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체 게바라처럼, 혹은 나답게."
2005. 7. 22 ~ 24
철암 - 동해 도보여행
<< 첫째날 - 7. 22. 목 >> 5시간/20Km/돌구지~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낮 2:20
광활팀이 모두 떠나버린 돌구지.
"나는 어디로 갈까?"
돌구지, 떠나다.
그리고, 길 위에 서다.
두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원주로 가서, 순례 때 만났던 선생님 뵙기. 혹은, 강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기차 타기, 걸어 다니기.
"나는 어디로 갈까?"
저녁 6:30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착.
저녁 8:00
낮이 아직 남았다. 조금 더 걷기로 한다. 걷다 걷다 8시가 넘자 해가 금새 져버린다.
길을 벗어나, 무작정 내려간 곳.
도계읍 고사리 마을.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채롭다
마을회관 앞 넓은 터에서 돗자리 깔고 영화 보는 풍경이란.
후에 들으니 '꽃 피는 봄이 오면' 영화, 무대가 되었던 마을이란다.
마을 이장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린다.
"안녕하세요. 도보여행 다니는 학생입니다. 오늘 하루 쉬어 갈 곳이 있을까요?"
학생증을 보여드리고 다시 꾸벅 인사드린다.
첫 날 잠자리. 마을회관.
식당은 없단다. 라면을 끓여준다길래 간 '길슈퍼'
한 판 술자리가 벌어져 있다.
그렇게 만난, 김두수 아버님.
나이를 말하니 내 또래 딸이 하나 있다고 하신다.
"니 나이 때는 어디든 가서 부딪혀봐라. 인사만 잘해도 다 잘 해준다. 그게 사람이다."
술값을 치르시며 라면값까지 내주신다.
이장님께 데려가서 하시는 말씀.
"내 친구 아들놈입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행 떠난 첫 날.
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 좋다. 참 좋다.
* 후원 : 김두수 아저씨 - 저녁밥 / 임춘빈 이장님 - 잠자리(마을회관)
밤 10:30
잠시, 길 위에서 내려와 쉬다.
<< 둘째날 - 7. 23. 토 >> 14시간/40Km/고사리~추암
아침 6:00
다시, 길 위에 서다.
휑하니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두 다리, 두 발로 걸어가며,
여행 동안 하고 싶은 세 가지를 생각해 본다.
숨쉬고,
보고,
걷기.
'짐스런 녀석' 독사진을 찍다가,
길 가, 딱딱한 바닥을 뚫고 나온 들풀을 만나다.
내가 이때껏 바라보고 사진에 담았던 풀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풀에 눈을 돌렸으나, 정작 담았던 것은 그 풀 위의 꽃이었다.
화려한 것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꽃이 피기 전까지 풀의 노고를 생각하지 못했었다.
맨 위에 드러난 꽃만 보고
그 밑의 풀잎들을 보지 못했다.
"밑으로 기어라."
'뿌리를 땅 깊숙이 뻗고 고개 들어 하늘을 대하는 들풀'을 보고 하루를 반성했다는 무위당 선생님이 생각났다.
낮추자. 나도 들풀을 보며 낮추자. 밑으로 기자.
머리로만 아는 것들이 가슴까지 내려올 수 있도록 내 손, 발까지 내려올 수 있도록.
길벗을 만들다. 만나다.
힘들 때, 지칠 때, 즐거울 때, 배 고플 때, 무서울 때, 그리울 때, 무심할 때,
"바람과 하이파이브."
"들풀과 하이파이브."
저녁 5:50
삼척항, 다다르다.
철조망 따라 걷는 길은 스산하다.
잠 잘 곳을 찾아 이 곳 저 곳 발품을 팔다, 싼 가격에 들른 밥집.
2000원짜리 칼국수 곱배기. 사장님 인심에 배 부르다.
식당 홍보간판을 찍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았다.
모자에서 느껴지는 정겨운 느낌.
밤 8:40
이 땅 위, 도보여행객 만나다.
부산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간다는 부산토박이, 26살 유현이형, 택수형.
오늘 하루 정동진에서 걸어왔단다.
"형, 잘 만한 데 같이 찾아보죠."
형들을 만나기 전, 들렀던 교회 한 곳.
예배 중이라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던 터라, 다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평상시에 아이들 수 십명이 생활하기 때문에 잘 곳이 마땅치 않단다.
난감해 하는 와중에 교회 앞에서 만난 어머님 한 분.
"그럼, 우리집 가지, 뭐."
밤 9:30
김순복 어머님 댁에 오다.
통닭 가게를 하시는 터라, 금새 차려주시는 통닭 한 마리.
고사리 마을의 김두수 아저씨 - 고향은 경상도이시다.- 께 전화 드렸더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니가 운 좋은 안갑다." (네가 운 좋은 아이인가 보다.)
* 후원 : 김순복 어머님 - 통닭 한 마리 & 잠자리
<< 셋째날 7. 24. 일 >> 4시간/12Km/추암~묵호
아침 7:30
어머님께서 차려주시는 든든한 아침밥, 감사.
유현이형이 주는 종합비타민 한 알, 감사.
좋은 분들 만나, 감사.
다시 한 번, 감사. 감사.
* 후원 : 김순복 어머님 - 아침밥 / 김유현 - 비타민 한 알
"건강하세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침 8:35
형들과 헤어지다.
"쉬엄 쉬엄 가세요. 가는 길 맞으며 돌구지에 들렀다 가세요."
자유여행 셋째날.
마무리를 어디로 맺을까 생각해본다.
바다로 가자.
동해역을 지나니 해안도로다.
멀리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왼편에 바람, 들풀과 하이파이브 하며 걷는 길.
숨쉬고,
보고,
걷기.
낮 2:00
묵호역.
"체 게바라처럼, 혹은 나답게."
/사/기/충/천/광/활/4/기/
경북대 00학번
김원한
첫댓글 걷느라 수고했다.. 숨쉬고 걷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 참으로 유익한 것들을 다 누렸구나.. 다시 입대하는 것 같은헤어스타일로 바꾼^^ 우리 원한이를 축복합니다..
바람를 벗삼아..들풀을 벗삼아..자연과 하나된 오빠의 모습이..자유로워 보여요..
원한이가 잘 다녀왔구나. 고맙다.
덕분에 건강하게 잘 갔다왔습니다. 즐기며 누리며 감동하며.
멋있게 여행을 갔다왔네.. 좋은 사람 만나고.. 계속 그렇게 만나자 좋은 사람들.. -현옥-
니 어째 상진이형 닮아가는 것 같다? / 좋았겠다. 내 도보여행도 기대하거라~
그래? 음, 상진이형이라. / 그래. 도보여행, 좋지. 많이 보고 숨쉬고 걷고 오게나.
와. 사람과 사람사이, 풍성히 누렸던 여행이었군요. 자전거순례팀이 부러워지는..^^ 섬진강트레킹이 생각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