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하귀2리 2696-1번지(도로)의 북동쪽, 하귀2리 2729-1번지의 남쪽
시대 ; 일제강점기(1917년)
유형 ; 어로유적(포구)
가문동 바닷가 벽에 설치된 가문동 설촌 유래에 따르면 가문동은 조선 영조21년(1745) 文以穆(字 可敦)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字의 可와 姓인 文을 따서 可文洞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 귀일촌의 鳳川 서쪽 해안을 끼고 형성되었으므로 4개의 코지(串=큰코지, 코생이코지, 안큰코지, 너북코지)가 있어 가무코지(可文串)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가문동의 포구인 가무코지개(갯돈지)는 1917년 축조되었다. 포구 옆에 세워진 ‘서기1917년 9월 가문동포구 설립시 훈장 고창주 훈장 문석호 공덕비’라는 비석이 이를 증명한다. 숙원이던 방파제 공사는 1985년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방파제의 길이는 29m였다.
한 칸 구조 형태이어서 포구의 소형 어선이 열 척 정도 정박 중인데, 이들은 연안바다에서의 낚시용 배이다. 큰배(갈치잡이 배) 열 척은 한림항이나 성산항에 주로 정박한다.(제주학아카이브 2013년) 지금은 2칸으로 되어 있다. 2020년에는 포구 남쪽이 매립되었다.
가무코지는 평균 수심이 2∼3m에 불과하지만 전천후 낚시터로 알려진 곳이라고 하며, 겨울철 악천후가 계속되면 감성돔·농어·벵에돔·숭어 등이 곧잘 올라온다고 한다.(좌승훈, 제주 땅 의미 찾기 포구) 포구 동쪽에는 아끈코지원, 서쪽에는 알원이 있다.
《작성 2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