眼⋅耳⋅鼻⋅舌 등 四根이 성취된다.
(20) 주: 200개의 微細骨이 肉과 雜合하게 된다.
(21) 주: 生起란 업력에 의해 身上에 肉이 생기며, 所有란 업력에 의해 兒體에 肌肉(살근육)이 생긴다.
(22) 주: 浮流란 업력에 의해 身血이 생기고, 度惡이란 업력에 의해 兒體에서 음성이 발생한다.
(23) 주: 淨持란 업력에 의해 身皮가 발생한다.
(24) 주: 堅持란 업풍에 의해 兒身에 皮葺(살갗)이 생겨난다. 또한 滋滿이란 업풍에 의해 피부가 조밀, 윤택해진다.
(25) 주: 持城이란 업력에 의해 血肉이 더욱 윤택해지며 빛이 난다.
(26) 주: 生成이란 업력에 의해 태아의 몸에 털이 나고[發毛] 껍질 같은 것이 생겨나며, 이 모두는 脈과 연결된다.
(27) 주: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惡報와 善報를 받게 된다. 惡報로는, 曲藥란 업력에 의해 世人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고 求不得의 고통을 받고 남이 싫어하는 것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귀머거리와 소경[聾盲], 벙어리[吟哦] 및 우둔함, 추루함 등 惡報와 함께 아귀와 같은 형체, 친족의 미워함, 타인의 불신,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등의 과보를 받는다. 善報로는, 世人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육근이 구족하며 단정함, 詞辯의 분명함과 조화로운 음성 및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
(28) 주: 활발한 정신활동과 함께 망상의 분별심으로 인한 8종의 顚倒想을 발생한다.
(29) 주: 髓中間이란 업풍에 의해 정결한 피부와 안색을 갖으며, 전생 업에 의해 피부의 6종색(白色⋅黑色⋅不白不黑色⋅靑色⋅乾枯色⋅潤澤色 등)이 형성된다.
(30) 주: 鐵口란 업풍에 의해 發毛와 低甲(피부에 각질 생김) 등이 증장된다.
(31) 주: 태아의 身相이 장대해져 人相을 구족하게 된다.
~ 주: 태아가 장대해진다.
주: 모태 안에서 肢體가 구족한 상태로 된다.
주: 身相이 갖춰지고 골절이 견고해지며, 모태에 대한 厭離心이 생겨난다.
주: 태아는 그물[羅網]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태내에서 빠져나오고자 노력한다.
주: 胎兒 중 男兒의 경우 모태 오른쪽 옆구리에 배를 의지하고 등 방향으로 자리하며, 女兒의 경우 모태 왼쪽 옆구리에 등을 의지하고 배 방향으로 자리한다. 한편 이때가 되면 태아는 趣下란 업풍으로 인해 머리를 아래로 향하며, 양 어깨를 펴고 점점 출생코자 한다. 태아가 전생에 많은 악업을 지었으면 태내에서 捨命할 수 있고, 모친 역시 大苦惱로 인해 命終할 수 있다.
이상 태아 탁태에 대한 38주의 논의는 이외 여러 경론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바,32) 유가사지론에서는 출생 일자에 대한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胎中에서 38의 7일이 지나면 胎藏의 일체 支分이 구족해진다. 그로부터 다시 4일이 지나면 비로소 출생하게 된다. 부처님[薄伽梵]께서 入胎經에서 널리 설하셨듯, ‘極滿足해야 한다’는 것은 9개월 혹은 이를 지나야 함을 말하신 것이다. 만약 오직 8개월만을 지나야 할 것이라면 圓滿이라 하셨을 것이요, 極圓滿이라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6개월이거나 7개월만을 지냄은 圓滿함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33)
즉 출생에 필요한 기간으로는 38주(266일)와 그로부터 4일이 지난 270일 즉 9개월 혹은 그 이상을 지나야 할 것으로, 이렇게 하여 ‘태아가 産門을 나왔을 때를 正生位라 하며 생후 점차 觸이 발생, 眼觸과 觸을 분별하는 意觸이 생겨난다’34)고 유가사지론은 전하고 있다.
2) 本有의 단계적 삶
이상 탁태기와 출생 순간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本有의 삶이 이어진다. 탁태와 출생, 죽음에 이르는 전체 과정은 또다시 八位로 나뉠 수 있어, 유가사지론은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다.35)
① 處胎位 : 羯羅藍 등을 일컫는다.
② 出生位 : 갈라람 이후[額部曇位]로부터, 아주 늙음[耄熟位]에 이르기까지를 일컫는다.
③ 嬰孩位 : 능히 멀리 다니며 즐겁게 노닐 수 있기 이전까지를 일컫는다.
④ 童子位 : 멀리 다니며 즐겁게 노닐 수 있는 때를 일컫는다.
⑤ 少年位 : 능히 欲塵을 수용하게 되는 30세까지를 일컫는다.
⑥ 中年位 : 31세로부터 50세까지를 일컫는다.
⑦ 老年位 : 51세로부터 70세까지를 일컫는다.
⑧ 耄熟位 : 71세 이상을 일컫는다.
이렇듯 현상의 단계적 삶을 사는 가운데 중생은 ‘施設의 事’에 떨어져 순응케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혹 宿業에 의한 苦樂을 받으며, 혹 現生 造業에 따라 五趣[六道] 내지 열반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에 유가사지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다시 施設의 事에 떨어지게 되니, 소위 世事와 言說을 따라 배우게 된다. 다음에는 다시 家室에 耽著하게 되니, 大種의 類가 장대해져 諸根이 성취된 까닭이다. 다음에는 諸業을 짓게 되는 것으로, 세간 일[工巧]과 業處를 일으키게 된다. 다음에는 다시 소위 色 등의 경계를 수용하는 것이니, ‘사랑할만하다’ ‘사랑할만하지 못하다’ 하면서 苦樂을 받게 되는데 이는 전생 업[先業]의 因을 말미암는 것이다. 혹 현재의 緣을 말미암아 五趣에 나아가거나 열반을 향해 가기도 한다.36)
3) 本有의 緣에 따른 生死와 涅槃
여기서 ‘현재의 緣’으로 인해 五趣의 生死 내지 涅槃이 제시되고 있음은, 苦樂 生死로부터 열반을 향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에 별역잡아함경은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偈로서 설하시되, 일체 生은 모두 死한다. 壽命은 반드시 마쳐 業에 따라 緣의 報를 받는다. 선과 악(에 따라) 각각 果를 얻는다. 복을 닦아 天에 상승하고, 악을 지어 지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道를 닦으면 生死를 끊고 길이 涅槃에 든다…해탈하여 死를 받지 않는다.37)
여기서 ‘道를 닦아 생사를 끊고 열반에 든다…해탈하여 死를 받지 않는다’ 함은 魔를 여읠 것을 말한다. 魔는 Māra-papimā의 音譯으로, Māra는 ‘죽이는 것’ ‘죽게끔 하는 것’이란 어원을 갖으며, papimā는 惡이라 번역한다. 즉 魔란 ‘죽게끔 하는 악’을 말한다. 이는 生死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대지도론에 의하면 ‘魔에는 마왕 波旬의 세 딸로서 貪⋅瞋⋅癡 등 內魔가 있으며, 諸法實相을 벗어난 外魔가 있다’38) 하였다.
魔를 극복코자 하는 논의는 초기불교로부터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음을 말할 수 있다. 이에 탐⋅진⋅치에 대한 戒⋅定⋅慧의 가르침으로부터, 탐⋅진⋅치를 기저한 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 등 십이연기에 대한 順觀과 逆觀의 논의,39) 그리고 惑⋅業⋅苦의 순차적 전개 속에서 行蘊에 대한 논의40)를 거치는 가운데 業力과 果報 형성에는 五蘊의 積集體에 대한 我執이 바탕하고 있음을 역설한다.41)
한편 유가사지론에서는 蘊魔의 我執을 넘어, 煩惱魔로 인한 法執을 포함해 四魔를 말하고 있다.
四魔란 무엇인가? 蘊魔와 煩惱魔, 死魔, 天魔가 그것이다. 蘊魔란 五取蘊을 말한다. 煩惱魔는 三界 중 일체번뇌를 말한다. 死魔란 각 유정의 죽음 자체[衆殀喪殞歿]를 말한다. 天魔란 勤修勝善品者의 마음[心] 가운데 蘊煩惱와 死의 三種魔를 초탈코자 할 때, 욕계 最上天子인 得大自在가 나타나 그 마음 일으키는 것을 장애하고 종종의 어지러운[擾亂] 일들을 지음을 말한다…이 4종이 四魔를 건립하니…이러한 번뇌로 말미암아 當來의 生을 받게 된다.42)
이에 대해 보살영락본업경은 ‘色에 대한 戒蘊(戒身: 形의 非를 제거)과 受에 대한 定蘊(定身: 心의 亂을 제거), 想에 대한 慧蘊(慧身: 想의 虛를 제거), 行에 대한 解脫蘊(解脫身: 無累의 획득), 識에 대한 解脫知見蘊(解脫知見身: 無漏로 인한 해탈)’인 ‘無漏의 五蘊’43)을 얻어 가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한편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一乘章」에서는 ‘有漏의 탐진치(선악업)를 因으로 하고 煩惱障을 緣으로 하는 分段死와, 無漏의 無分別業을 因으로 하고 所知障을 緣으로 하는 不思議變易死를 드는 가운데, 無漏의 五蘊 즉 五分法身의 意生身으로서 佛果에 이를 수 있음’44)을 말하고도 있다. 이에 無漏의 지혜로써 法執을 넘어선 緣을 추구하는 가운데 生死 가운데 열반을 증득할 것을 촉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4. 죽음과 死有, 그리고 中有
그럼에도 위 變易死로 인한 無有生死거나, 分段死로 인한 生死거나 모두 오온의 결합이 해체됨으로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적 죽음을 맞게 된다. 이 현상적 죽음에 대해 대지도론에서는 “壽⋅煖⋅識의 三法이 身을 버릴 때 버려진 身은 쓰러져 죽는다”45)고 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에서는 “壽와 煖과 識이 身을 버릴 때…모든 根이 다 무너지고 身과 命이 분리되며, 이를 死라 이름한다”46)고 한다.
1) 死有의 현상적 측면
여기서 ‘命’이란 壽⋅煖⋅識을 통칭하는 ‘정신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命根이라 표현하는 바, “命根의 體는 壽이고 능히 煖과 識을 支持한다”47) 하고 있다. 한편 성유식론에 의하면 “壽⋅煖⋅識은 서로를 의지하며 상속하고 지속된다. 壽와 煖을 끝없이 지속시키는 것은 (阿賴耶)識이다”48)라고 하는 바, 命 내지 命根, (阿賴耶)識이 신체에서 분리됨을 死라 말할 수 있다.
한편 死는 生⋅老⋅病과 함께 四相이라 칭해지기도 하며, 범어 maraṇa(末剌諵)의 번역으로 ‘수명이 마쳐 다한다’는 뜻을 갖는다. 이때가 되면 신체에 변괴의 상이 찾아오며, 성유식론은 이때의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오직 異熟心만이 先業力을 말미암아 항상 두루 相續하며, 身分(신체)를 執受한다. 執受를 버린 處에는 冷觸이 生한다. 壽⋅煖⋅識 셋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冷觸이 일어난 處는 非情이 된다.49)
즉 수명을 마치면 異熟心(아뢰야식)이 신체를 거두어가며, 그 거두어진 장소는 차갑게 되며 非情이 된다는 것으로,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장차 목숨이 마칠 때 악업을 지은 자는 識이 (신체의) 上分부터 버리게 되어 상분에 冷觸이 일어난다. 이와같이 점차로 (냉촉이) 心處에까지 이르게 된다. 선업을 지은 자는 識이 (신체) 下分부터 버리게 되어 下分에 냉촉이 일어난다…”50)고 한다. 諸經要集은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善을 지은 사람은 冷觸이 아래로부터 배꼽 위로 올라가며, 따뜻한 기운이 다하면 곧 사람 가운데 태어나고, 만약 머리와 얼굴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곧 天道에 태어난다. 만약 악을 지은 자라면 이와는 반대가 된다. 위로부터 배꼽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鬼趣에 나고 배꼽으로부터 무릎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축생에 태어나며, 무릎으로부터 다리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지옥에 태어난다. 無學의 사람으로서 열반에 든 자는 혹 심장이거나 정수리에 온기가 있다.51)
이렇듯 신체에 냉기가 드리워지고 목숨이 다할 때, 신체에는 많은 고뇌가 찾아온다. 命終時의 고뇌에 대해 아비달마구사론은 “죽을 때의 고통은 斷末摩苦”라 칭하고 있다. 末摩(marman) 즉 死穴(死節)에 傷害가 가해져 끊어질 듯한 고통을 당한 채 죽게 된다는 것이다.52)
그럼에도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善心으로 죽는 자는 命終時 살아 있을 때 행한 善法을 憶念한 즉 信 등 선법의 마음이 일어나 현행하는 까닭에 안락한 죽음을 맞이해 몸에 극한 고통이 생겨나지 않으며, 不善心으로 죽는 자는 命終時 불선심이 現起하여 ‘死苦의 五種相(所愛 財寶⋅眷屬⋅自身⋅朋友 및 諸種 極重之憂苦를 갖춤)을 겪게 됨’53)을, 그리고 善心도 惡心도 아닌 無記心으로 죽는 자는 安樂死도 苦惱死도 아닌 상태의 죽음을 맞게 될 것임을 전하고 있다.54)
한편 命終時의 心相에 대해 현양성교론은 “명종시 分明心 속에는 善心⋅不善心⋅無記心 등 三種心이 없으며, 不分明心 속에 不苦⋅不樂의 無記心이 나타나 미구에는 死有에서 中有에로, 中有에서 生有에로 옮아가게 된다”55) 하고 있다. 이는 죽는 순간 (업에 의한) 心相 여하에 따라 윤회에 流轉하게 됨을 말하는 바, 임종시 마음가짐 및 임종의례의 단초를 제시해 주는 근거가 된다.
2) 中有를 넘어 還滅로
‘所受身을 버림’으로서 本有는 죽음에 이르며,56) 死有의 찰나가 존재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의하면 死有란 “死分의 諸蘊이다. 곧 命終時의 五蘊과 四蘊을 性으로 삼는다”57)고 하며, 유가사지론에는 死有로부터 中有가 生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諸 중생이 장차 命終時에 惛昧想位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오랜 기간 익힌 ‘我에 대한 愛[我愛]’가 현행한다. 이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없어지려 한다[我常無]’고 하면서 문득 자기 몸을 사랑하는[愛自身] (생각을) 내게 되는데, 이를 말미암아 中有의 生報를 建立한다.
預流果 및 一來果의 경우에도 命終時 我愛가 역시 現行한다. 그러나 預流 및 一來果의 경우 智慧力으로써 我愛를 자제하여 집착하지 않으니…不還果의 경우 (命終時) 我愛가 다시 現行하지 않는다.58)
위 내용에 따르면 轉生의 원인은 ‘我愛로 인한 中有의 生報가 建立됨’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바, 我愛에 대한 我滅이야말로 中有의 建立을 여읜 채 轉生의 고리를 끊는 시발점이 됨을 알 수 있다.
한편 中有의 建立을 여읠 수 있는 또다른 방편을 往生論에서 구할 수 있기도 하다. 이에 釋淨土群疑論에는 淨土에 왕생한 존재의 中有 여부에 대한 다음 문답이 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生을 쫓아 淨土에 나면 (그곳에) 中有 역시 존재하는가?…”
“(答曰) …中有란 있지 않은 것으로, 이 목숨 마치면 蓮華池 가운데 앉게 되는데, 이는 生陰[생유]에 所攝되는 바이다. 蓮華 가운데 들어감은 處胎함과 같은 까닭이다.”59)
위 인용은 生有로서 인간계의 胎生이 아닌 蓮花化生의 상황을 제시하며, ‘極善者는 中有를 거치지 않고 無色界에 태어난다’60)는 대보적경의 논리를 능가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렇듯 穢土 너머 세계에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탄생 세계는 我愛를 넘어 我滅로써 도달할 수 있는 세계와 부합되는 측면이 있음을 말할 수 있다.
III. 結語
이상 필자는 대승경론에 나타난 四有說을 바탕으로 출생과 죽음 과정에 대한 기술을 행하였는바, 이를 통해 다음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중생 四有 중 中有는 當生의 處를 구하는 求生의 존재로서 四蘊 내지 五蘊의 性을 갖는 非趣의 존재에 해당, 名色⋅補特伽羅⋅健達縛⋅(阿賴耶)識 등으로 불린다. 이 존재는 7⋅7일을 기점으로 母의 調適함과 부모의 愛染 및 健達縛의 現前 등 三事和合의 生緣을 통해 탁태한 채 生有로 전환, ‘태내 38주’간 本有의 삶으로부터 이후 耄熟位를 거치는 가운데 ‘施設의 事’에 순응한 삶을 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숙업에 의한 苦樂을 받고, 또한 현재의 緣인 現生 造業에 따라 四魔로 인한 五趣의 길[分段死] 내지 我執과 法執을 넘어선 지혜를 통해 열반의 길[變易死]로 나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위 分段死건 變易死건 壽와 暖을 지속시키는 (阿賴耶)識이 身과 분리됨으로 현상적 죽음을 맞으며 이때 惡心死에는 死苦의 斷末魔적 고통이, 善心死에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다. 한편 命終時의 五蘊(四蘊)을 性으로 하는 死有의 찰나가 존재하며, 이때 생겨나는 ‘愛我心의 念’으로 말미암아 中有의 生報가 建立된다.
여기서 ‘愛我心’은 中有 建立의 조건으로 중생 轉生의 고리가 된다. 그러나 예류과 및 일래과의 경우 命終時 智慧力으로 我愛를 자제해 집착하지 않으며, 不還果의 경우 命終時 我愛가 현행하지 않는 까닭에 轉生을 위한 中有가 建立되지 않는다. 또한 淨土往生者의 경우도 中有의 建立 없이 蓮花에 處生케 됨을 알 수 있는 바, 我愛心을 멸한 지혜와 往生 수행을 통해 中有의 建立을 벗어나 還滅門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할 수 있다.
주제어
四有(four forms of existence), 중유(intermediate existence), 건달바(Gandharva), 임종(facing death), 아뢰야식(Ālaya-vijñāna)
A Description on the Process of Birth and
Death in Mahayāna Buddhism
Moon, Sang-Leun (Ven. Jung gak, Dongguk Univ.)
The five components (五蘊, five Skandhas), as they exist between the two stages of death and rebirth, are called "intermediate existence(中有)." It has not yet arrived at its destination; therefore, one cannot say yet that it is born. After the stage of death and before the stage of birth―that is, in the interim between the two―there arises an existence, manifesting a body in order to move toward where it will be reborn. This "intermediate existence" is also called Pudgala, Gandharva or Ālaya-vijñāna.
The five components of the interim body, however, differ from those which formed the individual while he was alive. When the five components are mentioned in regard to an intermediate existence, they seem to indicate the latent energy of the five components which will manifest themselves in the next existence.
From the standpoint of Mahayāna Buddhism, we may say that life after death exists in the state of Emptiness or non-substantiality, dissolving back into the great cosmos and flowing together with the cosmic life. To employ the terminology of the Consciousness-Only school, the "interim body" is in fact nothing other than the ālaya-consciousness, the framework of individual existence which trans-migrates from one lifetime to the next, containing within itself the potential for all physical and mental functions in the form of "seeds."
In the after-death process, the subjective "self" of each individual existence is acted upon by the seeds, especially the karma-seeds, contained in its ālaya-consciousness. In other words, while being merged with the cosmic life, the "interim body" or subjective self experiences the latent force of its karma―and other seeds, and while receiving suffering or pleasure, perceives a variety of images.
From the Buddhist viewpoint, the emergence of the ālaya-consciousness―that is, the emergence of life from the latent or intermediate-existence phase―is regarded as an essential condition. Buddhism accordingly sums up the conditions necessary for rebirth as "the union of the three factors."
Here the "three factors" are defined as the sexual union of the parents, the proper functioning of the monthly cycle, and the emergence of the interim body from the intermediate-existence phase. Moreover, in order for these three factors to unite, there must be no physical disorder that would interfere with pregnancy, and an affinity must exist between the karma of the parents and the karma stored in the ālaya-consciousness of the life in intermediate existence.
Because the merit and wisdom of bodhisattvas is so highly developed, when they wish to enter the womb, they have no perverted thoughts, and are not seized by licentious desires. Wheel-turning kings and pratyekabuddhas have merit and wisdom, but it is not developed to the highest extent. Therefore, when they enter the womb, though they have no perverted thoughts, they are nevertheless seized by licentious desires.
The many classes of living beings in this way arouse perverted thoughts and enter the mother’s womb. Only the bodhisattva, when he would enter the womb, correctly discerns his father as his father, and his mother as his mother. Moreover, he arouses filial love toward his mother, and by its power enters into her womb.
For one who obtains wisdom, practices to be born in the Pure Land and establishes the state of Buddhahood in this lifetime, after death, there is no wandering through intermediate existence. Past the moment of death, that person is immediately welcomed by all Buddha’s, bodhisattvas and benevolent deities, and escorted by them to the Pure Land of Eagle Peak. "The Teachings Affirmed by All Buddha’s through Time," expresses this with the phrase, "[He] attains rebirth of the highest kind in the Land of Tranquil Light."
성숙한 죽음문화의 모색
- 소극적 안락사의 3가지 대안 -
오진탁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생사학연구소 소장)
Ⅰ. 죽음문화가 없다
의학과 의료 기계의 발달로 무수한 생명이 구해지고 고통이 크게 경감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죽어 가는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의사들은 많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죽어 가는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가 생명유지 장치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그 장치를 제거해야 할까. 죽어 가는 사람에게 격심한 통증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의사는 그의 삶을 종결짓는 결정을 내려야 할까. 또한 길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생명을 이어가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곁에서 도와주어야 하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젠 대다수가 병원에서 죽는다. 죽어 가는 사람을 생명유지 장치로 계속 목숨을 연명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자신의 삶을 불필요하게 연장하지 않고 인간적이면서도 존귀한 죽음을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것은 한층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얼마 전부터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일이 증가하게 되었다. 의료기계에 둘러싸인 채 여러 가지 튜브를 몸에 꽂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대, 60대에 자연사했을 사람들이 암, 당뇨병, 뇌졸증, 치매 등의 병을 지닌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머지않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심장마사지 등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가족들은 병실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라 할지라도, 오직 육체적 연명만을 생각하는 의료관계자가 응급실에서 ABC 조치(Air-Way: 기도 확보, Breathing: 산소인공호흡, Circulation: 혈액순환)를 취하면 몇 년간 생명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고 한다.
환자가 죽어 가는 순간 병원은 극도로 흥분된 광란에 휩싸인다. 환자를 소생시키려는 마지막 수단을 취하기 위해 일단의 사람들이 침대 곁으로 달려든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환자에게 무수하게 약을 투여하고 바늘을 찔러대고 전기 충격을 가한다. 그가 죽어 가는 순간 심전도, 피 속의 산소량, 뇌파 움직임 등등이 면밀하게 기록된다. 의사가 이제 그만 이라고 선언할 때에야 비로소 이런 히스테리는 막을 내린다. 따라서 현대 의학을 ‘사람을 죽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려는 환자의 가족으로서는, 이것이 과연 인간다운 죽음의 방식일까라는 의문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할지, 아니면 연명치료를 계속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붙들어 놓아야 할지 가족들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만일 회복의 희망이 조금도 없는 경우라면 이런 식으로 난리를 피우면서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도록 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최후의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않을까.
암 말기 환자가 입원하고 있던 대학 병원 입원실은, 환자가 의식을 잃은 뒤 숨질 때까지 48시간 내내 초상집 분위기이다. 환자는 이따금씩 괴성을 질렀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몸을 벌떡벌떡 일으켜 세운다. 가족들은 이를 저지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의 가족은 “우리에게 곧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너무 힘들다. 어머니가 저 소리에 놀라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눈을 감을 수 있는 임종실이 거의 없어 환자와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임종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당사자와 가족을 보살펴주는 임종문화, 나아가 죽음의 문화도 없다. 근본적으로 죽음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현대사회는 냉혹하게 편의주의에 빠져 어떤 영적 가치도 부인하기 때문에,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사람은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처럼 내팽개쳐진 듯한 느낌에 몸서리치게 된다.
티베트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영적으로 돌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대다수가 표하는 유일한 관심이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병실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갈수록 줄어들어 외로움과 두려움에 탈진한 상태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찾아오는 문상객 숫자는 다른 어느 나라 보다 많은 게 바로 우리 사회이다. 죽어 가는 사람을 돕는 일은 마치 쓰러진 사람을 향해 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는 것과 같다. 그처럼 상처받기 쉽고 극단적인 순간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죽어 가는 당사자에게 임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 가장 상처받기 쉬운 바로 그 순간, 그리고 삶으로부터 떠나는 마지막 순간,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통찰력도 제시받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 한 쪽에 내팽개쳐진다. 이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치욕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죽어 가는 사람을 육체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치료할 뿐이고 영적으로 보살피는 의식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결여되어 죽음문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외로움에 지치고 아무런 영적인 도움을 받지도 못한 채 커다란 압박감과 미몽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접하게 된다. 누구든지 마음의 평화를 느끼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이를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세속적 성공만 지향하는 현대 사회의 허세는 공허할 뿐이다. 더구나 환자의 죽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의료관계자가 죽음에 대해,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방식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 대학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간호사가 연구실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의사나 간호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해 아무런 준비 없이, 임종환자를 차가운 병실 한 구석에 마지막 순간까지 방치해 놓고 있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그는 말했다. 한 생명이 죽음을 맞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자신의 삶을 맺는 마지막 순간이므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까지 관계된다. 따라서 그 순간에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너무도 피상적인 접근방식이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죽음,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죽어 가는 환자를 돌보는 방식, 나아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대해 보다 공개적인 논의와 철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Ⅱ. 새로운 죽음문화 형성을 위한 모색
최근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라든가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치료하기 어려운 말기환자를 단지 육체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느냐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환자를 더 이상 치료할 수단도 없고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육체적 연명만을 위해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한 것인지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을 뿐이다. 더구나 안락사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국립 암센타에서 호스피스에 대해 조사했는데,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중단’ ‘사전의사결정제도’에 대해 국민의 84%, 81%가 필요하다’ 고 응답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2004년 6월29일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해 유죄확정판결을 내렸으므로, 퇴원하고자 하는 환자 가족과, 이를 저지하는 병원과 의사 사이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의미 없는 목숨연장이 죽음보다 더 잔인하다는 주장도 있는 반면, 안락사 반대자들은 의료현장의 생명경시풍조를 크게 우려한다. 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 게르만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안락사를 촉진시킨다는 명목으로 나치정권이 신체장애자와 정신병자를 말살시키는 형법을 제정하였고 또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는 비극이 일어난 바 있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이나 극빈자의 경우 ‘죽을 권리’가 ‘죽어야 하는 의무’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안락사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안락사를 법제화하는 식으로 추진하다가 얼마 전부터 이런 식의 움직임을 중단했다가, 최근에 존엄사를 법제화하기 위해 연립여당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61)
소극적 안락사 논란과 관련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명하도록 하는 연명치료 장치가 죽음이란 위급한 국면에서 고통, 불안, 그리고 혼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불교의 가르침과 임사체험의 증거로 볼 때, 혼수상태에 빠질지라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온전하게 의식할 수 있다.62) 따라서 죽기 전에, 죽어갈 때, 그리고 몸과 의식이 최종적으로 분리될 때까지 환자를 평온한 분위기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필자는 이와 같이 뚜렷한 해결책 없이 논란만 거듭되고 있는 안락사 파문과 관련해 이 문제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음같이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죽음준비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널리 알리고, 죽음에 대한 인식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죽음준비교육을 활성화한다. 모두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죽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죽음인지, 죽음의 질(Quality of Life)을 심사숙고해야만 소극적 안락사 문제와 연명치료 논란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죽음을 평소에 대비하고, 치료가능성이 더 이상 없을 경우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편안히 수용하고자 하는 자기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에 서명한다. 단순히 리빙윌에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삶, 죽음, 그리고 죽음의 방식에 대해 평소에 미리 심사숙소하자는 것. 셋째 호스피스의 철학은 죽음을 패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하므로, 사람마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세 가지 대안이 충분히 논의되어 시행될 수 있다면, 안락사 논란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수 있을 것이고 죽음의 질과 함께 삶의 질 역시 점차적으로 향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Ⅲ. 첫 번째 제안 : 죽음준비교육
소극적 안락사 문제를 단지 법적인 차원, 의료적인 문제에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도 대부분 이 문제를 단지 법적인 테두리, 의학적인 골칫덩어리의 해결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인간의 죽음이 겨우 법적인 혹은 의학적인 문제일 수만 있겠는가. 소극적 안락사 논란과 연명치료 여부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의학적, 법적인 문제를 포함해 논의를 해야겠지만, 그런 식의 논의에 앞서 인간의 삶과 죽음, 생명 혹은 영혼의 문제라는 보다 큰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죽어야 인간으로서 존엄한 죽음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먼저 심사숙고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늦게, 실제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므로, 지나간 삶을 후회하면서 죽는 사례가 많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례가 많고, 자살 사망률이 최근 들어 급증하는 상황이고, 또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밝은 미소 속에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볼 때, 죽음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죽음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 삶을 바르게 영위하도록 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 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죽음준비교육은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도록 하고 죽음을 한층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삶의 준비교육이고, 자살예방교육이기도 하다. 따라서 죽음준비교육을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 또 성인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학교교육과 평생교육의 형태로 눈높이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63) 일본에서도 학교교육에 죽음준비교육이 2002년부터 포함되었으며, 죽음준비교육의 연구를 위해 올해 예산에 4백만 달러를 책정했다.
죽음 이해와 개념규정의 방향에 따라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나 타부 등을 야기하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방식까지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므로, 죽음에 대한 개념정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뇌의 기능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이후에도 호흡과 심장박동을 일정 기간 유지시켜 주는 일이 가능해짐에 따라 죽음 정의 문제는 이론적 차원에서나 실용적 차원에서나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심장의 기능 여부가 사망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심폐사에서 뇌사로 죽음정의가 바뀐다면, 뇌의 모든 기능이 회복 불가능하지만 생명보조 장치에 의해 심장박동을 유지하고 있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환자의 경우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죽음정의가 심폐사에서 뇌사로의 전환은 또 장기이식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환자로부터 장기를 적출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뇌사자가 장기이식에 동의한 경우, 장기척출이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또 뇌의 기능이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경우, 생명 보조장치 사용 여부 안락사에 대한 논란도 필요 없어진다.
그러나 실용적 측면에서의 이와 같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뇌사에 대한 공감대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64) 죽음의 결정과정에서 뇌의 중요성은 인정되지만, 뇌사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주장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죽음을 그 자체로 정의해야지 실용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신체기관의 일부가 손상받은 것일 뿐으로 귀나 눈의 손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뇌가 신체기관을 조정하는 기능을 지녔지만, 인간존재가 뇌로 환원되거나 뇌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인간존재의 죽음이란 그 일부의 죽음이 아니라 전체적 유기체의 죽음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왜 그토록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것인지, 불행하게 죽어 가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그리고 자살사망률이 왜 최근 들어 급증하는 것인지 문제를 추적해 보니까, 다른 여러 가지 원인도 작용하지만 그 근원에는 죽음에 대한 오해, 육체 중심의 인간이해와 죽음정의가 오해의 근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65) 또 다른 문제점으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개념 정의하느냐 하는 죽음 정의 문제는 죽음 판정기준과 죽음 판정기준 충족 여부 검사와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개념이 서로 혼동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 정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문제이지만, 죽음 판정기준 제시와 죽음 판정기준 충족 여부 검사는 기본적으로 의학적인 문제이다.66) 죽음정의 같은 철학적인 문제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그런 문제는 분명 아니지만, 영혼의 존재 문제라든가 사후세계 문제 등에 철학적, 종교적으로 폭넓게 접근해 바람직한 방식으로 죽음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고 죽음 정의 문제는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우므로, 실용적 차원에서 죽음판정 기준 제시라는 의학적 문제로 축소되었다. 심폐사든지 뇌사든지 이런 논의는 죽음 판정 기준과 관련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죽음 정의 문제인 양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67) 그래서 죽음정의 문제는 인간의 육신에 초점을 맞추어 단지 의료적인 문제, 법적인 차원에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단지 뇌사, 심폐사 같은 의학적 차원의 죽음판정 기준의 문제로 축소되니까, 사람들의 죽음 이해 역시 육체 중심으로 한정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죽음(죽음정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학적, 법적인 문제를 포함해 논의를 해야겠지만, 그런 식의 논의에 앞서 인간의 삶과 죽음, 생명 혹은 영혼의 문제라는 보다 큰 차원에서 죽음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으로서 존엄한 죽음은 어떤 죽음이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먼저 심사숙고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건강에 4가지 측면이 있다. :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건강. 최근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영적인 건강을 추가시킴으로써 우리의 건강에 당연히 영혼이나 영성, 영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건강에 영적인 건강을 포함해 4가지 측면이 있다면, 죽음도 당연히 4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1) 육체적 죽음, (2) 사회적 죽음, (3) 정신적 죽음, (4) 영적인 죽음.68)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육체적 죽음과 사회적 죽음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정신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퀴블러 로스도 인간존재는 육체적, 감정적, 지적, 영적인 4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면서, “진짜 문제는 우리가 죽음에 대한 참된 정의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69)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고 의대생과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 포괄적인 정의를 내리는 일에 부딪혀 보기로 결정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하게 죽어가고 있고, 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가족이 죽어가는 사람을 병실 한 구석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 역시 죽음이해와 정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기 환자와 항상 깊은 인간적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사람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해서든지 알고 싶어 했다. 분노와 욕설, 좌절의 상태에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바로 뒤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침착함, 평온함을 자주 목격하면서, 죽은 그들의 육신은 봄이 되어 더 이상 필요 없어 벗어 던진 겨울 외투처럼 보였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보살핀 경험이 있는 그는 아주 확실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육신은 껍질에 불과하고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은 더 이상 그 껍질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70) 죽음이 찾아오면 시체가 남는 것이지만, 시체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죽더라도 존재의 양식만 바꿀 뿐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71)
그러므로 인간의 죽음은 뇌사나 심폐사처럼 육체적 죽음판정 기준만으로 정의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육체 중심의 죽음판정 기준이 죽음정의를 대신하는 그런 사회는 결코 죽음문화가 성숙될 수 없고 자살처럼 불행한 죽음만 양산될 뿐이다. 사후의 삶에 대한 연구결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고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생존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퀴블러 로스는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정의한 것과 같은 그런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그는 이르렀다. 이제 죽음 정의는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것을 넘어 영혼, 정신, 삶의 의미같이 순전히 물질적인 삶과 생존 이상의 무언가 지속되는 것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72) 의학적, 법적인 접근은 단지 죽음의 육체적 측면만, 즉 죽음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분만 다루는 격이다. 육체의 죽음, 한 가지 죽음 판정기준에 국한시킨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폭넓은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도 야기될 수 있으므로, 죽음을 폭넓게 또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죽음에만 국한시키기보다 다양하게 접근해야만 우리의 삶과 죽음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
또한 죽음이 끝이냐 아니냐, 혹은 죽은 뒤 영혼은 유지되느냐 여부 문제 역시 죽음 정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죽음 정의 문제는 죽음 이후 문제와 아무 관련 없이 논의되어서는 곤란하다. 죽음은 우리의 삶과 죽음 이후를73) 연결시켜주는 매듭의 역할을 하므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3가지는 함께 심사숙고되지 않으면 안된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단지 지식의 문제, 사실의 문제라고 말했다. 소아암 등으로 죽음에 직면한 어린아이들을 향해 그는 “우리 몸은 헝겊으로 만든 번데기와 마찬가지여서 죽으면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나비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 올라간다”고 말했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죽음이란 육신의 옷을 벗는 행위“ 라고 규정했다.74)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게 끝이 아니므로, 죽음의 정의 역시 육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결과 사람들은 육체에만 국한되는 그런 삶, 지나치게 세속적인 삶만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육체로부터 영혼의 분리과정으로 본다면,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죽음을 육체적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보다 깊이 영혼, 영성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고 죽음방식이 보다 성숙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질(Quality of Life)과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은 결코 올라갈 수 없다.75) 삶과 죽음을 통한 여행으로 자기존재를 이해할 경우,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세속주의나 물신주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죽음을 육체의 측면에서 본다면, 육체의 죽음은 분명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 죽음을 바라보면 죽음은 육체의 죽음일 뿐이고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것이다. 죽음은 단지 육체의 죽음일 뿐 끝이 아님을 분명히 안다면,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퀴블러 로스가 생사학의 연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남편과 이혼하면서까지 생사학 연구에 몰두한 것도, 또 생사학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죽음은 끝이 아니므로 죽음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전달에 있는 것이다.76)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임사체험자들은 죽음의 순간 마치 허물 벗듯이 육체의 옷을 벗어버렸다. 죽음은 흡사 나비가 고치를 벗어 던지는 것처럼 육신을 벗는 것에 불과하다. 죽음은 보다 높은 의식 상태로의 변화일 뿐이다. 죽음의 순간에 유일하게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육신이란 허물이다. 죽은 뒤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봄이 와서 겨울코트를 벗어버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죽음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77)
그러므로 죽음은 두 가지 이유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첫째 죽음정의에 대한 논의를 심폐사나 뇌사같은 죽음판정 기준이 대신하고 있으므로, 우리 사회에 죽음판정 기준에 대한 논의만 있을 뿐 죽음(죽음정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에 불과하고, 죽음의 순간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므로,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존재하지만, 영혼의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육체의 죽음일 뿐 끝이 아니므로,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정의 대신 죽음판정의 육체적 기준만 논의하는 사회에는 육체의 죽음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런 사회에 자살사례가 급증하는 등 불행한 죽음만 양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78)
Ⅳ. 두 번째 제안 : 존엄한 죽음
1. Living Will,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소극적 안락사의 두 번째 대안으로 리빙윌(Living Will),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혹은 ‘사전의료지시서’을 제시한다. 적극적 안락사뿐만 아니라 소극적 안락사 역시 논란의 소지가 많이 있지만, 리빙윌이나 사전의료지시서를 토대로 하는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건강할 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해두는 리빙윌이나 사전의료지시서를 이미 법제화했다. 79) 대만도 7년간의 노력 끝에 존옴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자연사법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통과시켰다. 일본에서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 존엄한 죽음을 실천하기 위해 리빙윌에 서명해 두었다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게 되는 경우, 이 선언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다. 일본 후생성(厚生省)에서 98년 6월 말기의료를 집중 검토한 결과 리빙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자신의 의사를 중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에 따라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하는 환자의 뜻은 대부분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일본은 법제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호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의 관계자들이 모여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관해 국제회의를 10여 차례 열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 자기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미리 가족과 협의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유서형식으로 문서화 해두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유서만 써두자는 말이 아니라, 리빙윌에 서명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삶을 되새겨보면서 인간다운 삶과 품위 있는 죽음맞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보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겠다는 결심을 하자는 뜻.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저는 제가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 친척, 그리고 저의 치료를 맡고 있는 분들께 다음 같은 저의 희망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선언서는 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 적어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이 선언서를 파기할 수도 있겠지만, 철회하겠다는 문서를 재차 작성하지 않는 한 유효합니다.
(1) 저의 병이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2) 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3) 제가 몇 개월 이상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저의 선언서를 통해 제가 바라는 사항을 충실하게 실행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80)
얼마 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료양로원에서 ‘죽음준비’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노인들은 평균 연령이 80세였으므로,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노인들을 상대로 조심스럽게 “죽음은 절망이 아니다, 죽을 때 자기 자신의 값어치가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밝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하자”는 취지로 1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소극적 안락사의 대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전환,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와 함께 리빙윌을 제시했더니, 이구동성으로 찬성의 뜻을 표했다. 소극적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사나 변호사에게 물어보는 등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번쩍 뜨였던 것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의 내용이 바로 자신들이 원하던 내용이라는 것이다. 소극적 안락사의 대안으로서 리빙윌은 바람직한 죽음의 방식이라고 본다. 평소에 건강할 때 리빙윌에 서명해두고 자기의사를 가족에게도 분명하게 알려 놓는다면,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본인이나 가족이 담당의사에게 관련서류를 제시할 경우, 당사자의 뜻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2.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 두 가지를 서로 혼동하거나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듯싶다. 두 가지는 서로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은 훨씬 많다. 공통점은 억지로 생명을 죽지 못하게 하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것, 단 한 가지뿐이지만, 차이점은 여섯 가지나 된다. (1) 행위와 판단의 주체 (2) 죽음관 (3) 삶의 태도 (4) 죽음의 방식 (5) 리빙윌 (6) 작별인사의 방식
(1) 행위와 판단의 주체 : 소극적 안락사가 법으로 합법화될 경우, 소극적 안락사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의 주체는 당연히 의료인이다. 법으로 보장되었으므로, 의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행할 권리를 지닌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당사자와 가족, 혹은 당사자와 의료인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당사자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인 또는 가족의 뜻에 따라 죽게 되는 상황도 야기될 수도 있다. 당사자의 뜻이 전적으로 무시되는 상황도 초래될 수 있다. 그러므로 행위와 판단의 무게 중심은 역시 당사자에게 두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존엄사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행위와 판단의 주체는 의료인이 아니라 당연히 죽어가는 당사자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병의 진행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자기 생명을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느냐, 아니면 의사 혹은 가족이 결정하느냐 하는 판단 주체의 차이, 또 의사가 판단의 주체가 되느냐, 혹은 병의 진행과정을 알려주는 역할만 하느냐 하는 의사가 맡는 역할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2) 죽음관 :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당사자는 평소 죽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죽음준비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사관 역시 확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별탈 없이 살아가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소극적 안락사를 행해야 하느냐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뿐이다. 단지 의사가 주어진 상황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 소극적 안락사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리빙윌에 미리 서명하는 사람은 평소 죽음에 관심을 지녀 죽음을 자기 삶의 일부로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 뚜렷한 생사관을 정립했으므로, 존엄사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양자 간에 크게 벌어져 있는 생사관의 차이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3) 삶의 태도 : 리빙윌에 서명한 사람은 죽음의 수용과 준비를 통해 자기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되새기면서,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사는 방식을 모색한다. 그러나 갑자기 소극적 안락사를 하느냐 여부에 직면한 사람은 죽음에 대해 평소 심사숙고하지 않았듯이, 삶의 방식에 대해, 또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방식 측면에서 서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4) 죽음의 방식 : 소극적 안락사 문제에 봉착한 사람은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예기치 않게,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직면해 떠밀려 가듯이 소극적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당사자의 의사는 전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리빙윌에 서명한 사람은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즉 존엄사를 평소 건강할 때 자기 자신의 죽음의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결정해 놓았다가,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와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라도 아무런 흔들림 없이 평소에 준비한 대로 밝은 모습으로 죽음에 임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의 방식 역시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5) 리빙윌 : 소극적 안락사 문제에 직면한 사람은 평소에 리빙윌이나 사전의료지시서란 제도가 있는지, 리빙윌 혹은 존엄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대해, 죽음을 평소에 준비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존엄사에 뜻을 둔 사람은 리빙윌이나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함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해, 또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역시 평소에 깊이 성찰한다.
(6) 작별인사 : 소극적 안락사 여부에 직면한 사람은 갑자기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족 친지와 떨밀려 가듯이 작별인사를 하게 된다. 심지어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죽는 사례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리빙윌이나 사전의료지시서에 미리 서명해 둔 사람은 마치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가족을 향해 편안하게 마지막 말을 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 작별의 방식 역시 양자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벌어져 있다.
따라서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이상과 같이 6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총괄적으로 보았을 때, 소극적 안락사는 소극적, 수동적, 부정적, 어두운 이미지라고 한다면, 존엄사는 적극적, 능동적, 긍정적, 밝은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죽음의 방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나아가 죽음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연명치료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소극적 안락사의 합법화 보다는, 리빙윌에 서명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죽음의 방식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 심사숙고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뿐만 아니라 삶의 질 역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Ⅴ. 세 번째 대안 : 호스피스의 활성화
소극적 안락사의 세 번째 대안으로 호스피스의 활성화를 들었다. 서양 의학은 치료를 통해 환자를 단 1분이라도 더 연명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의사의 첫 번째 임무이므로, 환자의 죽음은 패배로 간주된다. 죽음을 이런 식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현대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어왔다. 의사와 간호사는 주로 치료에만 신경쓸 뿐이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말기환자들이 겪는 정신적 불안과 고통을 어떻게 해야 덜어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더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환자를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피는 교육을 의사나 간호사는 받아본 일이 없다. 그러나 삶의 질은 단지 살아있는 시간의 길이라는 양적인 측면으로만 측정될 수는 없다.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간주하는 호스피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죽음의 질을 함께 생각하면서, 말기환자가 인간답게 편안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프로그램의 총칭이다. 남은 인생을 덜 고통스럽게 보내면서 자기 인생을 정리하고 정신적으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어쩌면 가장 주요한 일인 지도 모른다. 말기환자의 극단적인 불안심리, 주위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진정시키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호스피스의 철학이다.
시한부 말기환자에게는 죽음의 공포와 함께 ‘왜 하필이면 나인가’ ‘왜 나만 죽어야 하는가?’ 라는 분노의 감정이 밀려들게 마련이다. 이런 감정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가족이나 호스피스 봉사자의 몫이다.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임종환자들을 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에 홀로선 말기환자의 공포와 고독, 그리고 분노를 함께 나누는 호스피스 봉사는 ‘고통스러운 활동’이라고 어느 자원봉사자는 말한다. 호스피스는 죽음의 길에 들어선 말기환자들을 죽는 그 순간까지 질병으로 인해 생긴 육체의 통증 뿐 아니라 심리적 불안이라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보살핀다. 임종환자가 맞는 삶의 마지막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호스피스가 지향하는 바이다. 임종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는 최대한의 관심과 배려를 제공한다. 삶의 마지막 과정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방식으로 남은 시간을 영위하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스피스는 더 이상 치유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풍요로운 마음으로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다 참되고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시행하는 활동 전부를 일컫는다. 차가운 의료기계에 둘러싸인 채 단지 육체적으로만 오래 연 명하는 것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주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젊은 여성 환자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처음 입원했던 병원에서 부작용이 심한 화학요법 치료를 받았는데 좋아지기는커녕 정신적으로 크게 고통스러웠다. 마침 어느 친절한 의사가 화학요법을 계속 써도 거의 효과가 없다고 설명해주었고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의 자유라고 말해서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그녀는 “나는 정말 행복해” 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녀의 밝은 미소는 주위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81)
Ⅵ. 맺는말
필자는 이상과 같이 논란만 거듭하는 소극적 안락사 문제와 관련해 바람직한 죽음문화가 형성되도록 하기 위한 토대로서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죽음준비교육을 시행해 죽음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일, 둘째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에 미리 서명하고 이를 계기로 평소에 죽음의 방식이라든가 삶의 방식을 심사숙고해 두는 일, 셋째 임종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 소극적 안락사 문제를 육체적 측면, 사회적 각도에서만 보지 말고 정신적 측면, 영적인 차원까지 함께 숙고하면서 세 가지 대안이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시행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질이 높아져야만 우리 사회의 삶의 질 역시 한층 높아지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주제어
소극적 안락사(Passive-euthanasia), 자살(Suicide), 죽음문화(Death-culture), 임사체험(Near-death-experience), 죽음준비교육(Death-education), 호스피스(Hospice), 생전유언(Living-will), 생사학(Thanatology), 존엄사(Death-with-dignity), 뇌사(Brain-death), 심폐사(Heart-death), 죽음정의(Definition of death)
Suggestions for Mature Death-Culture: Three Alternatives of Passive-Euthanasia
O, Jin-tak (Hallim Univ.)
Understanding death in the right way is very important. Depending on how well one understands death and in what way one defines death, the discussion on death can lead to denying it or tabooing the issue altogether. Nowadays, the definition of death relies on clinical determination of men's medical condition in such terms as brain death or heart death. Death should not be defined entirely in terms of the collapsing of the body. The founder of Thanatology (the study of death and dying), Qubler-Ross, states that the human has a soul and that defining death means going beyond the realm of the physical and the material to the realm of the soul, the mind, and life itself. In this context, death doesn't exist for two reasons. First, such medical pronouncement as brain death or heart death has functioned so far as the definition of death, thus, there has only been the discourse on the criteria for medical decisions, but not on death itself. Secondly, the death as we know only marks the physical death since the soul begins its journey, separating from the body. In a society where there is only the discourse on the medical criteria for physical death, but not the significance of death itself, people tend to think of physical death as the end of it all. As a result, one witnesses the increase of suicides and increasing number of unhappy death. Therefore for the formation of death-culture I offer three suggestions. First Death-Education, second Living Will or Advance-Directive, third Hospice.
생명 조작에 대한 연기적 관점82)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I. 서론
불교는 부처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가르침의 근간은 연기법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연기법에 의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라는 지혜를 얻음으로서 이고득락하며, 이러한 깨어있음을 바탕으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자타불이의 자비행이 나타나야함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한편, 생물학은 20세기 초 멘델에 의해 기초적인 유전 현상이 언급된 이후 1950년대에 왓슨과 클리크에 의해 유전자의 정체가 DNA의 이중 나선 구조에 의함이 밝혀짐으로서 유전공학의 발전과 더불어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82) 유전공학은 인체의 몸이 세포내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됨을 보여주었으며, 더 나아가 세포의 구성과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소기관의 기능 등을 밝혀 줌으로서 생명체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러한 유전공학의 발달에 따라 지금은 인체의 유전자 지도도 작성되었으며,83) 유전자나 세포 조작을 통하여 생명체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생명 조작이란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84)
이러한 기초적인 생명과학의 발달은 그동안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 및 불치병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현대의학에서의 난치 및 불치병의 대부분은 선천적 이상 외에는 대체적으로 생물체의 개체 고유성을 유지하게 하는 면역계 이상과 이로 인한 발생하는 특정 기능의 장애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선천적 유전 이상이나 면역기능 교정과 더불어 기능이 저하된 장기의 대체 등은 생명조작이 가능한 생물과학의 도움으로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을 포함하여85) 그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구상의 식량 부족과 기능성 식물의 개발을 위하여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품종의 동식물을 만듦으로써86) 고부가가치의 바이오산업에의 산업적 활용이 시작되는 등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문화로서의 과학적 지식이란87) 원자력의 발견처럼 그 연구 결과가 우리의 실생활 속에 등장할 때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88) 현재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유전자와 세포 조작에 의한 생명조작이란 기존의 의학과는 달리 생명현상의 기본이 되는 유전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생물학적 관점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그 기술적 결과가 우리 실생활 속에 나타날 때의 파급되는 영향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이며,89)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윤리적, 사회적 논의는 결코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90)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우리에게 대두되고 있는 생명조작에 대한 현황을 살펴볼 때, 국내에서의 논의 대상으로서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인간 자체에 대한 조작으로서의 배아줄기세포 조작과 이에 따른 배아복제 및 치료용 장기 개발, 2) 인간과 자연계의 경계로서의 형질전환 동물 이용한 이종 장기 개발, 그리고 3) 자연계에 대한 대표적 조작으로서의 형질전환 동식물을 통한 유전자조작 작물(GMO)이다.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현대 과학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는 생명조작에 대하여 구체적인 현재 상황을 검토하여 과학적 지식에 대하여 불교적 지혜가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II. 본론
1] 배아 줄기세포 연구
1. 배경 및 흐름
생물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단 1개의 세포인 수정란으로부터 수백억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성체를 이루기까지 많은 세포 분열이 필요하며, 또한 그러한 분열과정 중에 특정 기능을 지닌 세포로 분화하여 특정 장기를 이루게 된다. 줄기세포(stem cells)란 이렇듯 미분화 상태의 세포로서 스스로 분열, 복제할 수 있으며 개체의 발달 시기와 위치하는 장소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세포들을 말한다. 한편, 줄기세포주(stem cell lines)란 체외 배양에서도 미분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무한정으로 배양가능한 세포들을 말한다. 이러한 줄기세포에는 크게 배아줄기세포(ES cells; embryonic stem cells)와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s)로 나뉘며, 배아줄기세포는 다시 수정란 및 핵치환 배아줄기세포로 나뉘게 된다.
동물에 따라 다르나 사람과 양에서는 수정란은 8-16 세포 단계에서부터 본격적인 발생 분화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쥐에서는 2 세포 단계에서 이러한 상태가 된다). 그 후 사람의 수정란이 5-6일 정도 지나 7-8번 세포 분열이 끝나면 1-2백 여개의 세포로 이뤄진 배반포 상태가 되고, 안쪽 윗부분의 세포덩어리인 내세포괴(ICM; inner cell mass)가 형성되어 아랫부분은 비어있는 형태로 된다. 세포덩어리를 둘러싼 영양배아층은 나중에 태반으로 분화되며, 내세포괴로부터 장차 200 종류 이상의 다양한 세포들로 이루어진 태아의 모든 부분들이 발생된다.
<그림 1> 초기배아의 blastocysts로부터 얻어지게 되는 줄기세포들; ES (embryonic stem) cells, TS (trophoblast stem) cells, XEN (extraembryonic endoderm) cells. (각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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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복제는 전배아 (pre-embryo), 즉 임신 시작에서부터 원시선 (primitive streak)이 출현하는 수정 후 14일까지의 착상 이전의 수정란의 복제를 의미하며, 이러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하나의 완전한 개체를 형성할 수 있다. 한편, 일반적으로 종래의 학문적인 의미로서의 생명체 시작은 자궁 착상 시점으로부터라고 생각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착상 전 배아에 대한 조작이 생명체 조작이냐는 논란을 낳게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배아 복제를 통하여 새로운 개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동물 복제와 선천적 유전질환 등의 난치 및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세포이식 치료용 복제로 구분하기도 하며, 현재 배아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상기한 체세포 핵 이식법(SCNT)이 주로 사용된다.91)
1)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응용 가능성
배아줄기세포는 이론적으로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하기에 배아줄기세포의 분화를 조절할 수 있는 기전(mechanism)만 밝혀진다면92) 난치 및 불치병 환자 치료에 필요한 정상세포를 무한정 생산하여 치료에 사용할 수 있으며93) 더 나아가 필요한 장기도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아세포 분화 유도기술이다.94)
한편, 배아줄기세포는 이러한 세포이식 치료(cellular theraphy) 외에도 신약 개발에 따르는 동물 시험을 대신 할 수 있으며 이는 신약의 약효나 독성을 사람의 배아 줄기세포에 실험함으로서 보다 정확히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판정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줄기세포 연구의 응용으로서 앞으로 형질전환 복제 동물을 작성하여 사람의 특정 생리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생체반응동물(transgenic animal bioreactor)이나,95) 특정 질환 실험동물,96) 내지는 애완견 복제 사업 등 다양한 바이오산업의 중심을 이루게 되어 경제적 파급 효과는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 체세포 핵 이식법(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SCNT)
배아줄기세포의 세포이식치료에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국내에서 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 체세포 핵 이식법(SCNT)이 있으며 이는 성체의 체세포 핵을 분리해 내어 여러 가지 처리를 거쳐 재프로그래밍시킨 후 핵을 제거한 난자에 집어넣어 이러한 복합세포가 수정란과 유사한 방법으로 분화하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이렇게 해서 얻은 배아줄기 세포는 체세포를 제공한 환자와 주요조직적합성복합체(MHC)이 동일하기에 환자의 몸에 들어가도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현재 시도되는 일반적 방법은 환자의 귀나 피부에서 소량의 조직을 채취하고 효소를 처리해 체세포를 분리한 후 준비한 환자의 핵을 난소로부터 적출되어 핵이 제거된 난자의 세포질 속으로 이식한 후, 전기화학적 자극으로 인위적인 활성화 과정을 거쳐 생체 발생 분화 프로그램이 재구성된 복제수정란이 마련되게 된다. 다만 이러한 방법은 선천적 유전 질환을 지닌 환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한편, 이러한 방법은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로서 인간을 복제할 여지를 남기기에 인간 복제에 대한 우려와 염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이 방법은 항상 건강한 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97)
2. 현황
1) 배아줄기세포와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1980년대에 들어와 보고되기 시작했으나 소의 난자에 섬유아세포의 핵을 이식하여 만든 배아줄기세포주의 보고는 1998년 이루어졌고,98) 사람의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는 1998년 미국의 Thomson에99) 의해 보고되었다.
이렇게 만든 사람의 배아 줄기세포를 일반적인 불임부부의 인공수정과 같은 과정을 통해 대리모에게 착상시키면 인간 복제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100). 현재 배아줄기세포주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제 배아세포주은행 설립이 비교적 배아줄기 세포 연구가 관대한 국내에 추진되고 있으나 최근 국내 연구자의 논문철회 사건으로101) 진행이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2) 난자의 수급 문제
성공적이고 효율 좋은 복제를 위해서는 핵을 이식할 건강한 난자를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은 건강한 여자의 성숙한 난자를 배란촉진제를 사용하여 과배란을 유도한 후 이를 채취하여 사용하는 경우이며, 또 다른 세포들로서는 불임 치료의 목적으로 시험관 내의 체외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세포들 중에서 실제로 임신에 사용되고 남은 세포들이다.
시험관 수정(IVF)을 위하여 과배란을 유도한 후 수술을 통해 적출된 약 10개 정도의 난자는 체외에서 정자와 수정된 후, 수정란은 여성의 자궁과 같은 조건에서 2세포기에서 4세포기로 분열했을 때 자궁에 이식한다. 이 때 다태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오직 2-3개의 배아만 선택해 환자의 자궁에 이식해 주게 되며, 이식하지 않고 남은 배아는 임신에 실패 할 경우나 다음 아기를 위해 극저온의 액체 질소 안에서 보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남은 배아를 잔여배아라 하며, 배아줄기세포는 이러한 잔여배아를 배반포까지 발생시켜 그 안쪽에 위치한 내세포괴로부터 유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102)
여성에게 배란 촉진제를 사용하여 과배란을 유도할 때 2-5%의 여성에게 나타나 매우 고통스러우며 드물게는 죽음까지 유발하게 되는 난소과자극증후군 (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의 문제가 상존한다는 점과103) 더불어 배아 복제를 위하여 건강한 여성으로부터 배란촉진제를 사용하여 난자를 적출한다는 것은 난자의 상업화를 암시하게 되며 일종의 장기 매매와도 같은 의미도 지니게 될 수 있기에 많은 윤리적 함의를 지니게 되는 반면, 잔여배아는 불임 부부에 있어서 임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수정란은 항상 여분으로 준비되고, 일단 임신에 성공하게 되어 불임부부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게 된 여분의 수정란은104) 불임클리닉에서 결국 폐기될 뿐이기에 세포를 제공한 부부의 동의하에 이러한 세포는 배아줄기세포 작성이나 더 나아가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새로운 배아줄기세포 연구 등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럽에서도 적출된 난자에 비해 잔여배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배아줄기 세포 연구의 한계
한편, 생명체로 자라날 배아세포를 인위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하는 면과 또 주로 사용되는 기법이 건강한 여성으로부터 제공된 난자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되고 있으나 이러한 면 이외에도 연구 자체가 지니는 한계로 인하여 낮은 성공률이 지적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연구의 완성도가 일정 수준 다다르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많은 배아가 희생되어야 함이 시사되고 있다.
가) 세포 이식 치료의 문제점
세포이식용 치료라는 목적에서 배아줄기세포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지적되고 있다. 먼저 무한히 자가복제가 가능한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사람에게서 간혹 관찰되는 종양 발생이다. 줄기세포와 암세포와는 무한히 증식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줄기세포가 생체에 이식된 이후 그 증식이 조절되지 못하고 생체 내에서 계속 증식하여 암이 되는 경우이다.105) 배아줄기세포에 있어서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해결은 줄기세포를 특정 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한 현재의 지식은 극히 초보적인 단계이기에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이식된 줄기세포가 생체 내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이식된 부위에서 나타나는 면역거부반응에 의해 사멸되는 경우이다. 이는 이식된 줄기세포의 주요조직적합성(MHC;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과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이의 조직적합성이 다른 경우 나타나게 되는 현상으로서 일반적 장기거부 반응과 유사한 기작에 의해 일어난다. 이를 위하여 환자의 체세포 이식법이 응용되지만 이러한 경우 줄기세포 치료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천적 유전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 자신의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선천성 유전질환을 위한 세포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는 환자 자신의 핵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천성 유전질환을 가진 환자가 유전적으로 건강한 타인의 핵을 사용한다면 이로부터 유래한 조직이나 장기는 환자로부터의 면역 거부반응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연구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대한 면역거부 반응에 대한 극복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선천성 유전질환이 아닌 질병의 경우에는 자신의 핵이 사용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럴 경우, 그 핵을 받아들이는 난자가 자신의 것이 아닌 이상, 만들어진 조직이나 장기에는 타인 난자의 세포질로부터 유래한 염색체 발현이 상존한다는 점이다.106) 이는 주요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식된 조직이나 장기의 기능 이상을 초래하기에 충분한 염증반응이 유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세포치료 목적의 배아줄기 세포 연구는 이러한 세밀한 의학적 검토가 선행되어야만 실용화가 가능한 연구이기에 수년 안에 가시적인 결과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 복제 동물의 문제점
복제된 포유동물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서는 높은 유산율과 기형 및 조로(早老) 및 조사율(早死率)이 나타나고 있다.107) 이러한 이유로는 체세포핵을 이식하기 위해 공여핵과 난자를 준비과정에서 세포의 주기를 G0 상태로 만들기 위해 거치는 여러 단계의 전기 화학적 처치와 더불어 핵이식에 필수적인 인위적 유전자의 재프로그래밍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 유전자 상태가 관련되어 있으며,108) 세포 수명에 관여하는 텔로메어(telomere)의 기능이상도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으나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109)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유전적 이상 발생 결과가 복제 동물에 의해 유전될 수 있음이 더욱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복제동물은 대리모에 의한 임신기간 중에 주로 임신 말기에 나타나는 LOS(large offspring syndrome)라고 일컬어지는 비정상적인 태아 크기가 관찰되어 유산이 나타나게 된다.110) 또한 태어나더라도 30%에서 70%가 출생 1주일 이내 조기 사망한다. 최근 체세포 복제로 태어난 돼지 22마리 중 18 마리가 일찍 숨진 사례에서도 그 사망원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명확한 원인 기전은 밝혀지지 못한 상태로 있다.111) 결국 복제에 의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복제 동물의 낮은 생존률은 아직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기에 이러한 연구에 있어서 극복해야할 최대의 난제로 남아있다.
다) 기타 문제점
배아줄기 세포를 만들기 위해 공여핵과 그 핵을 받아드릴 난자는 여러 처리를 거치며 또한 시험관에서 배양된다. 이 과정 중에서 세포가 받는 인공적인 처리에 의해 유전자의 변성이 올 수 있음이 지적되어 왔고112) 또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동물 유래 성분의 시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현황은 배아줄기 세포에 동물성 병원체의 감염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전혀 성질이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질환이나 병원체의 출현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물 혈청을 사용하지 않고 배아줄기 세포를 만드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113)
생명체로 발생하게 될 배아를 조작함으로서 시작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의 시작을 원시선 등 장기의 발생 위치가 정해지는 14일 이후부터라고 보는 의학적 견해로부터 배아는 수정란 단계로부터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종교적 관점까지 다양한 의견이 지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만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환자의 동의하에 사용가능한 잔여배아의 경우라도 상대적으로 윤리적인 비판을 적겠지만 이 역시 불임센터 등에서의 비합법적인 난자 채취나 배아 오남용을 불러 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남기게 된다.114)
2] 형질전환 동물 이용한 이종 장기 개발
1. 배경 및 흐름
현대 의학과 첨단 생명공학의 접목으로 수명연장술이 발달하면서 고령화 사회 속에서 장기이식의 필요성은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수요는 공급을 상회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2000년 말 미국에서만 7만 3천 환자가 이식받을 장기를 기다리고 있으며115), 이러한 이식 장기의 결핍은 이종(異種) 간의 장기 개발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116) 이러한 이종(異種)간의 장기 개발은 전쟁터에서의 급격한 장기 수요를 위해 과거로부터 인간의 장기와 비슷한 동물인 원숭이, 유인원, 돼지 등을 대상으로 많이 연구되어 온 분야의 하나였지만117) 생명체의 특징인 개체성을 결정하는 면역 현상에 의한 장기이식 거부 반응 (GVHD; graft-versus-host disease)에 의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118)
결국 장기 이식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생명체의 기본 속성인 개체성의 극복이며, 생명체의 개체성은 면역현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장기 이식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는 얼마나 거부반응이 적은 장기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느냐에 있다. 따라서 장기 이식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상회하는 현실에서 여러 윤리적 문제는 있지만119) 동물의 장기를 활용하고 또 이러한 동물 장기에 대한 면역 거부반응을 줄이고자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해 형질을 전환시킨 동물의 장기를 만들어 내자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목적으로 동물의 체세포 유전자를 분리해 사람의 면역 거부반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유전자를 미리 파괴하고 동시에 사람의 면역억제 유전자로 집어넣은 후, 이것을 핵을 제거한 난자에 넣어 동물을 복제하는 연구가 일반적이며, 특히 돼지의 장기는 사람의 장기와 크기나 기능이 가장 비슷하고 성장도 비교적 빨라 훌륭한 인공장기 공급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종 간의 장기 이식(Xenoplansplantation)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미 1964년 침팬지의 신장을 사람에게 이식한 것을120) 필두로 영장류의 장기를 이식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어느 경우이건 격심한 면역거부 반응에 의해 성공하지 못했다.121) 그러나 1976년에 면역억제제인 cyclosporine A를 이용한 면역억제 요법(immunosupp
-ressive therapy)이 소개되었고, 비교적 부작용이 적은 면역억제제로서 FK506 (tacrolimus)이 개발되어122) 최소한 사람에 있어서 동종 간의 장기 이식은 비교적 광범위하게 시술되었고, 이러한 면역억제제의 도움으로 1993년 Starzl은 원숭이의 간장을 사람에게 이식하여 26일 및 70여일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였다.123) 그러나 그 이후 사람에게 실시한 이종 장기 이식은 1995년 HIV에 의해 감염되지 않는 원숭이인 baboon의 골수를 AIDS 환자에게 이식하였으나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124)
이렇듯 이러한 연구는 생명체의 특징인 개체성을 결정하는 면역현상의 극복이 최우선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이종동물 간에는 종간 장벽(species barrier)이 있어 동종간의 이식보다 더욱 신속하게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며, 그러한 면역 거부반응은 크게 초급성 거부반응, 급성 거부반응, 만성거부반응으로 나뉘는데125) 현재는 초급성 면역 거부반응에 관련된 수십 가지의 유전자 중에서 극히 일부의 인자(DAF 및 gal reaction)에 대한 극복이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 의학적으로 사람간의 동종 이식 거부반응에 대한 극복도 충분히 되어있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와 같이 인간에게 이식 가능한 돼지 장기의 개발이란 면역학적 측면에서 볼 때 매우 가능성이 낮은 시도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절대적 장기 부족 상황에서 이식 가능한 이종장기의 확보는 많은 수요를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현재 국내에는 이러한 목적의 바이오벤처 회사까지 설립되어 있으며, 또한 국가적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에 설치된 바이오이종(異種)장기개발센터는 올해부터 인간과 같은 영장류(靈長類)를 대상으로 한 장기이식 실험을 할 예정으로 있다. 이러한 상황은 추후 연간 약 600억 달러의 희망찬 이종장기이식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126)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대학원에 줄기세포와 이종장기 연구를 위한 '의생명과학과'를 신설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127)
2. 현황
1) 개발 현황
가. 장기이식거부반응(GVHD)
현재 이종장기 개발 목적으로 장기의 크기나 해부학 및 생리학적 성격이 사람과 비슷한 돼지가 가장 적합한 공여자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사람과 거리가 멀어 돼지 조직에서 특이적인 이탄당 항원(galactosyl-1,3-α-galactose)으로 인해 격렬한 초급성 거부 반응이 일어나며, 이후에는 급성 및 만성 면역거부 반응이 예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적으로는 사람 체내에 있는 자연항체의 제거, 면역조절 및 억제도 시도하고 있으며, 이식 조직의 캡슐화(encapsulation)도 시도하고 있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형질전환동물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형질전환까지 하면서 동물장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동물보호운동가들의 윤리적인 문제 제기도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는 돼지에서 상기한 이탄당항원 유전자를 결손시키고128) 대신 사람의 유전자를 넣기도 하며,129) 또한 사람의 초급성 거부반응 물질 중의 하나로서 작용하는 보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인자인 사람의 DAF (decay-accerating factor)나 MCP(membrane-cofactor protein)등을 발현한 돼지가 만들어졌다.130)
하지만 장기이식거부 반응에 관여하는 면역세포나 면역물질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으며 초급성 거부반응에 관여하는 세포나 물질도 수십 가지가 넘는 현실에서131) 소수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형질 전환한 돼지를 만들었다 해도 연구적 의미는 있을지라도 실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오랜 기간의 연구 축적이 필요하며, 따라서 현재의 면역학적 지식과 생명조작 기술에 의거하여 이종장기가 장차 안정적인 대체장기로서 개발되기에는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식된 장기가 이러한 초급성 및 급성 면역거부반응으로부터 살아남더라도 수개월 및 수년간에 걸쳐 일어나는 만성 면역작용에 의해 이식된 장기는 지속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이 때문에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며 이 때문에 감염이나 종양 발생의 위험도는 증가하게 된다.
나. 내인성병원체 (endogenous pathogens)
생태계 내의 모든 생물체는 서로 관계를 맺어 상의상존하며 유지되는 개방계(open system)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개방계 내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진화해온 생물계의 예로서는 동물체 유전자 내에 상존하고 있는 레트로바이러스를 들 수있다. 사람을 포함한 자연계 내의 동물은 모두 자신들에 적응되어 유전자 내에 들어가 있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바이러스를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endogenous retrovirus)라 부르며 이미 진화상으로 자신의 숙주동물과는 적응되어 있어서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식된 장기의 형태로 사람의 조직과 연계되어 장기간 공존할 때 이러한 내인성 바이러스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변형되어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원성을 나타낼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132) 이러한 현상은 이미 관찰되어 보고되어 있다.133) 그렇기 때문에 이종 간의 장기 이식이 위에서 언급한 면역학적 장벽을 넘어 성공한다 해도 내인성 바이러스로부터 야기되는 문제는 여전히 상재한다.134)
이러한 면에서 국내에서는 내인성병원체가 없는 무균미니돼지를135) 이용하여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를 이용하여 이종장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136) 또한 금년 초 국내 연구자는 인간의 면역 유전자가 주입된 무균 미니돼지의 체세포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기자회견이란 형태로 알려졌다.137) 하지만 이종장기 개발 연구가 무균돼지 체세포복제 줄기세포의 형태이건 형질전환 형태이로 진행되건 다음과 같은 진정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기에 현실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연구임을 알아야 한다.
3. 이종장기 개발에서 간과되고 있는 문제점들.
생태계 내의 다양한 동물 종은 나름대로 주위 환경과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생태계 파괴란 이러한 균형 잡힌 관계를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훼손되는 경우를 말할 것이다. 이종장기 개발은 이러한 생태계 내의 안정된 관계를 인위적으로 교란하는 연구가 되는 것으로서 성공에 앞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병원체의 동물 종간장벽과 미생물의 빠른 주위 환경 적응 능력이 있다.
1) 종간 장벽과 질병
자연계 내에서 각 동물 종은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각 동물 특유의 치명적인 질병이 있으며 그런 경우 일부 질병을 제외하고는 다른 종의 동물에게 병원성을 발휘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종간 장벽 (species-barrier)이라고 말한다. 한편, 이러한 종간 장벽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병원체가 알 수없는 이유에 의해 그러한 장벽을 넘어 인체에 유입될 때 인류는 그 새로운 병원체에 대하여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기에 유효하게 방어하지 못하며 따라서 종간 장벽을 넘어선 병원체는 인류에게 매우 치명적인 병원성을 나타내게 된다.138)
최근 조류인플루엔자 (AI) 역시 조류에 감염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될 때 매우 치명적이 되며 그 피해가 매우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139) 이번의 H5N1의 AI가 인체 감염형으로 변이를 일으킬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고 있다.140) 그것은 과거에도 이러한 조류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형으로 변이되어 인류에게 치명적인 병원성을 일으키며 등장한 것은 자연계 내에서 이미 반복되어온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AI가 인간형으로 변이를 일으킨다 해도 그 피해는 클지언정 인류는 진화과정 중에서 이미 이러한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 세계가 WHO(세계보건기구)의 권고에 의해 AI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동물의 질병이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종간 장벽을 넘어섰기에 인류에게 치명적인 예는 이외에도 많으며 대표적으로 광우병141), AIDS 등이 있다. 광우병은 원래 양에서 관찰되던 질병이었는데 양의 내장을 소의 사료로 사용하면서 인위적으로 양의 병원체가 소의 체내로 유입되게 하는 결과가 되어 결국 소에서 발병을 하게 되었고,142) 또 이러한 소로부터의 고기를 섭취한 인간에게도 CJD라는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143) 다행히 이 질병은 오염 물질을 섭취하지 않으며 되기에 빠른 전염과 대량 발병의 양상은 보이지 않는 점에 질병관리가 비교적 가능하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144)
한편, 사람에게 후천성면역결핍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AIDS는 1980년 초에 보고되어 WHO 보고서에 의하면 이미 2004년 말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전 국민 숫자에 가까운 4,000만 명의 환자가 보고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AIDS는 치료가 불가능하며 현대의학으로도 단지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연장할 뿐이다. 원래 아프리카 내륙의 풍토병으로 알려졌던 이 질병이 인류에게 신종질병으로서 등장하게 된 것은145) 약간의 논란이 있을지는 몰라도146) 이 질병의 원인체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가 원숭이의 SIV(simian immunodeficiency virus)로부터 변이되어 인류에게 유래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47) 이렇듯 종간 장벽을 뛰어 넘은 병원체는 생태계의 균형 속에서 진화해온 인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2) 미생물의 환경 적응
생태계에서 모든 생물체는 주위 환경과 매우 밀접한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고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서 많은 예가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서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식품과도 연계되어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것으로서 항생제 내성균이 있다. 일명 ‘슈퍼박테리아’라고도 불리우며 인간들의 거듭된 항생제 남용으로 인해 그 특성이 변한 병원균으로서 인간이 그 어떤 강력한 항생제를 만들더라도 미생물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켜 적응함으로서 자신의 생존을 꾀하는 좋은 일례이다148). 당연히 이렇게 변한 슈퍼 박테리아에 대해서는 그 치료가 어려운 것은 물론,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의 주위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최근 일반인들에게는 살을 썩게 하는 치명적인 세균으로 알려진 Streptococcus Pyogenes도149) 이러한 인위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창궐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150). 이렇듯 많은 병원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미생물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형질을 스스로 획득하며 증식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3) 치명적 신종 인수공통 전염병의 대두
WHO는 인수공통전염병(zoonoses)을 인간을 제외한 척추동물과 사람 간에 자연적으로 전염되는 질병으로 정의하고 있으며151), 현실적으로 새로 나타나는 전염병의 75%가 인수공통전염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52).
더욱이 최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인수공통 전염병은 지구상의 인구 증가와 더불어 종(種)간 접촉의 증대, 지구 기후변화, 사람과 동물의 신속하고도 증가한 이동 수단의 발달로 더욱 증가추세에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 사회에 애완동물, 가금류 및 가축, 동물원의 야생동물과 야생의 동물계로부터 다양한 새로운 미생물의 진입을 통해 더욱 증대되고 있다153).
이러한 인수공통 전염병으로서는 기존 병원체의 진화나 변종에 의한 경우 (장기 이식으로 인한 광견병 바이러스의 감염 사례)154), 기존 질병의 새로운 지역적 분포 (1999년 이후의 북미에서의 West Nile virus의 등장이나 유럽에서의 toscana virus 사례)155), 생태계 변화에 따른 신종 전염병의 등장 (말레이지아에서 사람과 돼지에서 나타난 Nipah virus 사례)156), 항생제 내성 획득에 따른 새로운 감염력 획득 (multidrug-resistant strains of Salmonella Newport에 의한 감염 사례)157) 외에도 Mycobacterium bovis에 의한 결핵의 경우처럼 공중보건 체계의 틈새로 발생하는158)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159).
한편, 이종장기 개발의 목적이 장기 이식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손쉽게 대량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기에 이러한 연구가 성공하여 사람들이 이식된 돼지 장기를 체내에 지니고 일상생활로 되돌아 왔을 때 그동안 돼지에게만 가던 병원체가 그 이식된 장기에 감염될 수 있을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무균돼지로부터의 조직이기에 그만큼 오염되기도 쉬운 상태의 장기인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으로서 ‘이식된 돼지 장기에 감염된 돼지의 병원체는 과연 체내의 돼지장기의 기능만을 파괴하고 끝날 것인가’하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금만이라도 생태계 속에 존재하는 각종 생물체 간의 역동적 관계를 알고 있다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단순히 그렇게 끝나지는 않는 것이다.
결국 사람 체내에 있는 돼지 장기에 감염한 돼지 병원체는 돼지 조직 속에서 대량 증식하면서 새로운 환경인 주위의 인간 조직에 대하여 적응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감염된 모든 동물 병원체가 변이종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감염 환자로부터 단 하나의 변종 세균이 나오더라도 이렇게 인간 조직에 적응된 동물 병원체는 이제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동물 병원체로서 전환되어 치명적인 신종 인수공통전염병(xenozoonoses)을 우리에게 가져올 것이다.160)
이러한 가능성은 지금까지 법정전염병으로 분류되어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어온 대부분의 치명적인 돼지질병에 대하여 모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며, 돼지뿐만 아니라 그 어떤 동물장기를 개발한다 해도 마찬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에 외국에서는 이러한 연구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의사, 수의사, 종교인, 그리고 일반 시민이 포함된 반대 운동으로 펼쳐지고 있는 실정이다.161)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미생물들은 주위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인류에 있어서 질병의 발생 양상은 인간의 생활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우리에게 여전히 위협적인 SARS의 발생 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종장기 개발이란 인간의 생명연장이라는 인간만의 관점에서 자연계 내에서 긴 시간을 통해 형성된 안정된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결과는 우리 스스로에게 몇 배나 더 큰 희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동물의 치명적인 법정전염병이 종간 장벽을 넘어 우리에게 올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런 질병에 전혀 무방비 상태인 인류에게 있어서 극단적으로는 인류 전멸의 상황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종장기 연구는 인간에게 필요한 대체장기를 개발한다기보다는 환자에게 부족한 소량의 대체 세포를 만들어 내는 정도의 세포치료(cell therapy) 정도에서 마무리하여 변종 병원체의 등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아니면 앞으로 이종 장기를 이식 받은 이들에 대하여 국가차원에서 특별 관리를 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필요하다.162)
3] 유전자 조작 작물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1. 배경과 흐름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어떤 생물의 유전자 중 유용한 유전자만을 취하여 다른 생물체에 삽입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생명체를 유전자조작작물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고 부른다. WTO(세계무역기구) 및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생산량 증대 또는 유통·가공상의 편의를 위하여 유전공학기술을 이용, 기존의 번식방법으로는 나타날 수 없는 형질이나 유전자를 지니도록 개발된 생물체’로 정의하기도 한다.
한편, GMO보다 광의의 개념으로 1992년 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유엔환경계획)의 Rio회의 생물다양성 협약에서서163) 사용한 용어로서 생명공학 기술에 의해 자연 상태에서의 유전물질이 인위적으로 변형된 생물체를 포괄적으로 지칭하여 LMO (Living Modified Organisms)라고 부르며 일반인에게는 GMO와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GMO 중에서 벼나 감자, 옥수수, 콩 등과 같은 농작물의 경우에는 유전자조작농작물이라 부르고, 이 농산물을 가공하여 만든 식품 등이면 유전자조작식품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식량증산을 위하여 경지면적을 확대하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며 통일벼와 같은 다수확 품종을 재배하는 방법 등을 이용해 왔지만, 이용할 수 있는 농지면적은 한정되어 있으며, 화학비료나 농약 사용은 잔류농약 등에 의한 안전성문제도 있어 이러한 방법에 의한 식량증산에는 한계를 보이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소비자의 식품기호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식량자원의 품종개량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이 증가했다.164)
한편, 유전자재조합에 의한 품종개량과 종래의 품종개량은 유용한 유전자를 서로 재조합시켜 원하는 성질을 갖는 품종을 만든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종래의 품종개량 기술은 각각 원하는 특성을 지닌 유사한 종들을 교배하여 자연계 내에서 생성된 잡종 중 목적하는 품종만을 찾아내는 것으로, 한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주위 환경과 연계되어 품종이 개발된다는 점이 있어 안정적이다.
이에 비해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원하는 특성을 지닌 유전자를 다른 생물체에 직접 삽입함으로써 목적하는 품종만을 바로 얻을 수 있다. 또한 삽입하고자하는 유전자는 같은 생물종에서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생물종에서도 얻을 수 있어, 품종개량의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즉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유전자를 직접 도입하여 목적한 새로운 작물을 생산할 수 있으며, 종래의 품종개량에 비하여 그 소요시간이 짧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GMO는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못하며,165) 이를 일상적으로 장기간 섭취한 사람이나166) 가축에게167)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168).
2. GMO 현황
현재 국내에서의 GMO 개발 현황은 대학, 국공립연구소, 산업체에서 벼, 토마토, 감자, 과수, 고추 등의 작물을 대상으로 GMO 개발 연구가 진행 중이나 대부분 실험실 단계이다.169) 한편 식용우로서의 광우병 비감염 소의 개발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반해서 미국 내에서 특허를 받은 GMO 품종이 40여종이 넘고, 전 세계적으로는 80여 종이 넘는다. 대표적인 식품으로서 제초제 내성등을 갖춘 콩이나 옥수수, 항암성분을 지닌 토마토, 사람의 성장 호르몬을 지닌 돼지, 유방염에 잘 안걸리는 젖소 등이 보고되고 있다. 다우케미칼과 카길이 합작한 카길다우 폴리머스는 옥수수, 밀 등으로부터 천연 플라스틱 추출에 성공하였고, 이밖에 백신 기능의 바나나와 토마토, 항암 작용 및 진통 성분을 지닌 작물의 개발 등도 진행 중이다.
현재 콩, 옥수수, 쌀 이외에도 사람의 성장 유전자를 지닌 돼지,170) 유방염에 잘 안 걸리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소171) 등이 만들어져 있으며, 국내에서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광우병 내성소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동물성 GMO로서의 복제소에서 고기와172) 우유를173) 건강한 소에서의 고기와 우유와 비교하는 실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동물성 GMO의 식품으로서의 가능성은 매우 가깝게 와 있다.
앞으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개발은 농산물 자체 시장은 물론 식품, 사료, 의약품, 공업제품 등 이를 활용하는 가공분야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발전단계상 아직까지 ‘도입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향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바이오산업의 최대 분야 중이 하나로 부상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현재의 전 세계 GMO 시장은 미국의 대규모 식량회사에 의해 독점적으로 형성되어져왔다.
그러나 형질전환 동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계 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각 생물체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그 균형을 깨트릴 때 비록 변형된 작물 자체는 일시적으로 안정될지 몰라도 새롭게 변형된 유전자가 관련된 생물종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균형 파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식품으로서의 장기적 안전성이 충분히 검토되어 있지 못한 상황으로서 새로운 단백질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과174) 더불어 자연계 내에 유포되었을 경우 인간이 사용하는 약물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식품에 의해서 항생제 내성균 유발이 가능하다는 여러 문제점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지구의 종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1992년 150여국 정부 대표가 모여 가졌던 Rio Earth Summit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UNEP의 생물다양성협약(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에 의거하여 2000년 1월 29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150개국 대표들이 GMO의 국제무역을 규제하는 생명공학안전성의정서를 채택하였다.175) 이와 관련하여 생물다양성협약 부속 바이오안전성의정서는 2004년 9월 11일부터 발효되었고, 2005년 3월 현재 117개국이 가입하고 있으며, 2005년 1분기에는 알바니아, 나미비아, 뉴질랜드, 짐바브웨, 베냉, 에리트리아, 콩고 등 7개국이 가입하였다.
그러나 2004년 현재 유전자변형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17개 국가 중에서 10개국(스페인, 독일, 루마니아, 멕시코, 온두라스, 콜롬비아, 파라과이, 브라질, 인도, 남아공)이 가입하고 있으며, 의정서 이행에 따른 유전자변형농산물 수출 장애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재배면적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일명 마이애미 그룹이라 불리우는 나머지 7개국(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중국, 호주, 우루과이, 필리핀)은 가입하지 않고 있는 현황이다.
한편, 미국을 제외하고 GMO에 관대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로서 우리나라는 2000년 9월에 의정서 서명을 마친 상태이지만, 2001년 3월에 의정서 이행 및 바이오안전성 확보를 위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이동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였고 지금까지 동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과 관련 지침, 고시 등을 정비하여 2005년 중에는 국회 비준 절차를 거쳐 의정서에 가입할 예정에 있다.176)
또한 식량 부족은 기본적으로 지구상의 식량 편재에 의한 것으로서 다양한 GMO 개발을 통하여 실제로 이들을 독점 판매함으로서, 오히려 이러한 GMO를 개발하고 있는 몬산토사와 같은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이윤창출을 극대화하며, 전 세계 식량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3. 유전자변형작물 안전성 논란
GMO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으나. OECD나 국제식량기구(FAO)는 이 기술에 고유의 위험성이 없다고 보고하였고, 유전자재조합 기술이란 목적하는 유전자만을 도입하기에 재래의 품종교배기술에 비하여 의도하지 않은 유전자가 동시에 도입되어 예기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유전자조작식품을 상식하는 것은 일년에 아스피린 한 알 먹는 것보다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편, 환경 안전성에 있어서 해충 및 제초제 저항성 GMO가 갖고 있는 저항성 유전자는 쉽게 생태계 속으로 전이된다. 그 결과, 해충과 잡초들이 저항성 유전자를 가지게 됨으로써 슈퍼잡초와 슈퍼해충이 탄생하게 되어 방제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게 되며, 돌연변이가 출현하여 생태계를 교란하고, 그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파괴되고 획일화됨으로써 자연생태계의 순환구조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미국 환경청(EPA)에서는 GMO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방사능이나 화학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줄어들지만 GMO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증식한다는 점에서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GMO의 완전 폐기가 불가능한 이유는 조작된 유전자가 생태계 속을 지속적으로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최근 영국에서 GMO를 경작했던 지역의 주변 잡초에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유전자가 발견됨으로서 더욱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특정 유전자가 다른 종에 도입되는 경우 새로운 물질이 생산되므로 독성을 나타내거나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러한 점은 형질전환 동물을 생태계에 노출 시켰을 때와 유사한 염려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계는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 연구비를 지급받은 일부 연구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GMO의 장기 독성 및 환경 영향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없이 안전성에 대하여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전자변형 옥수수인 ‘Mon 863’을 먹인 쥐들은 일반 옥수수를 먹인 쥐들에 비해 콩팥의 크기가 작았고 혈액 성분에도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는 최근 공개된 몬산토 내부 실험보고서는177) 이러한 입장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GMO 연구에 있어서 이렇게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이기에 세계 농산물 시장을 손에 넣어온 세계 5대 곡물메이저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농산물 시장 및 유통과정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이를 통하여 발생하는 이윤 추구를 위해 GMO에 대한 많은 자체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보다는 좀 더 많은 관련정보를 일반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GMO는 아직 유전자 조작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다국적 식량회사의 논리에 따라가기 보다는 GMO에 대한 보다 면밀하고도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178)
III. 결론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현대과학은 서양 중세 때 ‘신의 뜻이란 기준’으로 인해 질곡에 있던 인간을 구원해준 합리적 이성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이러한 합리적 이성에 의한 ‘인간의 기준’으로 인해 인간들의 욕구가 충족되는 근대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근대성이란 그 자체가 자연과의 관계를 무시한 인간 중심의 사고체계이며, 차별과 배체를 담고 있는 하나의 가치체계에 불과함을 안다면 근대성은 단지 이 시대의 문화이며, 더 나아가 현대 과학 역시 환원론적이고 분석적인 관점과 더불어 반증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문화 체계일 뿐이다179).
우리에게 ‘인간의 기준’을 선사한 합리적 이성으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은 우리의 욕망 충족이요, 잃은 것은 불행히도 대상화된 자연에 대한 수탈로 야기된 생태계의 왜곡된 모습이다. 널리 알려진 열대우림의 파괴나 남극 오존층 파괴와 같은 거시적 모습에서부터 GMO와 같은 전문 지식 산물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다양하다. 더욱이 근대성에 의해 자행된 생태계의 왜곡과 파괴는 이제 그 흐름을 바꾸어 배아조작과 이종장기개발이란 모습으로 인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편, 불가에서 가장 기본되는 가르침으로서 연기법(緣起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연기적 세상이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열린 관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펼쳐지는 것이며, 이러한 연기적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어느 특정 집단만의 폐쇄된 모습이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전체적 실상(實相)과는 거리가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자비라는 것도 이러한 깨어있음을 바탕으로 한 동체대비의 불이(不二)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생명공학의 대표적인 생명조작으로서의 배아줄기세포연구, 이종장기개발연구, GMO 개발연구 등은 철저하게 생태계를 배제한 인간 위주의 접근이다. 우리의 연기적 모습을 망가한 인간만의 오만은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예를 들어 형질 전환되어 만들어진 돼지 장기가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었을 경우 그 사람 체내에 이식된 돼지 장기에 자연 감염될 수 있는 돼지 고유의 치명적 병원체는 미생물 특유의 신속한 환경 적응력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적응하여 전혀 새로운 질병의 인간 병원체로 변화함으로서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질병의 발생으로 이어질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180) 특히 이종장기 개발에 의한 신종 전염병의 출현 가능성은 현재에도 계속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많은 신종 질병들을 고려할 때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니며, 현재 국내에서처럼 철저한 검토 없이 인간 위주로서181) 단순히 막대한 부의 창출이 가능하다든 식의 발상을 바탕으로 국책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종장기 개발은 우리 사회 여러 계층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국가적으로 이종장기 개발 연구에 연구비를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종장기로 치료된 사람들이 실생활로 돌아가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인류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며 동시에 막대한 수요를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견해는 구성원들이 서로 그물처럼 관계를 맺고 있는 생태계182)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잃어버린, 현대 과학의 분석적인 환원론에 의거한 전형적인 파편화된 전문 지식의 한 예로 말할 수 있다183). 생태계 내의 다양한 생물체는 주위 환경과 서로 의존하며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진화해 가는 유기적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생각한다면184) 이종장기 개발이 성공하더라도 이러한 연구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질병을 인류 스스로에게 도입하는 경로가 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인간에게 필요한 대체장기를 개발한다기보다는 환자에게 부족한 소량의 대체 세포를 만들어 내는 정도의 세포치료(cell therapy) 정도에서 마무리하여 변종 병원체의 등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아니면 앞으로 이종 장기를 이식 받은 이들에 대하여 국가차원에서 특별 관리를 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필요하다.185)
과학은 우리 시대의 문화일 뿐이며, 그러한 점에서 기존 과학의 분석적이고 환원론적인 시각으로부터 생각과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186)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 결과에 대한 성찰을 통해 과학 연구의 방향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된다.187) 이러한 면에서 전 생명체의 관계를 인드라망으로 비유하면서 모든 것이 상의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환원론에 바탕을 둔 현대과학에게 대하여 총체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의 필요성과 더불어 과학의 앞으로의 연구 방향 설정 까지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188)
또한 우리 모두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생명조작을 바라보며 그러한 연구의 한계와 의미를 통해 긍정적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연기적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는 불자 과학자에게 주어진 풀어야 할 당면 과제로서 현대 과학의 분석적 환원론에 대체할 새로운 총체적 방법론의 도출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제어
생명조작(life manipulation), 배아줄기세포(stem cells), 이종장기(xeno-transplantation), 유전자조작작물(GMO), 불교(Buddhism), 연기법(mutual dependency), 환원론(reductionism), 전체론(holism), 생태(ecosystem)
Current Development in Life Manipulation by Modern Bioscience and Its Reevaluation with Mutual Dependency Doctrine of Buddhism
Woo, Hee-Jong (Seoul National Univ.)
Modern science is based on the analytical reductionism resulted with a fragmented view on our world, compared to that of Buddha who showed us the mutually dependent holistic nature. As the advance of life science and biomedical areas in these days presents social and ethical questions in public, a more realistic understanding of the basic and clinical application that are likely to arise by scientific discoveries in our society is very necessary. In this paper the major three subjects, stem cell research, xenotransplatation, and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 in recent development of biotechnology are described in detail in context of biohazard and bioethics. Though those three specified areas are well-funded for research with good rationale by government and private sectors, some fatal problems are emerging from the view of Buddha's teaching, especially holistic mutual dependency. Furthermore, the scientific terrorism that is done by pre-evaluated scientific discoveries is discussed with a misguided perception that science is value free.
근대 禪學院 활동의 史的 意義
김경집 (동국대학교)
I. 서언
1876년 개항을 계기로 한국에 진출한 일본불교는 대중적 기반이 약한 한국불교 속으로 빠르게 침투하였다. 그런 일본불교의 활동 이면에는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었고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침략이 구체화된 1905년 이후 日帝는 한국불교 통치를 위해 불교관련법을 제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법령을 통해 일본불교의 활동 역시 한국통치 목적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요구하였다. 그런 일제는 1911년 사찰령 이후부터는 한국불교를 30本山으로 구분하여 그 본산 주지를 총독이 임면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각 말사를 통솔하게 하여 세세한 문제까지 감독권을 행사하였다.
이와 같은 일제의 통제 속에서 한국불교는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1908년 설립된 圓宗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친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자 이를 반대하는 임제종이 설립 되었다. 이런 활동들이 사찰령의 규제에 의해 해체되면서 한국불교는 더욱 종속적 관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1921년 11월 佛祖의 正脈을 계승한다는 취지아래 선종의 중앙기관으로 설립된 것이 禪學院이다. 선학원은 설립부터 일제의 불교정책에 반대하여 이름도 일반명칭 대신 선학원이라는 위장 칭호를 썼을 정도로 민족적 경향이 강했다.
그런 선학원은 전국의 선객들을 통솔하며 승풍이 자꾸 퇴색되어 가는 것을 막고 한국적 전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각종 조직을 결성하고 전문 도량을 마련하는 등 당시 한국불교 안에서 미쳐 형성되지 못했던 근대적 활동을 펼쳤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선학원 활동을 통해 일제하에서 한국불교의 주체적 의식과 근대적 불교운동의 모습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Ⅱ. 전통불교의 계승
1. 민족불교 이념의 계승
1921년 11월 선종의 중앙기관으로 설립된 선학원은 그 이념과 활동에 있어 일제의 강압에 저항하는 민족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설립을 위해 개최된 회의에서 밝힌 滿空의 소신에 의하면 한국불교는 일제의 지배에 놓여 그들의 허가 없이는 사찰의 이전과 폐합은 물론 사찰 재산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일본불교의 영향 때문에 한국의 수행자가 변질되고 있으므로 불조의 정맥을 계승하기 위해 한국 수행자가 운영하는 선원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만공의 소신은 선학원의 기풍이 처음부터 일제의 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것을 의미하며, 그 이름도 선학원이라 하여 기존의 불교계와 차이를 두었다. 그리고 창설 당시부터 梵魚寺를 중심으로 활동한 민족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대거 참가해 그런 성향이 강하게 표출되었던 것이다.189)
실제 선학원은 일제하 한국 내에서 자생적으로 설립된 종단들이 해체된 이후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민족적인 이념을 표방하였다. 일제하에서 처음으로 한국불교의 통합을 위해 결성된 것은 圓宗이었다. 1908년 3월 6일 각 도의 사찰대표 52人이 원흥사에서 총회를 열고 원종종무원을 설립하고는 李晦光을 대종정으로 金玄庵을 총무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이때 중요 부서와 그 부장을 임명하였다.190) 그리고 선과 교를 兼行圓修하고 불교의 진흥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191) 따라서 원종은 개항이후 일본불교의 적극적인 활동을 지켜본 한국불교 승려들이 자신들을 대표해서 부를 수 있는 종단의 필요성을 느껴 설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192)
이와 같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으로 설립되었지만 대종정이었던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을 체결하고자 하였다.193) 이 내용이 원종종무원의 서기에 의해 通度寺 승려에게 누설되면서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뒤에 이 사실을 안 승려들은 한국불교를 일본 조동종에 팔아넘기는 賣宗易祖의 행위로 규탄하였다. 특히 백양사의 朴漢永, 화엄사의 陳震應, 범어사의 吳惺月과 韓龍雲 등은 전라․경상남도의 사찰을 단합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194)
이들은 1911년 1월 15일에 영남과 호남의 승려들을 모아 송광사에서 회합하여 원종과 별도로 臨濟宗을 세웠다.195) 그것은 西山 休靜 이후 상승되어 오던 승가의 법맥이 太古 普愚의 임제종 계통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원종보다는 임제종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196)
이후 임제종은 광주에 포교당을 설치하는 등 실질적인 활동에 들어갔으며 범어사로 종무원이 옮겨진 이후에는 東萊․草梁․大邱․京城 네 곳에 포교당을 세워 원종과는 다른 활동을 하였다.197) 이런 임제종의 움직임은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종속시키려는 연합사건을 저지하려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198)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움직임과 달리 일제는 1910년 8월 한일합방으로 정치적 복속을 꾀하는 한편 1911년 6월 制令 7호로 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의 사찰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199)
이 사찰령과 동시에 전문 8조로 된 寺刹令施行規則이 제정되어 그해 9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시행규칙에서는 30본산제를 규정하고200) 1911년 11월부터 각 본사의 제1世 주지를 차례로 인가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인 1912년부터는 각 본사가 각기 寺法을 제정하고 이를 신청하여 총독의 인가를 얻도록 하였다. 그런 의도를 지닌 일제는 한국불교에서 자생적으로 설립된 종파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원종과 임제종은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12년 6월 21일 원종․임제종 양종종무원의 문패가 동시에 철거되었다.201)
일제는 이런 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해두기 위하여 1912年 6月 26日字로 총독부의 內務部長官이 각 도의 장관과 함께 임제종의 활동이 빈번한 慶南道長官 앞으로 공문을 통첩하였다. 이 통첩에 의하면 사찰의 종지칭호를 망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직 禪敎兩宗만을 쓰도록 지시하였다.202) 이후 한국불교는 일제의 의도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출범한 것이 바로 선학원이다. 따라서 그 활동에는 민족불교의 이념을 계승하려는 목적이 드러나고 있다. 창설 직후인 1922년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회의를 거쳐 선풍의 진작과 전국 수좌들의 수행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禪友公濟會를 조직하였다. 선우공제회는 그 본부를 선학원에 두고 중앙조직과 지방 선원을 예하 조직으로 두고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의욕과 달리 선우공제회는 그 창설 직후부터 재정상의 어려움을 겪다가 1926년 5월부터는 범어사 포교당으로 그 기능이 용도 변경되면서 침체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931년 金寂音의 주도로 재건되면서 수좌들과 일반 신도들이 공동으로 선을 행할 수 있도록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대중적 기반인 男女禪友會를 조직하여 선의 대중화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반 하에서 선학원은 全鮮首座大會를 개최하고 敎務院 종회에 중앙선원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또한 포교부를 설치하여 부인선우회를 위한 朝鮮佛敎婦人禪院을 창건하여 각 지방의 선원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 가운데 선학원은 재정적인 문제점을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직을 財團法人朝鮮佛敎禪理參究院으로 개편하고 전국수좌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부터 선학원의 조직이 세부적으로 구성되고, 사업집행기관의 성격을 띤 종무원을 두고 전국 선원을 결집하는 중앙선원의 위상을 지닐 수 있었다.203)
이런 선학원의 활동에 원종의 친일성에 대항해서 설립된 임제종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 중심인물로 참여하고 있는 것에서 민족불교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선학원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에는 이미 항일 의식을 지닌 인물과 일본의 불교정책에 강력하게 대항한 한국불교청년회에 관여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런 인물들과 함께 1924년 선학원에 관여하기 시작한 인물은 한용운과 오성월이다. 이들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원종이 일본의 조동종과 연합하고자 할 때 이를 매종행위로 규탄하고 한국전통을 수호하려는 임제종을 설립한 주요 인물이다.204) 그 가운데 오성월은 1935년 3월 7일에서 8일까지 개최된 朝鮮佛敎首座大會에서 원장으로 선출될 정도였다.
이들이 선학원의 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선학원의 성격이 임제종 이후 한국불교의 전통을 수호하고자 대두된 민족불교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이념을 계승하기 위해 선학원은 설립 당시부터 일반 사찰과 다른 명칭을 써서 당시 한국불교의 기본적인 체제였던 30본산과 성격을 달리하였다. 그리고 뒤에 재단법인으로 전환하여 사찰령에 의한 일제에 대한 독립성 유지하고자 했던 일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사실은 범어사와 선학원의 관계에서도 알 수 있다. 오성월이 주지로 있던 범어사는 서울 포교당을 처분하여 건립자금으로 지원하였다.205) 그런 범어사는 임제종 운동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임제종이 1912년 윤 5월에는 河東의 쌍계사에서 제2회 총회를 열어 임제종지를 널리 천양할 것을 결의하면서 韓龍雲․金鶴傘․張基林․金鍾來․任晩聖 등 다섯 명을 선출하여 범어사로 보내 임제종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였다. 범어사는 이런 제의에 가입은 물론 임제종의 종무원을 옮겨왔으며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東萊․草梁․大邱․京城 네 곳에 임제종 포교당을 세웠던 것이다.206)
이때 경성에 세워진 포교당이 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이다. 여기에 포교사로 파견된 사람이 金南泉이고 남전은 뒤에 선학원 창설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207) 그 중앙포교당은 1912년 임제종이 일제에 의해 해체된 후 범어사 서울 포교당으로 사용되다가 선학원 창립에 기증된 것이다. 그런 관계에 의해 선학원이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침체되자 다시 1926년 5월부터 범어사 포교당으로 변경된 사실에서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학원의 민족불교 이념의 계승활동은 광복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선학원은 1945년 9월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각지에 퍼져있던 선승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종단에 건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46년에는 혁명불교도연맹, 불교청년회, 불교여성총동맹, 선우부인회, 재남이북승려회, 불교혁신연맹 등과 연합하여 친일불교인에 대한 청산과, 여러 가지 건설적인 개혁에 대한 종단의 무관심을 성토하였다. 또한 여러 단체와의 공동성명을 계기로 12월 3일 불교혁신총연맹본부를 결성하여 전국승려대회를 추진하는 등 본격적인 민족주의적 운동을 전개시켜 나갔다. 그러나 미군정의 방해로 연맹 측의 사찰과 재산이 몰수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208)
이후에도 선학원은 불교혁신동맹과 함께 1947년 5월 9일 불교도대회를 개최하여 불교의 재건과 대중화방안을 건의하였으며, 새롭게 조선불교총본원을 창설하여 불교의 민족적 혁신을 도모하였다.209)
2. 근대 선풍의 계승
선학원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선의 중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런 목적은 창립 당시 회의를 주관한 만공은 한국불교가 일본불교에 의해 변질되면서 그와 함께 佛祖의 정맥을 계승할 납자들도 줄어드니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의 수행자를 위한 선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210)
선학원이 창립되고 4개월이 지난 1922년 3월 선우공제회가 조직되었다. 이 공제회를 발족하게 된 연유를 보면 당시 선풍이 너무도 미약하여 이것을 진작시킬 목적이었고, 당시 사찰의 풍토는 수좌들의 선수행을 지속할 만큼 여건이 좋지 않아 이를 타개해보려고 공제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곳에서 선객들의 수행여건을 조성하고 노력한 결과 수행자가 3백 65명에 이르러 선학원은 중앙선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211)
그러나 계속되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선방이 폐쇄되었다. 몇 년간 어려움을 겪은 선학원이 다시 중흥된 것은 1931년이다. 재건된 선학원에서는 수좌들과 일반 신도들이 공동으로 선을 행할 수 있도록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선학원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선의 대중화였다. 선학원은 全鮮首座大會를 개최한 여세로 中央禪院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그리고 포교부를 설치하여 부인선우회의 도량인 朝鮮佛敎婦人禪院을 창건하였고, 중앙과 지방의 선원이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여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선학원은 법적인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선학원을 재단법인으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세부적인 조직과 사업집행기관인 종무원을 두어 전국 선원을 결집하는 중앙선원으로 변모하였다. 이후 1935년에 수좌대회를 개최하여 교무원 종회에 청정비구가 수행할 수 있는 사찰을 할애해 달라고 건의하는 등 한국 불교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였다. 또한 1939년에는 朝鮮佛敎禪宗定期禪會에서는 처음 불문에 들어오는 수행자를 위한 참선 지도, 청정비구를 위한 5개 사찰의 지정, 수좌들의 상호 친목 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여 선풍의 진작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계기로 전국 선원과 수좌들의 소식 및 제반 활동상황이 선학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이 시기에 선종의 중심기관으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학원에서는 다시 1941년 2월말부터 3월초에 걸쳐 일제의 불교정책으로 인해 변질된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遺敎法會를 개최하였다. 이 법회는 당시의 고승 대부분이 참가하여 선학과 계율의 종지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212)
이와 같이 한국의 선풍을 진작시키려는 선학원의 활동은 이념적으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한 경허의 선사상을 계승하였다. 그런 관계를 알 수 있는 것은 먼저 선학원을 중심으로 선풍운동을 주도한 인물들 가운데 경허의 제자들이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 선학원의 창설은 범어사 포교당 포교사인 金南泉과 석왕사 포교당의 포교사인 康道峯의 합의에 의해 시작되어 宋滿空, 白龍城, 吳惺月, 金石頭 등의 협의를 거쳐 발기되었다. 이들 가운데 송만공은 경허의 수제자로서 그의 법을 이은 인물이다. 그리고 오성월은 범어사의 주지를 지내면서 경허를 범어사로 초청 선풍의 진작에 힘써 1899년 金剛菴을 필두로 이후 安養菴(1900), 鷄鳴菴(1902), 內院菴(1905), 元曉菴禪院(1906) 내지는 安心菴, 圓應房, 大聖庵 등의 禪會(1909)에 이르기까지 범어사 일원을 거의 선원으로 만들어 놓았다.213)
선학원의 재건 역시 경허와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다. 1931년 1월 선학원을 인수한 김적음은 만공의 법제자로 경허의 손상좌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속가에 있을 때 침술과 한약에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으로 의술이 神術에 가까워 법사인 만공이 풀을 가지고 중생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친구라는 뜻인 ‘草夫’라는 別號를 지어준 인물이다.214)
그 후 선학원은 1931년부터 全國首座大會를 필두로 1934년 재단법인으로 개편되었고, 1935년 3월 7일에서 8일까지 朝鮮佛敎首座大會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宗正에 모두 경허의 제자인 申慧月, 宋滿空, 方漢岩 3인이 뽑혀 이들에 의해 경허의 선풍이 재현될 수 있었다. 그리고 원장에는 오성월, 이사에는 김적음이 피선되어 1930년대의 선풍운동은 경허의 제자들에 의해 한층 빛을 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1939년의 수좌대회, 1941년의 遺敎大會를 개최하여 한국의 선풍의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외의 인물들도 간접적으로 경허의 선풍에 영향을 받거나 그 뜻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선학원에서 전국의 선원을 중심으로 鏡虛集을 발간한 것은 그의 사상을 선풍운동의 이념적 주축으로 삼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경허집은 1942년 6월 선학원의 주선으로 전국 선원의 동참하여 간행되었다. 그 발간 취지서를 살펴보면 그가 조선 불교계의 禪宗復興과 玄風宣揚에 막대한 공로가 있으며, 현재 조선의 수좌로서 경허 선사의 가르침에 은혜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음을 강조하여 근대 선풍의 중흥과 진작이 그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때 간행 발기인 40명과 사무분담인 5명을 포함해 45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위에서 살펴본 선학원의 활동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집의 발간도 한 곳에서 전담하여 간행하는 것이 아니고 전국의 선원이 동참하고 있는 것에서 경허의 사상을 기리고자 한 그들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215) 이것은 192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불교는 경허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216)
다음으로 선학원이 선풍운동을 전개하면서 추구했던 선의 대중화는 결사에 승속의 구별 없이 참여시켜 선의 부흥은 물론 대중화를 꾀하려 했던 경허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경허는 공동체 운동으로써의 결사를 주도하였다. 그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결사에 승속은 물론 남녀노소, 빈부현인을 막론하고 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참시켰다.217)
이러한 선의 대중화는 경허의 뜻을 이은 제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경허의 손상좌인 김적음에 의해 1931년 재건된 선학원은 대중화를 위해 男女禪友會를 조직하였다. 70여 명의 회원으로 출발한 남녀선우회는 선의 대중화를 통해 선학원의 재건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 남녀선우회는 그 뒤 婦人禪友會로 조직이 개편되고 전문도량을 마련하여 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의 대중화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선방중수에 대한 희사금을 모집한다거나 在滿同胞救濟會에 현금과 의복을 지원하는 적극적 사회활동을 전개하여 불교대중화에 기여하였다.218)
Ⅲ. 선학원의 근대적 불교운동
1. 근대적 종무행정 운용
1) 조직화된 행정체계
선학원의 활동 가운데 근대적 불교운동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점은 무엇보다도 행정적으로 사무체계가 조직화되었다는 것이다. 선학원은 창립 초기부터 조직화된 행정체계를 구성하였다. 당시 선학원의 조직체계는 중앙에 본부를 두고 범어사, 직지사, 장안사, 석왕사 등 20개의 사찰을 지부로 두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원활한 종무행정과 소기의 목적을 위해 서무부, 재무부, 수도부 3부를 두고 적음, 석두, 만공 3인을 이사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공제회의 사무에서 회원들의 인가를 필요로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전국 사찰에서 선출된 20명의 평의원 회의에서 결정하였다.219)
이와 같이 선우공제회에서 평의원회를 설치하여 종무행정에 대한 결정을 주도한 것은 당시 불교계에서 비롯되고 있는 본산주지들의 전횡에 대한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
일제의 사찰령시행규칙에 의해 한국불교가 본말제도로 편성되면서 본산주지의 임면이 총독에게 인가받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위상이 달라졌다. 예전에 학덕이 높거나 수행이 많은 스님이 초빙되던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본산주지의 신분이 갑자기 총독이 인가하는 형식이 되고 元旦에는 총독관저에 초대받거나 총독부의 공식연회에 종교계 요인으로 초대받는 등 갑자기 지위가 상승되자 본말사의 관계 역시 행정적인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주지의 권한이 커지자 모든 일의 처리는 주지에게 일임되어 몇 사람의 소임승 이외에는 주지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 자가 없어져 오랜 전통을 가진 공의제도는 사라지고 주지전횡제도가 되어버렸다. 이런 한국불교의 민주적이며 전통적인 관습과 제도가 무너지면서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 주지는 그 자리를 고수하려 했으며, 더 나아가 종권을 영구히 장악하기 위하여 일본불교에 동화되거나 귀속되려는 일들이 빈번하게 되었다.220)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선학원으로서 투명한 종무행정은 시대적 요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우공제회의 이런 의도는 실제 회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선우공제회는 1922년 11월 3일과 4일의 임시총회, 1923년 3월 29일 제2회 정기총회, 1924년 11월 15일 제3회 정기총회 등에서 지부의 조직과 선원증설 문제, 임원보강, 이사진과 평의원의 개선, 그리고 정관과 법인등기의 문제, 공제회사무소 유지, 임원개선 등이 이루어져 조직화된 행정체계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21)
이와 같은 종무 행정은 선학원이 재단법인선리참구원으로 개칭된 1935년에 이르면 더욱 체계화 되었다. 재단법인으로 개편한 뒤 1935년 3월 7일과 8일 양일간에 열린 조선불교수좌대회에서 종무원의 원규와 규약을 마련하였고, 宗正과 院長, 副院長, 理事, 그리고 禪議員을 두었다. 이때 종정으로 신혜월, 송만공, 방한암 세 사람이 선출되었다. 원장은 오성월, 부원장은 설석우, 이사로는 김적음, 정운택, 이올연, 선의원으로는 기석호, 하룡택, 황용금 외 12명을 선출하였다.222)
이와 같이 변모한 조직 속에서 가장 큰 특징은 체계적인 종무 행정을 위한 본부로써 종무원을 둔 점이다. 이는 당시 선학원의 지부 증가와 선객들의 증가로 인한 행정적 업무가 많아진 사실을 시사한다. 그리고 종정이라고 하는 불교계의 상징적 자리를 둔 것은 선풍을 진작시켜 한국불교의 중흥을 도모하는 선지식의 설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종정으로 선출된 세 사람 모두 경허의 제자라는 점에서 선학원의 사상적 근본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여주는 점이다. 이때 선학원의 명칭이 중앙선원으로 바뀐 점도 이와 같은 선학원의 발전과 함께 전국의 선객들에게 상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행정적으로 체제정비에 성공한 선학원이 당시 불교계 통일기관이었던 敎務院 종회에서 수좌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사찰을 할애해달라고 요구한 것과 모범적 총림 건설을 위해 지리산, 가야산, 오대산, 금강산, 묘향산 등 5대 산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그 외에도 선객들의 신병문제와 지방선원의 방함록을 중앙에 보고해서 중앙과 지방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였다.223)
이런 일련의 사항들이 선학원이 추구한 근대적 종무행정의 조직화로 평가할 수 있다.
2) 개혁적인 사원경제 체제
선학원의 조직화된 행정체제 가운데 하나는 자립적 사원경제를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선학원 창립 후 선풍진작을 위해 선우공제회를 결성하고 총회를 개최할 무렵만 해도 한국불교는 경제적 어려움이 커 운수납자들이 一衣一鉢의 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대해 사람들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여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립적 경제의식을 촉구하였다.224)
당시 사찰의 재원의 부족은 당시 한국불교의 전반적인 양상이었다. 그런 현상은 조선 초부터 계속된 배불정책으로 인해 사원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토지와 노비의 몰수가 가져온 결과였다. 경제적 기반의 붕괴로 사찰은 사원유지의 비용을 기복적인 의례로 충당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한국불교의 수행적 전통이 상실되고 점점 신도들의 기복을 비는 비용에 의지한 탓에 신앙적 대상이 많아졌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고자 사원경제의 개혁이 주장되었다.
근대 불교를 중흥한 경허는 화엄사 上院庵에서 선실을 복원하면서 오랜 전통을 지닌 선실이 폐지된 것은 특별한 운수소관이 아니라 선풍의 진작을 위해 화주하는 사람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주지를 맡아 선실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사람이 사리사욕과 편의에 따라 선실을 폐지하거나 선객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자연히 선풍은 쇠퇴하고 결사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토로하였다.
경허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선원에 귀속되는 토지의 산출은 다른 곳에 쓰여서는 안 되고 오직 선원대중의 공양에만 쓰여야 하고, 그 선원의 유지를 위해 영구히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불교계에 많은 결사가 생겨났으나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했던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보았다.225)
이런 사원경제의 개혁은 그 후 개혁사상을 제시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다.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개혁론이 1912년 4월부터 발표된 權相老의 「朝鮮佛敎改革論」, 1913년 5월 간행된 韓龍雲의 朝鮮佛敎維新論, 그리고 1922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영재의 「朝鮮佛敎革新論」 등이다.
이런 개혁론에서 사원경제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의 공통점은 사원경제에 대한 독립성이다. 그들은 모두 물질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교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려면 무엇보다도 재정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경제 질서를 이해하고 있었다.226)
이처럼 개혁론을 통해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과 같이 근대 개혁적 활동을 전개한 용성 역시 당시 한국불교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로 스스로 금광을 개발하여 그 수익으로 선원을 유지할 정도였다.227) 그는 세계의 사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러한 때에 자신이 일하고 농사를 지어 自作自給하는 종교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야만 자신들도 당당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경멸의 시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228)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계승한 것이 선학원의 자립적인 사원경제였다. 물론 선학원도 처음부터 아무런 도움 없이 창립될 수는 없었다. 창립 초기 핵심적 인물과 일부 재력 있는 신도들의 많은 희사가 있었다. 그리고 재원의 모집 방법 역시 보살계 수계라고 하는 전통적 방법이었다.
1921년 선학원은 경성 시내에서 보살계를 개최하여 金南泉 2,000원과 康道峯 1,500원, 金石頭 2,000원을 찬조하였으며 塼洞에 사는 趙申潤 판서의 어머니 李光明眼이 6,000원, 勳洞에 사는 趙東冕 판서의 어머니 朴光明相이 4,000원을 희사하였다. 그리고 경성에 사는 신도 일동이 10,000원을 희사하였다.229) 여기에 오성월이 주지로 있던 범어사는 서울 포교당을 처분하여 건립자금으로 지원하였다.230)
이런 과정에서 출범한 선학원이었지만 이후 선우공제회가 결성되면서 제정된 공제회 유지방침을 보면 禪友의 義捐金 및 희사금으로 충당하고, 각 지부 禪糧 가운데 2할과 매년 예산 가운데 잉여금을 저축하여 공제회의 기본재산으로 설정하여 각 선원을 진흥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당시 일반적인 사찰에서 비용충당을 위해 행하던 방식이 아니고 선학원의 자립적 사원경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공제회 재산의 수지 총액 예산, 결산과 같이 재정적 운영에 관한 사항은 모두 평의원의 과반수의 의결로 집행되었음도 선학원이 투명한 사원경제를 집행하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231)
그러나 자립 경제는 당시 사회적 여건으로는 어려움이 많았고 회비를 내야하는 선우 개개인들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제때 납부되지 못하자 토지수입과 희사금으로 변경되었다. 그 결과 경제적 기반이 약했던 선학원은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침체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1931년 김적음의 주도로 재건된 선학원은 다시 자립적인 경제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포교부와 婦人禪友會가 조직되면서 입회금과 회비를 중심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거기에 신도들의 지원금을 가지고 그들의 수행 도량인 朝鮮佛敎婦人禪院을 창건하였다. 그리고 회비를 모아 在滿同胞救濟會에 현금과 의복을 지원하는 사회 활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232)
이러한 배경에서 선학원은 재정의 문제점을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선학원을 財團法人朝鮮佛敎禪理參究院으로 개편하였다. 이런 재단의 개편은 재정자립을 위한 시도였다. 당시 재단법인을 설립하면서 그 의의를 밝히기를 돈 있는 사람이 어느 목적에 토지와 돈을 쓰라고 기부하는 것을 받아서 총독부의 허가를 맡아 법률상 변할 수 없는 완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선우공제회 이후 승려와 신도가 희사한 것을 가지고 재단을 만들고 이를 가지고 수좌들의 수행을 위해 쓰고자 하였다. 그 결과 법인 설립 후 선학원은 재정상태가 양호하게 되었고, 보다 많은 신도들과 본산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다.233)
2. 실천적 지평의 확대
선학원은 일제에 의해 한국불교가 그 가치를 잃어가던 시기에 창립되었다. 그런 까닭에 선학원은 이념적으로 민족불교의 이념을 계승하였고, 근대 경허에 의해 중흥된 전통적인 선풍을 계승하려 하였다. 그리고 근대적 종무행정을 운용함으로써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 선학원 활동의 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실천적 지평을 확대하려고 노력한 점이다. 선학원은 수행자의 중앙선원으로 창립되었다. 그러나 실제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는 승속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인들을 위한 조직이 결성되었고, 그 활동에 의해 한국불교의 사회화는 급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선학원에서 대중적 조직이 결성된 것은 1931년 김적음에 의해 선학원이 재건된 이후이다. 재건된 선학원에서 수좌들은 물론 일반신도 20여 명이 참선에 동참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한용운, 이탄옹, 송만공, 백용성 등 고승들이 일반대중에게 설법과 강연 등을 거행하면서 대중적 모임이 가능해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1931년 10월 6일 창간된 잡지 禪苑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234)
이런 선학원의 활동 가운데 불교실천의 지평을 확대한 것은 부인선우회의 활동이다. 부인회는 선원설립과 사회활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는데 이는 1920년대 한국불교에 나타난 불교부인회의 활동과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 불교 활동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재가자 신행의 조직화이다. 그 가운데 불교부인회의 조직과 활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불교에서 재가자인 부인들의 모임인 불교부인회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이다. 1916년 평안북도 의주불교부인회에서는 2월 25일 오전부터 춘계대회를 열고 각종 여흥을 행하였음을 볼 때 이전부터 불교부인회의 활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35)
그러나 이후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아 어떤 형식으로 유지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간혹 지방에서 불교부인회가 조직되고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지만 그 규모와 활동방향에 대해서는 자료의 부족으로 상세히 파악할 수 없다.
그런 부인회의 구체적인 활동이 보이는 것은 1921년 개최된 중앙불교부인회이다.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에서 그전부터 있던 불교부인회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총회를 개최함으로 일반 부인은 많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앞서 부인회가 존재했다가 그 활동이 저조함으로써 다시 총회를 개최하여 재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21년 이후에는 중앙과 지방에서 불교부인회의 구체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 해 4월 26일 오후 한시부터 시내 수송동 각황사 안에서 총회를 개최한 불교부인회를 보면 당일 회의에서는 회장 徐大惠씨 사회로 규칙통과 임원선거 그리고 회의록 통과 등이 있었다. 불교부인회서기장 李淑씨는 강연을 통해 한국에 불교여자청년회를 설립하여야 되겠다는 의미와 시대가 변화되어 한국의 여성도 모르는 사람을 친절히 가르쳐 사회다운 사회를 만들어 사람다운 생활을 하여야 된다고 강조하였다.236)
이외에도 20년대 불교부인회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1923년 평양의 불교신도 가운데 유지인 여자 청년의 발기로 불교여자청년회와237), 1926년 10월 불교 선전을 위하여 연령 20-40세의 부인 강습생 30여 명을 모아 주야로 강습한 충남 공주 불교포교당의 아리타라 부인회238), 등 중앙과 지방에서 활발하게 조직되고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28년에 중앙에 다시 조선불교부인회가 결성되었다. 그 해 1월의 경성부 수송동 각황사 및 각 포교당에 다니며 불교를 신앙하는 부인 26명은 15일 오후 1시 반에 경성부내 돈의동 161번지에 모여 조선불교부인회를 창립하였다. 이때 회장에 朴善心華 여사 부회장에 朴大善華 여사가 피선되고 그 외 총무, 전도부, 종교부, 서무부, 사교부, 재무부, 평의원 등 임원을 선임하였다. 이때 불교부인회의 회원 대부분이 지체 있고 경제력이 있는 부인들로 조직되었고, 자선사업과 부인생활의 개량과 회원의 부업 장려 등 여러 가지 사업들이 구상될 수 있었다.239)
이런 불교부인회의 구체적인 실천방향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자선사업과 재난에 어려움을 당한 이재민을 위한 재정적 지원 등이었다. 1921년 12월 전주 불교부인회에서는 회원 40여 명이 木綿 棉花 米穀 金錢 등을 모으고, 회원 집으로 걸인 남자 51명과 여자 12명을 불러 추운 겨울에 필요한 상하 동복과 점심을 나누어주면서 위로하였다.240) 그리고 강릉 수해가 심했던 1925년에는 강릉여자청년회에서 8월 14일 오후 8시에 소년소녀의 창가유희와 회원의 연극 공연인 演藝會를 개최하고 수해에 대한 동정금을 걷었다.241)
이런 사회적 활동이 전개된 한국불교 속에서 다시 재건된 선학원에서 선의 대중화를 위해 조직된 男女禪友會가 婦人禪友會로 조직을 개편하여 전문도량을 마련하는 등 선의 대중화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방중수에 대한 희사금을 모집한다거나 在滿同胞救濟會에 현금과 의복을 지원하는 사회 활동을 전개한 사실은242) 그런 사회적 활동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1934년 경성부 안국동 40번지 중앙선원 부속 중앙부인선원을 신축하고 10월 28일 정오에 신도 다수가 모여 낙성식을 거행한 점은243) 선학원에서 조직된 부인선우회가 보여준 사회적인 활동 역시 이와 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이는 체계화된 조직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실천적 지평의 확대였음을 알 수 있다.
Ⅳ. 결어
한국불교는 일제가 제정한 여러 사찰관련법에 의해 종속적 관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1921년 11월 불조의 정맥을 계승한다는 취지아래 선종의 중앙기관으로 설립된 것이 선학원이다. 그런 선학원은 일제강점기에 한국불교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런 선학원 활동의 사적 의의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인 만큼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의의이며, 두 번째는 당시 선학원이 보여준 운영과 활동이 지금까지 한국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진보된 불교운동의 전형이란 평가이다.
먼저 전통불교를 계승한 의의에서는 임제종 이후 나타난 민족불교의 이념을 계승하였고, 경허에서 시작된 근대 선풍을 계승한 점이다.
선학원이 임제종의 민족불교의 이념을 계승한 점은 창립 목적과 함께 임제종에서 활약한 인물들이 선학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임제종 활동에 중심이었던 범어사가 서울 포교당을 처분하여 선학원 설립자금으로 지원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관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선학원이 근대 선풍을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선학원의 중심인물들 대부분이 경허의 제자들이 선도적 위치에 있다는 점과, 선학원에서 전국의 선원을 중심으로 경허집을 발간한 것, 그리고 그가 보여준 선의 대중화를 실천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선학원이 보여준 활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근대 불교운동의 전형적 모습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행정적으로 사무체계가 조직화되었고, 당시 사원의 경제와는 다른 개혁적 사원경제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일반인들을 위한 조직과 활동으로 한국불교의 사회화에 일조한 것은 불교운동의 실천적 지평을 확대한 의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제어
선학원(Seonhakwon), 임제종(Imje Order of Korean Buddhism), 경허(Ven. Gyeongheo), 종무행정(administration of a religious order), 사원경제(Buddhist temple economy)
A Study of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Activities of Seonhakwon in Modern Korean Buddhism.
Kim, Kyung-jib (Dongguk Univ.)
This article presents the activities of Seonhakwon and assesses their significance in the development of modern Korean Buddhism.
Seonhakwon was established in November 1921. Korean Buddhism was under the control of Japanese colonial regime at that time. Seonhakwon, through diverse activities, played the role of a central agency of the zen order in Korean Buddhism and made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m.
Its contributions are especially significant in two points. Firstly, Seonhakwon contributed to continuation of the tradition of Korean Buddhism,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 regime's attempts to transplant Japanese styles into it, by advocating Ven. Gyeongheo's legacy, who revived and faithful to Korean Zen Buddhist tradition.
Secondly, on the other hand, Seonhakwon contributed to the modernization of Korean Buddhism: It employed a systematic mode of administration; established a system of autonomous temple economy; and socialized Buddhism through its engagement in activities regarding social issues.
무위사 극락보전 벽화의 원형과 변모
李慶禾 (전남대학교 사학과 BK21 계약교수)
Ⅰ. 머리말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 후불벽화는 고려불화를 계승하면서 조선 초기의 변화상을 비교적 분명히 보이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극락보전에는 후불벽화뿐만이 아니라 모두 31점의 벽화가 있는데, 후불벽의 뒷면에 백의관음도가, 측벽에는 후불벽화와 표현을 달리하는 설법도와 내영도 등이 있다. 다만 후불벽의 두 그림을 제외한 다른 작품은 건물에서 떼어 그곳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이러한 벽화를 갖고 있는 극락보전은 1430년에 세워진 조선 초기의 주심포 건물이며, 1476년에 그려진 후불벽화는 법당의 중심부를 재건축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244)
무위사 벽화는 현존 사찰벽화 가운데 시대가 이르면서 보존상태도 양호한데, 지금까지의 논고가 후불벽화의 그 과도기적인 특징을 언급하였다고 생각한다.245) 그러나 극락보전과 후불벽화 사이의 반세기에 이르는 간극, 곧 어떠한 이유로 법당의 구조를 변경해야 했나, 원형은 무엇인가에 대한 시각으로 조명되지는 않았다. 미묘한 문제이기는 하나 그것은 무위사 극락보전 벽화의 특징과 조선 초기의 변화상을 살피는 전제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본고는 이 점에 유의하여 조선 초기 무위사에 관련한 역사와 벽화 내용을 면밀히 고찰하고자 한다. 더불어 상량문과 벽화 화기에 대한 최근의 판독에 대한 해석에도 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246)
Ⅱ. 무위사 극락보전 상량문의 재해석
무위사는 「無爲寺事蹟記」에 의하면 고신라 진평왕 39년인 617년에 원효대사(617~686)가 관음사를 창건하면서 비롯되었고, 875년에는 도선국사(827~898)가 갈옥사로 중창하였다고 한다.247) 그러나 원효대사 창건설을 비롯하여 도선의 중창설은 보편성이 강한 신화적 상징인 탓에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개창연대도 원효의 출생년도에 해당하므로 모순을 보인다. 그럼에도 사적기에는 사찰과 효령대군 및 세조가 연결되어 있고, 1555년 사찰명을 무위사로 개명하였다는 太甘, 벽화는 오도자가 그린 아미타·관음·세지라는 기록 등 주요 사실들이 혼용되어 있다.
실상 무위사라는 이름은 마당에 세워진 선각대사 逈微(864~917)의 탑비에 있다. 형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지산 보림사 체징의 제자로 당 유학을 마치고 이곳 무위사에서 8년 동안 머물렀던 영향력 있는 친 왕건 禪僧이었다. 고려의 태조(918~943) 왕건이 궁예에게 죽음을 당한 형미를 기려 先覺大師라는 시호와 遍光의 탑명을 내려 정종 원년(946)에 탑비가 완성되었다. 無爲가 내가 있다는 생각을 넘어선 무아와 무욕의 경지에서 성취되는 법(道)인 無爲之爲의 뜻일 것이다.
이렇게 禪門九山에 맥을 둔 무위사가 조선 초기에 이르러는 천태종 소속이 되어 있다. 조선 태종 7년(1407)경, 사찰혁파로 대가람이 망하거나 이에 따른 불교계의 원망을 수습하면서 山水 좋은 곳의 名刹로 資福寺를 대신하는 조처를 내렸는데, 이때 자복사가 되는 전국 88개소의 명찰 가운데 17개소의 천태종 사찰 안에 무위사가 있다.248) 본디 고려대의 자복사는 나라의 복을 빌었던 곳이다.
다른 한편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무위사는 조선 초기의 어느 시기에 水陸社를 경영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에 대한 정황이 상세하지 않고 ‘무위사가 세월이 오래되어 훼손되었기 때문에 이를 고쳐 수륙사로 삼았다(歲久頹毁今營因爲水陸社)’고만 한다.249) 수륙사는 모든 영혼을 차별 없이 천도하는 水陸無遮平等會를 베풀던 곳이며, 이것의 약칭이 수륙재이다. 조선시대의 수륙재는 고려왕실의 원혼을 천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도 하는데 조상을 위한 천도재의 일환으로 간주되면서 유교상례와 결합하며 유행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시대의 다양한 호국법회와 消災 도량이 거의 폐지된 반면 수륙재만은 六典에 법제화된 불교의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250) 국가 주도의 수륙재는 국행수륙재라 하는데 水陸舍(堂)가 사찰에 부설되면 水陸田과 향을 하사 받는다.251) 그런데 성종대 이후로는 유교상례에 따른 厲祭가 그것을 대신하면서 국행수륙재는 조선 전기 이내에 법적인 폐지를 겪었다.252) 그럼에도 그 기능은 사회적으로 유지되어 수륙재 관련 의식집과 회화가 제작되었다.253) 무위사와 수륙재와의 관련은 1571년 무위사 간행 天地冥陽水陸雜文, 天地冥陽水陸齋儀纂과 같은 목판으로도 알 수 있다.254)
수륙사로는 서울 인근의 진관사 수륙사가 대표적이었다.255) 그것은 현존하지 않지만 조선 초 선왕·선후를 추천하는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상·중·하단 구조의 59칸이었다.256) 그런데 수륙사와 더불어 본사와 승들의 거처도 개수되어 국행수륙사는 사찰에 큰 힘이 되었다.257) 송광사의 경우도 고려 말 조선 초 급격히 쇄락해진 상황을 1399년 고봉선사가 수륙사를 조성하라는 정종의 명을 받아 전각을 준공하면서 극복하여 갔다. 이어서 중인선사는 90여 칸의 대 도량을 성취하였는데, 다만 사찰의 지위를 복구한다는 명분으로 1424년 선종으로 환속하는 행정절차를 추진하면서 예의 수륙사는 철폐되었다.258) 이상의 두 사찰은 조선 초 수륙사의 유행을 방증하는 예이다.
<그림 1>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1430년
무위사의 유일한 조선 초기 건물이자 현재의 중심전각이 극락보전이다(그림 1). 극락보전은 고려 건축 양식에 따라 주심포에 맞배지붕을 하였는데,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가 들어가는 조선후기의 장식적인 건축에 비하여 담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정면과 측면의 비례와 기둥과 보에 의한 면 분할은 돋보인다. 뿐 아니라 법당의 정면에서 바라보면 정면 세 칸 중에서 가운데 칸의 폭이 약간 좁게 되어있으면서도 세 칸이 동일해 보이는 기하학적인 미를 보인다.259) 가운데 칸 종도리 장설에서 발견된 상량문은 모두 91자이며, 마모되어 읽히지 않는 한 자를 제외한 全文이 다음과 같다(그림 2).
1) 大化主普顯持寺賢古信玄六熙海明信宗義明覺行惠澄覺澄夫存少朱得明金守 南金軋李終孝
2) 宣德五年五月卄五日指諭孝寧省眞信明性觀性侃戒正雪彩性龍供養奇□
3) 施主前左朗金賢前白雲寺住持大選信順徐揖希
<그림 2> 극락보전 상량문
묵서명은 세로 세 줄이며, 가운데 줄이 좌우에 비해 9칸 앞에 위치해 있다. 가운데 줄은 1430년인 宣德 5년 5월 25일로 시작되는 조성연대와 지유 孝寧을 앞세운 8인의 인물명과 한 사람의 공양주가 있다. 그 오른쪽에는 대화주 賢古를 포함한 15인이, 왼쪽에는 시주를 담당한 3인이 있다.260)
이중 指諭는 단어의 위치와 의미로 보아 佛事를 지휘한 중심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지유 孝寧은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孝寧大君(1396~1486)일 가능성이 높다.261) 효령대군은 일생 동안 많은 佛事를 이뤘고, 그것은 종친의 역할 나아가 불교국가인 고려를 지나 성리학적 질서를 숭앙하는 조선시대에도 지속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반영할 것이다. 그의 행적은 1432년(세종 14) 한강 가에서 7일 동안 인산인해를 이루며 치러진 수륙재, 1435년(세종 17)의 회암사 불사, 1452년(단종 원년) 상원사 동종제작, 1458년(세조 3)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제작, 1464년(세조 10) 회암사 圓覺法會를 주제한 데서 확인된다.262) 그 밖에도 觀經16觀變相圖(1465년)263), 泰安寺大鉢264)은 물론 강진 만덕사(현재의 백련사)를 중창하였는데, 무위사 극락보전 건립은 그의 나이 35세에 해당하는 초기 불사에 해당한다. 효령 다음으로 이어지는 실무자는 省眞 信明 性觀 性侃 戒正265) 雪彩 性龍 등이다.
한편 화주는 賢古 信玄 六熙 海明 信宗 義明 覺行 惠澄 覺澄 夫存 少朱 得明 金守南 金軋 李終孝 등이다. 이 가운데 信玄은 세종 16년(1434) 양주 회암사의 보수를 기념하는 법회에서 무애희 의식을 담당한 승려와 동일 법명으로 신현은 이로 인해 태형의 벌을 받았다.266) 海明은 충청도 충주 嚴政寺의 전 주지 海明과 동일명이며, 세종 8년(1426) 사찰 혁파 이후 사사로이 토지를 점령하였다고 하여 문제시되었다.267) 그리고 惠澄은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여러 인물 가운데 相命師 惠澄과 동일 이름이다.268)
시주는 6조의 정6품 문관이었던 前 左朗 金賢과 前 白雲寺 住持인 大選 信順 그리고 徐揖希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이가 신순이다. 그가 주석한 백운사가 무위사가 자리한 월출산에 있는데,269) 이곳은 1300년을 전후한 시기 천태종 고승 無畏國統 丁午가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270) 때문에 백운사 주지의 무위사 극락보전에 대한 시주는 선문구산에 뿌리를 두었던 무위사가 천태종 소속이 된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편 신순이라는 승려의 이름으로 양녕대군의 역모설에 연루된 이가 있는데, 신순은 세조 6년(1460) 양녕대군의 下三道 순행이 왕이 되려는 의도라는 일종의 루머를 관아에서 증언하기도 하였다.271) 이상으로 보건대 1430년 무위사에 극락보전이 건립된 데에는 효령대군을 비롯한 전 관료와 백운사 주지 등 비교적 사회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의 역할이 주도적이었다.
다시 수륙사와 관련하여 보면 극락보전 동쪽 대들보 상면에 ‘修設水陸’이라는 낙서가 세 곳에 있고 그것은 화공들이 인물이나 동물그림과 함께 흘려 쓴 글씨로 판단되고 있다.272) 건물을 수리하여도 대들보를 교체하기 어려우므로 건물이 수륙사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시기적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강진을 포함한 전남 해안 일대에는 왜구로 인한 피해가 컸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강진의 고려청자 산업기반이 내륙으로 분산되고, 인근 진도와 완도는 거의 空島가 되었다.273) 또한 1407년 무위사와 함께 천태종 계열의 자복사로 선정된 만덕사가 그 해 왜적에 의해 全燒된 일이 있었다.274)
이와 같은 사항을 참조하여 백련사가 효령대군의 시주로 1430년대에 중창되고, 재차 효령대군이 수륙재를 위한 전답을 이곳에 시주한 일을 고려하면,275) 무위사의 경우 강진지역에 대한 효령대군의 지속적인 관심을 배경으로 지역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원형 건물의 의미를 확대하여 개축할 필요성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이 1476년 아미타후불벽화와 백의관음, 1478년의 불상을 포함하는 재건축 불사였다고 판단된다.
Ⅲ. 1476년 아미타삼존 후불벽화와 백의관음도
무위사 극락보전의 후불벽화는 건물이 지어지고 46년 후인 1476년 새롭게 벽체를 마련하여 그린 불화이다. 벽체는 불단 위에 놓여 있으며, 대공의 첨차를 잘라 쇠못으로 고정하여 설치되었다. 이때에 연등천장에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는데 塼으로 된 바닥도 함께 마루로 바뀐 듯하다.276) 이를 포함한 극락보전의 벽화는 현재 모두 31점으로 제작된 시기와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셋으로 나뉜다.
첫째, 1476년 건물개축에 의해 조성된 아미타삼존 후불벽화와 뒷면 백의관음도이다. 이 그림은 황토를 바탕으로 하며 채색이 밝고 화사한 편이다. 둘째, 동측벽의 설법도와 서측벽의 내영도 중심의 건물 벽면의 1차 벽화들이다. 이들은 후불벽화보다 고식을 띠며, 황토 바탕이면서 朱色의 박락이 심하여 붉은 색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셋째는 벽면을 보수하면서 1차 벽화를 덮고 다시 그린 조선 후기 2차 벽화이다. 내용은 뇌록색 바탕으로 녹색과 주색이 짙은 5불, 입불, 관음보살, 지장보살, 비천, 연화당초문 등이며 경직된 화풍을 보인다.277) 1, 2차 벽화는 측벽의 설법도와 내영도를 중심으로 그 상단에 좌상의 五佛이 있고 좌우에는 연화와 비천상이 그려졌다. 그리고 동벽 오불의 좌우에는 관음과 세지보살입상, 서벽 오불의 좌우에는 아미타여래와 지장보살입상이 있다. 동서 협칸 위에는 관음보살좌상이 있다. 그런데 일부 연화당초문에 동일 내용의 1차 벽화가 드러나 있어 2차 벽화의 구성은 1차 벽화에 준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고에서는 먼저 후불벽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아미타삼존도
후불벽화는 아미타불이 중심에 정좌하고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있는 아미타삼존도이다(그림 3).278) 본존 두광 좌우에는 합장을 한 여섯 나한의 상반신이 구름 속에 드러나 있고, 그 위는 육계에서 솟은 瑞氣 안에 조그마한 네 부처좌상이 시방제불로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필치가 간경하고 바림은 깔끔하다.
<그림 3> 극락보전 아미타삼존후불벽화, 1476년
아미타 본존의 두상은 三山으로 구분되어 높직한 육계가 있고, 정상부에 붉은 계주가 있다(그림 4). 방형의 얼굴이며 눈은 앞트임이 좁고 눈꼬리가 상승되었다. 턱의 중심이 뾰족하며, 날렵한 선으로 엄정한 인상을 나타내었다. 건장한 체형에 허리가 길고 왼손을 다리 위로 하향하였다. 가슴선 밑에서 묶인 승기지의 상단은 부채꼴 주름을 이루며, 양 발을 드러낸 항마좌를 취한다. 三山式의 두상 표현, 붉은 법의의 금박 원문, 법의가 연화좌 아래로 흘러내린 모양, 사자가 그려진 화려한 대좌는 일본 根津美術館 소장 1306년 아미타여래도와 아미타삼존도 등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모습들이다(그림 5). 격자무늬 바닥 역시 일본 親王院 소장 1350년 미륵하생변상도의 것과 같다.
<그림 4> 아미타삼존후불벽화 부분, 본존
그러나 높아진 육계의 정상부 계주를 비롯하여 어깨 각이 분명해지면서 고려불화의 重厚한 자세와 차이를 보이고, 가슴에는 고려불화의 특징인 卍자를 대신하여 大明呪의 시작인 옴자가 새롭게 들어와 있다(그림 6). 광배 역시 마치 매병에 연꽃잎이 올려 진 모양의 이른바 주형거신광으로, 원형광배를 전형으로 하는 고려불화와 대조된 조선시대의 특징을 보인다. 한편 높직한 육계와 정상 계주, 승기지의 주름꼴 등은 티벳 조각양식을 수용한 명대 양식에 나타나 있다. 그 예가 메트로폴리탄 소장 영락 9년(1411) 목불좌상,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의 15세기 석불좌상이다.279) 명대 영향에 의한 상과 비교하더라도 각이 선 어깨선, 승기지, 항마좌에서 유사함을 보인다(그림 7). 곧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의 아미타 본존은 전통양식과 더불어 명대 불상의 형식을 수용하여 토착화한 조선 초기 불상 형식이다.
<그림 5> 阿彌陀三尊圖, 14세기, 139.0×87.9 cm, 日本 根津美術館
협시보살은 관음이 양 손을 교차하여 흑색 정병과 버드나무가지를 들었고, 지장보살은 각 손에 투명 보주와 금빛 육환장을 들었다. 협시보살의 영락장식은 고려불화와 같은 흉식과 복식이 분리된 宋飾에 연결되어 있다.280) 그리고 투명하게 표현된 관음보살의 백색 천의와 지장보살의 흑사 두건, 보살의 신광도 섬세한 고려불화의 영향이다(그림 8, 9).
<그림 6> 아미타삼존후불벽화 부분, 가슴의 옴자
<그림 7> 金銅菩薩坐像, 15세기,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첫댓글 중국불교의 현세간주의 특색(육조단경 부분이,,)이 읽어볼만한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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