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존재하는 한 언제 어디서나 야곱과 에서는 존재합니다.
야곱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며 에서와 같이 말씀에는 천방지축 살면서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는다, “내가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가 ◯◯◯ 때문이다.”라고 불만과 불평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신앙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야곱은 주어진 인생을 성실하게(조용하다 < a[plasto" - 성실한 사람, 너그러운 사람, 꾸밈이 없는 사람>창25:27)살았고 에서는 사냥꾼이 되어 야생의 개(kunhgei'n a[groiko")처럼, 천방지축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문제를 만나면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며 살았으나(장자의 권리, 이삭의 축복, 하란땅으로 감, 20년간 외삼촌 집에서의 삶) 에서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포기하며 살았습니다.(장자권 포기, 이삭의 축복 시 상대 비방, 축복이 타인에게서 오리라 믿고 이스마엘 딸 취함)
오늘 야곱은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든지 모든 문제 속에서 자신을 지켜 주심을 벧엘의 사건에서 다시 한 번 확신을 얻은 후 어떤 문제를 만나던지 승자의 자세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백성들이 야곱처럼 모든 곳에서 승자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1. 야곱은 능동적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이 낯선 땅 하란에 다다랐을 때 우물곁에 모인 목동들과 담소를 나누눈 장면이 나오는데 야곱이 도착한 우물은 마을공동 우물이 아니라 방목하는 가축들울 위한 목축용 우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그 입구는 커다란 돌로 막아 놓았는데 물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입구 돌은 목자들 여러명이 옮겨야 움직였습니다. 또 물의 낭비를 막기 위하여 여러명이 있어야 입구 돌을 치우는 관습과 약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돌은 아주 커다란 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이 혼자 치웠으니까요. 아마 거기 있었던 목자(poimaivnw“포이마이노-” poimaino (동사) 먹이다, 사육하다, (양을) 치다, 목자로서 돌보다 (감독자로서), 관심을 증진시키다, 지시하다, 통치하다)들은 성실하게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들을 먹여야 합니다만 야곱이 만난 목동들은 성실하지 못하였던 것을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창29:7)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목동들은 우물에 모여 물먹이기로 약조한 것을 핑게로 미리부터 와서 농땡이를 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보자 우물을 덮은 돌을 혼자의 힘으로 옮기고 라반의 양떼에 물을 먹이게 합니다.
1).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후 삶이 변화됩니다.
성실하고 너그러운 삶을 살았으나 어찌 보면 적극적이지 못하였던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부터는 여기에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로 변화됩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야곱이 변화된 모습은 하란땅에 다다랐을 때에 목동들과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①. 성도들의 삶은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6~11)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②.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자가 됩니다.
야곱이 가나안에서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이 피동적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는 과정에서, 에서에게서 팟죽 한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는 것을 보면 야곱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그는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③. 성실한 사람에게 더 많은 축복이 주어집니다.
“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창 29:14-15)
야곱은 처음 한 달을 보냈을 때 라반의 생질이라는 핑계로, 또는 여행의 여독이 채 가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실하게 열심히, 조건 없이 최선을 다하여 라반이 품삯을 주겠다고 제안할 정도까지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을 했습니다. 라반의 눈에 그는 선한 목자감으로 보였습니다.
야곱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집에 와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 준 것입니다. 이것으로 야곱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부모의 품에 있을 때는 고되고 힘든 일은 하지도 않았는데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나니까 삶의 목표가 분명하게 생겼고, 성실하게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사랑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야곱은 하란 땅에서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인다는 목적을 가진 후 이를 위해 라헬을 위해 7년 동안 헌신하였으나 당시 하란의 풍속에 따라 레아를 아내로 맞아 드렸으며 다시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하였으나 야곱이 수일처럼 일하였다고 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당시 풍속을 생각 할 겨를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기다림도 쉽고 고통을 당하는 것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돈이 없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곱에게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삶의 의욕이 있었습니다. 라헬이라고 하는 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행복하게 보였고,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교회에서 맡은 일을 하든지, 가정에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할 때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지겹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행동이 눈빛이 삶이 달라집니다.
①. 야곱은 노동착취를 당하나 즐거워합니다.
말이 좋아서 "내 혈육"이지 파워 불균형은 거의 종-주인간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는 구조이니 모든 소유가 라반의 것이고, 야곱은 목숨하나 건지겠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이방 땅으로 온 객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친해왔고, 성격도 잘 맞는 친구여도 한집에 오래 머물면 싸우게 되어있는데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핏줄이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생면부지의 먼 친척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지속되는 노동착취-사기 "당함"의 연속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착취당하는 구조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라헬 한사람 때문에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이겨냅니다.
②. 사랑은 사람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성적으로 아주 비슷한 재질인 두 사람,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너무 비슷한 사기꾼 둘이 치열하게 부딪히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형사기 건만 해도 두세개가 되는데, 아마 평소에 자잘하게 부딪힌 일, 사소하게 감정 상했던 일은 아마 기록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 같습니다.
야곱이 그 세월을 거치면서 속으로 별 욕/불평을 다 했겠지만 너무 다행인 것은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 손에 있고, 결국 하나님의 큰 그림의 일부였다는 점입니다.
이고된 세월을 통해서 야곱의 성격이 많이 고쳐지고 “복 받을 만한” 성격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쌓고, 하나님과의 추억이 되는 시간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생고생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강한 철은 비슷한 강도의 강한 철을 통해서 깎이고 단련되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악한 라반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서 좋은 '악역'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고생이 아무리 무의미 해보이고, 상황이 도무지 앞이 안보이는 막막한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당신의 인생이 붙들려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2. 합환채
야생 합환채
합환채 열매
합환채 뿌리
합환채는 히브리어로 “두다임”(dudaim - 사랑의 식물이란 뜻)이며 헬라어로는 “맨드라고”(mandragora man(사람)과 dragon(용)의 합성어 - 뿌리가 사람의 하반신을 닮았기에 man사람이라 했고 약효에 마술적 위력이 있다고 믿었기에 드래곤(용)을 짝지어 붙였다고 합니다)라고 하며 영어 성경은 “남녀가 합금(合衾)하여 즐기는 일”과 “채소”라는 단어가 합해진 말로서 사랑의 사과(Love Apple)로 번역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야생초로서 가나안의 산삼(山蔘)이라고 할 정도로 약효가 좋고 또한 그만큼 귀한 식물이라 합니다.
합환은 기쁨을 같이한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남녀가 함께 자며 즐기는 것을 합환이라 했습니다. 성경에는 창세기(30:14~16)와 아가서(7:13) 두 곳에 나옵니다.
합환채는 . 팔레스티나 지역과 지중해 연안에 자생하며 3월부터 꽃을 피우고 5월에는 한포기에서 3~5정도의 탁구공 보다 작은 노랗게 익은 열매로서 고추씨 같은 씨앗이 65개 정도 들어 차있다고 하는데 고대 사회 때부터 정력제, 임신촉진제, 마약 성분이 있어 마취제나 최면제, 통증 완화제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독성이 있으므로 과다 섭취할 경우에는 뇌가 손상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맥추절로 표현된 5월 말 정도에는 건기 초기이기에 땅이 돌덩이와 같으므로 뿌리가 연약한 합환채를 캘 수 없다고 합니다.
합환채와 같이 마취성분이 있는 식물을 맨드레이크(mandrake)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합환채 뿌리를 술에 넣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사용하곤 했습니다. 사형수들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잊게 하려고 이 술을 주기도 했으며. 십자가 상 예수님께 드렸던 음료도 이 술이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편 아랍인들은 사탄의 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합환채를 먹고 흥분이 지나쳐 미치는 것을 악마의 소행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루우벤이 합환채 열매를 어머니 레아에게 따서 드린 나이는 정확하지 않으나 창29:30~35에서 아들 넷을 낳은 것과(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낳은 두 아들을 합하면 모두6명) 이들이 연년생이라 가정하면 루우벤의 나이는 4~5살 정도의 나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요셉이 하란에 들어간지 14년째 태어 낳다면 루우벤과 요셉의 나이차는 7년 정도에 불과 합니다.
이후 레아가 아들 둘을 더 낳았으매 루우벤 나이는 4~5세를 넘지 않았다 보여집니다.
루우벤은 밀을 수확하던 5월 말쯤 들에서 일을 하다가 합환채 열매를 보고, 그것을 따서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 드렸으며 이 광경을 목격한 동생 라헬은 언니에게 그것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레아는 “내 남편(야곱)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며 열매 한 알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같이 중동지방에서의 합환채(두다임, 맨드라고)는 사랑을 나누는 아주 귀한 식물이며 열매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으로 변한 야곱.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