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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유대주의 문헌 개론
유대주의 문헌 개론 1
1. 유대주의 탄생의 배경 - 출애굽(Exodus) 그리고 바빌론 포로(Babylon Exile)와 제 이 성전(the Second
Temple) 파괴:
# 고난에 대한 이해
- 고난에 대한 이해는 유대주의의 철학과 기초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다.
세계 여타
민족과 국가도 그러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고대 역사와 근세사에 있어서 고난과 대단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항상 고난과
함께 살았던 그들이니 만큼 ‘고난’(苦難)은 유대주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유대주의 문헌에 있어서의 출애굽의 위치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고난(苦難)의 신학화(神學化)’에 기여한 사건들이
있다면 우선은 역사의 전반부에서 일어났던 출애굽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 연대에 관한 문제 내지는 출애굽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여부에
대해 현대의 비평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리기는 하지만 출애굽은 성서 속에서나 혹은 그 이후의 유대주의 문헌에서 신학화 단계를 거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유대주의 문헌에서는 출애굽 사건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구원사의 원형으로 이해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성서 본문에 대한 해석의 근거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출애굽은 고난의 신학과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이해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첫째로,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신앙고백적 틀을 형성하여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기초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출애굽 자체는 과거 속에 누워있는 사건이지만, 여기에 근거한 신앙고백은 현재적 사건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와 과거가 서로 그 안에 맞물려있다. 둘째로는, 출애굽 이해는 고난 자체에 대한 해석이라기 보다 고난으로부터의 탈출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이스라엘이 고난 당한 것을 압도하는 모습을 후대의 신앙고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 Exile 과 제이성전 파괴
출애굽 사건이 이러한 성격으로 유대주의 문헌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고난의 신학’에 있어서
조금은 차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건들이 바로 바빌론 포로와 제 이 성전 파괴이다. 전자는 주전
587년에 일어났으며, 후자는 주후 70년에 생긴 사건이므로 두 사건의 시간적인 거리는 대단히 멀어보이지만, 그 신학적 거리는 대단히
근접해있다. 이를테면, 이 두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대주의 문헌 속에 드러난 이 두 사건의
해석을 일별해 보면, 출애굽과 비교해서 생각할 때에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출애굽이 유대주의 문헌 생산자들에게 있어서
과거의 사건이었음에 비교해서 이 두 사건은 현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연속적인 사건들이었다. 출애굽은 신앙고백이라는 모습으로 현재에 살아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두 사건은 현재적 실체(reality)로서 그들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의 해석은 과거와 묶여 있었다기 보다는
미래로 열려져 있었다. 말하자면, 이제부터 이 사건을 해석해 나가는 관점에 따라서 유대인 공동체의 앞길이 결정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들
안에는 현재와 미래가 한데 맞물려있다. 둘째로, 출애굽이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고난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현재적 시점에서 고난은 진행중이다. 그리고 해결은 요원한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유대인들은 먼저 고난의
이유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되어야만 유대인 공동체는 나름대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야웨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던 만큼, 고난에 대한 이해는 그들에게 절박한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 고난의 결과 = 후기 유대주의 (the late Judaism / Rabbinic Juadaism)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출애굽과 바빌론 포로 그리고 제 이 성전 파괴는 유대인들의 고난과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체성(identity)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선민’(選民)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바빌론 포로와 제 이 성전
파괴에 의해서 그들의 ‘선민의식’은 정체성(identity)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민이 버림받은 이유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해석을
스스로에게 요구했으며, 이러한 요구는 당연히 그 이전과는 다른 신앙적 자세를 그들로 하여금 소유하게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신앙적
자세에서 소위 오늘날 우리가 유대주의 문헌이라고 부르는 문학들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유대주의 문헌의 생성에는 이러한 내적인 이유 외에도 그것이
원인이 된 외적인 요인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공동체로부터의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제 이 성전 파괴를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리받은 결정적 증거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대인들은 이 사건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끝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죄와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corrective moment)로 이해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의 또 다른 기원으로 삼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기독교인들에게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소위 verus Israel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와같은 기독교의 공세적 해석에 대한 변증의 차원에서 이 사건은 유대주의 문헌 생성의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이후 기독교와 유대교간에 벌어졌던
이 첨예한 논쟁은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기실 긍정적으로도 작용하여 서로에게 신학의 발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바빌론 포로 사건이 ‘후기 유대주의’(the Late Judaism) 혹은 ‘랍비 유대주의’(the
Rabbinic Judaism) 내지는 ‘탈무드 유대주의’(the Talmudic Judaism) 라고 불리우는 시기가 배태(胚胎)된 때라면,
주후 70년에 일어났던 제 이 성전 파괴는 결정적으로 이 시기의 탄생을 결정지은 계기의 때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틴 유대 공동체는
주후 70년 이후로 정치적인 독립성을 상실했으며, 아울러 성전과 이를 관장하던 제사장 세력의 힘도 사라졌다. 따라서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팔레스틴의 유대 공동체에 요구되었으며, 소위 '얌니아'(Jamnia)라고도 이름하는 '야브네'(Yabneh)를 중심으로 서서히 새로운 자치
질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ai)가 중심이 되었으며, 그는 우선 바리새 전통을 지닌
학자들과 서기관 계통의 학자들을 모아서 공동체의 중심축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시작된 팔레스틴의 유대주의는 결국 팔레스틴
탈무드(Yerusalmi)와 미드라쉬(Midrash)를 그 열매로 남겼다. 한편, 제 이 성전 파괴를 계기로 해서 많은 유대학자들이
바빌론(Babylon)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이들의 이주는 주후 135년경에 일어난 바르 코흐바 혁명(Bar Kochba Revolt) 이후에
정점에 달했다. 이 결과로 팔레스틴에서 이주한 랍비들에 의해 바빌론 유대 공동체는 이후 유대주의 역사에 있어서 팔레스틴을 능가하는 중심적 위치에
서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유대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바빌론 탈무드(Bavli)를 생산해내게 되었다.
2. 대표적인 유대주의 문헌들 - 미쉬나(Mishna)와 탈무드(Talmud) 그리고 미드라쉬(Midrash)
앞서
언급했듯이 유대주의(Judaism)는 고난의 토양에서 이것을 재해석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유대인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바로 그들이 생산한 문헌 속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1) 미쉬나와 탈무드
유대주의 문헌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쉬나이다. 구전과 편집의 단계를 거쳐서 현존하는 미쉬나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대략 주후 200년 경으로 알려져있다. 미쉬나의 내용과 형태를 가장 먼저 편집한 사람은 랍비 아키바(R. Aqiba)로
알려져 있으며, 그후에 랍비 메이어(R. Meir)를 거쳐서 마침내 최종적으로 편집을 책임 진 사람은 랍비 유다 하 나시(R. Judah
Ha-Nasi)이다. 미쉬나의 내용은 크게 보아서 세가지 유대주의 전승과 맞닿아 있다: (1) 성경 본문의 해석이랄 수 있는 초기 미드라쉬;
(2) 성서의 규범을 다루고 있는 할라카(Hallakha); (3) 할라카를 제외한 모든 자료를 일컫는 하가다(Haggada). 이러한 전승의
수집과정 속에서 형성된 미쉬나는 전부 여섯 개의 커다란 항목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여섯 개의 항목은 다시 예순 세 개의 작은 부분으로
세분되어있다. 미쉬나를 생산한 랍비들의 그룹이 ‘타나임’(Tannaim)이라면, 미쉬나를 다시 해석한 ‘그마라’(Gemarah)를 생산하여
결국은 ‘탈무드’(Talmud)를 만들어낸 그룹은 ‘아모라임’(Amoraim)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언급한 것처럼 유대주의 문헌이 집대성 된
작품을 탈무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문서를 통해서 랍비 유대주의 공동체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당시 그들의 삶의 정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미드라쉬(Midrash)
1) 미드라쉬(Midrash)의 형성과정과 종류:
미쉬나와 탈무드 못지 않게 중요한
유대주의 문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드라쉬(Midrash)이다. 이를테면 미드라쉬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성서의 본문을 해석하려고 시도한
랍비들의 노력의 결정물이라고 할 수 있는 문헌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주석(commentary) 혹은 해석(exegesis)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문학작품이다. 미드라쉬의 형성과정과 그 종류, 해석원칙, 그리고 수사법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 말 뜻
‘미드라쉬’라는 용어는 히브리어 darash(찾다, 구하다)에서 비롯되었다. 에스라 7장 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는 말씀에서 darash가 이와같은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명사형인 midrash 역시 두차례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대하13:22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 대하24:27
“열왕기 주석”), 실제로 그 의미가 개역성경에 번역된 것처럼 ‘주석’(interpretive writing)인지 아니면 단순히 ’책‘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다 더 후대의 의미인 ’조사하다‘ 혹은 ’공부(연구)하다‘라는 뜻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Ben Sira
51:23에 나타난 ’beth midrash'(공부의 집, 학교)라는 표현에서이다. 특히 쿰란(Qumran)문서에서는 랍비문헌의 용례와 같이
‘공부(연구)하다, 해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서 이 용어의 시대에 따른 의미 변천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언급한대로 랍비문헌에서는
미드라쉬가 ‘연구, 조사’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이 보다 좁은 전문적인 의미인 ‘주석, 해석’의 용례 또한 발견된다.
# 형성과정
미드라쉬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거쳐서 형성되었는가를 명확하게 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제이콥
뉴스너(Jacob Neusner)에 의하면 미드라쉬는 세가지 모습을 그 이름 값으로 가지고 있다: (1) 어떤 특정한 성서본문에 대한 해석의
과정(process of interpretation), 혹은 해석원칙(hermeneutic); (2) 그 과정의 결과로 생산된 주석 책; (3)
각 단락(절, 혹은 구절 내지는 장)으로 나누어지는 주석의 각 부분. 이러한 뉴스너의 견해는 사실, 지금까지 미드라쉬를 연구해 온 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해서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뉴스너의 견해를 무리없이 받아들 일 수 있다면, 젤리그만(Seeligmann)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미드라쉬의 초기 형태를 성경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예를 역대기(Chronicles)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역대기를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해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의 문헌으로서는 성경의 기사를 해석적으로 재구성한 the book of Jubilees나 혹은 Genesis Apocryphon 정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성경 기사의 해석적인 번역을 미드라쉬의 초기 형태로 이해한다면, 탈굼(Targum) 역시 여기서 제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탈굼은 단순한 번역이라기 보다, 설명과 해석을 집어넣어 성경기사의 확장을 시도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탈굼의 요소가운데 많은 부분이 미드라쉬의 형성 과정 속에 유입되었을 것이란 가정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다.
피쉬베인(M. Fishbane)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간 초기 미드라쉬의 형태를 쿰란(Qumran)에서 발견된 주석인 '페쉐르'(Pesher)에서 찾는다. 페쉐르는 그 형태에 있어서 각 성경구절마다 그에 상응하는 해석을 붙여놓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가히 미드라쉬의 sub-genre라고 불리울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이와 같은 형태의 발전을 거쳐서 랍비들이 생산한 현존하는 미드라쉬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문헌을 들자면, Liber Antiquitatum Biblicarum을 언급할 수 있는데, 포튼(Porton)은 이 문헌을 가장 현존하는 미드라쉬에 근접한 형태를 갖춘 주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같은 발전단계를 거친 미드라쉬는 유대주의의 문헌가운데서 팔레스틴 랍비들의 노력에 의해서 성경본문을 다룬 해석책이라는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물론 미드라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상징적인 인물로는 에스라와 그 이후의 서기관 계급을 들 수 있지만, 실제로 이같은 학문적 노력이 시작된 시기는 타나임 랍비와 아모라임 랍비들의 시기라고 말 할 수 있다.
# 미드라쉬의 분류
미드라쉬는 내용과 형태에 따라 다르게 구분한다. 먼저 내용에 따라서 미드라쉬를 분류하자면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Halakhic midrash; (2) Haggadic midrash. 실제에 있어서는 halakhic 미드라쉬가
haggadic 자료를 그 안에 포함할 수 있으므로 이같은 구별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주어진 미드라쉬가 관심하는
주된 내용에 따라서 이같이 구분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halakic 미드라쉬는 규범과 법에 관한 토론과 해석을 담은
것이며, haggadic 미드라쉬는 성경에 있어서 그 외의 자료들, 이를테면 신앙의 표준, 신앙인의 자세, 도덕적 교훈 등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와있는 ‘이야기’(narrative) 부분에 대한 해석도 여기에 속한다.
형태에 따라서 미드라쉬를 구분하자면, 크게 보아 세가지 모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석의형(Exegetical) 미드라쉬; (2) 설교형(Homiletical) 미드라쉬; (3) 혼합형(fusion of Exegetical and Homiletical) 미드라쉬. 석의형 미드라쉬는 성경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미쉬나와의 관계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레위기의 주석인 ‘시프라’(Sifra)와 민수기와 신명기의 주석인 ‘시프레’(Sifre), 그리고 창세기 주석인 브레쉬트 라바‘(Breshit Rabbah)가 석의형 미드라쉬의 전형인데, 이들은 대부분 규범을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해석의 방향에 있어서 미쉬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석의형 미드라쉬의 전형적인 형태는 각 단어 별로(word by word) 그리고 각 구절 별로(phrase by phrase) 해석을 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편 설교형 미드라쉬는 시나고그(Synagogue)에서 행해졌던 설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매 안식일마다 정해진 분량만큼 읽는 오경과 예언서 부분의 일과서(lectionary)를 주제별로 강해한 것을 문서화한 것이다. 이 형태는 석의형 미드라쉬에 비해서 보다 더 추론적(discursive)이며 철학적인(philosophical) 본문 이해를 보인다. ‘레위기 라바’(Leviticus Rabbah - Sifra와 구별된다)와 ‘페식타 드 라브 카하나’(Pesikta de-Rabbi Kahana)가 대표적인 이 계통의 작품이다. 세 번째 형태인 혼합형은 석의형 스타일과 설교형 스타일을 절충해서 혼합한 형태이다. 룻 라바(Ruth Rabbah), 에스더 라바(Esther Rabbah) 그리고 아가서 라바(the Song of Songs Rabbah)가 여기에 속한다.
유대주의 문헌 개론 2
미드라쉬(Midrash)의 해석원칙(hermeneutic):
1.
Internal Reading:
하나의 해석 방법(a system of hermeneutics)으로서 미드라쉬는 해석 대상으로 주어진
본문에 대해서 두가지 접근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 첫째는 이미 본문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석을 통해서 읽어내는 ‘본질 읽기’ 혹은
'안으로부터 읽어 나오기' (internal reading)이다. 이 방법을 오늘날의 용어로 이해할 때에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용어는 아마
exegesis 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역사비평적 해석방법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 가운데서 굳이 가까운 방법을
든다면 ‘문학구조비평’ (literary criticism)과 흡사한 내용을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주어진 본문의
모든 어휘(lexical element)와 문장의 구조(structure of sentence)가 '구문론적인 의미'(syntactical
meaning)를 갖고있다는 전제아래서 본문을 읽어나가는 것이 바로 ‘본질 읽기’(internal reading)이다.
2.
External Reading
한편, 이와 상반된 본문 접근 방법이 ‘밖으로부터 읽어들어가기’(external reading)이다. 이
방법은 미드라쉬가 특징적으로 갖고있는 독특한 접근방법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오늘날의 용어로 대치해 본다면 eisegesis에 가까운
본문읽기로 생각할 수 있다. 쿠겔(James Kugel)에 의하면 “미드라쉬의 주된 관심은 표면적으로 볼 때에 불규칙한
본문(irregularities in the text)에 주어져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본문을 문자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에 midrashist들은 allegorical interpretation을 차용하여 본문을 eisegesis하는데 별 다른 저항을
느끼지 않았다. 실제로 Rambam은 aggadic midrash를 ‘시’(poetics), 즉 didactic fiction으로 이해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러한 이해는 실제로 Stoicism에서 allegory를 Homer의 시 가운데 ‘신화적인 내용’(mythical
elements)이 갖고있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따라서
midrashist들은 랍비 세계의 정신과 전통 속에서 미리 설정된 전이해를 가지고 본문을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하게되고, 그러한 작업이
allegory라는 도구 속에 실려서 의도한 해석방향으로 본문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3. 성경해석의 원칙
그러나
이같은 본문읽기가 아무런 원칙없이 무제한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나름대로 커다란 두 개의 원칙을 전제할 때에 비로서 이 해석방법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첫 번째의 커다란 원칙은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비롯된 거룩한 말씀”(Scripture is divine speech)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예언자들은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channel)이며, 말씀이 그들을 통과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예언자들 자신의 말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이같은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우리는 토라(Torah)가 우리에게 어떻게(how) 전달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이것이 모세와 같이 단순히 말씀을
받아적었던 서기관들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같은 입장은 소위 오늘날의 "기계적 축자 영감설“(mechanic
verbal inspiration)과 흡사한 성경이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이론에서 보자면, 성경은 그 진리와 깊이에 있어서 무한대의
풍성함을 갖고있다는 이해가 가능하게된다. 그 안에 무궁무진한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에 심지어는 한 본문 안에서 수 백가지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전제가 성립된다. 이러한 수 백가지의 다른 해석은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본문을 해석하는 인간의
해석적인 지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뿐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에 있어서 오류나 상충됨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은 또한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질서를 갖고 있어서 각 부분이 일관성을 가지고 서로 깊은 관련 속에서 묶여있다는 전제
또한 가능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성경의 한 구절을 해석할 때, 이 부분이 성경의 모든 부분과 연결성이 있으므로, 다른 성경 구절과 관계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midrashist들의 관심은 성경에는 모순이 없다는 전제 아래서, 성경이 가지고 있는 일체성을 끄집어내어
모순처럼 여겨지는 부분들이 갖는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관점은 소위 미드라쉬의 해석원칙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인
intertextuality를 가능하게 한다. intertextuality의 경우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설교형 미드라쉬의 각
장에 나타나는 도입부이다. 페식타 드 라브 카하나(Pesikta de-Rab Kahana)가운데 한 부분을 그 예로 들어보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신25:17)는 말씀은 다음 구절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잠19:25)의 말씀을 통하여 이해한다. ‘거만한 자를 때리라’는 구절에서 거만한 자는 곧 아말렉을 의미하며,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는 구절 속에서 어리석은 자는 이드로를 가리킨다...(이하 생략).” (Piska 3)
이 부분의 해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25:17을 해석 함에 있어서 잠19:25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자를 해석함이 곧 전자의 뜻을 명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전체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전제한 intertextuality의 원칙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원칙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성경을 주실 때에, '문전된 토라'(the written Torah)만 주신 것이 아니라 '구전된 토라'(the Oral
Torah)도 함께 주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구전된 토라’라 함은 단순히 협의에서 미쉬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세로부터 랍비들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내려온 전통 속에서 ‘문전된 토라’에 관해 해석한 작업 전체를 일컫는다. ‘구전된 토라’ 개념은 성경자체를 이해함에 있어서
상당한 신축성(flexibility)을 해석자들에게 제공한다. 왜냐하면, ‘문전된 토라’는 이미 닫혀져있고, 고정되어 있으며 형성되어있는
건축물인데 비해서, ‘구전된 토라’는 열려있으며, 아직 여전히 살아있는 성장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전된 토라’는 ‘문전된 토라’가 역사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왔는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midrashist들이 해석에 있어서
무제한의 자유를 누렸던 것은 결코 아니다. 열려있는 토라를 계속해서 형성해 나감에 있어서 랍비들은 전통의 한계 안에서만 해석의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할라카의 범주 밖에서 본문을 이해하는 것을 스스로 금지했으며, 이러한 한계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가 인정하는 학교(내지는
학파) 안에서만 공부해야했다. 물론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은 모세로부터 내려오던 전승의 사슬안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자로 공동체에서 인정 받은
사람이어야 했다.
4. 미드라쉬(Midrash)의 수사법(rhetoric / form and style):
미드라쉬의 수사적
형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해석 대상인 성경 구절(biblical lemmata) + 해석(comment)”의 형태이다. 해석의 대상으로
주어진 성경구절은 석의형 미드라쉬의 경우에서처럼 성경의 연속적인 구절이나 장에서 선택된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설교형 미드라쉬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성경 일과서(lectionary)에서 선택된 전혀 관계없는 본문일 수도 있다. 이 두 부분은 모두 다 히브리어(Mishnaic
Hebrew)로 쓰여져있기 때문에 외견상으로 보아서는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두 요소 사이에 경계가 없다고 해도 이
둘이 서로 혼동될 가능성은 실제에 있어서는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은 독자들이 일별 했을 때 서로 전혀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형태가 기본적인 틀이라고 한다면, 그 틀 속에서 해석을 위해 사용되는 작은 수사법을 몇 가지 열거해 보기로 하자.
i. 해석자들은 임의대로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든지 해석에 필요한 증거 구절(proof text)을 가져올 수 있다. 이때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부분에서 따온 인용임을 알 려주는 도식으로서 she-ne'amar(as it is said)를 사용한다.
ii. 다른
부분에서 가져온 성경 구절은 여러개가 사용될 수 있다. 해석자들은 마치 구슬을 한 줄에 꿰듯이 이 구절들을 서로 엮어서 설명 안에 주렁 주렁
매어다는 형태로 해석의 틀을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여러개의 다른 구절들을 한데 모아 소개함으로써 해석자들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경
전체의 유기적 관련성을 독 자들에게 보여준다.
iii. 해석에 있어서 권위있는 타인의 견해를 빌릴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이름
을 밝히는 것이 상례이다(예: 랍비 아키바, 랍비 이스마엘 등등).
iv. 해석 과정 속에서 반론을 통해서 논리적인 추론을 해나가야
할 경우에는 여러 개의 이견(異見)을 소개함으로써 해석을 해 나가며, 이런 경우에는 davar aher(another
interpretation)라는 관용적 표현을 사용해서 이견임을 표시한다.
v. 신학적인 난제를 풀어가며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주로 meshalim (parables)을 사용한다. 이 때에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은 mashal le-mah ha-davar
domeh(A parable. To what may the matter be likened?)이다.
이와 같이 단순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해석의 형태도 미드라쉬 text안에 현존하지만, 이같은 형태가 더욱 발전해서 보다 진전된 형태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데,
그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티흐타(petihta)라고 불리우는 독특한 수사적 형태이다. 이 형태는 주로 “랍비 아무개 patah(문자적 의미로
‘열었다’)”로 시작되는데서 ‘프티흐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프티흐타의 가장 큰 특징은 외견상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두 개의 성경구절이
‘해석의 대상이 되는 주어진 구절’(base verse)과 그 구절을 해석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구절’(intersecting
verse)로 나뉘어 해석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base verse(이하 BV)는 현재 미드라쉬에서 그
의미를 논하는 해석 대상이며, intersecting verse(이하 IV)는 BV와 전혀 관계가 없지만,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가져다 놓은 성경구절을 가리킨다. 물론 앞서 해석원칙에서 언급했듯이 이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일체성이 있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 형태는 다음과 같은 일종의 도식을 갖게 된다: (1) 주석의 앞부분은 BV로 시작한다; (2) BV를 해석할 근거가 되는 IV가 다음에
잇따른다(IV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가져온다); (3) IV를 설명하기 위해서 해석과 또 다른 성경구절이 사용될 수 있으며, 이 부분을
hariza(stringing together)라고 부른다; (4) 충분할 설명이 주어진 후에 결론적으로 BV가 앞서 설명한 내용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음을 밝히는 의미에서 BV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프티흐타의 실례를 레위기 라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레위기 라바 1:1은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라는 구절을 해석하고 있다. BV를 소개한후에 본문은 ”하닐라이의 아들인 랍비 탄훔이 설명을 열었다“라는
관용구에 이어서 IV로서 시편 103편 21절(”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거룩하심과 모세를 부른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서 시편기자가 천사들을 높여 부르지 않고 단순히 ‘사자’의 뜻인 ‘말라킴’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리자’에 속하는 부분으로서 aher davar라는 관용구에 이어 이번에는 민수기 20장 16절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계속해서 하리자를 이어간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BV를 집어넣어 해석자의 주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런 해석의 형태를 보면,
해석의 단계가 대단히 논리적임을 알 수 있다. 먼저 해석하려는 구절에 이어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구절을 대입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견해와 다른 랍비들의 반박을 섞어 넣고,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이해임을 설명하고나서 결론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방식을
프티흐타에서 볼 수 있는것이다.
프티흐타(petihta)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보아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러한 형태가
시나고그(synagogue)에서 행해지던 설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론이다. 하이네만(Joseph Heinemann)에 의하면, 이 형태는
설교 앞 부분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안식일(Sabbath)이나 그 밖의 절기(festival)에
해당하는 성경귀절을 예배 인도자가 먼저 읽고 그리고 이 구절이 다른 성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던 예전에 기인하는 것이 바로 프티흐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형태는 보다 더 길고 본격적인 설교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된 도입부 내지는 서론이 그 기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블로흐(P.
Bloch)나 백(L. Baek)같은 학자들은 프티흐타가 설교의 서론부분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서 완벽한 하나의 설교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견해 역시 이 형태가 시나고그(synagogue)의 설교에서 전해져 내려왔음을 말하는 커다란 줄기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프티흐타가 설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드라쉬가 오랜 세월을 두고 전해져 내려오며 편집되는 과정에서 편집자가
상이한 자료(material)들을 서로 묶기 위해서 이러한 형태를 만들어 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새러슨(R. Sarason)은 레위기
라바(Leviticus Rabbah)의 프티흐타가 바로 이러한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라고 주장하면서 프티흐타가 항상 BV로
결론지어지는 것이 이러한 편집의 증거라고 한다. 어떤 이론이 프티흐타의 기원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한 것인지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다. 단지,
프티흐타의 기원을 설교에 두는 것이 전 세대 학자들의 주장이라면, 최근의 학자들은 두 번째 견해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프티흐타가
midrsahist들에게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중요한 연구의 주제라는 사실을 잘 알려줄 뿐이다. 왜냐하면, 미드라쉬의 수사적 형태에 있어서
프티흐타는 가장 형식이 제대로 갖추어진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5. 나가는 말:
지금까지 유대주의 문헌이 생성된 대략적인
역사와 그 신학적 배경, 그리고 중요한 문헌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며, 특히 미드라쉬의 해석 원칙과 수사법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설명했다. 현대에
있어서 미드라쉬의 연구는 크게 보아서 두가지 관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행해져 오던 유대주의 내부에서의 미드라쉬
연구가 동 시대의 기독교 문헌들과의 비교연구(comparative study)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서로 같은 부분이
해석의 대상이 되었던 주석들에 대해서는 비교 연구가 이미 완성된 것도 있으며, 현재 진행중인 것들도 있다. 허쉬만(Marc Hirshman)은
이렇게 비교 연구가 가능한 몇가지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1) Justin Martyr와 the Dialogue with Trypho the
Jew; (2) Breshit Rabbah안에서 발견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논쟁; (3) the Dialogue with Trypho the
Jew와 레위기에 관한 미드라쉬인 Mekhilta; (4) 유월절과 출애굽에 관한 Origen의 해석과 Rabbinic midrashim;
(5) 아가서에 관한 교부들의 주석과 midrashim; (6) 전도서에 관한 Jerome의 주석과 midrashim. 이같은 연구가 앞으로
더욱 진전된다면,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의 성서 해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여부에 대해서 이전 보다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미드라쉬의 해석학과 현대적인 literary criticism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도 이미 상당한
양의 연구가 진행되어오고 있다. 미드라쉬는 알려진대로 allegory만을 성서해석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해석
원칙안에 근대적인 exegesis의 모습도 갖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중세의 유대주의 성서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원칙’(literal
interpretation)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사실, 중세의 미드라쉬를 살펴보면, darash라고 불리우던 유대주의 특유의
alleogry는 쇠퇴하고 pshat이라고 이름하는 literal interpretation이 해석의 새로운 도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분야도 앞으로 얼마든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연구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유대주의의 해석학은
우리가 잃어버린 반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의 성서해석은 기독교 학자들만의 힘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해석학을 이해하려면 상대방(counterpart)인 유대주의의 해석학을 아울러 연구해야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미드라쉬에 관한 제 연구가
활성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로서 한 부분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세권 / 장로회 신학대학 / Ph. D.
candidate, Hebrew Union College-Jewish Institue of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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