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호남국제마라톤 10km를 달리려면 어제의 술독을 빼야 한다.
오전 산행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다시 만연산을 넘어 광주로 가면
주중에 한번도 산행 못한 다리에 힘을 주고 내장의 술독도 빠질 거라고 혼자 장담한다.
일본인이 세운 만연폭포 사각형 돌비석을 찍고 큰재로 오른다.
큰재 정자엔 들르지 않고 윗쪽을 지나 오전에 내려왔던 옆길로 들어선다.
날이 덥다. 반팔셔츠를 입고 스틱도 펴지 않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소주 한병을 마셨으면 힘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오만이다.
만연산 정상 가까이를 걷는데 뒤에서 한남자가 따라와 앞질러 간다.
정상에 이르니 혼자 간식을 먹다가 사과즙 하날 준다.
마흔 여섯이라는 그는 고향이 화순이라 한다.
더 물으니 사평이라 했다가 한천이라 했다가 한다.
혹 고시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공부보다 돈 버는 일에 소질이 잇는 것 같아
축산유통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금을 안내다 한꺼번에 10억 넘게 냈다고 한다.
사업을 크게 했나보다 하니 축산유통이 도박같다고 한다.
그들의 세계를 난 모른다. 오감길에서 시작해 큰재로 만연산으로 한바퀴 돌면
4시간 남짓 길이 좋다고 매주 온다고 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4시가 넘었다.
다시 일어나 같이 내려가는데 그의 걸음은 빠르다.
그는 수레바위산쪽으로 진행하고 난 너와나 목장쪽으로 무돌길로 들어선다.
길 가의 취나물이 보여 허리를 숙이며 뜯는다.
4시 40분이 지나 식당 앞에 닿는다. 몇대의 차가 서 있다.
중머리재를 넘으려다가 힘이 없이 용연마을 3km 남짓을 보고 들어선다.
무돌길 표지는 금방 사라지고 출입금지 표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
벌깨덩굴인지 광대수염인지를 보고 벌써 꽃이 핀 으름덩굴도 본다.
밭같기도 하고 과수원같기도 한 산록을 지나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앞쪽에 빨간 표지가 바랜 채 붙어 있고 더러는 땅에 있다.
용연에서 중지마을 가는 무돌길이라는데 언제 사람이 지났는지 흔적이 없다.
무돌길을 돌았다는 사람들은 이 구간은 지나쳤나 보다.
한참을 서서 길의 흔적을 가늠해도 찾을 수 없다.
아래로 가지 않고 허리를 돌면서 넘어지며 미끄러지며 넘어진 썪은 나무 사이를 지난다.
발목이라도 접지를까 걱정이 된다. 다행이 해는 길다.
어쩌다 나타나는 빨간 리본이 반갑기만 하다.
백계남이라는 이의 리본이 자주 나타나 그나마 길임을 알겠다.
2km 남짓을 오르막도 아닌데 한시간 반 정도를 헤맸다.
팔은 긁히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다리에 힘도 떨어진다. 몇먼이나 미끄러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벌써 대가 오른 취나물은 놓치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내려오니 길의 흔적이 조금은 더 보인다.
매실나무 밭을 지나 내려오니 안내판이 서 있다.
국립공원이라며 더욱이 무돌길이라며 이런 안내판을 두고 길을 그 따위로
방치해 두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관리공단이나 무보협에 제보 항의라도 해야하나?
용연마을까지 내려오는 길엔 힘이 다 빠진다.
마을에 닿으니 내지마을에서 시내로 가는 52번 버스가 6시 10분 출발이다.
선교마을까지 힘없이 내려오는데 버스가 올라간다. 정수장 앞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학동증심사역앞에서 내려 또 10분 이상을 기다려 45번을 탄다.
집에 오니 7시 반이 넘어 해가 져 간다.
지쳐 술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
내일 달리기를 하면 다 풀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