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분수대 /
동네에 분수대가 생기자
소원을 빌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 한 사내가 생수통 하나를 하나 가득
채운 동전을 가지고 분수대를 찾아왔다
그는 분수대에 동전을 묵묵히 던져넣었다
소원이 아니라 하루를 던져넣기 위해 온
그가 가져온 동전들은 처음 보는 외국 동전들이었다
버스 회사 오 년, 누군가
무임승차 때 넣은 외국 동전들을 모으며 버티던 날들
돌아갈 곳이 없는 자들의 기념물인
동전들은 퐁퐁 소리를 내며 분수대에 안긴다
바닥의 동전들은 환전해주지 않아 버려진 동전들과
서로 몸을 포갠다. 분수대에서
하얗게 떨어지는 물방울은 물소리로
동전들을 닦아준다
연인들 몇몇이 소원을 빌고 가고
나무들은 잎사귀를 던져넣으며 내년 봄을 기원했다
분수대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누구도 고장난 자판기 대하듯 발로 차지는 않았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이 차비를 빌려갔다
굶주린 사람은 한끼 식사를 위해 동전을 건져갔다
분수대는 말없이 그들의 손을 씻어주었다
젖어도 찢어지지 않는 동전처럼
단단한 소원들을 혼자서만 기록하고 있었다
늦은 밤, 청소부들은 거름으로 팔 낙엽을 쓸어 담고
노인들은 자루에 신문을 주워 돌아갔다
분수는 멈추고 공원엔 작은 가로등 한 개 빛났다
남겨진 동전들은 빛을 받는 행성처럼 빛을 냈고
희미한 물빛이 밤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때까지 돌아가지 못한
사내의 눈가를 몰래 닦아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