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장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82문 (4월 2일)
잠언 2: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개역개정판)
제82문
문: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사람이 있습니까?
답: 타락한 이후 한낱 사람으로서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하나님의 계명들을 완전히 지킬 수 없고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위로 날마다 범합니다.
전도서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개역개정판)
태어나면서부터 죄인된 우리...
어떤 목사님은... 죄를 범하지 않고 사는 삶은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성경은, 또 교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십계명을 묵상하면서
매일 같이 그것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임을 절감했다.
아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십계명을 거의 매일 같이 어기면서 살았다.
무슨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고작 10개의 계명인데
그것 지키는 것도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하긴,
아담과 하와가 있던 에덴동산에 나를 가져도 놓아도
나는 결국 언젠가 무슨 핑계를 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선악과를 따먹어버렸을 것이다.
선악과 대신 김밥이나 피자 한 조각이 있었다면 더 일찍 먹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탓할 수 있을까?
천지창조 이후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류 중 아무도 하나님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뭐 질문하거나 따지는 것은 자유다.
아담과 하와의 실락원 이후 천사를 두셔서 못들어오게 지키셨다고 했는데, 좀 일찍 천사 아니면 경비 인력이라도 두셨어야 하는 거 아닌지,
아니면 동산 중앙 말고 저 귀퉁이 어디에 두셨어야지 동산 중앙에 왜 두셨는지..
율법말고 산업안전보건법 요약집이라도 게시해두셨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여전히 십계명을 어기는 행동을 반복하는 나 자신의 모습은
코미디에 가까운 비극이다.
82문은 그런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절망적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통렬하게 고발한다.
율법을 다 지키기는커녕
그 율법 전체를 포기하고, 그 대언자 모세마저 무시했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은 우리보다 더 불리한 여건에서 덜 불순종(?)했던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내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힘들고 어려운 삶의 절망들보다 더욱 절망적이다.
"어쩌란 겁니까?"
그 모든 죄악에 불구하고
여전히 큰 소리치는
의로운 모습은커녕
싸가지 조차 없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무슨 공의를 실현하시기 위해서
절망가운데서 절망하다 비참하게 죽은 후 지옥으로 직행하라고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다.
나의 한계와 나의 비참한 모습은
이론이나 교리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모습과
성도의 본질적 모습을 알게 해주는 십계명, 그리고 교리...
그리고 나의 본질적 죄악은
결국 절망과 좌절이라는 통로를 거쳐야만
은혜와 각성의 과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십계명, 곧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가정교사의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시겠다(잠 2:12)고 하신 우리 주님
로마서 3장 20절 말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실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얼마나 더 절망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입술의 고백대로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마침내는 여호와 경외하기를 꺠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하실 줄 믿는다 (잠 2:5)
아주 오랫동안 잠언을 묵상해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죄악을 범해왔다.
블랙코미디의 극치이긴 하지만
그 잠언 묵상이라도 없었다면 내 삶은 더욱 더 절망적인 흑암으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는 삶(잠3:7)을 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경험해왔다.
삶의 고난은
죄악을 피할 수 없는 우리이기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일테다.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악된 나 자신과
의로움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그 가운데 명시적으로 드러난 율법은
필연적인 삐걱거림의 과정을 낳는다.
그 부산물은 고난과 절망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7장의 파선한 배에 탑승한 승객 276명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게 된 것(행 27:44)처럼
우리의 마지막은 결코 절망적이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나도 안심할 수 있다.(행 27:25)
괜찮을 거다.
잘될 것이다.
긍정의 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율법을 통해 깨닫게 되는 좌절과 절망이 주는 유익이 있는지는 분명히 알겠으니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끝까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