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던 날
교실로 나간 영상으로 겨울방학식이 있는 날이다. 방학 들어도 1·2학년 희망자들은 보충수업이 있기에 보름 정도 학교 나와야 한다. 나는 방학 내내 자가 연수를 내어 놓았다. 해가 바뀐 2월초 개학해서 졸업식과 종업식을 남겨 두었다. 아이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고 교직원들은 친목회 주관으로 바깥나들이를 나섰다. 전세버스 두 대로 순천만으로 가서 점심을 들고 돌아올 예정이다.
전체 교직원들이 70명 가까이 된다. 급식소 조리사들과 교과 강사들은 친목회 회원에 속하지 않은 분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은 인원이란다. 각 학년실과 특별실로 흩어져 근무하기에 아직 얼굴과 이름을 바르게 연결 짓지 못하는 동료들도 더러 있다. 내가 5년 만기 근무하면서 친목회에서 전세버스로 나들이를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내년 봄 어딘지 모를 학교로 옮겨간다.
학교 근처 갓길에 주차된 전세버스에 탔다. 한 대는 교무실과 행정실 직원들이 타고 또 다른 한 대는 각 학년실 동료들이 탔다. 시내를 빠져나가 남해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문산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곧바로 섬진강을 건너 순천으로 들어갔다. 순천만이 가까운 식당에서 꼬막정식을 들었다. 근무 중 두 시간을 달려와 학교 바깥에서 전 직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순천만 갈대숲으로 갔다. 갈색으로 시든 갈대숲은 바람이 일렁이며 서걱거렸다. 아직 추위가 맹위를 떨치지 않아 북녘에서 날아온 겨울철새 개체 수는 예년보다 적었다. 갈대를 보기 위해 전국 각처에서 찾아온 탐방객들은 많았다. 여기저기 풍광 좋은 지점에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일행들은 탐방로를 따라 산모롱이를 돌아 용산 전망대까지 올랐다.
전망대에서 순천만 갈대숲과 갯벌을 바라보니 인상적인 풍광이었다. 그곳 지방자치단체서 순천만을 ‘하늘이 내린 정원’이라 내걸었는데 걸맞은 구호였다. 전망대에서 아까 올랐단 산모롱이를 되돌아 갈대숲을 지났다. 무릇 모든 게 나이 들면 추하고 싫은데 골동품과 친구만이 오래될수록 좋단다. 나는 거기다가 은빛과 갈색으로 빛나는 갈대도 오래될수록 좋은 것에 포함시키고 싶었다.
갈대숲을 빠져나와 생태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전시관에는 아주 커다한 흑두루미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주차장으로 가니 아까 타고 왔던 전세버스엔 내가 제일 먼저 올랐다. 창원으로 돌아갈 예정 시각보다 제법 일렀다. 버스 안에서 한동안 기다리니 버스는 출발해 창원으로 복귀하니 어둠이 깔린 저녁 무렵이었다. 친목회 주관 행사는 2부 저녁식사 자리가 일식집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전체 교직원들이 점심과 저녁을 한 자리서 먹기는 처음이었다. 단체 손님을 받은 일식집을 찾은 다른 손님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동료들과 같이 여러 개 테이블에 나누어 자리를 차지해 않았다. 일식집 특유의 코스 요리가 순차적으로 나왔다. 나는 비롯해 술을 드는 동료들은 여러 번째 잔을 채우고 비웠다. 관리자도 교사들 자리로 찾아가 잔을 권하고 받으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친목회 총무는 행사를 주관하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어 고마웠다. 아까 전세버스 승차 때 과일과 생수를 봉지별로 준비했더랬다. 순천 현지 꼬막식당과 창원 일식집도 사전에 예약해 두어 식사자리가 불편이 없었다. 일식집은 모둠회에 이어 튀김이 나오고 매운탕과 초밥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어 3부 행사가 남아 있다고 공지를 했다. 일식집 지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생활 철칙에 웬만하면 3부 행사는 줄행랑을 놓았는데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다. 올봄 부임해 온 교장이 고향이 같고 중학교 3년 선배였다. 내가 중학교 입학하던 해 졸업해 나간 분이었다. 언젠가 교장실에 들려 인사를 나누었더니 서로의 고향마을을 훤히 잘 알았다. 노래방으로 동행한 동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모처럼 속세가 어떤지를 체험하면서 테이블 위 술잔을 비웠다.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