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무슨 집을 지을꼬 - 신령과 진정은 결여된 채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만 몰두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 즉,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에 편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로서, 여기서는 성전 건축과 연관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히찌히는, 포로 귀환 후에도 계속 바벨론에 남아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움브라이트는, 성전이나 희생 제사 예식이 도무지 필요없는 새 예루살렘에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에 착수해야 할 유대 공동체에게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를 미리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으로 이해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신약 시대와 새 예루살렘에서의 신령한 예배를 겨낭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마음이 가난하고(아니) -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주를 기다리며 사는 자를 가리킨다. 동일한 용어가 산상 수훈의 한 대목에 나타난다.. 바로 이 같은 자의 심령의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에 성전이란 없다. 그때에는 주 하나님 그분이 성전 자체이시다.
[사 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유대인에게 있어 '개'란 추잡함이나 경멸스러움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그 목을 꺾어 죽여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은 지극히 혐오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돼지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 역시 이방 제사에서나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본절은 율법이 허용하고 있는
소 및 어린 양의 제사를 이방의 제사인 양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절을 고려하면 이 난제는 쉽게 풀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의 바른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에 입각해 드리는 제사인데, 그 제사란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바로 이 같은 내면적 자세를 무시한 채 그냥 동물만 잡아 드리는 제사는 이방의 제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사 66: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유혹 - '악한 행동을 하다', '악하게 대하다'는 뜻인 '알랄'에서 온 용어로서 '안달', '토라짐', '뻔뻔함' 등을 뜻하나 3절의 '자신들이 멋대로 택한 길' 개역 성경에는 '자기의 길'로 나와 있음과 대비를 이루는 용어로 볼 때 '망상', '잘못된 생각' 정도로 의역함이 가능하겠다. 많은 학자들이 본 용어를 망상, 잘못된 생각이 야기할 수 있는 '재앙'으로 번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