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부왕 선조로부터 냉대와 질시를 받았다라고 알려져왔는데 문제는 비록 부왕으로부터는 그런 대접을 받았더라도 일반 신료들로부터 안정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결코 그는 불안심리를 가질 필요가 없었슬 것입니다.
헌데 문제는 적어도 영창대군이 탄생한 후부터 정치권에서 광해군에게 등을 돌라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세력이 확산되었슬 가능성에 대해서 연구해볼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표면적인 기록으로는 유영경등 소북세력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고 했던 행동이 나타나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단지 유영경등 소북세력만이 광해군에게 등을 돌린세력의 전부일까요?
일부만 그렇고 절대다수 신하들에게 지지를 얻었다면 왜 대북세력에 심리적 의존을 하고 잦은 옥사를 일으키는 행동을 했서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단 광해군 세자시절 임진왜란직후와 선조말년 영창대군탄생이후의 동향을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임진왜란때 공적으로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라고 생각할수 있겠스나 정치권력에 민감한 신하들 입장에서는 부왕으로 부터 지지못받는 광해군에 대해서 마냥 지지를 할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선조의 입장변화에 따라 얼마던지 태도를 바꿀수도 있는 신하들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영창대군의 외조부인 김제남이 서인이라는 특성상 영창대군의 탄생은 서인쪽에 적잖은 정치적 입장변화를 동반했슬 가능성을 무시할수가 없다라고 봅니다.
유영경동 소북일부세력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광해군이 세자시절 후반기에 그렇게 자신의 입지문제에 대해서 불안증세를 느끼게 된것이 부왕의 핍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런 부왕의 행동에 부화뇌동하여 자신을 위협하는 당파세력들이 적잖이 확산되었슬 가능성이 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광해군의 잦은 옥사에 대해서 결과만을 바라보았지 보다 근본적으로 세자시절부터 내세되었던 심리적 불안감과 관련하여 세자시절(선조말기)의 광해군을 둘러싼 정치적 동향변화에 대한 연구가 너무 없었습니다.
대북세력에 의지를 했다라는 것을 본다면 광해군 세자시절 선조말기부터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싼 대북세력과 서인세력간의 음모갈등이 적잖게 싹이 터 왔슴이 크다라고 봅니다.
그리고 모든 신하들이 같은 생각으로 광해군을 철저히 지지했다면 선조의 핍박행위에 대해서도 신하들이 철저하게 테클을 걸었서야 하는데 대북세력말고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광해군의 세자시절 광해군을 둘러싼 지지관련 정치적 동향에 대해서 추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봅니다. 그리해야 광해군의 즉위후에 나타난 각종 옥사 및 정치적 문제의 근원을 이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선조 말기 광해군의 취약점은 단순히 부왕 선조의 미움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출신 혈통상 적자도 아닌 서자이고 그것도 서자중에서 최고 높은 장자도 아니었던 터라 서장자인 친형 임해군이 생존하는 상황에서 서얼차별주의적 유교 국가에서 광해군 같은 서차자 출신에게 따지는 자격논란이 간단한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여기에 부왕의 신임이 없다면 그 지위를 위태로울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게다가 조선 세자는 대중국 사대 국가의 특성상 종주국인 명의 책봉고명 같은 국제적 승인이 있어야 임금이라고 함부로 바꿀수가 없는 법인데 광해군은 즉위할때까지 명의 책봉 고명을 못받은 상태라 종주국의 책봉 고명이 없는 세자지위는 사상누각일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명이 광해군 세자 책봉을 거부하는 명분이 장자인 임해군의 존재를 들먹이고 있는 만큼 서장자인 임해군과 적장자인 영창대군 같은 잠재적인 경쟁자들로 인해 광해군의 왕위계승은 불안할수밖에 없지요 여기에 선조는 명의 고명 불승인을 들먹이며 광해군 세자 폐위를 흘리고 다니고 있으니 당시 세자인 광해군은 바늘방석과 같은 불안한 신세에 놓일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명분을 중심하는 사림체제의 형성으로 인한 붕당정치가 지배하는 조선의 정치에서 제아무리 국왕 선조라도 명분에 어긋나는 세자 책봉과 폐위를 맘대로 할수있는 환경이 아니었지요 법적으로 그럴 권한은 있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과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그러나 군주 국가에서 통치권자로서 폐위 권한을 가진 군주가 그런 의사를 가진 것만으로도 세자에게 상당한 긴장을 유발하고도 남지요
게다가 왜란 이후로 대소북을 비롯한 북인 세력이 정권을 독식하고 서인과 남인들은 북인내에서 자신들에게 대북보다 유화적인 소북세력과의 연대로 다시 세력강화를 꾀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기에 선조가 영창대군 후견을 부탁한 칠신중에서 소북 서인 남인 인사들이 혼합적으로 구성된 것만 봐도 알수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