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의 맥박(脈搏)
양주동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 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문예공론』 창간호, 1929. 5)
[작품해설]
이 시는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민족 부활의 미래를 ‘튼튼한 젊은이’ · ‘어린 학생’ · ‘갓난 아이’ 등에서 발견하고 민족주의의 바탕위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조선의 맥박’에 굳은 희망을 불오 넣고자 하는 계몽성이 강한 교훈적 내용의 작품이다.
생경한 비유와 산문적 서술, 그리고 ‘-이로다’ 등의 전근대적 영탄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족주의를 이념적으로 추상화시키기 않고 ‘맥박’ · ‘숨결’ 등의 생명적 요소로 파악하여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한밤’ → ‘새벽’ →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상 전개와, 여기에 상응하여 ‘절망’ → ‘희망’ → ‘활기’로 펼쳐지는 시적 상황의 변화는 추상적인 내용을 보다 더 구체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작가소개]
양주동(梁柱東)
별칭 : 무애(無涯, 无涯)
1903년 경기도 개성 출생
1920년 중동중학교 고등속성과 입학
1921년 일본 와세다대학 예과 입학
1923년 유엽, 백기만, 이장희 등과 문학 동인지 『금성』 발간
1929년 『문예공론』 발간
1954년 학술원 회원, 연세대학교 교수 및 동국대학교 교수 역임
1977년 사망
시집 : 『조선의 맥박』(1930), 『무애시선문』(1960)
첫댓글 그래도 맥박은 뛴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