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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제36편※
실패한 동탁의 응징
뜻하지 않았던 조조의 장담에 자리해 있는 대신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면 그대가 이제부터 동탁을 제거할 계획을 결행할 자신이 있단 말이오?"
"그만한 자신이 없다면 어찌 경망되
이 여러 대신들 앞에서 장담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러면 그 결심을 단행해 주기 바라오!"
왕윤이 머리를 수그리며 간청하자, 조조는 정색을 하며 허리를 굽히면서 말한다.
"그 일을 단행하는 데는 대감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듣자옵건데 대감 댁에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칠성보도(七星寶刀)가 있다 하던데,
그것을 저에게 주시면 소관이 그 칼로 동탁을 베어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동탁을 베는데 굳이 칠성보도가 필요한 이유라도 있소?"
"듣자하니, 칠성보도는 바위는 물론이고, 무쇠 솥도 깨뜨릴 정도로 날카롭고 튼튼한 보검이라고 들었습니다.
동탁은 평소에도 겉 옷 속에 갑옷을 입고 다니는 자입니다.
그런 자를 베려면 칠성보도와 같은 명검(名劒)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 공이 그만한 뜻을 이루어 준다면 내가 무엇을 아끼겠소. 내 보검을 기꺼이 내드리리다."
왕윤은 몸소 내실로 들어가 집안 전래의 명도(名刀)인 칠성보도를 가지고 나와 조조에게 친히 쥐어 주면서 신신당부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게 하시오!"
"소관도 생사를 걸고 하는 일이오니, 소관을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는 조공만 믿겠소. 자, 그러면 성공을 비는 축배를 받으시오!"
조조는 왕윤이 손수 따라 주는 축배를 마시고 칠성보도를 허리띠에 찔러 넣었다.
칠성보도는 단도(短刀)보다는 길고, 장도(長刀)보다는 짧은, 중도(中刀)의 크기로 가슴에 품고 숨기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조조는 술잔을 내려 놓고 좌중을 향해 경건히 하직을 고하고 물러나왔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35세 였으며,
젊은 무장 조조는 치세지 능신 난세지 간웅(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이었다.
아울러 이때의 군웅할거 시대는 나관중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면서 삼국연의 또는 삼국지 통속연의 등의 이름으로 불렸을 뿐,
사실상의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은 조조라고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조조는 평소보다 훨씬 늦게 칠성보도를 품안에 숨기고 승상부(丞相府)로 출근했다.
평소부터 동탁이 있는 승상부 출입문 앞에는 무장한 호위병들이 출입자의 몸수색을 통하여 일체의 무기를 승상부로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러기에 조조는 무장을 하지 않은 채로 항상 출근해 왔었다.
이날도 조조는 품속에는 칠성보도를 숨겼지만, 겉으로는 무장을 하지 않은 채 노쇠한 나귀를 끌고 늦은 출근을 하였다.
호위병이 조조를 보고 물었다.
"오늘은 출근이 늦으셨사옵니다."
"그렇게 되었네."
그러면서 조조는 나귀를 승상부 앞에 묶어 놓은 뒤에 양 팔을 벌리며 호위병에게 말했다.
"승상부로 들어 가려니 몸수색을 하게나."
그러자 호위병이 말한다.
"그냥 들어 가십십오. 하루이틀 오시는 것도 아닌데."
"고맙네."
승상부로 들어간 조조는 승상부 관리에게 물었다.
"승상(동탁)은 어디 계시냐?"
"지금 소각(小閣)에서 휴식을 하고 계시옵니다."
조조는 대답을 듣자, 바로 소각으로 들어갔다.
동탁은 와탑(臥榻)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여포가 곁에 시립(侍立)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출근이 늦었나?"
동탁은 조조를 보기가 무섭게 나무라는 말을 하였다.
사실 보통때에는 일찍 출근하던 조조가 이날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나왔던 것이다.
"죄송하옵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말이 워낙 노쇠해서 걸음을 제대로 못 걷기에 이처럼 늦었습니다."
"응? 자네의 말이 그렇게도 노쇄했는가?"
"네, 생활이 군색해서 말을 바꿀 형편이 못 되옵니다."
"그래?"
동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곁에 있는 여포에게 말한다.
"여포! 마굿간에 가서 좋은 말을 한 필 골라다가 맹덕에게 주도록 하여라."
"넷, 아부(亞父)! 곧 말을 골라 오겠습니다."
여포가 명령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자, 조조는 속으로,
(인제 됬다! 지금 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로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동탁은 워낙 기력이 탁월한 용장 출신이므로 조조는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기회를 옅보며, 주저하고 있으려니까,
일이 제대로 되는라고 동탁은 비대한 몸을 와탑 위에 눕히더니 벽을 향하여 돌아눕는 것이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조조가 동탁의 뒤에서 품속에 있는 칠성보도를 슬쩍 뽑으려니까,
그 모습이 동탁이 돌아누워 있는 벽에 걸린 거울에 비쳤다.
동탁은 조조가 품속에서 칼을 뽑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자 황급히 일어나 앉는다.
"맹덕은 왜 칼을 뽑는가?"
조조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으나 이내 침착한 모습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며칠 전에 명도(名刀) 한 자루를 입수(入手)하였사옵기에, 승상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진상하려고 가져왔습니다.
한번 보아 주시옵소서."
"아, 그래? ... 어디 한번 보여 주게."
동탁이 조조에게서 받은 칼을 보고 있는 동안에 여포가 돌아왔다.
동탁은 칼이 마음에 드는지 감탄의 고개를 끄덕이다가,
"여포! 이 명도를 구경해 봐라!"하고 자랑삼아 내밀어 보였다.
조조는 동탁의 그 같은 기색을 보자 얼른 품속에서 칼집을 꺼내어 여포에게 주면서,
"칼집은 여기 있소이다. 여 장군이 보다시피 과연 명도가 틀림없지 않소이까?"하고 말하였다.
여포는 명도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탁에게 정중히 건네주며 말한다.
"과연 좋은 검입니다."
동탁은 보도를 선사받은 것이 고마워서 조조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명마를 한 필 줄 테니 밖으로 같이 나가지!"
세 사람이 마당으로 나오니, 마당에는 여포가 끌어 온 준마가 한 필 매어 있었다.
"이봐, 맹덕! 이 말을 자네에게 주지!"
동탁이 기분 좋은 소리로 말하자, 조조도 흔쾌히 웃으며 말 목을 두드리며 말한다.
"이런 좋은 말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첫눈에 보아도 과히 명마가 틀림없어 보입니다.
죄송스런 말씀이오나 승상 앞에서 한번 시승(試乘)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게! 어서 타 보게."
동탁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조조는 몸을 날려 마상에 오르더니 채찍을 휘갈기며 문밖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두 사람은 조조가 곧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선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문밖으로 달려나간 조조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올 줄을 몰랐다.
"이 사람이 웬일일까?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니?"
동탁이 의아스럽게 중얼거리는 말에, 여포가 의문의 말을 한다.
"아부님! 암만해도 조조의 거동이 수상했습니다.
조조가 아부를 해치려고 왔다가 일이 뜻대로 안 되니까 짐짓 보도를 선물로 드리고 도망을 간 것이 아닐까요?"
"네 말을 듣고 보니, 딴은 수상쩍은 것이 없지도 않았어! 그렇다면 그놈을 살려둘 수는 없으니, 이유를 급히 불러라! 어서 이유를 부르란 말이다!"
동탁이 노기충천하여 소리를 지르자, 이유가 즉시 달려왔다.
이유는 자세한 사정을 듣고 나더니 무릎을 치며 탄식한다.
"그야말로 큰 실수였습니다. 조조가 진작부터 처자를 멀리 보내 두고, 사처에 혼자 살고 있엇던 것을 보면, 그놈이 아버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좌우간에 그놈의 진실을 알아 보기 위해 사처로 사람을 보내 보겠습니다.
물론 지금쯤은 종적을 감췄으리라고 보옵니다만..."
"어쨌든 그놈을 당장 잡아오너라!"
이유의 말대로 십여 명의 병사들을 보내 보니, 과연 조조는 사처에 있지 않았다.
"집에서는 언제 나갔다고 하더냐?"
"얼마 전에 준마를 타고 동문(東門)으로 나갔다고 하옵니다.
수문장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며 통과패(通過牌)를 보여 달라고 하니, 승상의 급한 명령을 받고 나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지체되면 네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합니다."
동탁은 그 소리를 듣고 더욱 분노하였다.
"내가 저를 그토록 아껴 주었건만, 그놈이 나를 배반하다니, 이런 나쁜놈이 있단 말이냐!
이유! 너는 그놈의 화상을 그려서 전국에 배부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놈을 잡아들여라!"
"넷! 곧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삼국지(三國志)제37편※
간웅(姦雄) 조조
한편, 동문을 나선 조조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고향인 진류를 향하여 거침없이 달렸다.
그러나 중모현(中牟縣)에 이르러선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기어코 수문장을 비롯한 병사에게 사로잡히
고 말았다.
"말에서 내려라!"
관문을 지키는 수비병의 창 끝에 에워싸인 조조는 이미 낙양에서 내려진 수배령에 의하여 덮어놓고 말에서 끌어 내려졌다.
"조금 전에 낙양에서 조조란 자를 보기만 하면 체포하라는 엄명이 내렸는데 당신은 암만해도 풍채와 용모가 낙양에서 내려온 인상서와 비슷하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보일 조조가 아니었다.
"나를 조조라고요? 하하하... 사람을 잘못 보아도 한참 잘못 보셨소.
나는 한낱 객상(客商)에 불과한 황보(皇甫)라는 사람이오."
"어쨌든 우리들이 당신을 마음대로 놓아 줄 수는 없으니 경비대장님께로 가자!"
조조는 꼼짝없이 본부로 끌려갔다.
수비대장 도위 진궁(都尉 陳宮)은 조조를 보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앗! 이 사람은 조조가 틀림없다.
나는 전일 낙양에서 근무한 일이 있어서 조조를 여러번 본 일이 있었다.
그대가 황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수비대장 진궁은 조조를 체포하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면서 그를 곧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크게 기뻐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수배령에는 조조를 체포한 사람에게는 상금 천 냥을 하사함과 동시에 만호후
(萬戶侯)의 벼슬을 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그는 조조를 체포한 부하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려주며 마음대로 먹으라며 특별 지시를 내렸다.
아무러한 조조도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옥문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앞으로 전개될 자신을 향한 조치에 불안감과 함께 신상 변화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렇게 밤이 깊어가던 어느 때,
"조조! 조조!" 하고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옥문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자기를 부르는 사람은 수비대장 진궁이었다.
"무슨 일인가?"
"당신은 낙양에서 동 승상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는데 무슨 이유로 그를 배반하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진궁이 물었다.
조조는 태연히 이렇게 대꾸했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 수 있으리오?
그대는 나를 이미 사로
잡았으니 여러 말 말고 빨리 나를 낙양으로 압송하여 상이나 받도록 하게!"
"음 .... 당신은 사람을 보는 눈이 이렇게나 어두운가?"
진궁의 대꾸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뭐라구?"
"당신이 사람을 너무 깔보기 때문에 한마디 해 본 것이오.
나 역시 평소에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점에 있어서는
당신 못지 않다고 생각하오."
조조는 그 소리를 듣자, 자세를 바로잡으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듣고 보니 고마운 말씀이오.
귀공이 그런 뜻을 품고 있다면, 나도 나의 진심을 말하리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나라의 녹(祿)을 받고 살아온 가문이오.
따라서 내 주인은 항상 한나라 황실이었소.
그러나 동탁이란 자는 황제를 제멋대로 폐하고 백성을 상대로 포악함을 일삼고 있으니 내 어찌 이런자를 죽이려 하지 않았겠소?
천운(天運)이 따르지 않아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이렇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실패도 각오했던 몸이니 더 이상 미련은 없다오."
진궁은 그 말에 감격되는 바가 있는지, 즉시 옥문을 열고 조조를 불러내었다.
"조 공은 어서 나오시오. 귀공은 어디로 가던 길이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영웅들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동탁이란 자를 당당하게 쳐부술 생각이었소."
진궁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감격해 하며,
"조 공의 말을 듣고 보니 기쁘기 한량없구려! 나도 뜻하는 바가 있으니 우리 함께 큰 일을 도모해 보는 것은 어떻겠소?"
"귀공도 동탁을?"
"내가 무슨 사사로운 원한이 있어서 동탁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오.
국가의 대의(大意)를 위해 나 역시 동탁을 쳐부술 생각을 품고 있었소."
"엣? 귀공도?...."
"나도 이 자리를 버리고 조 공과 함께 천하의 의병들을 불러 모으는데 아낌없이 협력을 할 터이니 우리 빨리 위험지대에서 벗어납시다."
진궁은 조조의 손을 잡아 이끌며 앞길을 재촉하였다.
"아아, 하늘이 무심치 않아 내가 사지에서 귀인을 만났구려!"
조조는 크게 감격하며 진궁이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궁은 마굿간으로 가서 튼튼한 말 두 필을 꺼내며 말한다.
"조공은 이 말을 타고 성문 밖 동쪽
십 여리에 있는 만월정(滿月亭)이란 정자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나는 이 길로 사저에 가서 가족들에게 급히 피신하라고 말하고 뒤따라 가겠소."
"그럼 뒤따라 오시오."
조조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야간 도주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사흘 후....
만월정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함께 말을 달려 석양이 짙어가는 저녁무렵에 도착한 곳은 성고(成皐)라는 곳이었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보냈구려."
진궁이 말고삐를 늦추며 중얼거리는 말에 조조는 채찍을 들어 맞은 편에 보이는 울창한 숲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붙잡힐 염려는 없으니 오늘밤은 저 숲속에 있는 집에서 편히 쉬어가도록 합시다."
"저 숲속에는 누가 있소?"
"여백사(呂伯奢)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내 선친과 형제의 의를 맺은 분이오."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겠구려. 갑시다그려!"
두 사람은 여백사의 집을 찾았다.
주인은 불시에 나타난 두 사람을 보고 반가워 하면서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자네는 무슨 죄를 저지르고 도망을 다니는가?"
"네? 제가 도망을 다니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조정에서 전국 각지에 자네 인상서를 보냈다고 들었다네."
"아, 그 애기 말씀입니까? 제가 역적 동탁을 죽이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체포령이 내린 것입니다."
조조는 이곳까지 도망오게 된 연유를 여백사에게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여백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신가?"
"아참, 소개가 늦어 죄송합니다. 이 분은 진궁이란 분으로 심중에 큰
뜻을 품고 저를 사지에서 구출해
주신 분입니다."
여백사는 조조의 말을 듣고 나자 진궁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한다.
"처음 뵙습니다만 이제 앞으로도 조조를 많이 도와 주십시오.
귀공이 아니었다면 조씨 일문이 멸족을 당할 뻔 하였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돌연한 폐를 끼치게 되어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면 고단하실 테니 쉬고 계십시오. 우리 집에 마침 술이 떨어져서 내가 서촌(西村)에 가서
술 한동이를 받아 오겠습니다."
여백사는 말을 마치자, 나귀를 타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조조와 진궁은 여장을 풀고 마주 앉아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가지러 간 주인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는데, 날이 어둡자 후원에서 <써억 썩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릴까?....)
조조는 의아해서 눈을 크게 뜨며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음... 틀림없이 칼 가는 소린데! 그러면 주인은 술을 사러 간다는 핑게를 대고 우리들을 관가에 밀고해서 상을 타려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그렇게 생각하고 모든 신경을 귀에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후원쪽에서 누군가가,"묶어 가지고 죽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여보시오, 진 공! 큰일 났소. 저놈들이 우리를 죽이려는가 보오.
사태가 이리 되었으니, 우리가 저놈들을 먼저 죽이고 도망갑시다."
조조는 진궁에게 이렇게 말한 뒤에 칼을 빼 들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후원에서는 네 명의 장정들이 예상한 대로 칼을 갈고 있었다.
조조는 그들을 발견하자 불문곡직 벼락같이 달려들어 모조리 목을 잘라 죽였다.
그러고도 혹시나 숨은 사람이 없는가 하고 부엌을 들여다 보니 부엌 바닥에는 곧 잡을 양으로 잔뜩 결박을 지어 놓은 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뿔사!" ....
진궁은 그 모양을 보고 깜짝 놀라며 조조를 돌아다보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생사람을 죽였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