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세례요한 됨을 통해 깨닫게 되는...
2024.2.17
(요1:19-28)
19 Now this was John's testimony when the Jews of Jerusalem sent priests and Levites to ask him who he was. 20 He did not fail to confess, but confessed freely, "I am not the Christ." 21 They asked him, "Then who are you? Are you Elijah?" He said, "I am not." "Are you the Prophet?" He answered, "No." 22 Finally they said, "Who are you? Give us an answer to take back to those who sent us. What do you say about yourself?" 23 John replied in the words of Isaiah the prophet, "I am the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for the Lord.'" 24 Now some Pharisees who had been sent 25 questioned him, "Why then do you baptize if you are not the Christ, nor Elijah, nor the Prophet?" 26 "I baptize with water," John replied, "but among you stands one you do not know. 27 He is the one who comes after me,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28 This all happened at Bethany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 where John was baptizing.
자기의 정체성(正體性)
존재의 이유(理由)
삶의 목적(目的)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니할 수 없다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살 때와 죽을 때를 알고
주저 없이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은 위대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나는 세례요한에게서
이 모든 것을 발견한다
그는
모든 것을 안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으로부터 가 아닌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삶이었다고
방금 내 뇌리를 방문하신 성령께서 깨우쳐 주심을 느꼈다
유대인들의 아마도 유력자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요한이 사역하고 있던 곳
베다니 곧 요단강가에 위치한 그곳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물었다
당신은 그리스도요? 엘리야요? 선지자요?
그 질문에 세례요한은 모두 “No!”라고 대답했다
실은 그가 그리스도는 아니었으나
마11:13에 의하면 그는 선지자였으며
마17:12;막9:13을 보면 그가 엘리야 였음
예수께서 입증해 주셨음인데...
그러면 세례요한이 자신이 누구인줄 몰랐다는 말?
결코 그럴 수 없음은
23절에 그가 밝힌 표현을 강조하기 위한 “No!” 였음을 알 수 있다 하겠다
in the words of Isaiah the prophet, "I am the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for the Lord.'"
그러니까 그의 목적은
당시 유태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선지자’라는 차원이 아닌
자신의 입지를 굳게 하는 데 있지 않은
오로지 메시야의 전령사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있다는 의도(意圖)가 있었던 것
"I baptize with water," John replied,
"but among you stands one you do not know.
He is the one who comes after me,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26-27절을 보면
세례요한은 이미 예수께서 베다니 자신의 사역현장에 계셨음을 안 것 같이 인식하게하기에 충분했지만
마11:3 눅7:19-10을 보면
요한의 그 고백은 마16:16 막8:29 요11:27 베드로의 고백과 마찬가지 성령의 알게 하심의 은혜은총(恩惠恩寵)에서 발로(發露)한 표현이었음을 확신하게 한다
실제 세례요한의 인간이성적안목(人間理性的眼目)이라는 인식적(認識的) 앎이 아니었고
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오로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 것임을
오늘 확신하게 만든다
2016 국민일보에 기재된 순교자들의 숫자 약 7000만명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들 모두 역시 자신의 이성적판단과 신심(信心)으로 그러한 최후신앙고백이 아닌
그 역시 베다니의 세례요한처럼 가이사랴빌립보에서의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그것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살다보니 나를 알겠다
나는 본래 베드로 가룟유다 과 임을...
내가 만일 화가였다고 한다면
미켈란젤로처럼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속에 자신을 그려넣은 그 자리...바로 나를 그려넣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그러니까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고전15:10의 바울의 깨달음처럼
사단의 유혹(誘惑)와 위압(威壓)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답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결론
그러니 1873 F R Havegal 작사 S. Ferreti 곡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없네’ 라는 그것이
오늘의 나를 대변하는
신앙고백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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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 292장-주없이살수없네
(1)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 하소서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 됩니다
(2)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서리
힘 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3)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 밖에 나의 마음 뉘 알아 주리요
내 마음 위로 하사 평온케 하시네
(4)
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니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