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719년-756년)의 실제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양귀비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며, 이름은 양옥환이고 현종(이융기)와 무혜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수왕(이모)의 비로 17세때 궁에 들어 왔으나, 시와 노래에 뛰어나고 보기드문 절세의 미인으로, 현종의 눈에 들게되어 현종은 자신의 아들인 수왕(이모)에게서 당시 며느리인 양귀비를 빼앗아 자신의 비로 삼았다 그리고 양귀비는 뛰어난 미모로 일본의 "오노노 고마치"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더불러 세계 3대 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의 4대 미인 (양귀비, 서시, 왕소군, 초선)중의 한사람 이다 ★양귀비는 실존 인물인가?★ 양귀비는 실존 인물인가? 양귀비는 실존 인물이다. 양귀비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 이며,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블어 중국의 4대 미인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양귀비(719년-756년)의 이름은 "양옥환"이며, "현종(이융기)"과 "무혜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수왕(이모)"의 비로, 17세때 궁궐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시와 노래에 뛰어나고 능통하였던 양귀비는 740년 환관 "고력사"의 소개로 만난 현종의 눈에 들게 된다. 그리고 양귀비가 눈에 들게된 현종은 자신의 아들인 수왕(이모)에게서 당시 며느리인 양귀비를 빼앗아, 궁안에 "태진궁"을 짓고 그곳에 양귀비를 머물게 한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가 22세 이며, 현종은 57세가 된다. 745년 양옥환(양귀비)이 "귀비"가 되면서, 당나라는 서서히 환란의 길로 다가가게 된다. 당 현종의 초기에는 어진 정치를 하였으나 양귀비의 등장 이후부터 양귀비및 양귀비의 일가의 전횡이 시작되면서, 당나라는 나라의 정세가 상당히 어지럽게 된다. 747년 절도사 안록산이 양귀비의 총애와 함께 전면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 당시 당 현종은 양귀비에게 빠져서 나라의 정치를 돌보지 않고 정치에 관한 모든것을 "고력사(환관)"등의 환관들에게 넘겼으며, 이로 인한 환관과 양귀비의 친척들의 전횡과 부패 속에서 정치 제도와 관리들의 타락이 안록산에게 난(안사의 난)을 일으킬 명분을 주게된다. 양귀비는 안록산의 반란(755년)이 일어난후, 756년 당 현종과 함께 양국충 (양귀비의 4촌 오빠)의 가문 세력인 "쓰촨"으로 달아나다가 현종을 모시던 근위군이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에게 죽음을 요구하자 양귀비는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한다. 당 현종(이융기)는 양귀비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날의 영화에 대한 허무감으로 병을 얻어, 762년 5월에 그의 나이 78세에 생을 마감한다.
중국정부 공식, 양귀비의 초상화 (초상화로 남긴, 실제 양귀비의 얼굴 입니다) 실제 양귀비가 살았던 중국 황제의 별장, 당화청궁에 걸려있는 그림 입니다
★양귀비의 초상화★
<중국정부 공식 양귀비 초상화로 남긴 실제 양귀비의 얼굴 입니다 양귀비가 살았던 중국황제의 별장 당화청궁에 걸려있는 그림입니다> 별로 예쁘구나.
첫댓글 클레오 파트라도 그렇고 양귀비도 그렇고 미모보단
말솜씨가 참 좋았다던데 ᆢ
콩깍지가 어떻게 씌느냐의 문제
이쁘세요
양귀비의 본명이 양옥환인것은 태어날때 부터 옥팔찌를 차고나왔다고 해서 옥환이라고 하죠 초상화에 옥환은 그런 의미 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정윤희 나 김혜수 정도 닮았으려나.....
실제로는 증거를 대시오? 중국이라 이미 재로 가능성
실제 양귀비의 얼굴일 리가 없죠. 딱 봐도 그림 화풍이 고대 화풍이 아니라 근현대 화풍인데요.
그냥 후대에 그려진 여러 초상화(당연히 상상화) 중에서 저 그림을 중국 정부가 공식 초상화로 지정했다는 건데, 그 말은 저 초상화가 실물을 쏙 빼닮았다는 의미가 되는 건 아닙니다. 여러 그림들이 난무하면 혼동스러우니 '표준 영정' 을 정하겠다는 그런 취지일 뿐이죠.
(가령 우리나라에서도 충무공 이순신이나 다른 위인들의 경우 국가가 정한 '표준 영정' 이 있기는 한데, 근대 이전 인물들의 경우 그 '표준 영정' 이 실제 외모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