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함을 이루기 위하여 배우신 구주 예수
히브리서 5:7~10
요절:“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브리서 5:8,9)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를 두고서 ‘고난의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대표가 되어 모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고 또한 모든 인간을 타락한 밑바닥으로부터 완전히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온전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 태어나셔서 죄가 전혀 없으시기에 죄 때문에 고난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 아래 있기에 고난당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고난을 겪으셨으니 곧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먹을 것과 입을 것조차 초라하고 모자라셨습니다. 또한 자라나면서 보호자 요셉과 모친 마리아와 육신의 많은 동생들을 돌보시기 위하여 소년 시절부터 보호자 요셉을 도와 목수의 일에 나섰습니다. 그의 손에 공이가 박히고 이마에 구슬땀이 흘렀고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이런 저런 정신적 스트레스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보호자 요셉이 세상을 떠남으로 전적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모친 마리아를 지키는 청년 가장의 짐도 져야 했습니다. 공적 사역에 나선 후에 동생들에게 집안 일과 모친 마리아를 섬기는 일을 맡겼지만 동생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들려오는 소문만 듣고 형이 미쳤다는 말을 믿고 형에 대하여 불평하였고 부끄러워하며 예수님을 나사렛 동네 집으로 억지로라도 데려오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공적이면서도 위험했으니 그의 선구자로 와서 사역하던 세례 요한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칼로 목이 베어져 죽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제자들은 깨달음이 둔하고 그 중에는 악한 마음을 품고 늘 눈빛이 사나운 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순수했던 제자들도 헛된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세상의 헛된 야망을 쫓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기적을 볼수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을수록 더욱 악해졌으니 예수님을 잡아 죽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자 중에 한 사람 가룟 유다는 고작 은 삼십 량을 받아 챙기고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죽기까지 함께하겠다던 다른 제자들도 자기 목숨을 살리려고 다 달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날 밤 체포될 것을 미리 아시고 통곡과 눈물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온전하게 준비된 예수님은 마침내 체포되어 온갖 채찍질과 조롱과 멸시와 부당한 판결을 당하였으나 항의치 않으시고 죽음의 그 쓴 잔을 남김없이 고스란히 다 마셨습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택한 자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의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죄없이 태어나시고 아무런 고난도 받지 않으시고 모든 것이 승승장구하고 평안하고 안락하게 지내셨다면 그가 과연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을까요? 히브리서 기록자는 그렇지 않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여졌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의 온전한 구원자가 되기 위하여 고난이 필수적으로 주어져야 했으며, 주님께서 그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하나씩 더 배워감으로써 온전해지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의 주가 되셨고 지극히 높아지셨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가 없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통하여 온전해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한다면, 죄가 많고 타락한 본성의 힘이 강하고 영적으로 살기보다는 육신적으로 살기를 본성적으로 갈망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기 위하여 온전해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순종을 배워갈 필요가 많겠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믿음의 은총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기만 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놀라운 진리의 사실을 믿게 해주심으로써 우리는 값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도 우리의 이 구원의 믿음을 빼앗지 못하도록 성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붙들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붙들려서 주님의 일꾼으로서 맡겨진 복음 증거의 사역과 사명 완수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온전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이 걸어가신 길 곧 고난을 통과하면서 더 온전해지는 과정을 우리도 동일하게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서 초기 기독교 교부 중의 한 사람인 리용 감독 이레니우스는 ‘총괄갱신’이라는 용어로써 표현한 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단지 인간 구원만이 아니라 인간을 온전케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표현하기를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까닭은 인간으로 하나님 되게 하려 함이다.”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지만 그의 온전하심을 닮아가게 하심이 우리 구주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이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을 단지 구원하여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에서 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성숙하여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을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 구주의 사역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4:15 말씀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많은 고난과 시험을 통하여 온전케 하시려 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고난을 통하여 온전해짐으로써 귀하게 사용되어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었던 분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요셉이 그러하고 모세가 그러하고 다윗이 그러합니다. 신약 시대의 바울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고난당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지만 참으로 모진 고난을 참으로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그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짐으로써 하나님께서 마음껏 그들을 통하여 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땅에서 고난과 역경을 많이 받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과저의 죄 때문에 주어진 하나님의 징계로만 생각하거나 조상으로 내려온 저주의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고 주신 것이라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믿음와 기도로써 잘 견디어내기 바랍니다. 그 고난의 과정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그가 허락하신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더 잘 배워가는 자가 됩시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더 온전해진 우리를 통하여 막중한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시고 그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